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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없는 노조

내가 개인적으로 재수없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 중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정확하게 잘 모르는 사람이 그에 속한다. 얼마전 친구와 같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친구는 사실 친구만 아니었어도 영원히 쫑낼 수 있었다. 부모자식 관계가 소 힘줄과 같다면 친구와의 관계는 기다란 까만 고무줄 같다. 이 둘은 강도는 다르지만 본질은 잘 안끊어진다는데 있다.

 

친구의 개떡같이 말씀을 들어보자.

 

"XX공사에 초봉이 4,100만원이야. 그 정도 받으면 충분한 것 아니야? 사실 그 공사 직원들 거의 놀아. 우리 아버지도 거기서 일했잖아. 근데 임금인상? 노조도 쓰레기 노조야. 개념이 없어. 개념이."

 

거의 빠짐없이 기억해서 적었다. 이럴 때는 거의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 수준으로 기억한다.

여하간 본론으로. 좀 어려운 이야기부터 꺼내보자.

'자신의 존재'와 현재 '사회적 위치'를 알면 스스로의 행동반경을 인식하고, 그 인식은 조금씩 확장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쓸데없는 기대를 할 필요가 없이 행동하는 그 자체가 인식이 되기 때문에 결국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형태를 찾아나서게 된다는 말이다.

 

친구의 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초봉이 4,100만원이라는 사실. 둘째로 그런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거의 논다는 사실. 일단 반박은 얼러가면서 해야 하지만 그렇게 얼러도 돈많이 받는 인간은 밉게 보이는 법이다.

 

요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먼저 자신의 아버지의 임금에 대해서도 더 이상의 임금인상을 긍정해서는 안된다. 근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금쯤이면 퇴사했을테니깐.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도 그 회사에서 놀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근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직위가 높았기 때문에 일반 직원과 달리 격무에 시달렸을 거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동연구원에 찾아 물어도 입사초봉이 4,100만원 되는 회사는 아직 보도 듣고 못했다. 오바다. 그 친구가 말한 회사. 공사다. 하후상박의 임금구조다. 이런 건 모른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15년 근속 노동자가 얼마 받는지는 말 안했다.

 

자, 위의 반박은 이성적이도 않고, 대화를 계속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케하고 다음 술자리에 대한 기대를 희박하게 한다. 그렇다면 아주 논리적으로? 사실 그건 다 큰 어른들 사이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다. 안들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먼저 초봉이든, 연봉이 높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가? 꼭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나 구조면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유독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면 대부분 낮은데다가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높다고 하는 학습효과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높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 중소기업과 비교해보자. 어떤 중소기업이 대기업 만큼이나 일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임금은 대기업의 70%수준이라고 치자. 그러면 그 중소기업에게 30%만큼 노동자에게 주라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기업에서 30%이상의 임금을 중소기업보다 더 받는다고 해서 그 비율대로 더 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소위 좋은 회사는 가는 이유. 이유있다.

 

이런 생각의 저반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려있다.

 

"우리집 식구가 많이 받고 적게 일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남의 식구나 나보다 일도 적게하면서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속 쓰려서 못보겠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결국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유식하게 좀 떠들어 보자. 대기업이라도 같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회사마다 똑같은 임금을 받지 않는다. 기업마다 임금의 지불에 대한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지불과 관련된 체계나 구성, 그 수준을 회사가 미리 정할 수도 있지만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결국 임금교섭에 의해서 임금이 결정된다. 자, 위의 전제가 이렇게 배치될 때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1) 나는 100만원 받는 노동자다. 그리고 하루에 10시간씩 일한다. 그래서 만땅 챙겨도 한달에 150만원을 못넘는다. 그런데 김씨네는 일단 하루 8시간에 잔업수당 등은 우리보다 당연히 많다. 그리고 한달에 약 350만원 정도 받는다. 김씨네 노조는 이번에 임금 10%인상을 내걸었다.

 

2) 나는 100만원 받는 노동자다. 그리고 하루에 10시간씩 일한다. 그래서 만땅 챙겨도 한달에 150만원을 못넘는다. 그런데 김씨네는 일단 하루 8시간에 잔업수당 등은 우리보다 당연히 많다. 그리고 한달에 약 350만원 정도 받는다. 김씨 회사는 노조가 없다. 사장님이 너무 좋은 분이라 이번에 임금을 10%나 인상해 주었다고 한다.

 

1)과 2)사이에서 당신들은 어느 것을 비난할 것인가. 그 친구는 당연히 1)이다. 왜냐면 노조가 맘에 안들기 때문이다. 그 친구를 탓할 수 없다. 노조가 싫은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캐나다에 있는 내 동생도 캐나다 친구들이 대부분 계약직인데, 대공장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그렇게 달갑게 보지 않는단다. 이걸 가지고 "당신들은 몸은 비정규직에 대기업 이사의 정신머리를 탑재한 기형아"라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다.

 

양극화 문제. 결국 돈 많이 버는 놈을 적대시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많이 벌면 그렇지 않다. 보통 이런 주장을 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회사는 노조가 없는 회사이다. 노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별 힘을 못쓰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경험이기 때문에 반증이 있다면 뒤집어 질 수는 있다.

 

위의 예와 같이 2)의 경우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1)의 경우라도 회사가 지불능력이 되지도 않는데 무리한 요구를 노조가 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비판하는 친구는 그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깐. 사실 심정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니깐.

 

사장이 임금을 많이준다면 욕할 문제는 아닐 건데,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니깐 그 노조 탓을 하고 있다. 회사가 많이 주면 개념이 있고, 노조가 요구하면 개념이 없는 것인가. 그러면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여야 하는가. 친구의 생각은 그럴 것이다. 다시말하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데, 돈 갉아먹는 벌레처럼 임금이나 요구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그만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임금수준을 유지한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아니 간접적인 피해도 주지 않는다. 반복해서 이야기 하건데,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 뭔가가 바로 자신의 상태와 관련된 문제이다.

 

노조가 연대를 하고, 사회적 요구를 하는 노조로 거듭난다고 해도 그러한 친구들이 노조에 호의적일까? 아니라고 본다. 젖소에게 딸기를 먹인다고 딸기우유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젖소가 생산하는 우유의 본질적 색은 흰색이다. 뭘 먹여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자신도 공사직원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야만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웃기고 자빠진 것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프롤레타리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말. 지겹다. 그래서 회사가 임금을 덜 주게 되면 그 덜 주게된 임금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건 기업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상대적 박탈감.

 

물론 과도한 임금인상이 양극화의 문제나 기업 내부적인 지불능력을 흔드는 문제 등의 우려를 낳을 수도 있다. 조금 다듬어서 표현하면 개별기업마다 임금수준이 편차가 심하고, 이에 따른 상대적인 박탈감이 그 원인이다. 또한 이러한 원인은 경험적으로  IMF 외환위기를 통해 기업위기를 학습한 결과이다. 

 

그 이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한 박탈감의 문제를 노조의 임금인상 자체를 무력화하는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노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임금까지도 여론에 따라, 국민의 사회적 감정에 따라 책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XX공사가 초봉을 4,100만원을 받든, 조종사들이 억대 연봉을 받든지 간에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노사다.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그 친구가 그 회사를 도와줄 것도 아니다. 만약 그 친구가 사재를 털어서 그 회사를 도울 정도의 또라이라면 나는 그 친구의 이야기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어렵게 되면 노조와 협의를 하든 대립을 하든 그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산업의 문제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면 정부가 개입할 수도 있지만 그 폭은 굉장히 한정적이어야 한다. 임금결정을 국가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가가 개입하여 임금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임금가이드라인(wage guideline).

 

문제는 임금구조의 변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적용, 그리고 직장에서의 차별 철폐 등이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는 사회 내의 저소득층의 문제,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사회안전망과 관련된 논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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