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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1. 경기장 반대편에서는 폭탄소리가 들리고 총성이 울린다. 안타깝다. 스포츠가 과연 평화를 담지할 수 있는 기제가 되는가. 배고파도 지네들의 나라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목숨처럼 큰 행복으로 생각하는 인민들에게는 눈물겨운 일이다. 그래도 나 또한 올림픽을 보면서 열광을 하고 있다. 인민이 우매하다고 말할 자격은 나에게 없는 셈이다.

 

2. 상업화된, 천문학적 돈을 하룻밤에 갖다붓는 일은 올림픽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미 88년 서울올림픽때도 그랬다. 성화봉송로를 위해, 단 몇 분을 그 길을 뛰는 자들을 위해 철거민들이 생기고 그들은 거리에 나앉아야 했다. 2008년 올림픽 개막식, 베이징의 하늘에 들이부었던 상상력은 인민의 현실을 외면한 채 밤하늘을 밝혔다.

 

3. 유도선수 최민호의 눈물. 그들이 태릉선수촌에서 지옥같이 훈련할 때 좀 산다는 나라들도 그렇게 살인적으로 운동을 시키는지 몰라도, 그렇게 빡시게 훈련을 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최민호는 포상금과 연금을 받게 되었고, 그것을 부모님을 위해 집을 사드리는데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 효자는 이번 올림픽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국의 마크를 가슴에 달고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을 해야할 이유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40대 수영선수가 '40대에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야기에서 그런 여유가 나올 정도라면, 우리처럼 죽기살기로 사람잡는 훈련을 강요하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결국 죽기살기로 운동하고 온둥을 시키는 이유는 아마도 운동이 신분상승, 어느 정도의 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저 씁씁하기 그지없다. 생계를 보장해주면서, 운동할 수는 없는가.

 

라면만 먹어야 금메달을 따는가. 그게 의미가 있는가. 되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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