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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가수

원공(圓空) 스님. 무작정 걷는 수행을 한다. 그의 몇 마디를 인용해 본다.

 

"달력도 인간이 만든 감옥이야. 올해가 무자년이니 1월이니 며칠이니 따지면서 인간사가 복잡해진 거지."

 

"가다가 적당한 데서 자. 절에서도 자고 교회에서도 자고. 교회니 절이니 구분하는 건 교육 때문이야. 눈감으면 똑같아."

 

"무소유는 있을 수 없어. 저소유가 가능하겠지. 나는 옷이 한 벌밖에 없지만 꾀죄죄하지 않아. 저녁에 빨아서 널어뒀다가 아침에 마르면 마른 대로 입고 덜 마르면 덜 마른 대로 입고. 속옷도 빨아가며 열 달 넘게 입었어. 떨어져야 버리든지 하지. 덜 소유하면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는 거야."

 

평생의 화두가 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화두라는 것도 가지고 다니면 무게를 느껴. 화두의 무게조차 놓아버려야 해."

 

가수 김두수. 아는 사람 알고, 모르는 사람 모른다. 그의 노래, 암울하다는 느낌을 압도하는 몽환적인 명상세계를 유영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듣고, 몇 사람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김두수에 관해서는 아래 링크.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2130927581&code=900315

 

그의 말 또한 원공만큼이나 치밀하고 간결하며, 본질의 정곡을 찌른다. 몇 마디 인용해 본다.

 

문: "과거 음원들에 대한 저작권료는 받고 계십니까."

김두수: “그것이 (정말) 궁금하십니까.”

문: "왜 노래 하십니까."

김두수: “‘왜 사세요’라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문: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김두수: “다들 그런 거 조금씩 안고 살지 않습니까.”

문: "김두수씨의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김두수: “모든 존재는 자기가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존을 갖고 태어납니다. 인위적으로 부여하면서까지 더 생을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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