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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7
    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2)
    공돌
  2. 2012/05/07
    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1)
    공돌

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2)

여튼 이어서. 그 선거 결국 NL쪽이 패배했소. 우리가 이긴거라오. 근데 유쾌하지도 홀가분하지도 않았다오. 이미 15%이상 우리쪽이 이기고 있는 마당에 개표를 더 지켜볼 필요가 없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쯤. 한 8시인가, 저쪽 NL 선본장이 나를 찾아왔더라오.

 

대취한 상태로. 그리고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는 뜬금없는 소리를 해대지 않소. 물론 그 당시 단과대 동아리방 공사에 대한 세부계획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결국 학교측 제시안을 자기들 대안처럼 포장해서 공약으로 낸 것이 결국 까발려진 것에 대한 항의표시로 찾아온 것이었소. 거짓말은 자기들이 해놓고 말이오.

 

근데, 선본장, 너무 한 건 일단 대취한 상태에서 불쑥 찾아온 건 둘째치고, 그 놈의 발냄새는, 잊을 수가 없다오. 뭐 논리적인 얘기도 아니고 선거 지고 나니 속이 뒤집혀 온 건 이해가 가오. 그러다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는데, 서넛 정도 마시고 있던 술자리에 우리 배가 넘는 사람들이 와 깽판을 치는 바람에 결국 자리를 피했다오.

 

나는 기본적으로 소심한데다 간이 작아 그런 일이 있으면 심장이 뛰고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어찌할 바를 몰라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오. 무섭기도 했다오. 지글지글 타고 있는 쭈꾸미 불판으로 얼굴을 지질 줄 몰라, 불은 끄고 쭈꾸미 반이나 남았는데, 자리를 떴다 이거오.

 

그 이후로, 해괴망측한 일들이 일어나오. 학생회 문 앞에 똥을 싸놓는가 하면(참, 학교 망신이긴 한데, 난 모교를 이미 맘 속에서 지웠다오), 욕설은 예사에다 밤에 학생회실 문을 발로 차는 등 여튼 그때는 내가 졸업한지라 들기만 한 얘기, 기억나는 얘기들이 대부분 그런 것이었소만, 씁쓸한데다 찝찝하기 그지 없다는 얘기오.

 

돈 얘기...그런 얘기는 입 밖에 꺼내고 싶지도 않소. 여튼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종의 유사한 행태가 곳곳에서 발견되고는 저 쪽을 보고서 오줌도 누기 싫었다는 말이외다.

 

주사파든, 자주파든, NL이든 간에 자주고름 입에 물고 하는 걸레같은 욕설과 말들, 행동에 적잖이 상처를 받은 나로서는 이번 통합진보당의 전국운영위원회를 녹화된 동영상으로 보고 있는 순간 온갖 트라우마들이 삽시간에 피부병처럼 번져 온몸에 소름이 끼칠 뿐이오.

 

게다가 회의 중간 중간 마다 소리를 치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10년이 더 지난 그 때의 대의원 회의나 총회에서 했던 작태들이나 지금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오. 물론 나, 피해의식에 빠져 있는 나라는 사람의 얘기인지라 미친 돌아이 새끼 얘기라고 해도 난 논쟁하거나 반박할 수는 없소. 이미 내겐 그렇게 굳어진 경험들이고 무엇으로도 설득불가한 영역이 되버렸기 때문에.

 

그렇소. 나, 통합진보당 당원도 아니고, 더구나 우리 동네는 야권단일후보가 나와 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비례대표도 통합진보당을 찍지는 않은 사람이긴 하오. 그래서 내가 주절대는 얘기가 그들을 향해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오늘 지금, 내 찝찝함을 덜어내고자 몇 마디를 써내려 가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오.

 

뭐, 신념따위 굳건한 사람도 아니고, 사상으로 칠갑한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과거 학생회 조금 해 본 경험이 이렇게 내겐 상처가 되어 있을 줄 몰랐던 거외다. 솔직히 운동권들의 그 음습함이나 멜랑꼴리한 분위기, 조직 위계, 편가르기, 후줄근함, 찌질함, 까칠함 뿐만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는 혁명, 말도 안되는 상상력의 신봉, 누구의 말대로 ‘상상된 (민중적)공동체’ 속에서 꿈란같은 종말론적 집단처럼 그렇게 보낸 시간들, 집회와 현장의 치열함 속에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감 등등 나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은 것을 견뎌낸 시간들이었오. 오직 책임감,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책임감 때문에. 으구, 씨바.

 

근데 통합진보당의 작태가 그런 꼴을 보여주고 있단 말이오. 예전 기억은 되돌려 놓고 싶지 않으오. 정말. 재미있으라고 쓴 것도 아니고, 내가 얘길 해야 앞뒤가 맞을 거 같은 강박 때문에. 또 한 켠에 내가 쓴 글에 누가 비난하고 난도질 할까봐, 겁도 나오. 그렇게 찝찝하고 겁이 나는 이유가 뭘까.

 

길게는 생각해보지 않았다오만 먼저 내가 통합진보당의 당사자도 아닌데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럽다는 것이오. 김재연씨의 당당함이, 너무나 나에겐 창피한 일이오. 그녀가 싫고 좋고를 떠나, 한겨레 2쪽 상단과 경향신문 5쪽 상단의 그 표정에서 그 어린 친구의 고뇌 보다 똘기로 충만한 그 당당함과 기성정치인에게서 풍겨오는 그 대범함에 놀라오. 안쓰러워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오.

 

다음으로 당랑권파들이 전국운영위원회 개최를 막는 장면이외다. 손피켓을 들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비장함은 촛불집회와 다름 아니었오. 결사항전을 불사하는 식민지 조국의 통큰 해방꾼들 마냥, 저 구국의 심정은 한 두해만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오. 이미 신앙인의 단계를 지나 순교자적 헌신과 열반으로 가는 수도인들과 흡사하기 짝이 없단 말이오. 아마 고엽제, 북파 공작원 등 이들이 가스통에 불붙여 집회를 시작했을 때의 충격처럼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그들이 무서울 수 밖에 없다오.

 

왜 무서울 수 밖에 없느냐면, 적어도 정치를 하는 정당에서 토론하고 협상하고 그런 여지 없이 신념으로, 신앙심으로, 순복음교회 신도들의 집단 항의와 다르지 않는, 그런 집단 최면에 놀랐다는 거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그들의 눈빛을 봐왔소. 인간의 품성을 그리 금과옥조처럼 외치는 이들이 결국 전장에서 폭탄들고 탱끄 밑으로 뛰어드는 것을 최고의 품성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들이 목숨 걸 일이 아닌데, 목숨을 걸고 있는 극단을 보여주고 있기에. 난 그들의 광기에 놀라고 그것이 무섭소. 너무나. 다시 말하지만 난 트라우마 덩어리가 암세포 다발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속좁고 겁많은 사람인지라,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도 두렵소.

 

사상투쟁이라는 전장에서 가열차게 싸워오신 분들이야 작금의 사태를 관전하는 재미가 있으시겠으나, 난 여전히 이렇게 주절대고 떠들어도 맘이 좋지 않고, 계속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오.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드오. 가만히 스캔해 보니, 이정희 대표의 표정과 말에서 느끼는 찝찝함도 한 몫하오.

 

그녀의 말투, 그녀가 쌓아 놓은 신뢰. 물론 난 개인적으로 이정희씨 같은 사람에 대한 호감은 없으나, 그 동안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장함은 결국 그것마저 광기로 연결되오. 면도날 하나도 들어갈 수 없는, 공기 한 줌도 비집고 새어나가지 못할 정도의 그 폐쇄적인 태도. 실망을 넘어 그 또한 무섭소. 사람이 저렇게 바닥을 보이는 구나, 하며 말이오. 에구, 힘들다...결론을 맺긴 해야 하는데. 마음 영, 시원치 않네....(계속)

 

에구..니미랄..짤방이나 하나 올려두오.

 


씨바, 이게 멘붕상태지뭐. 내가 이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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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덕에 젊은 사람들, 정치 관심 가졌는데...결국 MB와 뭐가 다르냐능..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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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노 보다 더 진한, 그들...(1)

사실 바쁘오. 정말 바쁘오. 요즘. 한때 여기에 글을 올리고, 남의 글을 훔쳐보는 재미로 살았던 그 날들이 참으로 그립기만 하오. 가끔씩 글을 올리고 싶을 때면 몇 시간이고 고민해서 쓰기도 하고, 그냥 갈겨대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글 쓰는 것도 신통하지 않아 남의 글이나 잠시 빌려 읽으며 보낸 시간이 벌써 몇 해 째가 되는 구려.

 

여튼 각설하고. 이건 좀 남겨 둬야 겠다는 생각에 여길 들어오고 나니, 사실 다시 의욕이 사라지는 터라. 어찌할까를 고민하다, 결국 한글에서 한참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고 여기에 다시 올려보오. 씨바, 이거 누가 봐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올리고 지랄인지는 모르나. 뭔가 이렇게 올려두면 누군가 공감하는 건 둘째치고 나 혼자 이 공간에서 떠들고 소리치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질까봐.

 

요즘은 힘이 없어 보지 않으나,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뽀르노 잡지를 접하게 되었오. 그때 우리 동네는 배타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많았다오. 근데 걔네들 집구석에 놀라가면 그런 잡지 한 두 개, 비디오 테이프 한 두 개 쯤은 무슨 손님 접대용으로 다들 장롱 옥상이나 화장대 바닥에 꽂아두고 있었던 터라.

 

여튼 그 때 처음으로 뽀르노 잡지를 보고 난, 남자 아이치고는 굉장한 충격을 받은 걸로 기억되오. 친구는 나에게 호감의 표시로 그걸 보여줬지만, 난 그 때 솔직히 뭔가 모를 죄책감과 동시에 그 죄책감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 사이의 혼란스러운 감정들. 도대체 뭔가. 찝찝한 기분, 너무 조카튼 기분, 보고 싶지 않음과 다시 보고 싶음 속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말로 설명이 안되는.

 

그것도 계속 보면 중독도 되고 무감각해진다면서도...그 시절 그 패닉상태와 같은 마음 속 개떡같은 감정들이 뭔가와 계속 중첩되어 나타나냐 이것이 내 얘기의 핵심이오. 들뢰즈도 모르고, 가타리도 모르고, 보드리야도, 바티이유도 모르는 내가 이걸 휘황찬란하게 야부리까기는 불가능하고. 여튼 다이렉트로 첫 뽀르노 기억 이후 연결되는 유사 찝찝함으로 바로 넘어가오.

 

대학교 3학년때로 기억하오. 총학생회 선거에 관여하게 되면서 우리 선본에 치명적인 악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결국 더러운 꼴 다보고 개망신 당해가며 완주는 했으나. 선거가 끝나고 선본 사무실로 썼던 동아리방에 신문지 깔고 모여 앉아 족발을 시켜놓고 술을 마시며, 남은 감정들을 정리할 때쯤. 같은 과 NL 후배가 우리쪽 선본으로 와서, 여러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선거 잘 치러서 고생했다고 그러면서 술을 한 잔 얻어먹고 있었으나.

 

내 기억으로 공대 선배로 기억하노라. 우리 선본방에, 아마도 새벽 2시쯤, 그 개새끼가 똑똑 한 뒤 그냥 들어와 그 후배님의 목덜미를 잡아채 밖으로 데려간 것이 아니오. 화들짝 놀라 우리가 밖으로 나가니, 내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외다.

 

“시팔새꺄, 니가 뭐라구 저기 기웃대고 지랄이야. 선배들 부를때까지 나오지 말랬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 무릎으로 그 후배의 안면을 강타하고 코구멍에서 김치국물이 주르르 흐르니까, 무슨 광주항쟁 진압때가 기억나더이다. 그리고 내가 항의하며 왜 사람을 때리고 그러느냐, 우리 과 후배가 찾아온게 무슨 문제냐, 이러고 그 새끼에게 지랄을 하니, 그 개새끼 하는 얘기가 걸작이라.

 

“입다물어”

 

무서웠소. 정말. 대여섯이 찾아온 선본방에 고요함만 가득했다오. 그리고 어정쩡하게 취한 상태에서 난 집으로 돌아갔다오. 선본방 밖엔 여전히 선혈이 낭자해 있더이다. 한 참 지나 그 후배를 만난 뒤, 약수터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매질이 여러 차례라,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오히려 안심을 시키더이다.

 

그리고 소인 이제 선거판에서 기웃거리지 않겠다, 다짐했었오. 그리고 휴학하고 시민단체에서 들어갔소. 다시 학교에 복학하니, 단과대 선거한답시고 염병들을 하고 있는지라, 그저 학교가면 술이나 처먹고 취해서 돌아오는게 일과라, 별로, 아니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오. 근데 후배 놈 둘이 찾아와서, 선거를 꼭 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오. 씨바, 내 진짜 선거 안하고 싶은-이미 한 해 전 우리 아버지도 선거(정치와는 무관하오)같은 걸 하게 되었는데, 그걸 도왔으나 결국 패배-맘 굴뚝 같았으나, 마지막 한 번이려니, 하며 목장갑을 끼게 되었오. 마지막 한 번이라. -계속(솔직히 한 번에 다쓰려니, 너무 힘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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