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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

 

성환이가 왔었다. 내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이자 아직까지 무수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다. 중고등학교 때 프로이트와 칼 융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노자와 장자에 대해서 밤새껏 토론한 적도 있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난 이후, 10여년만에 다시 대학에 들어갔지만 다시 얼마전에 그만뒀다. 그리고 그만둔 일은 참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본다. 서른이 지난 나이에 그이에게 '졸업장'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전공이었던 '물리학'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졸업장이 주는 무게감을 쉽게 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성환이의 에너지는 무엇보다 '역경'에서 비롯된다. 부모님 모두 사고와 병으로 돌아가시고, 장례를 지내는 동안 내내 같이 있으면서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두 명의 누나가 문제였다. 둘다 결혼은 했지만, 둘 다 몸에 이상이 있다. 큰 누나는 다리가 불편하고, 약을 끼고 살고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작은 누나다. 작은 누나는 '아이젠 멩거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려있다. 이 병은 심장과 폐를 동시에 이식해도 생존율이 얼마되지 않는다.

 

결국 성환이는 대학을 포기하고 나름대로의 사업과 직장생활을 전전한다. 집안 문제가 이렇게 만리장성처럼 그의 진로를 떡하니 가로 막고 있을 때, 또 하나 일어났던 사건은 '친구'문제가 있었다. 나랑도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생인 친구가 성환이에게 인터넷 사업을 제안했고, 성환이는 이에 응하여 사업을 같이 했다. 사업도 나름대로 되는 편이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그 친구라는 놈이, 양아치 몇 놈을 시켜 성환이에게 있는 돈을 다 내놓고 그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한 것이다.

 

그 친구놈, 친구라고 부르기도 천박한 놈이 알고 보니 '양아치'였던 것이다. 성환이는 그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자신이 따로 사업을 시작했다. 새로 시작한 사업은 '성인콘텐츠'에 광고를 대행해주는 회사였는데, 이번도 성환이가 기술적인 부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일에 환멸을 느낀 것이 몇 개월이 지난 후, 성환이가 서울로 나를 찾았고 조만간에 그 일을 그만두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가치기준으로 살고 싶다."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나와 전순옥과 임금빈은 박성환을 만나 이야기를 했고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 성환이는 나름대로 신변정리가 끝나게 되면 다시 서울로 올라와 거주지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되지 않는다. 성환이도 걱정하지 않는다. 성환이가 경험한,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 현실에서 60억 인구 중에 몇 명 되지 않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이는 지금을 살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성환이는 그렇지 않다. 그이의 에너지가 힘있게 가동될 것이라고 믿는다. 가동되는 만큼 더욱 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성환이와 할 일이 있다. 몇 년 간 생각했던 공동의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 성환이를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해보고 싶은 일을 제대로 찾았을 때 기분이다. 결정되면 연락할께"

 

이 말을 남기고 성환이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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