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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상담?

3학년 1학기 내신 끝나고 그만둔 학생의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경기대와 충북대 화학과에 합격했는데 어디가 낫겠냐는...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인가부터 다녔으니 거의 10년 가까이 봐온 애다. 똑똑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이 애를 보면 요즘 정말 대학가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 때 이정도 똑똑한 애가 이 정도 공부했으면 최소한 서울의 중상위권 (잘하면 SKY) 갈만했을 것 같은데...  (수능도 망친 것 같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특히 내 일과 관련되서 아는 학생이나 학부형이 들어올 일도 절대 없으니 그냥 이름은 안고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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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과학학원입니다. 석훈이 실력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와서 석훈이가 많이 속상하겠네요.... 경기대와 충북대라고  하니 저도 어떤 걸 선뜻 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긴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면 저에게 묻지도 않으셨겠지만요.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이 이미 다 고민해보신 것일 듯합니다만, 제 입장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충북대는 국립이라는 장점이 있고, 경기대는 수도권이라는 장점이 있죠. 어느 대학 화학과가 교수진 등을 포함한 여타 여건이 나은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대학으로만 판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충북지역에 사는 학생이 충북대를 가는 것과 수도권 학생이 충북대를 가는 것은 차이가 좀 있습니다. 최상위권 대학이라면 지방에서도 기꺼이 올라오지만 어설픈 인서울이나 인수도권 대학을 갈 바에는 멀지않은 지방 거점 국립대를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점수로 거기 가긴 좀 아깝다' 싶은 애들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서울이나 인수도권 대학은 반대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요. 즉 어떻게든 지방에 가고 싶지 않은 학생들 때문에 학교 수준에 비해 점수가 제법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충북에 사는 학생이 충북대를 가는 것하고 수도권에 사는 학생이 충북대를 가는 것 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수도권 학생이 지방으로 가는 경우, 경쟁에서 낙오됐다는 열패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석훈이가 자존감에 상처입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면 상관 없겠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선 본인이 아무리 당당하려고 해도 주위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요. 지방에 가도 괜찮다고 하고 갔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냥 잘다니는 애들도 물론 있고요.

지방거점 국립대는 등록금이 싸고 상대적으로 장학금이 사립대에 비해 많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공부환경도 충북대가 경기대보다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충북대는 통학이 불가능할테니 비용은 글쎄요... 얼마나 절약될지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할 것 같습니다. 석준이 때문에 이미 아시겠지만 대학다니는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갑니다. 자식들 대학갈 때쯤 부모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어, 그래서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하고, 졸업해서는 그 빚 갚느라 허덕대는 경우가 많다보니 비용도 꽤 큰 고려사항이라고 봅니다. 옛날처럼 어지간한 대학만 나오면 취업 걱정없고, 그래서 대학 쯤 빚을 좀 내서 다녀도 금방 벌어서 갚으면 되던 그런 시절이 아니니까요. 제가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은 삼십대 초반이 되어서야 학자금대출을 다 갚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 중 이번에 재수한 애들이 좀 있는데요, 천안에 있는 순천향대에 간 학생은 막상 다니다보니 학교가 마음에 안든다고 반수를 했는데 결과가 안좋아서 그냥 다시 다니기로 했습니다. 반면 제 조카는 재수해서 고대에 붙었고요, 같이 재수한 녀석들도 성대에 붙은 애도 있고 연대에 합격한 애도 있습니다. 반면에 수능 망쳐서 삼수준비하고 있는 애도 있고요. 석훈이도 재수는 안하는 거죠? 하면 많이 오를 것 같긴 합니다만 워낙 가시밭길이라서요....
실속없이 이야기만 길어졌습니다. 제 판단으로 학교 자체는 충북대가 더 낫습니다. 조금 나은 게 아니라 제법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어떨지는 별개지요. 공대쪽에서는 이런 말이 있거든요. ‘공부하려면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가고, 성공하는 게 목적이라면 서울대 가라.’ 어느 게 더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저라면 충북대가 조금 더 끌리는데,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당연히 경기대 가야하는 거 아냐?” 이러네요. --;;
결정을 내리기 전이건 결정을 내린 후이건 간에 한 번 오라고 하세요. 밥이라도 같이 먹게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산다는 게 대체 뭔가 싶기도 하고, 대학이 뭐라고 이 난리를 쳐야하나 싶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더더욱 아니니 무시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나이 들면서 지혜로워지는 게 목표였는데 점점 더 모르는 것만 늘어납니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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