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상과 정치적 선언과 야망과 절체절명의 목표가 넘쳐나 누구나 뭔가 이상향을 꿈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시대를 지나자, 성공이나 대박, 1등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무한경쟁시대에 도달했다. 나날이 강퍅해지는 세상을 살아온 나란 여자도 40대 초반의 괴팍한 아줌마가 되어가면서 말이다. 어쩌면 아줌마가 된 나의 얘기를 무대 위에서 깊어진 배우를 통해 듣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나 보다. 좀처럼 1인극을 보지 않던 내가 이 연극을 선택한 이유를 찾자면 말이다. 외모만 보면 그냥 아줌마일 뿐인, 40대 중반의 배우에게서 뭔가 은밀하고 좀 솔직한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기대.

 

특별한 일이라고는 일어나지 않는 동네 슈퍼의 주인 수현. 그가 지내는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 한 남자 '디스플러스'와 그의 여자친구 '한국무용', 그들과 얽히고설킨 사건과 그 사건을 풀어내는 수현의 수다가 이 공연의 핵심이다. 이게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싶을 지경으로 정신없이 떠들다 보면 밉던 시어머니도 한번 참아주고, 고집스러운 남편도 이해가 되면서 내 속이 잠잠해지던 경험처럼 수현도 그렇게 수다를 떠들어댔다.

 

공연에 사용된 영상 속 배우 남미정은 그가 연기하는 무대의 수현보다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수현이 더 사랑스러웠다. 마치 작품마다 멋쟁이 훈남 역할만 하던 이가 어느 날 어딘가 멍하고 볼품없는 캐릭터로 등장해 소위 '망가지는'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것을 볼 때처럼 말이다. 그것은 사랑보다 안심일지도 모른다. 그 배우의 찌질함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내 찌질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새어나오는 안도의 한숨이다. 그리고 마치 연기를 하는 게 아니고 그 배우가 그냥 자신의 생활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저건 연기가 아니야 그냥 원래 지 모습이지!” 할 때의 반가움이다.

어쩌면 나이 들어가며 늘어가는 주름은 예술가인 배우에게 훈장일 것이다. 그런 연륜이 없는 어린 배우들을 위해서 연기는 가면을 쓰는 것이라며 가르치는 연기론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경험과 이야기가 많은 배우와 그런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던 배우의 차이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도 채워지지 않을 무수한 여백, 혹은 거리감일 것이다. 경험이란 것은 내가 겪은 어떤 사건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촘촘한 감정의 그물, 사건 전후의 상황과 맥락, 사건 속의 인간관계, 내 기억 속의 어떤 조작까지 다 아우른 것이니 말이다.

 

패기 만발하여 나만 잘난 줄 알았던 때, 내게 필요한 건 판타지와 드라마였다. 뭔가 평범하지 않고 반짝반짝 개성 넘치는 모든 것을 그렇게 불러주고 싶었는데 요즘 이 두 단어가 참 흔해져 아쉽다. 아무튼, 특별하다고 주목 받는 모든 것에는 백조의 발헤엄 같은 어둡고 힘든 고난의 길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런 것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하나둘 많아지는 게 딱히 슬프지 않고, 가끔은 흐뭇하다고 여기고 살다 보니, 반짝반짝하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하루가 참 소중하게 여겨진다. 게다가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말을 어느 소설에선가 만나고 나서 마음에 일던 파문을 잊을 수 없다. 그 잔잔한 흔들림은 “더는 나중으로 나의 행복을 미루지 말자”거나, “너무 멋지게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적당히 살려네” 하며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으로 변하여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된 여러 사람의 존재를 향한 관심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그대…. 혹시 지금의 하루하루가 별 볼일 없고 허접해서 슬프다면 슬며시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보라. 당신처럼 평범하게 친구를 만나고 영화 보러 자유로이 쏘다니고 싶은 '장애인'들, 당신처럼 주변 눈치 안 보고 애인과 손잡고 걷고 싶은 노인, 청소년, 성소수자들, 당신처럼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며 따스한 담소를 나누고 싶은 해고노동자들을 바라보라.

 

우리의 안락한 일상은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릴 것을 슬쩍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비록 남루하여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그 하루가 완벽하지 않아도 충만하기만을 바라고 살 수 있다면 더 훌륭할 테고.

 

연극인|20131205

원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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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8:39 2014/02/0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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