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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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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상에 태어난지 겨우 이,삼년이 지난 어린 것들과 지낸지 삼 주가 되어간다.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 덕분에 '아이=천사'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한다.

함께 지내는 어른들에게 불가항력이 되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까.

 

개성넘치는 열명의 아이들은 함께 지내는 두명의 어른에게 하루종일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그 '요구'가 내 몸이 부서져라 다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안타깝게도 그 요구는 대충 이렇다.

 

첫째,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아이: 엄마 언제 와?

나:    음..낮잠 자고 일어나서 간식 먹으면 오지

아이: 엄마 보고싶어..으왕~

나:    엄마 보고 싶어? 엄마도 너 많이 보고 싶을꺼야. 우리 코 자고 나서 엄마 만나자

아이: 엄마 보고싶어~~~~~~~~~~~~~~~~~~~~~~~~~~~~~~~~~~ 

 

안아서 달래주고. 재미있는 놀이로 꼬여보기도 하고. "엄마한테 전화하자, 여보세요 00엄마지요? 예..그때 오신다구요..그때 뵈요.." 가짜 전화로 사기도 치고..그래도 저 울고 싶은 만큼 다 울고 나서야 그친다....

이럴 때는 나도 우리엄마 보고 싶다.

 

두번째, 우긴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애꺼 슬쩍 가져온다.

물론 억울하게 빼앗긴 아이는 바로 달려들어 뺏어오거나. 상대편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운다. 날 쳐다보면서.

 

나:    그거 00가 가지고 놀는건데 그냥 가져오면 00화나잖아. 빌려달라고 해야지.

아이:아니야! 내꺼야.

나:   그거 니꺼야?

아이: 내꺼야.

나:    그거 00가 가지고 놀던거잖아? 너도 가지고 놀고 싶어? 저기 있네. 저거 줄까?

아이: 아니야. 내꺼야.

 

정의와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저 내가 00의 편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럴때는 다른 대체물도 필요없다. 똑같은 다른 놀이감도 필요없다. 내가 쥐고 있는 이것만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귀중한 것도 아니다. 상황종료후 다시 보면 그 놀이감은 모두의 관심을 못받고 한쪽에서 뒹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째, 나만 봐...한다.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속상하거나 아프거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건 나에게 자기를 보아달라는 것임으로 당장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 다른 아이가 온다. 나에게 요구한다

 

아이: 우르릉 꽝꽝 틀어줘(천둥이라는 제목의 노래)

나   : 00이가 속상한가봐 잠깐만 기다려봐 00이 이야기좀 들어보고 틀어줄께.

아이: 우르릉 꽝꽝 틀어줘(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나   : 알았어.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일어서 노래를 틀러간다)

다른 아이: 나 그 노래 싫어. 그 노래 틀지마...

 

00는 내가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았음으로 더 서럽게 운다. 노래를 요구한 아이는 옆에서 노래를 틀지 말라는 아이의 요구를 듣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 틀어줘"를 소리친다.

이 순간 또 다른 아이 하나가 문을 열고 맨발로 마당으로 뛰쳐나간다면?? 상황은 더 끔찍해진다.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쓴다.

오늘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더러는 기술적으로 요령이 부족했고.

더러는 아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해서 헛다리를 짚었고.

더러는 평상심을 잃어 상황을 악화시켰고....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아이들도 나도 그곳에서 하루종일 행복했으면 좋겠다.

근데 그 균형이 일시에 깨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난 나를 돌아본다.

내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 진심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초보 보육교사의 일기는 매일 밤 계속된다.

그것이 내가 무능하지 않다는 걸,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유일한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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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4 01:21 2006/08/24 01:21

4 Comments (+add yours?)

  1. 알엠 2006/08/24 10:47

    매일 밤....기다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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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쭌모 2006/08/25 00:38

    알엠/헉. 매일밤 여그다 쓴다는 것은 아니었는디..하도 비공개 사항이 많아서요. 간혹..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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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까치 2006/08/26 00:00

    인천의 까칠한 까칩니다. 나는 보육교사도 아닌 것이 오늘 어린이집에서 애들의 박치기수준의 뽀뽀때문에 입술에 경미한 상처를 입었어요.ㅋ 물론 영영아였기 때문에 엄청난 침도..헐..근데 행복했어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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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쭌모 2006/08/27 00:39

    까치/그러게, 뒤에서 내 목을 내리 쪼이며 달려들어서 잉잉대도 혼자 힘들어 하지 않고 나한테 기대주는게 고맙고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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