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상과 정치적 선언과 야망과 절체절명의 목표가 넘쳐나 누구나 뭔가 이상향을 꿈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시대를 지나자, 성공이나 대박, 1등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무한경쟁시대에 도달했다. 나날이 강퍅해지는 세상을 살아온 나란 여자도 40대 초반의 괴팍한 아줌마가 되어가면서 말이다. 어쩌면 아줌마가 된 나의 얘기를 무대 위에서 깊어진 배우를 통해 듣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나 보다. 좀처럼 1인극을 보지 않던 내가 이 연극을 선택한 이유를 찾자면 말이다. 외모만 보면 그냥 아줌마일 뿐인, 40대 중반의 배우에게서 뭔가 은밀하고 좀 솔직한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기대.

 

특별한 일이라고는 일어나지 않는 동네 슈퍼의 주인 수현. 그가 지내는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 한 남자 '디스플러스'와 그의 여자친구 '한국무용', 그들과 얽히고설킨 사건과 그 사건을 풀어내는 수현의 수다가 이 공연의 핵심이다. 이게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싶을 지경으로 정신없이 떠들다 보면 밉던 시어머니도 한번 참아주고, 고집스러운 남편도 이해가 되면서 내 속이 잠잠해지던 경험처럼 수현도 그렇게 수다를 떠들어댔다.

 

공연에 사용된 영상 속 배우 남미정은 그가 연기하는 무대의 수현보다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수현이 더 사랑스러웠다. 마치 작품마다 멋쟁이 훈남 역할만 하던 이가 어느 날 어딘가 멍하고 볼품없는 캐릭터로 등장해 소위 '망가지는'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것을 볼 때처럼 말이다. 그것은 사랑보다 안심일지도 모른다. 그 배우의 찌질함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내 찌질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새어나오는 안도의 한숨이다. 그리고 마치 연기를 하는 게 아니고 그 배우가 그냥 자신의 생활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저건 연기가 아니야 그냥 원래 지 모습이지!” 할 때의 반가움이다.

어쩌면 나이 들어가며 늘어가는 주름은 예술가인 배우에게 훈장일 것이다. 그런 연륜이 없는 어린 배우들을 위해서 연기는 가면을 쓰는 것이라며 가르치는 연기론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경험과 이야기가 많은 배우와 그런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던 배우의 차이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도 채워지지 않을 무수한 여백, 혹은 거리감일 것이다. 경험이란 것은 내가 겪은 어떤 사건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촘촘한 감정의 그물, 사건 전후의 상황과 맥락, 사건 속의 인간관계, 내 기억 속의 어떤 조작까지 다 아우른 것이니 말이다.

 

패기 만발하여 나만 잘난 줄 알았던 때, 내게 필요한 건 판타지와 드라마였다. 뭔가 평범하지 않고 반짝반짝 개성 넘치는 모든 것을 그렇게 불러주고 싶었는데 요즘 이 두 단어가 참 흔해져 아쉽다. 아무튼, 특별하다고 주목 받는 모든 것에는 백조의 발헤엄 같은 어둡고 힘든 고난의 길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런 것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하나둘 많아지는 게 딱히 슬프지 않고, 가끔은 흐뭇하다고 여기고 살다 보니, 반짝반짝하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하루가 참 소중하게 여겨진다. 게다가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말을 어느 소설에선가 만나고 나서 마음에 일던 파문을 잊을 수 없다. 그 잔잔한 흔들림은 “더는 나중으로 나의 행복을 미루지 말자”거나, “너무 멋지게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적당히 살려네” 하며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으로 변하여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된 여러 사람의 존재를 향한 관심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그대…. 혹시 지금의 하루하루가 별 볼일 없고 허접해서 슬프다면 슬며시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보라. 당신처럼 평범하게 친구를 만나고 영화 보러 자유로이 쏘다니고 싶은 '장애인'들, 당신처럼 주변 눈치 안 보고 애인과 손잡고 걷고 싶은 노인, 청소년, 성소수자들, 당신처럼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며 따스한 담소를 나누고 싶은 해고노동자들을 바라보라.

 

우리의 안락한 일상은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릴 것을 슬쩍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비록 남루하여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그 하루가 완벽하지 않아도 충만하기만을 바라고 살 수 있다면 더 훌륭할 테고.

 

연극인|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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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8:39 2014/02/09 18:39

<슬라이딩 도어즈>라는 기네스 펠트로가 나온 영화와 “그래 결심했어!”를 유행시킨 코미디 코너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떠올랐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대해 가끔 안타깝게 상상해보곤 한다. 가령 내가 대학을 안 갔더라면, 다시 성당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뭐 이런 따위 가정법 놀이 말이다.

 

중간 휴식을 포함해 2시간 40분이나 되는 긴 공연을 보면서 젊은 연극인들이 느끼는 무기력과 쓸쓸함이 마구 다가왔다. 우리는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로 갈지 몰라 좌표를 잃고 방황하며, 무수한 우연 위에 흩어진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연극은 어느 정도 유쾌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많은 선택을 강요하는지….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미국의 시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린 반드시 둘 중 하나의 길만을 선택하게 되어있기에 포기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기도 쉬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지나버린 선택을 5년 뒤, 10년 뒤 계속 아쉬워한다는 것은 너무 청승맞아 보인다.

 

신자유주의가 만개한 지구에서 사람들은 나날이 더 오래 일하고, '고객님' 대접을 받으며 소비의 유혹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잘 나야 하고, 더 빠르게 달려야 하고, 더 젊고 아름답고 건강해야 한다. 심지어 노는 시간마저도 계획적으로 효율적인 여가를 보내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만 같은 시대가 아닌가.

 

그런 어떤 때의 한물간 인문사회과학 계간지 [시대비평] 사무실 사람들이 보내는 절망스러운 일상을 그린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이 연극을 보면서 90년대에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한 나와 지금 2~3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슬쩍 견주어 본다.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실종된 말을 누린 마지막 세대일 수도 있는 나는 실패와 도전, 좌절과 재기의 기회마저 차단당한 20대들에게 막연한 죄의식마저 느낀다. 학생이니까 치기 어린 실수를 하고도 큰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물정 모르고 덤비다 폭삭 무너지는 느낌 속을 허우적거리며 술에 빠져 지낼 수도 있었던 나의 20대에 비하면 삭막하기만 한 오늘을 버텨야 하는 그들이 느낄 압박감은 얼마나 클까? 그 답답함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시대비평]을 지켜온 김남건 같은 선배들의 투덜거림을 보자면 참 한심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타인의 일상에 대해, 타인의 삶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쓸데없는 일, 소용없는 일 하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 어떤 일이 쓸데없고 소용없는 일인가?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늘 감탄하고 만다. 요즘이야 광고성 게시물이 더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한 가지 단어만 검색해도 관련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보석 같은 정보들을 찾기가 훨씬 쉬웠다. 자료를 정리해 놓은 그들의 잉여짓, 허튼짓, 쓸데없는 짓으로 나는 필요한 지식을 여러 책 읽지 않아도 가뿐히 수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사회를 서서히 변화시키는 힘이란 것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당장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자기의 명예를 높이는 일도 아닌데 희망버스를 타고, 대한문 분향소에서 시민 상주단을 자처하며, 소외와 차별이 자행되는 현장 곳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돈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는 세상에서 모두 함께 느리게 살자고 말하기는 참 어렵고 또 부질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지난 선택지를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며 사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당장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남들 눈에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도 썩 괜찮은 인생살이 방법인데 말이다. 그리 살다 보면 내가 선택한 인생의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애틋한 만큼 타인의 인생, 타인의 일상에 대한 넓은 오지랖과 판단도 조금은 덜 수 있을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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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1:25 2014/02/09 11:25

연극 <일곱집매>를 보러가는 길. 대학 3학년 가을, 문화인류학 수업의 한 강의시간이 떠올랐다. 몇몇 사람과 조를 짜서 나름 열심히 준비하여 발표했는데, 사창과 공창, 매춘에 관한 주제였을 것이다. 의외로 흥미진진했던 발표, 호기심 어린 동료학생들의 눈빛, 독선적인 남학생들과 논쟁했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사창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모든 여자는 성치 않을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반론했던 복학생 남자들에게 나도 만만치 않게 대거리를 했었다. 나 역시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으면서 페미니즘을 폄하하고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니 좋은 토론은 분명 불가능했다. 누구의 얘기도 제대로 들을 줄 몰랐던 ― <일곱집매>의 중심인물인 고하나의 말을 빌리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 스물 몇 살의 나는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을까? 나라가 포주를 자처했던 역사를 다룬 이 연극을 보러가는 길에 그 수업을 떠올리고 문득 부끄러웠다.

 

역사는 이전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고 지금, 여기의 길을 찾는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지배계급 중심의 기록이다. 그 역사에는 힘없고 소외당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사람들, 누군가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사람들, 아니 아예 자신의 존재 자체마저 부정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최근에 ‘구술생애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반갑고 존경스러운 마음이다. 이 작품도 이양구 작가가 오랜 시간 기지촌 할머니들의 삶을 취재하고 자료조사를 하는 중에 만난 연구자들에게서 동기부여를 받아 구상이 시작되었고, 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구술생애 기록물이 어우러져 탄생했다고 한다. (실제로 공연의 3막에서 하나와 순영의 대화는 연구자들의 기록물에 적힌 할머니들의 증언이 많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연극 <일곱집매>는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인들의 삶이 그 이전 역사인 종군위안부와 오늘의 여성 이주 노동자에 끊임없이 연결되고 있음을 떠올리게 하면서 우리 근현대사에서 점차 지워져가고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처음, 고하나는 솔직하게 그들의 상처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자신의 상처를 골똘히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일 테다. 타인을 통해, 그의 상처와 아픔을 통해 나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지……. 가슴으로 대화할 용기를 낸 하나에게, 역시 마음을 닫아걸고 남에게 곁을 주지 않던 순영언니가 용기를 내어 “내 이름을 실명으로 써줘요”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 기지촌 여인들이 겪었던 아픔과 이야기들이, 그저 추상적이기만 하던 그들의 상처가 내게 살아서 다가왔다. 꽉 막히고 독단적이라 남에게 제 말 한마디 더 보태기에만 기를 쓰던 내게도 두루두루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날들과 여러 경험, 기억들이 만들어낸 좋은 결실일 것이다. 옛날에 아팠다는 흐느낌, 지금 고통스럽다는 절규,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없어서 상실감에 휩싸인 뒷모습. ,밀려나고 배제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거친 울음소리를 쉽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도 그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도대체 다른 사람과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의 기호는 시시각각 변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도 시대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예전에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밥을 먹으면 기를 쓰고 고쳐주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저’재수 없다, 복 나간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이유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왼손으로 글씨를 쓰든 밥을 먹든 뭐라 하지 않는다.

 

10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 성소수자 육우당(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 여섯가지와 친구 삼았다는 뜻이라 한다) 추모기도회가 열리던 곳에 여전히 자신들을 드러내지 못해 사진촬영도 금지해야하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힘센 세력들은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안까지 마련하여 세상을 더 시끄럽게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은 묵묵부답, 무심하게 흘러흘러 이 사건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 찾아들어보려고 한다. 그런 아우성을 찾아가서 그냥 듣고 오는 일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 모든 증거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데까지 담아 간직하고 기회가 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것이다. 그것이 아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아있는 증거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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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1:21 2014/02/09 11:21

장 폴 벤젤의 「머나먼 아공당주」를 원작으로 한 <남아있는 나날들>을 보고 극장을 나오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온통 마지막 장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지금 여기, 함께 살기, 존중과 이해, 나이 든다는 것, 정신의 유지, 육체의 노화, 이렇게 서로 연관 없는 것만 같은 말들이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던 것이다.

 

젊은 시절 아공당주라는 도시에서 금속노동자로 살던 이들 부부는 은퇴 후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온다. 그러나 이웃들과의 교류도 없는 이들에게는 전자제품 외판원마저 반가운 손님이다. 남편 조르주는 아직 혈기왕성한 자신을 은퇴시키고 퇴물 취급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만 머무르며 아내와 이야기도 잘 나누지 않다가 뜬금없이 잠자리를 요구하고는 마리가 거절하자 혼자 토라진다. 그들의 딸은 부모에게 자주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뜸하여 부부는 종종 서운한 속내를 비친다. 결국, 연극에서 부인 마리는 죽어서야 남편의 따스한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인생을 살던 누군가와 한 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때론 고독하고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존중하고 ‘함께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혹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그를 배려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힘든 일인가를.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어쩌면 그 상대가 죽어서야 이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이 죽고 또 죽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혼자 살다가 혼자 죽어가는 노인들은 물론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수나 작가, 영화인들이, 불이 난 집에서 움직이지 못한 장애인들이,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오갈 데 없어 항거하는 철거민들이 지난 몇 해 사이에 줄줄이 죽어가는 데도 그것을 제대로 보도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쓰는 언론도, 진심으로 깊이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거나, 아름답지 못한 현실 사회의 일면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게다가 요즘은 오래되고 낡은 것은 허물어 없애고 깨끗하고 번듯한 것으로 갈아치우는 시대가 아닌가. 이제는 누구도 오래된 가전제품을 고쳐 쓰지 않을뿐더러 구멍 난 양말도 깁지 않는다. 그냥 버리고 새로 사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이런 소비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 오래된 물건이나 낡은 구조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있다. 조르주와 마리가 시골에서 보내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소외, 그 때문에 두 부부가 느낀 슬픔과 아픔을 관객들에게 전하려는 연출과 배우의 노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예전부터 공포영화나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영화들을 잘 보지 못한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왜 그렇게 힘든 것을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를 보고 듣고 기쁨을 누리는 것이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목적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삶이나 역사 속에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음악과 영화, 문학에서 수없이 다루며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사랑이라는 것도 사실은 얼마간의 아름다움과 대부분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라 성장하면서 갖가지 고통과 실패를 경험하고 밑바닥까지 내몰렸다가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며 사람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 역시 우리가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하고 불편한 것들, 힘없고 볼품없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실패와 상처로 얼룩진 과거의 경험들이 아닌가 싶다.

 

성공 가도를 내달리며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좇아 다른 존재들을 밀치고 무시하고 짓밟으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실패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고 실패할 기회를 줄 수 있나 고민하는 중인데, 이런 시선을 담은 연극을 만나고 주렁주렁 심사숙고할 기회를 잡으니 정말 기쁘다. 
 


* 이 글의 제목은 2013년 1월 2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정규직노동자 윤주형씨가 작성한 어느 게시글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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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1:15 2014/02/09 11:15

1등과 최고만을 기억하는 세상. 극적인 성공만을 추앙하는 광기어린 요즘 세상이다. 누구라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라면 - 김기덕 감독이거나 싸이거나, 김연아 거나 - 국격을 한껏 높여준 인물로 추앙해마지않으며, 그들에 대해 열광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해져버리는 묘한 집단 무의식에 빠진 사회. 이 시대를 살아갈 힘을 얻으려고 우리들은 따스했던, 지나온 어느 시절을 추억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 추억을 헤집어 펼쳐내는 작품들이 근래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와 공연으로 끊임없이 창작되는 근간일지도 모르고.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교실을 뛰어다니며 서로의 가슴을 건드리며 까르륵 거리고, 까칠하게 구는 선생님들에 대한 헛소문을 지껄이며 낄낄대던 학창 시절을 기억 할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우정 이상의 사랑을 나누고 어떤 아이들은 자기 혼자 고매한 세상 속에서 사는 냥 도도 했었지.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은 음악과 대중가수와 라디오에 열중하고 무리지어 다니며 어른들이 못하게 했던 것들을 시도하려 하곤 했었지.

 

잔잔한 연극 <정물화>는 이런 여학생들의 학창시절을 그린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어떻게 남자 연출가가 이토록 섬세하게 여자아이들의 감성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유미리의 감성과 성기웅 연출이 꽤 괜찮은 조화를 이루면서 관객을 추억으로 이끌었고, 치하루와 카오리는 지금 고등학교 교실에서 데려온 것처럼 여고생다운 모습 그대로를 연기해 우리를 웃게 해주었다. 우울해 보이는 두 소녀 후유미와 나나코, 소년 같은 모습의 나츠코, 수녀 두 명까지 연기자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묵주를 목에 건 수녀 의상이 좀 거슬렸을 뿐, 깔끔한 조명과 무대도 소녀시절의 학교를 떠올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공연이 따스했던 만큼 생각나는 일들이 많았다. 첫사랑과 이루지 못해 맘 아팠던 몇몇 짝사랑들, 그 때 읽던 시, 소설, 나를 열광케 했던 음악들, 친구들과 나누던 편지, 공부한다며 큰 잔에 커피를 타 놓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인 채 쉴 새 없이 끄적이며 지새웠던 밤들… - 그때 서울의 밤하늘이 붉다는 것을 처음 알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또 얼마나 많은 말들을 의미도 모른 채 내뱉고 살아왔는지……. ‘운명의 장난’이라거나 ‘고독’이라거나 혹은 ‘민주주의’며 ‘혁명’이라는 말까지. 더욱이 다 자란 나를 아이 취급하는 세상에 대해선 또 얼마나 불만이 많았던가. 하지만 내가 늘 모자라고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도 기억하고 있으며, 내가 되뇌던 말들이 엄청난 무게를 지녔음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런 말들은 이제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열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의 시기는 건너뛰었으면 좋겠다는 연극 <정물화>의 대사처럼 나도 다시 새로운 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스무 살 언저리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마무리 지으려는 마음에 결정했던 늦은 나이의 결혼과 출산, 육아는 나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고 지치게 하지만, 인생에서의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가족들과의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이루어가는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여전히 나는 꿈꾸는 존재다. 백 살까지나 늘어나 버린 인간의 시간이 가끔 무섭고 두렵기는 하지만 그만큼 길어진 인생을 어떻게 행복한 시간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두려워하면서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내 인생도 거창할 것 같았고 꿈도 원대했으나 내 생각 혹은 계획대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하기도 여러 번. 이제는 평범하게 별 일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알았더라면 덜 불안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늘 불안하면서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때가 바로 10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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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1:09 2014/02/09 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