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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04
    미칠이 어록을 보고,(3)
    은수
  2. 2006/09/11
    어느 답답했던 날
    은수
  3. 2006/08/31
    결혼이야기
    은수
  4. 2006/02/14
    왜 꼭 "어머님" 일까?
    은수

미칠이 어록을 보고,

염둥이님의 [미칠이 어록] 에 관련된 글.

며칠전 인터넷에서 '미칠이 대사 또 논란' ,,,뭐 그런 기사를 봤드랬다.

 

참 열받는 건,

미칠이라는 캐릭터에

된장녀의 요소라고 일컬어질만한 것들을 죄다 쏟아붓고는

자기 언니 애인 빼앗고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의 성격 파탄자로 그려놓고는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역시 저런 기집애들은.....쯧쯧..."

 

기사에서 대사를 낱낱이 보면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는데도,

나 역시 드라마 상에서 미칠이를 보고 있자면 짜증부터 치밀어 오른다.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

가족은 내팽겨친다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돈돈돈 한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히스테리를 부린다

도대체 대화와 소통이란 걸 모르는 아집덩어리이다

라고 사람들 머릿속에 집어넣는 이 드라마 작가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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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답답했던 날

로젤루핀님의 [KTX 여승무원 투쟁, 대안은 과연 무엇인가? _1] 에 관련된 글.

돌아와서 내내 우울했던 날.

알바 땜에 끝나기 전에 나가긴 했지만.

그날은 정말이지 나의 어중이떠중이 같은 위치와,

그녀들과 나 사이의 간극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날이었다.

 

여성운동 내에서도, 노동운동 내에서도

사각지대처럼 존재하는 여성노동에 대한 고민은 많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막 그러면서.

 

아무튼 난 후기를 올릴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 분 글을 보니 다시 그날이 떠오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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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까치님의 [결혼이야기 1-여남의 다른 이야기 1] 에 관련된 글.

같은 활동가끼리라고 해도, 여자와 남자로서 느끼는 '감수성'이 다르다는 걸 종종 아니 자주 느낀다. 어떤 상황에서의 남성 동지들의 '무던함' '침착함' 등등의 반응을 보고, '무던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화를 내고 있는' 내 자신을 비교하곤 했었다. 항상적으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의 감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누구라도 정말로 많은 노력과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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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어머님" 일까?

오랜만에 일다에 들어가 기사를 몇 개 보다가

노동운동 코너에서 못보고 지나쳤던 한 기사를 보니

며칠 전 발끈 하던 일이 생각 나 퍼온다.

 

사건의 발단은 내가 모 매체에서 '청소 용역 아주머니'를 비롯해

여성노동자를 '아주머니'로 표현한 것을 무려 3번 본 것에서 출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수많은 매체와 유인물 속의 '아주머니' '어머님'

등등이 다시금 떠올랐던 것이다.

 

"우리 조합원 아줌마들이.." (모 시설관리 위원장의 말)

"5공장 아주머니들의 단식투쟁"(모 사내하청 유인물)

 

몇년전 학내에서 시설관리 투쟁을 할때마다

다른 학생단위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공식적인 집회에서조차

꼭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정작 그들은 학내에서 여성주의적 실천을 선도적으로 한다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동지'라고 부르라는 우리의 제기를 우습게 봤겠지만

나는 '동지'라고 부르는 것이

누군가의 '어머니'나 결혼한 '아주머니'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깨걸고 투쟁할 사람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단어 하나지만,

그 단어 속에는 온갖 반여성적 사회 관행, 그리고 편견들이 녹아있다.

 

덧/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모 글에서 본 글귀,

도대체 "비정규직 운동의 처녀지"가 뭐냐구 !!

 



왜 “어머님”일까
     
최저임금집회에 참가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혜영 기자
2005-07-04 22:09:46

<필자 혜영님은 전국여성노조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호칭은 나와 상대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호칭을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서 붙이는 호칭이나 잘 모르는 사람을 최대한 높이는 호칭 등은 더 까다롭게 선택된다.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무례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 고민하지 않던 호칭에 대해 머리를 굴리게 된 이유는 노동운동 및 집회에서 사용되는 호칭에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동형제” vs “어머님”

6월 말은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 관련 집회와 활동이 집중되는 시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 27일 밤에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합원을 비롯해서 많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딱 최저임금액 만큼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집회에 참가해서 자신들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요구를 밝히는 그들은 멋졌다. 그들은 하루 일과(청소)를 마치고 밤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왔다. 다음날 일을 하기 위해 새벽에 다시 일터로 가야 한다. 최저임금 당사자로서 정당한 일한 대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와 투쟁에 대한 열정에 대해 집회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공감했을 터다.

집회에서 사회자는 이 훌륭한 “우리의 어머님”들께 박수와 존경의 표시를 했다. 바로 “노동형제들의 어머님”들에게 말이다. 물론 이들의 연배가 적게는 40세, 많게는 60~70세에 이르니 사회자는 조심스러웠을 것이며 공경의 표시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즉, 사회자가 “어머님”이란 호칭을 함부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성노동자”도 “청소용역 노동자”도 아니고 “어머님”일까?

노동운동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아

많은 40~60대의 여성들은 누군가의 ‘어머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다수도 누군가의 어머니다. 그러나 이들은 집회에 참석한 “그들의 어머님”이 아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그 자리에 참석한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아닌’ 여성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집회에서 이들은 모두 “어머님”으로 통칭됐다.

노동자의 단결을 외치며 “노동형제”를 부르짖다가도 투쟁의 현장에서 일하며 여성으로서 권리를 외치는 여성들을 “어머님”이라 칭하는 태도. 이것이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노동형제” 들은 눈에는 아직도 일하는 여성, 자신의 권리를 찾아 투쟁하는 여성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한편 “어머님”의 외침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노동형제들의 애틋한 감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평생 자신보다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온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존재다. 효도 받으며 그간 고된 생을 보상 받아야 할 어머니들이 험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시려올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에게 보내는 함성과 박수 속에 “노동형제”들의 애틋한 마음이 스며있다. 어머니를 외치며 달려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애쓰는 일하는 여성들은, “노동형제”들로 인해 애틋한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투쟁의 현장에서도 일하는 여성의 모습보다는 가족관계 속에 투영되는 여성의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노동자 대 노동자의 연대는 다른 노동자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자신의 권리를 찾아 투쟁하는 일하는 여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어떤 연대가 가능할까. 지금이라도 노동형제들은 바로 보길 바란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어머니”가 아니라 “일하는 여성”으로서 최저임금 집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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