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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엘리베이터

오늘은 강남역 사거리에 있는 메리츠타워라는 빌딩으로 배달을 갔다.

대략 30층은 될 것 같은 크고 새로 지은 듯한 화려한 빌딩이었다.

 

정문에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은 지하철 입구처럼 막혀있다.

ID 카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이다.

문 앞은 검은 양복을 빼입은 건장한 남자 직원들이 지키고 서 있다.

그 옆에는 비행기 승무원 같은 유니폼을 한 여자 직원들이 안내 데스크를 지키고 서 있다.

 

배송지의 위치를 물어보니 9층이라면서, 배달온 거면 저쪽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란다.

보통 5층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계단을 이용하는데, 9층이면 너무 높으니 엘리베이터를 쓰기로 했다.

고급스런 직원용 엘리베이터와는 확연히 다른 화물 엘리베이터다.

그 앞에는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 분들과 건물 청소부 분들 몇 명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쪽은 화물로 인한 손상을 방지하려는지 공사장 같은 포장이 되어 있다.

거기에 화물과 쓰레기통과 함께 퀵서비스 기사와 청소부들이 타고 올라간다.

 

9층에 내렸는데 사무실 문이 안쪽에서 잠겨있다.

문을 열어둔 직원은 CCTV로 적발해서 중징계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옆에 좁고 답답해보이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 청소부 분이 쉬고 계신다.

물어보니 10층으로 가란다.

계단이 없냐고 물어 보니 없단다.

이 엘리베이터 하나 뿐이란다.

엘리베이터는 30층까지 올라갔다가 지하 5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이번 엘리베이터에도 두어명의 퀵서비스 라이더와 쓰레기통이 있다.

 

10층에 내렸는데 마찬가지다. 문이 잠겨있다.

전화를 했더니 8층 메일룸에 두고 가란다.

엘리베이터는 또다시 30층까지 한참을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또 다른 퀵서비스 라이더와 청소부 분들이 있다.

8층에 갔더니 문이 열려 있다.

안쪽은 일반 사무 공간하고는 또 구분되어 있어서 더 안쪽은 볼 수도 없다.

여기에 한 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 업체의 퀵서비스, 택배 등의 물류를 총괄하는 말로만 들었던 메일룸이다.

물건을 전달하고 보니 엘리베이터는 또 지하 5층까지 내려가고 있다. 또 30층까지 갔다 오겠지.

메일룸에서는 계단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것 같길래

차라리 걸어내려가려고 물어봤더니

ID 카드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단다.

욕이 저절로 나왔다.

 

이중 삼중의 완전한 격리된 공간.

답답하고 냄새나고 먼지나는 좁은 공간.

걸어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도록 밀폐되어 있는 공간.

엘리베이터에 쓰인 숫자 말고는 이 곳이 몇 층인지조차 감도 잡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

스스로가 짐짝이 아니면 쓰레기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공간.

 

건물이 이렇게 잔인하고 파렴치하고 불쾌하고 혐오스러울 수 있다니.

통제사회, 계급사회, 자본주의 그 자체를 보는 듯 했다.

 

ps.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도 엘리베이터 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길음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였는데...

안그래도 가파른 고개를 절벽처럼 깎아서 만든 단지라서...

아파트가 단지 바닥에서 고개 위 길로 가려면 5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거기에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다.

아파트 출입카드가 없는 외부 통행인은 계단을 이용하란다.

세상이 갈수록 치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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