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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정신!

 하니 정신으로!!..
  나는 뛰고 말테야!!
 
하니 정신으로 돌파해보는 거다.
 
뱀발: 장정씨 너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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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법

답답한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 그 자체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은 다른 어려움을 번식시킨다. 그게 삶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번식한 것들을 감당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우선 본질은 경제적 어려움을 제거하는데 있다.

 

왈가불가 떠드는 소리도 싫고, "힘내라"는 마른 격려의 소리도 듣기싫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고립된 상태를 넘어서기 위해서 몸을 던져봐야 겠다. 3번째 찾아온 경제적 어려움이다.

 

이 새끼는 찾아올 때 마다 새롭다. 새롭다고 반가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방에 조져야 할 것을 지금껏 미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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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나는 처음에 홍어를 먹지 못했는데, 이제는 홍어를 아주 즐긴다.

 

실연. 그것은 홍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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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댓글

강유원: 하이데거는 분명 나치였습니다. 그걸 알고도 그의 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하이데거라는 인간에게는 경멸을 느낍니다. 그의 텍스트를 열심히 읽은 적이 있었는데, 무매개적인 실체성으로의 환원을 시도하는 듯하여 재미없었습니다. 마르크스하면 '빨갱이'라면서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마르크스의 텍스트 읽어본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입니다. 텍스트와 저자를 분리하는 일,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미분리의 관습 속에서 제법 많은 저자들이 뿌듯하게 돈을 챙기고 있는 듯합니다. 텍스트를 파는게 아니라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인품'이나 어여쁜 용모를 팔아서 말입니다. 

 

- 불현듯 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몇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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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머리가 좋은 놈을 보면 암기력이 판단력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든다.

외워야 무슨 판단력에 포장할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가 좋은 부모를 만나거나 아니면 철저히 훈련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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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고래

나는 술고래는 아니다. 그이도 술고래는 아니다.

그이는 술농어 정도되고 나는 술전어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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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똘아이 사이

평소에 말이 많고, 비교적 자기 표현에 충실한 사람들이

말이 없으면 자폐아가 된다. 사람들에 의해서다.

 

평소에 말이 없고, 비교적 조용하고 자기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말이 많으면 똘아이가 된다. 사람들에 의해서다.

 

말 않고 있으면 자폐아가 되고, 말이 많으면 똘아이가 된다.

사람들에 의해서다. 장단을 맞추다가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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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예를 들어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사유제한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 그 온당성을 논할 때, 그것이 왜 필요한지, 반대측의 입장이 왜 그것을 반대하는지 "현실적인 사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사유제한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면 기간제 사유제한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유제한이라는 법적 제한(보호)조치는 고용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도 뜯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 방법이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면 그에 따른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에 산삼이 가장 좋다고 구하지도 못할 산삼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산삼이 항상 나에게 좋으리라는 법도 없으며, 설사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은 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지 우리 가족에게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기간제 노동의 사유제한이 꼭 사용자의 주장이라고 보지 않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1) 기간제 노동의 사유제한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기간제 노동과 연관된 모든 노동의 측면에서 오히려 고용안정성이 나타나는지 실증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간제 노동의 사유제한에 반대하는 입장이 기존 사용자의 주장과 그 궤를 같이 할 수도 있다.2) 고용의 유연성을 근거로 들면서 말이다.

 

먼저 기간제 노동의 사용행태는 사용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사유제한은 사용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2)와 같은 주장이 쉽게 가능하다. 그러나 사용자의 주장이라고 할 지라도 배척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1)과 같은 실증적 주장이 결과는 같이해도 과정을 달리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가령 Booth는 상용직(정규직)보호조치는 임시직 노동규모와 상당히 강한 정(+)의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임시직 규제조치는 임시직 노동규모와 별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 바로 그러하다. 프랑스(사유제한 조치 유지)와 스웨덴(규제완화)은 각기 다른 노동시장과 사용자의 고용행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간제 노동의 사유제한과 같이 임시직 사용규제정책이 일반적으로 규제정책이 강할 경우 그 규모가 제한될 것이라고 보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실업률이 높다면 오히려 임시직 노동 규모가 커질 수도 있다(hofffman, 2003). 프랑스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비정규직 사용수준이 다른 나라보다는 낮지만(약 15%), 비정규직 노동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83년-2000년 수치를 비교해 볼 때 약 3배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률이 3.9%(올해 8월 3.6%)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이다(OECD 국가 평균 6.7%). 그러나 고용증가율은 낮다. 실업률이 낮다는 사실은 비정규직 고용증가율이 낮다는 것인가.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장기 임시직 노동자가 2002년 약 40%에서 2005년에는 30%로 10% 감소하고 있고, 기간제 노동자는 2002년 약 15%에서 2005년 약 25%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소득 불평등도도 상위 10%와 하위 10%의 평균임금 차이가 5.4배(비교적 임금소득 불평등도가 높다고 하는 미국의 경우 4.4배)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규모는 늘고 있고, 임그소득 불평등도도 높아 실질적으로 사유제한이 어떠한 효과를 거둘지 알기가 어렵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에 의해 일정한 임금과 고용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간제 노동의 사유제한은 결국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했던 그 자리에 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할까. 기업이 과연 그렇게 할까. 사유제한은 결국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사유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기간제 고용 또한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양날의 검이 되어 날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간제 노동의 사용을 비용축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 자체를 뜯어고치기는 불가능한가. 사유제한의 고리를 기업을 묶어내는 것 보다 균등대우의 원칙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같은 임금을 주면서도 기간이 되기 전에 해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호조치가 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임금을 주면서 해고를 반복할 이유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균등대우, 임금에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균등한 대우가 중요한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고용불안정의 대가로 6-10%가량의 수당을 지급하고 이를 균등대우 원칙의 위배로 해석하지 않는다(정이환, 2006:110).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따라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정규직의 임금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현재의 연공급 체계를 직무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직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건 정규직이 양보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이다. 그래서 가장 큰 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초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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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서 이미 품절된 인간들이 너무 많다.

미리 관계를 맺어두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이다.

 

그리워하고 간절해봐야 소용없다. 나라도 품절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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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검

법 없이 살 수 있나. 죽으러 갈 때도 동사무소에 신고하고 간다. 살아있는 동안에만 법없이 살 수는 없을까. 불가능하다. 법없이 살 사람이라는 말은 결국 법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법 때문에 죽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는 사형제도가 있다. 사형과 관계된 법률이 없다면 안죽을 사람들이 법 때문에 죽는다. 다음으로 법이 보호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아 죽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 장애인, 노인, 어린이, 중병환자들이 그렇다. 다시 말하면 법이 없어서 죽는 경우도 있고, 법이 있어도 혜택과 보호를 받지 못해 죽는 경우가 그렇다.

 

디케가 들고 있는 검은 활인검인가 살인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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