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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23
    국기에 대한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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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4/20
    비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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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4/13
    노조혐오증 그리고 자기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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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4/13
    진보넷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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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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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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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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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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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04/09
    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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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03/29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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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맹세

하지말자.

 

http://www.hani.co.kr/section-021106000/2007/04/021106000200704120655084.html

 

이거 1년에 몇 번 할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나는 하지 않는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깃발에 대고, 느끼한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왼쪽 가슴팍에 손을 올려두는 일 자체가 짜증난다.

뭐야. 동상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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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온다

비가 오는 날은 늘 기분이 좋은데, 오늘은 되려 차분해 진다.

금요일인데, 기분이 더 처지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after hour를 듣고 있다.

 

http://blog.naver.com/soul0229?Redirect=Log&logNo=19136022

 

요즘 내 자신을 객관하기가 어렵다. 특히 한 몇 일 감기몸살 이후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자신을 객관한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균형점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한다. 그리고 그럴 때 즈음에는 경고음을 보내는 등의 약간은 긴장상태를 유지하게끔 한다.

 

또한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전략이나 전술보다는 본질에 가까운 것을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논리와 직관을 병행하면서 사물의 내면을 나의 통찰로 꿰뚫어 보게끔 한다. 그러한 일들은 공부를 통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공부는 늘 덜 달궈지고 연마된 상태의 무기이며, 그렇다고 해서 최종적인 완성된 무기가 될 때까지 숨기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냥 들고 나와 여기저기 칼질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 미흡하나마 만든 무기를 바윗돌에라도 힘꼿 내리쳐 봐야 할 것이다. 현실이라는 바윗돌에 나의 미흡한 무기가 깨어지면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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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혐오증 그리고 자기만족

이력서 따위에 해고경력까지 써넣으라는 이야기는 입사를 포기하고, 장난삼아 입사지원해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사와 법원은 그 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으나, 심증으로는 충분히 왜 그런지 추적할 수 있을 듯하다. 이력서, 그거 별거 없다. 법원은 신뢰관계의 징표로 보지만 사실 그것도 개소리다. 사장이 이력서를 제본해서 형광펜으로 그어가는 이력서의 고고학자가 아닌 이상, 이력서는 입사시 제출하면 끝이다. 그러나 이력서를 제 아무리 쪼대로 휘갈겨도 결국 그의 행동이 노조와 관련이 있을 때에야 제 위력을 가진다. 대학졸업을 빼버린, 최종학력을 기재하지 않은 이력서는 '사칭'이라는 이유로 그의 발목을 붙들고, 공장 담너머로 멀리 던져버린다.

 

결국 이력서에서 최종학력을 빼버린 노동자, 소위 위장취업자들을 검색하고 회사 밖으로 쫓아내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회사와 법원의 이러한 의식 근간에는 노조혐오증이라는 똬리가 봄 철 뱀새끼들이 동면에서 깨어낼 때 처럼 뒤엉켜있다.

 

아직도 회사와 법원은 "노조혐오증"이라는 반공주의의 적자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 학생운동 물 좀 드셨다는 분들이 '노동해방'이니 하면서 공장에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10년전에는 불가피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에는 아직도 의견이 많고, 그 의견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 충분하다. 하나의 의견을 보태는 일은 공장 안의 노동이 아니더라도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1달에 한 번 이주노동자의 집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학생운동의 열정과 이상만으로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 머리 속에는 계몽으로 가득찬 채, 몸만 회사잠바와 노조조끼를 걸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그건 자기만족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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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테러

 

불로그에 오만잡다한 쓰레기 같은 내용들이 엄습하고 있다. 거의 테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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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202430.html

 

그들이 금빛 메달을 손에 쥐었다는 사실로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노점상을 한다는 자체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한겨레의 기사를 보면서 무엇보다 착찹한 것은,  운동을 업으로 삼아온 이들의 미래가 보장되지 못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들이 늘 '사기'와 '강박'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메달 한 번 걸어본 사람 치고 무난하게 사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마누라 도망가고, 돈 떼이고, 여기저기 돈 빌려 갚지 못하다 다시 늙은 몸을 이끌고 거리의 링으로, 삶의 격투장으로 전전하는 이들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열광할 때는 언제이고, 길바닥에 주저앉으면 혀를 차대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 덕분에 뭔가 열광했다면, 그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제도를 보장할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마린 보이'도 평생 물 속에서 명예만 찾을 수 없고, '봉달이'도 아스팔트 바닥에만 몸을 올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과 국가가 열광했다면 그 댓가를 치루는 것이 옳다. 노동자도 산업의 역군이니 뭐니 하지만, 제도적 보장없이는 이 현실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웠다는 점, 운동선수도 자신의 노동력으로 열광이라는 산물을 생산해냈다는 것. 기억하자.

 

아래 글은 예전에 잡지사에 넘기려다 그만 둔 글인데, 생각이 나서 갈무리해 둔다.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먼저 살펴볼 영화.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2005)’.

아마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 중에 유일하게 ‘발차기’가 없는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 물론 권투는 하지만 권투영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권투경기 장면이 썩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최민식의 몸이 무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올드보이’에서 만두를 15년간 먹어서 그런가.

 

여하간 이 영화는 신인왕전이라는 계기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고 새로운 인생역전을 꿈꾸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태식(최민식)과 상환(류승범). 영화가 끝나도 그들의 인생에는 몇 번의 터닝 포인트가 더 있을지 모른다. 영화 속 134분의 삶은 끝을 맺지만 현실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영상언어가 현실의 삶에 던져주는 메시지. 이 영화에서는 관객의 아가미를 끝까지 틀어쥐고 호흡을 곤란케 하기도 한다.   

 


강태식

43살 태식이는 북경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다. 허나 도박 좋아해서 돈 다잃고 무허가 부지에 세운 공장마저 불나서 빈털터리 신세가 된 강태식. 결국 길거리에서 자영업자로 나선다. 태식의 사업아이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만원에 ‘남자는 1분, 여자는 2분’ 동안 인간샌드백 되기. 자기 실력 믿고서 하는 건 말릴 수 없다. 그러나 말려야 한다. 실연당한 ‘최홍만’같은 이가 태식에게 만원을 건네는 순간 사업은 자동적으로 접히게 마련이다. 물론 인생도 자연스레 접힐 수 있다. 더군다나 남의 집 가게 앞에서 그런 장사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자, 여기서부터 영화 속의 인물을 현실로 끄집어 내보자. 나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영화 속의 인물을 만나보자.

 

태식은 일단 빚으로 인해 압류를 당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빚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파산신청’을 할 수도 있다. 돈 안드는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일단 상담을 좀 받을 필요가 있다. 특히 도박빚. 요거요거 문제다. 그러나 걱정말라. 도박빚이야 민법 제746조에 의해 ‘불법원인급여’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잃은 돈을 받을 수는 없지만 진 빚을 갚을 필요도 없다.

 

다음으로 태식이 고용보험에 가입을 했더라면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실업급여는 물건너 간 것 같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퇴직전 18개월 중에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실업급여는 물건너 간 것 같고.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이 세계대회 등을 출전해서 메달을 목에 걸게 되면 대회의 규모와 메달색깔에 따라서 연금액이 달라진다. 휴, 태식이는 지질이도 복이 없다. 올림픽 동메달이면 20점으로 간주해서 한 달에 약 30만 정도의 연금이 지급된다. 근데 아시안 게임의 경우 동메달이면 1점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연금혜택 없다.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만 20개는 따야 겨우 한 달에 30만원 받는다. 인생,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이냐.

 

태식은 직장을 구해야 한다. 물론 신인왕전 끝나고 좀 쉬어야 된다. 쥐어 터진 얼굴하고 일터로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선 실업자 태식은 가까운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겠다. 기술이 있어야 뭐든 먹고 산다. 주변의 친구들은 태식과 같은 친구를 돕기 위해 소주 한 잔 사주는 것보다 고용지원센터에 데려가는 편이 낫다. 몸뚱아리 하나 잘 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자. 매맞고 돈버는 것, 태식이를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아넣는 것임을 명심하자.

 


유상환

소년원 화장실에서 우유와 빵을 허겁지겁 입 속에다 쑤셔넣으며 아버지(기주봉)의 편지를 든 장면. “애비 군대있을 때 생각나서 단 것 좀 보낸다”는 편지의 한 구절. 그리고 눈치보며 빵과 우유를 먹을 것을 예언이라도 한 듯이 ‘소화제’까지 보낸 아비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이런 것일까. 천방지축 날 뛰는 자식를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이 우선해야 할 사랑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소년원까지 내몬 부모의 왜곡된 사랑도 가슴을 휘젓는다. 그리고 상환의 아비는 건설현장에서 거푸집널 덩이에 압사당해 목숨을 잃는다.

 

상환이도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신인왕전이 죽은 아비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권투는 하나의 돌파구이자 자기치료의 과정이지 않을까. ‘투사(projection)’의 과정일 것이다. 프로이드(Freud)의 말을 빌려보면 공격성이 강한 사람을 권투를 통해 그 공격성을 합법적으로 완화한다던가, 관음증이 있는 사람에게 누드그림을 그리게 하여 관음증을 다른 욕구로 승화시키는 등을 ‘투사’라고 한다. 상환이의 신인왕전 등장에 대해 한 스포츠 신문에서도 ‘링 위에서 쓴 참회록’이라는 헤드라인은 굵게 뽑아낸 이유도 이런 의미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쓰러지셔서 수술비까지 마련해야하는 할머니를 생각한다면 우선 아버지의 산재처리를 고려해야 한다. 말은 선뜻 꺼내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감방에 있는 몸이라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행형법 제44조에 의해 직계존속이 사망한 경우에는 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 이 영화에서는 상환은 19세이므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다. 그래도 외출이 가능하다. 소년원법 제19조에서도 직계존속이 위독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외출이 허락된다. 다만 외출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빠르게 사건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구비서류는 유족보상청구서,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 사체부검소견서(사인 미상인 경우), 주민등록등본 1통, 호적등본 1통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또 시간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상환의 아버지는 산재사망이 명확하므로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얻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 한국공인노무사회 홈페이지(www.kcplaa.or.kr)에는 당직노무사가 정해져 있으니 상담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자. 그리고 상환아, 이번 신인왕전이 끝나고 출소하면 제발 사고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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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이미 내 친구는 담배와 술을 끊었다.

 

이 모든 건 결혼 덕분인 것 같다. 김규항의 글에서 읽었던 구절.

활동가라는 제목의 글,

 

"활동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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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과 입

"나이 마흔이 되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했다."
 
우석훈의 글
http://economos.egloos.com/1080313
 
이게 서울지역 어른들이 했던 말이면, 내가 자란 동네에서는
 
"마흔까지는 말을 많이 해도 되지만, 마흔이후로는 자기가 한 말 만큼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흔이 넘어서 경상도 사람들이 무뚝뚝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라도 뭘 해놓고서 "자기가 했네, 그 공은 자기입네"하고 떠벌이는 것보다는 말없이 해 놓고가거나, 군말없이 스윽 도와주고 가는 사람이 더욱 고맙고, 그립기 마련이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든 정부든, 시민단체든, 노동단체 든 그 조직의 연륜은 말에서 묻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묵묵함'에서 비롯된다. 어느 활동가가 민주노총에 학을 그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오히려 그 활동가보다는 "다 그런거야"라고 말하는 경륜이 있는 활동가들이 더욱 이상해 보인다. 그이의 고민을 들어주기보다는 "너는 아직 단련되어 있지 않아"라고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단련된 '백련강百鍊剛'을 뽐내기도 한다. 그러한 이야기는 무용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하간 우석훈의 글제목에 나이 마흔이 되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소리.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도 그 활동가도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그이가 더욱 어려웠을 것은  나보다 연배도 훨씬 많아, 마흔도 훨씬 넘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이는 나에게 지갑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이가 잠시 화장실을 비운 사이에 내가 계산을 하면 그럴 수는 없다고, 다시 한 잔을 먹게되고 하면서 새벽을 꼬박 새운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그이와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 그가 많이 듣기 때문에 나도 많이 듣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나는 마음을 여는 것도 쉽지않고, 진실을 말하는 것에도 용기가 부족하며, 좋은 것이든 불편한 것이든 듣는 태도도 불량하지만 그이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듣는 사람이 진지할 때 나도 진지하게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지갑을 여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제낀 가슴 속에 진실을 보여주려면 상대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억지로 보여주려고 하면 상대방은 거부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가끔씩 지갑을 열 때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지갑을 열어제낌과 동시에 그에게도 마음을 여는 것인지 말이다.
가끔씩 지갑을 열고 계산을 해버리고 도망가버린 일도 여러 번 있다.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에 나의 듣기능력이 임계지점에 달했을 때이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적이 없었는지 깊이 반성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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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

저축하려고 하는 순간 소비를 줄여야 할 것이다.

아니 소비를 줄이려고 하는 순간 문득 "저축"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빚문제도 자연스레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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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간만에 인왕산에 올랐다. 바람이 몹시 불었고, 비도 내렸다.

 

멀리에는 청와대가 보였고, 그 날 저녁 탁구를 친 후 FTA 시위대와 맞닥드렸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 FTA는 연장협상에 들어갔고, 나는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IMF를 정통으로 맞은지 10년, 그 세월 속에 이미 남아있던 에네르기와 금쪼가리를 다 써버린지라, FTA 이후 본격적으로 주고받기가 시작되면, 아니 빼앗기기 시작하면 무슨 대책을 세울지 막막하다. 분명 있는 놈들은 외국으로 튈 것이고, 더 있는 놈들은 버티면 버틸 수록 행복할 것이다.  없는 분들만 결국 대가리박고 바닥을 기어야 할 것이다.

 

멀리서 본 청와대가 계속 눈에 밟힌다. 지척의 거리였는데도 저걸 꽉 어쩔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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