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공돌

67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3/29
    돼지고기
    공돌
  2. 2007/03/29
    체제 내적
    공돌
  3. 2007/03/24
    왜라는 질문
    공돌
  4. 2007/03/23
    아파요
    공돌
  5. 2007/03/17
    라이타
    공돌
  6. 2007/03/11
    이소선
    공돌
  7. 2007/03/02
    부산역
    공돌
  8. 2007/03/02
    파병
    공돌
  9. 2007/02/28
    폭행
    공돌
  10. 2007/02/20
    공짜 지식
    공돌

돼지고기

붉은 색의 돼지고기는 불만 닿으면 색이 변한다.

 

고기덩어리로 남는 한은 익혀지거나 썩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고기덩어리로 자처하는 나 같은 존재들이야 살아있는 돼지로 살 것인지, 고기 덩어리로 살 것인지는 이미 물건너 간 문제인 것 같다. 스스로 버려지거나 아니면 보기 좋은 색으로 익혀져서 먹히거나.

 

고기덩어리가 되지 않고 살아가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다. 농장의 주인이 돼지는 애완동물로 생각할리 만무하고, 돼지가 제 권리를 주장하며 '난 원래 먹히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님'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장렬하게(?)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연한 고기로 정육된다.

 

좌파들 중에서도 돼지고기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다. 겉은 붉어도 불만 닿으면 변한다. 그러나 여전히 고기덩어리가 되기를 거부하며 끝까지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체제 내적

어떤 현상과 사물에 대해 체제 내의 문제로 환원할 것인가, 아니면 체제와 대항하는 문제로 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자신이 가진 이념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폐렴에 걸린 환자에게 성금을 모아 그의 병을 고쳐주는 행위와 폐렴의 발병원인이 결국은 빈곤층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폐렴치료에는 치료비를 받지 말고 국가가 공짜로 치료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에는 굉장한 간극이 있다.

 

결국 폐렴이라는 문제는 사람의 문제인데 폐렴과 사람을 떼어놓고 사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체제 내적 운동이 변질이나 변용의 문제를 수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판은 입장 그 자체로만 둘 때에는 타당할 수  있으나, 운동을 위한 운동의 목적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해결방법 그 자체에 있다. 해결방법이 단기적 처방과 장기적 치료에 있다면 양자는 보완적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통하질 않는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특히 법학에서는 더욱 체제 내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왜라는 질문

누구든지 근본적인 질문을 할 때, "왜"라는 것부터 시작한다.

 

왜 늦었니, 왜 담배피니, 왜 가니...이러한 단발적인 근본을 묻는 질문에서

왜 사니, 왜 그런 생각을 하니, 왜 그렇게 하려고 하니, 왜 그런 결정을 했니...등등의 질문은 조금 무게가 실리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그런 질문은 많이 받아본 사람들이 숙련된 답을 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숙련된 대답이 안통하는 경우가 바로 아이들이 "왜"라는 질문을 쏟아낸 경우이다.

 

"아저씨는 왜 담배를 피세요?"라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내놓은 대답은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저씨, 끊을려고 노력 중이야"

 

이것도 사실 거짓말일 수 있다.

 

아이들의 질문은 본질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본질 자체도 무섭다.

조심해야 할 것과 아이들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가진 정도라면,

어떤 누구에게 어떠한 대답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체가 무섭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파요

몸이 너무 아파 여기에 쓰는 글도 한 동안 미뤘다.

 

힘을 다시 쓸 수 있을 때,

생각을 모아봐야 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라이타

술자리에서 너도나도 술값계산한다고 난리다.

 

"내가 너보다 좀 더 벌잖아"

 

술사먹고 술값계산 해주면 좋다. 누구도 안말린다.

술값으로 쓰는 돈이 때로는 아깝기는 하지만, 같이 먹고 술값계산하는 것은 좋다.

근데 웃긴 건 이런 거다.

 

술값계산하고 나와서는 가게앞에서 서로 담배불을 붙이다가 이런 실랑이를 하다가 급기야 싸운다.

 

"그거 내 라이타야"

 

"거기 적혀있는게 황제갈비 맞잖아"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간사하기 그지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소선

오랫만에 이소선 어머니를 찾았다.

민가협 사무실에 요즘 계속 출퇴근(?)중이시라는데, 전순옥 선생이 전화를 드리니 2시간 있다가 퇴근한다고 밖에서 좀 기다렸다.

 

요즘 유가협 내부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몇 해 전부터 그래왔는데, 거의 아사리판인 듯한데, 참 말로 설명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이소선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답답함이 묻어나오더라.

 

"참..지독해..지독해..우찌 글케 지독하꼬"

 

근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내부 분쟁이 다른 열사 어머니와 아버지들을 딴딴하게 묶어내는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직도 정정하고, 건강도 많이 좋아지셨다. 농담도 여전하고, 담배도 여전히 피신다. 어제는 담배 심부름은 안했지만...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

 

화장실 변기를 좀 고쳐드리고 나오는 길에, 전순옥 선생을 가르키며 한마디.

 

"니는 저런 거 못해? 니는 박사라매?"

 

그리고 깔깔 웃으며 집을 나올 때가 12시가 가까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부산역

"철도공사 측은 매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맞이방을 폐쇄한다. "

 

간단하게 몇 줄만 메모,

 

오늘 아침에 들었던 뉴스의 꼭지다. 찬반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책마련이 필수적이다. 그 대책에는 몇 가지 고려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은 왜 부산역, 혹은 역사에 노숙자들이 몰리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 무엇보다 역사는 입지적으로 노숙자들에게 여러가지로 유인요소가 많다. 일단 그 동선에 있어 먹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시스템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음주, 흡연 따위에 소요되는 비용도 해결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역사에 머무르고 빈번하게 바뀌는 승객들에게 몇 푼을 요구하는 일이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노숙자간의 내부관계에 있어서도 일정한 규율이 있으나 무료한 시간을  동료들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자활능력이 저조한 상황에서는 역사를 찾는 편이 쉼터를 찾는 것보다 더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숙자 쉼터는 유인요소가 역사보다 낮은 이유가 뭘까.

 

노숙자 쉼터가 문제되는 것은 인권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노숙자 쉼터에서 지난 11월에 7명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쉼터의 안전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이와 관련된 조치는 필수적이다.

 

또한 쉼터의 억압적인 규율로 인해 도리어 쉼터를 나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근로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노숙자로 생활했던 잔때를 씻어낼 수 있는 재활교육이 필요하다. 무작정 노동을 강요하면 그들은 쉼터를 떠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쉼터는 자활공동체의 형식을 빌려 그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사회복귀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파병

"이라크 자이툰부대의 경우 신형 방탄조끼의 보급률이 100%인 반면 아프간 다산·동의부대는 50%다. "

 

동아일보 기사 중 한 구절. 국익이 부족해서 나머지 50%의 방탄조끼를 지급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방탄조끼 없는 50%의 병력을 파병하지 말았어야 했다.

 

"도착해 보니 현지인들과의 갈등으로 현지인들이 ‘한국인들이 카불에 오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을 공공연히 하고 있었다."

 

서울신문의 한 구절. 이라크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말은 이미 개소리라는 걸 몰랐던 사람은 없었다. 유일하게 언론과 정부만 몰랐다.

 

그리고,

 

"이 부대에서 근무했던 한 전역병은 미군의 활주로 닦기와 미군창고 짓기 등 대민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노콧뉴스의 한 구절.

 

평화유지와 이라크 재건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파병한 군인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옳다. 국익이라고 해서 봐 줄 여지도 없다. 이미 정부가 국익의 실체로 말한 중동석유자원 확보라는 것은 이미 이라크 전후 처리과정에서, 그리고 아직도 폭탄테러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한국기업들이 무슨 배짱으로 이라크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정부의 논리는 유치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다.

 

국가가 국민의 방탄조끼가 되지 못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한가. 더 이상 국익이라는 논리 속에 포장된 제국에 대한 머리조아리기는 그만 두었으면 한다. 한 젊은 친구의 희생을 값싸게 훈장으로 떼우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속아줄만큼 속았고, 더 이상 속아주기에는 스스로가 참을 수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폭행

최근에 나를 건드리면 안되는데...

 

결국 후배의 아구창을 날렸다. 주먹이 아직도 얼얼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공짜 지식

돈으로 환산하기가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지식'이라는 재화이다. 공짜는 누구든 마다할 사람이 없다. 근데 지식을 공짜로 나눠준다. 요건 좀 애매하다. 가져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근데 좋은 지식, 필요한 지식을 공짜로 나눠준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것도 대학에서 그러한 지식을 공짜로 나눠주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도강(盜講)이 아닌 합법적으로 공유된 지식을 얻어갈 뿐이다. 그것도 신분, 성별, 경제적 자력과 무관하게 말이다. 그 순간 그것은 공공재다.

 

이런 공공재는 마트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상품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왜? 마트에서 나눠주는 사은품은 어떤 물건을 사게하기 위해서나 다시 그 마트를 이용해 달라는 미끼를 던지는 것이므로 공공재의 성격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물론 사은품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마트에서 제공받는 물품을 공공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그 사람의 생각에 불과하다.

 

지식은 원래 그 자체가 공공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자체를 특정한 누군가가 전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가령 도서관에서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것도 지식의 공공재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제외하고 누구나 책을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없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래서 서점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책은 완전한 공공재는 아니다.

 

공공놀이터의 소유가 누구의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책의 소유도 책 자체는 구입한 사람의 소유가 될 지언정 그 내용, 특히 문장, 그림 등은 책을 구입한 사람의 것은 아니다.  지적재산권을 언급할 필요가 없이 종이와 인쇄비용을 구입하는 사람이 부담하여 그 사람의 생각을 거의 노력없이 얻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지식이 공공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따라서 종이와 인쇄비용을 구입하기 어려운 이에게 그러한 지식의 공유를 위해 금전적 댓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는다면 그것은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참세상에서도 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자신의 지식을 무료로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아래의 기사를 읽으면 그러한 공공재라는 설명에는 의심이 간다. 그러나 공공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무료가 되어야 하는데 무료라는 기본 요건을 충족하니깐 공공재에 가깝다는 생각은 들지만 위에서 언급한 '마트'처럼 무료제공의 지식이 미끼라고 판명나면 공공재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단 무료라는 점, 다른 조건을 걸지 않았다는 점,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공공재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근데 의심은 잘 사그러지지 않지만.....좋은 일이기는 하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91218.html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대학이 같은 돈벌이를 목표로 한다고 해도 구사하는 테크닉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대학은 학문적 열등감, 간판결핍증을 이용하여 오히려 '고위과정', ;지도자과정'이니 하면 돈벌이에 더욱 혈안이 되다는 점, 그게 큰 차이다.

 

내용도 없는데다가 뭔가 '수료'나 나이롱뽕으로 '학위'를 받기 위해 용쓰는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오늘의 우리의 대학이 문제다. 건물벽을 대리석으로 칠갑을 한다고 대학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맨발의 기봉이도 알진데, 거의 3-4백만원 되는, 그것보다 더 비싼 등록금을, 고위과정 이수비를 요구하는 한국의 대학이 너무 밉다.

 

구청에서는 요가, 풍물, 서예, 컴퓨터, 자격증 등의 공공재 지식을  제공하면 그것보다 나은 지적 공공재도 제공되어야 한다. 그것을 대학말고 누가 할 것인가. 저의가 뭐래도 시도는 해봐야 할 듯하다. 대학들이여, 공짜로 좀 제공해봐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