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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李)형에게

간만에 메일 한 통 쓴다.

 

시험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다. 그러나 어짜피 행님이 선택한 길이니 힘차게 가기를 바란다.

밤이 늦게되면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잠이 오기를 청한다. 오늘도 그렇다. 그런데 늘상 책을 읽다보면, 사회과학 책을 제외하고 주로 인터뷰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읽게 될 때 뭣모르게 다가오는 공허함이 있다.

 

특히 그 글의 주인공(실존인물)과 그의 친구들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돈독함 같은 것 말야. 김규항의 글에서도, 조영남의 인터뷰에서도, 김민기의 글에서도, 그 외 주인공과 정신적 교감을 함께 나누는 이들이 너무나 부러우면서도 거부반응이 생긴다.

 

30대 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지는 몰라도 지식이나 견문, 사유의 깊이에 있어서 그들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모자라다. 그러나 이건 문제가 아냐. 문제는 그런 그들의 관계가 짓이겨지고, 다져져서 고운 맛을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설익은 풋과일 내도 난다는 말이다. 조영남이 김민기에게 "넌 나의 새색시같은 친구"라고 했을 때 더욱 그랬다.

 

이런 공허함이 내가 집중적으로 책을 들고 있던 시기에 더욱 심해지기 시작한 거 같다. 교만해진 것일까. 세상과 사람들을 너무 얕잡아 본 걸까. 계속 자극, 자극을 떠들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자극은 줄어들고 내가 자극할 대상만 늘어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그 자극에 무통의 반응을 느끼면서 시원찮아하고. 또 실망하고.

 

내 스스로 너무 많은 길을 가버리면 결국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래서 때로는 느리게 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을 내가 별로 인정하지 않더라. 몸은 멈춰있어도 생각은 뻗치니 모순된 생각과 행동이 계속 무리지어 나오게 된다. 내 속에 내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관계가 아니고 성찰에 가까우나 내 밖에 있는 나와 다른 사람, 특히 행님의 마음이 서로 톱니바퀴 처럼 맞으면 때로는 더 큰 기쁨과 성찰뒤에 느끼는 쾌감이 있다. 그러나 그게 시간이 지나면 멈출까 두렵고, 그것을 쉽게 인정해버릴 것 같은 내가 무섭다.

 

한 발 한 발, 왔다. 그리고 지금은 갈래길에 있다. 어딜가도 관계없다. 돌아오는 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기 보다는 합쳐지는 길에서 만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늘은 그냥 이렇다. 내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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