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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계절학기만 끝나면,
이 분의 글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짚어드려야 겠군.
허허참.
http://cafe.naver.com/coom2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10
Neo-liberalism is a set of economic policies that have become widespread during the last 25 years or so. Although the word is rarely heard in the United States, you can clearly see the effects of neo-liberalism here as the rich grow richer and the poor grow poorer....Around the world, neo-liberalism has been imposed by powerful financial institutions like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the World Bank and the Inter- American Development Bank....the capitalist crisis over the last 25 years, with its shrinking profit rates, inspired the corporate elite to revive economic liberalism. That's what makes it 'neo' or new.
What is "Neo-Liberalism"? by Elizabeth Martinez and Arnoldo García:
철학자의 죽음도 사람의 죽음이다. 그러니 그 죽음은 고인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도 그가 남긴 책은 길이길이 살아 남을거야..."라는 말이
충분한 위로가 돼주는 법은 없다. 더구나 미셀 푸코처럼 학문적 삶의 최절정에 스러진 사람의
경우엔 그런 말로조차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상실감을 달래기 어렵다. 남겨놓은 것만으로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 프랑스인은 그런 한편으로 더 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는 1984년 6월 25일 파리의 살페트리에르병원에서 죽었다. 세상에 막 알려지기 시작한
에이즈라는 병이 이 위대한 철학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사실 푸코의 죽음을 단순히 철학자의
죽음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뭔가 미진하다. 마치 사르트르의 죽음을 단순히 철학자의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뭔가 미진한 느낌을 주듯.
푸코나 사르트르의 죽음을 예컨대 마르틴 하이데거나 장 피아제의 죽음과는 다르다.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영향이나 심리학에 대한 피아제의 영향이 푸코나 사르트르가 20세기 지성사에 끼친
영향보다 작아서가 아니다.
푸코나 사르트르의 죽음은 또 예컨대 그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였던 로만 야콥슨이나
롤랑 바르트의 죽음과도 또 다르다. 야콥슨이나 바르트의 죽음은 그저 두사람의 죽음이다. 그러나
푸코나 사르트르의 죽음은 두시대의 죽음이다. 바로 그 점이 푸코나 사르트르의 죽음을 각별하게
만든다.
푸코나 사르트르는 단지 그 직업이 '철학하는것'이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들은
지식인이었고 참여적 지식인,전투적 지식인이었다. 바로 그 점이 이념적으로는 서로 거의
적대적으로까지 보였던 이 두사람의 공통점이다.
푸코가 죽은 직후 피에르 부르디외는 르몽드에 기고한 추모사에서 "푸코는 진리와 정의의
주인으로서 발언하는 '보편적 지식인'이 되려는 야심과 결별하고,권력과 특권의 진리를 발견하는데
만족하는 '특정적 지식인'상을 만들어냈다."고 썼다.
푸코 자신이 생전에 사용했던 '보편적 지식인'과 '특정적 지식인'이라는 말을 다시 환기시킴으로써
부르디외는 예컨대 사르트르와 푸코가 얼마나 다른지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보편적 지식인'
사르트르와 '특정적 지식인' 푸코는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원조라는 동일한 목표를
위해서 거리와 광장에서 서로 어깨를 걸었다.
미셸 푸코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61년에 출간한 '광기와 착란,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이다. 그러나 푸코는 그가 무명의 청년기에 번역한 스위스 심리치료사 루드비히 빈스방어의
'꿈과 실존'에 부친 역자 서문이나, 1954년 '마음의 병과 인격'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가 이를
증보해 1962년에 '마음의 병과 심리학'이라고 개제 출판한 첫 저서에서 이미 기존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광기의 문제를 자신의 중심주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었다.
어쨌든 그의 '광기와 착란,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프랑스
바깥에서는 구조주의 문학이론가 롤랑 바르트에 의해서,
역사과학에 구조주의를 적용한 첫번째 시도로 평가됐다. 로만 야콥슨,루이
알퉤세르,자크 라캉,클로드 레브스트로스 등 연구 영역이나 관점이 서로 다른
아카데미즙의 거장들과 함께 푸코 역시 '구조주의자'가 된 것이다.
푸코는 이 책에서 '정신병자'를 감금하는 관행으로부터 출발해서,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들,정확히는 '이성'을 지닌 '정상적'사람들이 '비이성'에 대한 그들의 공포를 어떤
폭압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는지를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뒤이어 1963년에 나온 '진료소의 탄생,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은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형성된 현대의학 지식과 병원체계를 건강,정상이라는
현대의학적 개념과의 관계 아래서 검토하며 주체의 형성을 실증적 지식의 대상으로 분석함으로써
저자의 관심이 역사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푸코가 제기한 의문들이 겨냥한 것은, 흔히 사람들이 '병자' 또는 '미친 사람'이
라고 부르는 주체를 대상으로 삼는 앎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푸코는 1966년의 '말과 사물,지식의 고고학'에 이르러서는 언어와 노동과 삶과 관련된
지식의 범주 안에서 주체를 객관화시킴으로써, 말하자면 말하고 노동하고 살아가는 '정상적'주체에
대한 앎을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으로 철저히 해부함으로써 세계 학계에 격렬한 찬반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인간의 죽음','가짜과학'이라는 비아냥거림이 터져나왔고, 사르트르는 이 책이
"부르쥬아가 맑스에 대항해 세울수 있는 마지막 장벽"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이 책을 둘러싼 소란은 그러나 1968년 5월의 더 큰 소란에 묻혀 잊혀졌고, 푸코는 이 즈음부터
거리로 나가서 본격적으로 참여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인다. 그는 맑시즘의 깃발을 포함해서 어떤
깃발도 내세우지 않았지만, 노동자들, 정치적 반대자들,죄수들,이민자들,동성연재사들(푸코 자신도
동성연애자였다)이 핍박받는 곳에 저항적 태도로 입회했다.
그 와중인 1975년에 출간한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에서 푸코는 그때까지의 지배적 개념이었던
중앙집중적이고 피라미드 형태를 지닌 권력이라는 개념을 파괴하면서 '권력의 사상가'로 떠올랐다.
이 책에서 탐구된 권력과 지식의 관계는 197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에서
맑시즘에 대한 탁월한 설명을 얻는다.
1976년에 출간된 제1권 '앎의 의지'를 시작으로 여덟권으로 나올 예정이었던 '성의 역사'는
1984년에 연이어 나온 제2권 '쾌락의 사용'과 제3권 '자신에 대한 배려'뒤에 중단됐다.
푸코의 죽음 때문이었다.
'육체의 고백'이라고 생전에 푸코가 제목을 붙여놓았던 제4권은 푸코의 죽음 전에 대략 마무리된
상태였으나, 그의 유언에 따라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출간된 세 권만 해도 '성의 역사'는
서로 잡아당기면서 밀쳐내는 두 단어,'성'과 '해방'에 대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가장 진지하고
치밀한 탐구라고 할 만하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사의 20세기 사람들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 이라크 파병 1년 연장 추진 | |
| [내일신문 2004-11-23 12:33] | |
|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의 파병기간을 올해말에서 내년말까지로 1년 연장키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23일 오전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광화문종합청사에서 국무회의를 갖고 이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국군부대의 대테러전쟁 파견연장 동의안’을 심의·의결했다. 동의안에는 지난 2002년 2월에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부대와 2003년 4월과 9월에 이라크에 파견된 부대 등의 파견기간이 오는 12월말로 종료됨에 따라 그 기간은 2005년 12월말까지 1년 연장하도록 돼 있다. 연장 대상부대는 아프간에 파견된 의료지원단과 건설공병지원대, 아라크 파견 1개 부대 등 3개 부대이다. 정부는 동의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대로 국회에 제출해 파견기간 연장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측은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만이 파견기간 연장 동의안에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어 ‘동의안 국회 처리’를 낙관하고 있다. 정부는 또 올 7월 1일부터 육상근로자를 상대로 단계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주40시간제를 선원법에도 명시해, 선원의 근로조건을 개선키로 했다.
/이강연 기자 |
나는,
그 유명한 IMF와 사춘기를 함께한 세대다.
강북에 살고,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집이 어디에요?"라고 묻는,
사실은 "너희집 얼마에요?"라는 질문에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프롤레타리아.
제기랄. 며칠전 나는 내 애인의
지속적인 강북비하 발언에
96년, 당신의 그 형제애로 똘똘뭉쳐,
나에게는 '큰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보증을 서준
아빠를 떠올렸다.
무역업을 하던 그사람은
곧 사업에 실패했고,
동시에 우리집은.
매달 50만원씩 이자를 대납하며,
내집이 아닌, 여차 하면 담보로 넘어갈 위태위태한 집에 사는
식구들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10년이 다 되어가는 요즈음도.
젠장맞을 그네들은 죽어도 강남에 살아야겠다고.
실업자들 주제에ㅡ 버팅기고 있다.
사춘기 시절 나는 부모님의 지속적인 말다툼과,
그 끝엔 늘 엄마의 울음을.
보며, 들으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라는 사람에 대한 증오를 키웠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그네들에게 빚 독촉을 하기도 했다.
소심한 내 성격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분노의 표출이었고,
매일 밤 꿈에서 그네들에게 쏘아붙이던
'어른'으로서의 내 역할을 실행한 셈이었다.
사실
내 애인이 한 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꼬였을 뿐.
장난이었던거 안다.
그래봤자 너도 강남의 자취생일 뿐.
윤정수랑 같은 아파트 산다고
딱히 나랑 다를 건 없다.
그치만.
강북에 사는 프롤레타리아라서
눈물나게 서럽다. 씨.
덧. 언젠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강북과 강남의 격차 줄이기에 대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강북을 발전시키려는 발상이 이기주의적이라며 심각하게 비난을 받았다.
하하. 나는 프롤레타리아에다가, 이기주의자다.
|
"17대국회 해산해야, 현정부는 좌파수구꼴통" --------------------------------------------- 1.
망신주고 싸우고. 국회 분열. 국론도 분열.
하루이틀 일도 아니지만, 또 그만큼 하루이틀 답답한 것도 아니다.
( 하. 그런데 대체, 폴폿 정권에 대한 배경지식을 조금이라도 알고 인용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은 싸그리 파시스트? 어이없다. ) |
2.
문득 떠오른 생각,
얼마전, 화씨 911 의 감독인 마이클 무어의 연설회에 갔었다.
그는 미국 대선을 며칠 앞두고,
부시의 재선을 반대하는,
또 그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투표하기를 권장하는것을 주제로
약 한시간에 걸쳐 독설을 퍼부어댔다.
그의 일반적인 견해에- 예를 들자면
최근 그가 부시의 재선과 관련해서 개인 홈페이지 올린 성명 내용중
부모들은 늘 옳지 않다. 우리의 부모들이 부시를 뽑았다.
등 자기만의 논리에- 동의하진 않지만,
연설중 가장 동감했던 귀절은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쓰레기다.'
였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정치인은. garbage 인가보다.
별거 아니란다.
정말 별거 아니란다!
그런 일은 앞으로 수없이 일어난단다.
네가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보렴.
그러면 너는 알게 된다.
니가 지금 느끼는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울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걸….
자, 이제 울음을 그치고 물러서렴.
그 감정에서 단 한 발자국만.
그 밖을 향해서.
대학교 1학년,
소설 책 한권 마음대로 읽기 힘들던
고3을 막 벗어난 나는
공지영 씨의 소설을 읽고 어찌나 설레였는지 모른다.
그녀의 소설은 나로 하여금,
글쓰기를 '아름답다' 라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잘 읽히는 글,
생각하게 만드는 글은.
참으로 어찌나 아름다운지...
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中
사진, @Death Valley

묻는다.
당신은 나에대해 얼마나 알고있나요.
대답한다.
아니오 난 당신을 몰라요.
당신과 나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단지 나는,
당신이 내게 보여준 모습밖에 몰라요.
반성한다.
나는 타인이 내게 보여준 모습만으로
타인을 평가하지는 않았는지,
타인의 긍정성과 가능성을
내 멋대로 짓밟지는 않았는지.
나는 종종, 실수를 범하곤 하는데.
과거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인관관계를 바라보곤 한다 .
이를 테면, 요 며칠전 새로 알게된
갑은
내가 알던 을의 성격과 너무 비슷한데,
그 을은 나에게 상처를 준 기억이 있으므로
갑까지, 멀리하게 된다는 거다.
뭐 그 사이의 나름대로
그리 비약하지 않은 논리야 있겠지마는
갑이 내게 보여준 가능성만으로,
그의, 어쩌면 나를 향한 인간애를
짓밟아 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뭐 하여튼 슬퍼지기도 하고,
나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쨌든, 반성하련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갑을 향한.
나의 선입견이 통째로 버려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사진, @ 별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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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상대하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을듯..^^;;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