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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1/24
    무주택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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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9/27
    p이면 q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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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9/14
    행복??(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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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8/06
    혈액형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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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10/25
    기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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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10/18
    철수의 핵실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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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10/16
    북핵관련 참세상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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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8/21
    갑갑해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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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4/04
    광고를 보다가 떠오른 잡탕생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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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2/06
    혈액형에 관한 나의 오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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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자

몇푼 안되는 집이었지만(그래도 누군가에겐 아주 큰 돈일 거고) 20대와 30대에는 내집이 있었는데, 며칠전 그 집을 팔면서 40대에 무주택자가 됐다.

뭐 그렇다고 내 형편이 크게 안좋아진 것은 아니다.  무슨 신세 한탄 하려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결혼을 하고 40대의 나에게도 아기가 생기고,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어찌 보면 별로 변한 것 같지도 않고, 잘 모르겠다.

일단 생활 형태는 무지 많이 변했다. 근데 생각은?

변한 것도 있고, 안 변한 것도 있고.

변해야 할 것 같은데 안변한 것도 있고,

안변해야 할 것 같은데 변한 것도 있고,

안변해야해서 안변한 것도 있고^^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얘기 "이런 아빠 만났으니 토란이도 그냥 그 모양으로 살아야지 뭐"

나와 내 아기의 미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다. 대개는 내게 "아기의 미래를 생각해서 좀 더 많이 벌고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식의 충고를 한다. 물론 나라고 해서 아이의 미래나 나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사람이나 진보적인 사람이나 자식 교육 시키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들 한다. 김규항의 표현을 빌자면 '보수적인 사람은 자기 자식이 일류대생이 되길 바라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기 자식이 진보적인 일류대생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엔 아닌 이들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진보입네 하는 사람들 중엔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형편이니 교육문제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진보적이라 생각하고, 획일적 교육이 완전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넣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대안학교도 고려해보고 하는 학부형들의 상당수가 끝까지 포기 못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성적이다. "그래도 공부는 웬만큼 했으면, 아니 기왕이면 잘했으면, 그래서 괜찮은 대학에 갔으면..."

 

근데 그걸 포기 못하면 시기가 각자 좀 다를지는 몰라도 결국 우리 교육의 문제점 한복판으로 스스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미 '아이들을 관리하지 않는데도 알아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지금은 아직 애가 어리니까 그렇게 말하지만 애가 학교들어가고 점점 크면 생각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내게 말한다. 내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지금처럼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는 나도 생각 안한다.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키기 위해 돈 벌려고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스스로 유혹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다잡게 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애기 엄마하고도 무척 싸울 수도 있고 말이다.

제일 걱정인 것은 애가 나를 원망하는 것이다. 자기도 남들처럼 여기 저기 다니고, 그래서 성적도 올리고 싶은데 왜 안해주는냐 , 뭐 이런 식의 원망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물론 나는 많이 대화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하겠지만 자식 일은 정말 뜻대로 안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 땐 토란이에게도. "미안하다. 이런 애비 밑에서 태어났으니 너도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어쩌겠냐?" 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돌잔치에 썼던 롤스크린에 들어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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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면 q이다

명제는 중2 때와 고1 때 나온다. 그리고 대개 이때까지는 아직 수학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내용을 대부분 이해한다. 명제 부분은 ‘논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교육이 그렇듯 그저 ‘수학’일 뿐 ‘논리’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대체 복무제 때문에 보수적인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하고 있나 보다. 병역 기피자들이 늘어나서 나라의 근간이라도 흔들리지 않을까 말이다. 내가 보기엔 군대가기 싫어서 종교나 양심의 문제도 없는데 국방부를 속이고 현역복무의 두배를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혹은 있기나 할까) 싶은데, 그리고 당장 군대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대학1학년 내 조카도 “미쳤어요? 아무리 군대가기 싫다고 두배나 근무하게!”라고 말하고 있고 그런 내 조카가 대한민국 젊은이들 중 특별한 경우가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 하려는 얘기는 사실 대체복무제는 아니다. 제목에 썼듯이 명제에 관련된 것이다.  

성우 양지운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아들 둘이 병역을 거부해서 실형을 살았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달라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인터넷 댓글이 이거라고 한다.

“군대에 안가는 게 양심이면 군대에 간 나는 비양심인 거냐?”

사실 이 정도의 유치하고 스스로가 멍청함을 선포하는 말에 대해 뭔가 대꾸해줘야 하는 현실이 슬프긴 하지만 의외로 이런 식의 반박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런 식의 말들이 나름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예전에 배운 것을 다 까먹은 사람을 위해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명제’라는 것은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문장이나 식을 말한다.

원래 명제를 “p이면 q이다”라고 하면

역: q이면 p이다

이: p가 아니면 q가 아니다

대우: q가 아니면 p가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원래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역이나 이가 참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그때 다르니 따져봐야한다고 배웠다. 다만 대우는 원래 명제와 참 거짓이 항상 같다.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가 있다면

역: 죽으면 사람이다

이: 사람이 아니면 죽지 않는다.

대우: 죽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위에서 보듯

“군대에 안가는 게 양심이다"와 "군대에 가는 것은 비양심이다”는 <이>관계이다.



예전 '누가  아줌마인가?'에서 썻듯이 사람들은 원래 명제가 참이면 역도 참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따져보면 아주 어이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가 항상 원래 명제와 참거짓을 같이 하는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법률이다. 즉 "p라는 죄를 지으면 q란 벌을 받는다'라는 법조항이 있으면 당연히 'p라는 죄를 안지으면 q라는 벌을 안받는다'도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데나  “군대에 안가는 게 양심이면 군대에 간 나는 비양심인 거냐?”  라는 식으로 논리를 펼친다면 아주 이상해 진다. 이런 대화를 상상해 보자.


갑: 사람이면 모두 죽게 마련이지


을: 뭐야? 말도 안돼. 사람이면 모두 죽는다고? 그럼 사람이 아니면 안죽는다는  말이냐? 개나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안죽니?  '사람이면 죽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


처럼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군대를 안가는 게 양심에 따른 것'이라는 말은 '군대 가는 게 비양심'이라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이면 죽는다는 말과 사람이 아니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듯이 말이다.

즉 하지도 않은 말 갖고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한데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거다.


이런 예를 제법 자주 본다.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우리나라의 '나이주의'를 문제 삼으면서 '이놈의 나라는 처음 만나서 나이를 물어 위아래를 따지지 않으면 대화가 제대로 되질않는다'라고 좀 냉소적인 말을 했는데 그에 대해 다음 호에서 누가 이렇게 반박했다. "그럼 나이를 안따지면 대화가 제대로 된다는말인가?"

누가  그렇다고 했나? 이 사람도 전혀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생트집을 잡는 것인데 아마  본인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전에 강준만이 인터뷰할 때 인터뷰어가 '어떻게그렇게 인물들에 대한 광대한 자료를 수집, 분석할 수 있었는가?'라고 묻자 "한 십년쯤 고3 수험생처럼 열심히 살면 작은것이라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라고 대답했다. 이 얘기를 누구에게 했더니
 "그럼 고3 수험생처럼 열심히 살지 않으면 뭔가 이룰 수 없다는 말이야?"

난 잠시 멈칫했다가 차근차근 따져봤다. 그리고
"네가 착각했구나. 그건  <이>잖아!"

자신의 실수를 곧장 인정했고 그게 끝이었다. 깔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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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민노당 우리 지역위에서 '북한 바로알기'라는 강연을 마련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그쪽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난 무슨 내용일지 대략 뻔해서 가볼 생각도 당연히 안했다.

 

타 지역에서 오신 당원분은 생각이 그쪽은 아니지만 워낙 당 일에 열심이셔서 강연회에 가셨다고 한다.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 있어 그 분이 북한 정권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나보다.

그러자 강연을 했던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단다.

 

"남한 사람들하고 북한 사람 들중 누가 더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질문의도는 너무 명확하다.

북한 인민들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체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이 더 좋은 사회라는 것일 게다.

 

이렇게 단순한 논리에는 같이 단순하게 대답해 줘야한다.

스스로의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라가 방글라데시사람들이라고 한다. 인도가 2위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인 우리 민노당이 꿈꾸고 만들고 싶어하는 사회가 방글라데시인가?

내게 남한 사회가 살기좋은 사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 사람들처럼 북한사회가 이상향이겠는가?

 

내 주위에는 가부장적인 기성 질서와 매일 싸우며 피곤하게 사는 여성들이 제법 있다.

현모양처를 미덕으로 알고 순종하며 사는 여성들에 비해 이들의 삶은 그닥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록 덜 행복하더라도 난 이렇게 잘못된 기성 질서와 싸우는 사람들이 좋다.

 

카스트 제도하에서 자신이 천한 계급으로 태어난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받아들이며 살면 행복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운명에 반항하며 싸워온 사람들은 불행을 자초하며 사는 사람들인가?

 

민노당 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 지지자들에 비해 행복지수가 높을까?

우린 맨날 뭔가 불만에 싸여서 쌈박질 하는 사람들이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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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2 ?

지역 모임에선 이런 저런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내가 간부를 맡고 있었기에 나름 나의 본색을 잘 안드러냈다.

그러다 바빠서 잘 나가지도 못하고 반장자리도 내놓고 하다보니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평회원이 되어서 오히려 이런 저런 하고 싶은 말을 좀 하기도 한다.

삼성 싫다는 얘기를 했다가 한바탕 난리블루스를 추기도 했다. --;;

 

나랑 무척 친하지만 색깔은 많이 다른 이가 있다. 서로 다르다는 걸 서로 잘 안다.

혈액형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를 좋아하고 난 달갑지 않지만 뭐라 하진 않았었다.

하긴 혈액형 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근데 이젠 좀 지겹기도 해서 그자리에선 뭐라 하지 않고 게시판에 나의 옛 글을 올렸다.

( 나의  옛글 [혈액형에 관한 나의 오버] . )

내 블로그에 올렸던 개인적인 글이니 거친 표현들을 이해해달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러자 예상했던대로 댓글이 올라왔다.  다음은 그 댓글이다.

 

+++++++++++++++++++++++++++++++++++++++++++++

 

 

능력이 안되는 관계로 반말로 쓰겠습니다.. 보시면서 기분 상하신다면 죄송합니다.. 꾸벅..(--)(__)..

그리고 저또한 범수형처럼 반론이 올라오면 재반론 할 능력이 안되오니 그 점 양해부탁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얘기하고 즐기면서 가장 많이 갖는 관심사중 하나가..

바로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나또한 사람들과 모여서 얘기할때 혈액형 얘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그걸 단순한 얘기로 끝낼때도 있고.. 내가 그 말들에 대한 신뢰를 하기도 한다..<

간혹 사람들중에 혈액형에 관한 말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전 세계 인구가 몇인데 4가지로 분류할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행처럼 번진것도 일본 사람이 쓴 책에서..

유례가 된것을 들어서 외국 사람들은 혈액형 얘기 따위는 믿지도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혈액형에 대한 속설들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부정하고 짜증내기도 한다..

그 이유는 ..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들중 좋은 내용은 별로 없고 나쁜 이야기들만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AB형인데 사람들은 AB형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괴팍하고.. 또라이적이고.. 이기적이고.. 속을 알수가 없고.. 잘난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AB형인걸 모르는 나보다 어린 동생들도 내 앞에서 거침없이 AB형은 다 또라이야.. 미친넘들뿐야..라는..

말들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럴때 난 조용히 웃으면서 한대 패준다..좋은말로는 머리가 좋다는데.. 넌 아니네.. 이정도뿐이다..

그래서 심하게는 난 AB형은 안만나.. 난 O형은 좋아.. 난 A형은 짜증나 등등..

많은 선입견을 동반하고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렇기때문에 사람들은 그 분석아닌 분석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을 왜 4가지로 분류할수 없다는 것인가..

분류는 가능하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혈액형별로 비슷할수도 있지 않을까..??

혈액형별로 분석을 해놓은것은 모든 사람이 다 딱 그것에 맞다가 아닌 크게 나눈 대분류이다..

A형은 이런 성격이나 성향이 많고.. B형은 이런식의 행동패턴들을 보인다 라는 크게 나눈 대분류일뿐..<

그런 대분류를 보고 그것이 얼토당토 안하다고 하는것도 어불성설일수 있다..

우리도 그렇잖은가.. 세상이 아무리 크고 아무리 인구가 많아도.. 우리에겐 동양인 서양인이다..

그리고 동양인은 이렇고.. 서양인들은 저렇더라.. 라는 말들을 한다..

그럼 그것이 문제가 되는것인가..?? 그것은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을 단 2종류로 구별해 버렸다..

4종류면 그것에 무려 두배나 되는 분류가 아니던가..

너무 숫자에 얽매여서 그건 몇개뿐이 안되는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것도 어찌보면 아니다싶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은 혈액형에 대해 믿지도 얘기하지도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외국 사람들은 그 대신 별자리에 대한 우리가 혈액형에 갖는 애착아닌 애착과 신뢰보다 더 심할수도 있는..

모습들을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자리따위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럼 별자리는 12가지니까 혈액형보다 더 우수한 분석인 것인가..??

어느것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수도 어느것이 더 옳다고 말할수도 없는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하나는 알고 가야 한다..

혈액형 얘기들을 하면서 즐거워 하든.. 화를 내고 그것에 대해 집착을 갖던..

우리가 하는 혈액형 얘기들은 그냥 그 대화자리에서 즐겁고 유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뿐이지..

그것에 목숨걸고 그것에 맹신하라고 하는것은 아니다..

그런것에 믿음을 갖고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다면.. 그건 이 세상을 향해 스스로 등을 돌리는 행동일 것이다..

우리가 혈액형 얘기를 하고.. 웃고 떠들고.. 아니다 라고 반박하는것에서 우린 즐거움과 서로간에 대화를 하는 것일뿐..

그것때문에 괜한 선입견과 오해들을 갖지는 말자..

나또한 그냥 대화의 한 수단으로 혈액형 얘기를 할뿐이고.. 그것을 이용할뿐이지 그것에 대한 맹신은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건 범수형 글에 대한 반박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혈액형에 관한 생각도 그닥 아니다..

단지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들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는걸 알기 때문에..

너무 싫어할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볼뿐이다..

단지 그냥 저 사람은 저런걸 좋아하는구나 하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해서.. 해본 말이다..

혈액형 얘기도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만득이 시리즈 정도로 치부해버리면.. 그닥 싫어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잖은가..

어떤 얘기든 그냥 즐기자고 하는 말이라면 그냥 즐기고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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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길게 끌고갈 만한 것인지 좀 회의적이라 간단하게만 댓글을 달았다가

좀 아니다 싶어 다시 좀 긴 댓글을 달았다.

여기에 올릴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요즘 내가 너무 글을 안올린 것 같아 이딴 거라도 올린다.

 






난 혼자 열받아서 글을 쓰더라도 나름 자기검열을 하는 편입니다.

제 글에서 “세상의 모든 인간을 겨우 4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것도 달갑지 않다.”라고 쓸 때 이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을 했죠. 그리고 재열씨는 딱 내 예상대로 반론을 했더군요.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거지만 결벽증이 좀 있어서리...


이런 예를 들어볼께요.

청년회에서 그냥 재미로 회원들의 성향을 설문조사한다고 칩시다.

설문 중에 “자신의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항목이 있다고 가정할께요.

설문 작성을 맡은 이란 친구는 이에 대한 보기로

(1)내성적  (2) 외향적 이라고 만들었습니다.

이를 본 이란 친구가

“야, 사람 성격이 내성적하고 외향적 두가지밖에 없냐? ‘(3) 중간’ 이란 보기도 넣어라”라고 했고

그 옆에 있던 이란 친구는

“야, 그것도 부족해. 이렇게 하자.  ‘매우 내성적을 1로하고 매우 외향적을 10으로 했을 때 자신의 성격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숫자는 무엇인가?’라고 말이야. 사람 성격을 두세가지로만 분류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정확하지가 않아.”


의 의견을 들은

“대략적인 성격만 재미로 파악하는 건데 그냥 두세가지만 분류해도 어느 정도 성격파악하는데 충분할 것 같은데..  열가지로나 분류하는 것은 너무 복잡해” 라고 말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만약 갑이 “사람을 동양인 서양인 이렇게 두가지로도 분류할 수 있는데 성격을 두세가지로 분류하는 게 뭐가 문제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전혀 상관없는 두가지 얘기를 연결시킨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설마 인간의 성별을 구분하는데 ‘남녀’ 두가지로만 구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니 최소한 다섯가지 이상으로는 구분해야한다라고 주장이야 하겠습니까?


종류에 따라 두세가지로 분류해도 충분한 것이 있고 대여섯 가지로 분류해도 부족한 것이 있겠죠. 난 ‘사람의 성격을 네가지로만 구분하는 것이 (그것도 다른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혈액형만 갖고 구분하는 것이)’ 맘에 안든다는 얘기였지 무엇이던 네가지 이상으로 구분해야한다고 주장한 게 아니잖아요?

재열씨가 말한대로 ‘사람의 성격을 대분류하면 네가지로도 할 수 있다’라고 반박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할 수 있지만 거기에 동양인 서양인을 끌어온 것은 재열씨가 좀 혼동한 것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꼭 나한테 한 얘기 같진 않지만, 내가 “혈액형을 믿지 않는 서양인들이 우리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별자리를 믿는다는 말은 전혀 와닿지가 않네요. 난 어차피 별자리나 점이나 혈액형이나 관심없거든요. 서양인들이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내 글에서 말했듯이 남들이 혈액형 얘기하며 재밌어하는 걸 뭐라할 생각은 없습니다. 난 점같은거 보러 안가지만 점보러 가는 사람을 비난하진 않거든요. 그런데 극구 나를 점집에 끌고 가려한다면 상황은 다른 것 아니겠어요?


지난번에 진옥씨가 무서운 얘기 너무 싫다고 해서 나나 재열씨나 둘다 하려다 말았잖아요? 난 그게 맞다고 생갑합니다. 상대방이 싫다고 해도 극구 하고나서 그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 솔직히 짜증나요. 당하는 입장에서는 ‘화내자니 우습고 가만 있자니 짜증나는’ 상황이 되죠. 화를 내던 짜증을 내던 내색을 하고나면 오히려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되죠.

십중팔구는  “그냥 재밌자고 한건데 뭘 그래?”

아님 고작해야 “아! 미안해 미안해! 그냥 재미로 그런거야” 이런식의 사과아닌 사과가 끝이죠.


게시판 성격에 안맞는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재열씨의 반론이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재열씨 블로그에서 이어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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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늦긴 했지만 민노당에서 북핵실험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해서 다행이다. 진보씩이나 들먹일 것도 없고 그냥 '상식'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는게 왜케 힘들었는지 짜증은 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게시판에 가면(거긴 당원만 쓸 수 있다) 서로간의 싸움이 하도 험악하여 오버를 하다보면 어이없는 주장도 많이한다. 즉 북핵실험에 반대하는 것들은 '친미좌파'란다. 스스로 붙여놓은 이름으로 또다시 비난을 한다."좌파란 놈들이 어떻게 친미를 할 수 있냐?" 행인 말마따나 "반미는 지들만 했나?"란 생각이 절로든다. 사실 좌파까지 안가더라도 세계의 양식있는 사람들은 다 반미를 외친다. 무고한 사람 죽이고 있는데 좌파만 반대하겠나?

 

북핵에 반대하는 민노당원들은 대북제재 역시 반대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북한이 핵실험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제재를 강화한다고 해결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이 북을 압박하는 것에도 반대하고, 놈현정권이 PSI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압력도 가해야 한다. 당연히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도 지속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이건 김정일 정권이 좋아서가 아니다. 최선의 선택은 안보이는 반면 최악의 선택은 보이니까 막아야한다는 말이다. (한나라당의 원희룡도 대북제재를 반대하는데 그가 주사파라서 그러겠나?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지. 정형근도 그렇고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나마 당입장이 정리됐으니 이젠 대북제재 반대에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오늘 할 얘기는 원래 이건 아니었고, 논쟁중에 나온 것 중에 조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거리가 있어서다.

북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중 이런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핵이 위험해서 안된다고 하는데 그럼 너희들은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서 전경이나 구사대와 싸우는 것도 폭력이니까 말리겠네. 북핵은 노동자들이 자위를 위해 싸우는 것과 같단 말야."라는 주장이다.

물론 간디처럼 절대적인 비폭력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민노당원 중에 그정도까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북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비폭력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임계점'이란 것이 있다. 괜히 어려운 말 같다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40도의 물과 41도의 물은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52도와 53도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99도와 100도는 똑같은 1도 차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이 끓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액체에서 기체로 상태가 아예 변환을 한다. 이런 것이 임계점이다. 액체의 종류마다 끓는 점이 다르듯 폭력성에 대한 임계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때론 그 차이가 꽤 클 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폭력'과 '비폭력' 두 개로만 나누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시위현장에서 이 임계점 역할을 하는 것이 대충 '화염병'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시위를 준비하는 쪽이나 경찰이나 둘 다 화염병 사용여부에 촉각을 세운다. 즉 시위하는 입장에서 폭력을 쓰기로 했다고 해서 무한정한 폭력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자 이제 "핵이 위험해서 안된다고 하는데 그럼 너희들은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서 전경이나 구사대와 싸우는 것도 폭력이니까 말리겠네"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자. "구사대나 경찰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폭력에 대해서는 지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폭력이던 괜찮다라는 말이 당연히 아니다.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화염병까지는 괜찮다고 하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고 쇠파이프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아예 사제폭탄도 준비하고 공기총도 준비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말리지 않겠는가? 지난번 대추리 침탈 때 조선일보는 시위대가 '죽창'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는 '죽봉'을 사용했는데 말이다. 이 것만 봐도 '폭력'에는 급이 있다는 것을 조선일보도 안다. 북한이 탱크있다고 방방 뜨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나름대로 양질전화의법칙을 설명한 건데 재대로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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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의 핵실험

북측의 핵실험이야 시간의 문제였지 어차피 예상됐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민족주의자들의 '예상은 했으나 여전히 뜨악한' 반응들은 여전히 놀라워서 글을 쓴다.

(근데 '좌파민족주의자'란 표현은 놈현이 말한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만큼이나 코메디스럽다. 그런식이라면 '페미니스트 마쵸'나 '크리스챤 불자' 같은 것도 가능하겠다. 쿨럭. 맑시즘사상이 국내에 처음 들어오던 일제식민지 치하 때나 가능한 표현이다.)

 

북핵을 반대한다고 하면 "그럼 넌 미국이 잘했다는 거냐?"라는 유치한 대응을 하는 인간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미국이 잘했다고 했나?  근데 그럼 또 이런다 "고작 한다는 게 양비론이냐?"

 

되지도 않는 작문실력으로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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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근데 학교에서 철수를 무지하게 괴롭히는 놈들이 있다. 3학년 선배놈들인데 이놈들 만행수준이 완전 조폭이다. 버르장머리 없다고 때리고, 말안듣는다고 때리고 돈도 빼앗는다. 때론 흉기로 위협하기도 한다. 철수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반 아이들 중 거의 절반이 이놈들에게 당하고 산다. 이놈들이 말하는 액수를 맞추느라 집에서 돈을 훔치기까지도 하는데 이러다가는 정말 제명에 못죽을 것 같다.

철수는 선생님이나 경찰에게 이 사실을 말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증거도 없고 선생님이나 경찰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자신도 흉기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가방에 큼직한 식칼 하나 넣고, 품에는 과도 하나 넣고 다니기로 했다. 여차하면 너죽고 나죽자고 칼을 휘둘러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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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철수의 계획에 동의하겠는가? 잘생각했다고 칭찬하겠는가? "드디어 네가 용기있는 진짜 남자로 태어났구나"하고 칭찬해야 할까?

 

이건 당연히 말려야 하는 상황이다. 잘못한 건 3학년 깡패놈들인데 왜 철수보고 뭐라그러냐고? 그래,100번 걔네들이 잘못한 거다. 그렇다 할지라도 철수의 방법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게 양비론인가?

 

철수뿐만 아니라 그놈들한테 당하고 사는 모든 애들이 각자 흉기하나씩 품고 다니면, 그래서 서로 당할까봐 움찔해 하게되면 드디어 학교에 평화가 찾아 오는가?

 

*지금까지 이야기는 최대한 철수를 선의로 생각해서 꾸며낸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가정을 해보자. 철수가 3학년 선배놈들에겐 쪽도 못쓰지만 2학년 자기반에서는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실제로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나름대로 카리스마까지 있어 담임은 철수를 반장으로 임명했다. 물론 철수는 자기반이 잘되기를 바란다. 실제로 꽤 많은 아이들이 철수에게 자발적으로 복종을 하고 철수의 리더방식에 동의하기도 한다. 반면에 그에 반감을 갖는 아이들도 많다.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옳다 하더라도 저렇게 독재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서워서 그런 소리는 하지도 못한다.

 

자, 이 상황에서 더이상 3학년 놈들에게 당하고 살지는 않겠다고 반장 철수는 드디어 결심을 하게된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반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3학년 놈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신나 한통과 라이타를 준비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한번만 더 우리반에 와서 행패부리면 교실에 신나 뿌리고 확 불질러 버려서 너희죽고 우리죽고 할거다"

물론 반의 다른 아이들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반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도 없거니와 내가 하겠다는데 감히 말릴 애도 없을 테니까.

 

여러분이 철수네 반 학생이라면 철수의 용기에 박수를 치겠는가? "우리반도 드디어 어디에도 꿀리지 않는 용기와 기개가 생겼다"고 자랑하겠는가?  철수도 그러고 싶은 건 아닌데 3학년 놈들 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 기왕 계획한 거 잘해보자고 하겠나?

 

어쨌든 3학년 놈들한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거라고? 누가 뭐래?

그러니까 철수가 잘생각한거냐니까, 참나...

 

미국이 하도 나쁜짓을 하다보니 별 말도 안되는 논리들이 판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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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관련 참세상 기사

 

참세상에 실렸던 제법 긴 글인데 정리하며 공부할겸 읽어볼만 하다.

아는 분이야 다 알겠지만 '진보' 비스므레한 것이라고는 내 블로그에서 밖에는 보는 일이 없는 이들이 있어 잠깐! (하긴 핵을 반대하는 건 진보하고 별 상관도 없다. 상식의 문제지)

이걸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서

* 미국의 MD 계획

쉽게 말하면 자신을 공격하는 미사일을 격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아직은 명중률이 50%정도라 실패한 실험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떼돈 쳐들이고, 시간이 충분하면 언젠간 가능할 수도.

말은 방어무기인데 실질적으로 성공하면 미국은 어떤 공격이든 막아낼 수 있으니까 지들 맘대로 침략하고 지랄하겠지. 결국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이게 성공하면 북한이 핵미사일 성공해봤자 말짱 꽝. 그럼 북한은 미국이 엠디를 성공하기전에 빨리 선제공격을? ㅤㅂㅞㄺ

* 이번 핵실험을 하면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핵실험을 단행한다'고말한 것을 모르는 분이 있을까봐... (그걸 모르면 문맥이 이상하게 읽힐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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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향한 사회운동의 도전이 필요하다>

핵실험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가?

박준도(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집행위원) dmitri@jinbo.net




1. 북한 핵실험의 의미 : 핵 위기의 새로운 순환
지난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둘러싼 긴장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였다. 1958년 재래식 전쟁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미국의 ‘대량보복전략’ 아래 핵무기가 남한에 배치된 이후를 하나의 순환으로 하고, 1971년부터 시작된 남한과 북한의 핵 보유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남한에게는 핵우산을, 북한에게는 핵불사용을 제시함으로써 미국이 핵확산을 막으려던 시기를 두 번째 순환이라고 한다면, 2002년 미국의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 천명, 2005년 북의 핵보유 선언, 2006년 북의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에서의 본격적인 핵경쟁의 도래는 이전까지와는 명백히 다른 새로운 순환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핵 경쟁이 본격화된 데에는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며, 끊임없이 원인을 제공하였음은 명백하다. 미국은 1991년 전술핵무기 폐기를 선언하고는 연이어 한반도 비핵화선언(1992년)까지 이끌어내지만, 이는 핵확산을 줄이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남한에 대한 핵우산 정책은 폭격기를 이용한 전술핵무기와 전략핵무기를 통해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994년 제네바 협정에서 미국이 약속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불사용은 그자체로 믿을 수 없는 모순적인 것이었는데, 제네바 협정 이후에도 미국은 남한에 대한, 한반도에서의 핵우산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국가 간 위계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중핵이라고 할 때, 북한의 안정보장은 사실상 처음부터 거절당했던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외교정책이 ‘접촉’으로 바뀌건, 악의적인 ‘무시’로 바뀌었건 사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더구나 미국이 2차 핵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NPR)에서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북한 등 핵비보유국에 대한 핵선제공격까지 천명한 상황이라면 이후 전개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2. UN이 주도하는 핵확산 통제의 불가능성: NPT체제의 몰락


애당초 새로운 핵경쟁의 출현 위험은 이미 197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핵공학의 발달은 손쉽게 핵무기 제조기술로 전화될 수 있었고, 국가 간 체계의 불평등성이 핵무기로 공고화된 상황에서 지역강국으로의 도전을 꿈꾸는 국가에게는 핵무기 보유가 무엇보다도 관건이었기 때문이었다.


1969년 '직접적 위협을 받는 나라의 정부와 국민은 자기방어를 위한 군사력을 먼저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는 닉슨독트린이 발표된 이래 미국과 소련의 무기 공급/판매는 확대되고, 자신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국가의 생존전략이 확대되면서부터는 지역차원의 군사화와 더불어 핵보유 열망이 급격히 확대된다. 그리하여 미국과 소련 등 기존 핵보유국들은 핵확산을 제어하고자 평화적 목적의 핵기술을 보장하면서도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보유 열망을 포기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UN의 권위아래 '국제적이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을 통해 핵확산을 금지하는 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 NPT)이 바로 그것이다. 핵보유국들의 핵독점으로 핵확산을 막는다는 것이 NPT체제를 통한 핵확산 방지의 요체다. 하지만 NPT체제는 핵보유국의 수직적 핵확산 ― 즉 핵무기의 질적 개량에는 UN이 아무런 제어를 할 수 없는, 오로지 핵비보유국에 한해서만 UN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 IAEA)가 ‘포괄적인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불평등한 조약(심지어는 의결에서조차 핵보유 5개국은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이었고, 핵보유국의 핵비보유국에 대한 소극적인 안전보장 ― 즉, 선제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이어서 NPT체제는 처음부터 불안정한 것이었다.


NPT체제 하에서도 이스라엘, 인도․파키스탄, 이란․이라크, 남아공, 브라질, 한국․북한 등에서 핵보유 시도들은 계속 확대되었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이런 시도를 중단한 나라도 있었지만 핵비보유국의 핵보유 열망은 중단되지 않았다. 결국 ‘확산예방정책’이 한계에 이르자 클린턴 정부는 이를 ‘확산대응정책’으로 전환한다. 군사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1994년 이른바 ‘1차 북핵위기’는 이런 강경한 분위기에서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1995년 25년의 시효를 가지고 있었던 NPT체제가 시효 만료될 처지에 이르게 되자 한반도에서 ‘1차 북핵위기’는 제네바합의를 통해 봉합되고, 비핵보유국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핵보유국들은 포괄핵실험금지조약(Comprehensive Test Ban Treaty : CTBT)에 합의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지렛대 삼아 1995년에 열린 NPT 5차 평가회의는 NPT체제를 무기한 연장한다.


하지만 수직적 핵확산을 중단하기 위한 핵보유국들의 이행은 지지부진했다. 1999년 미국은 CTBT에 대한 국회비준을 거부하였고, 2002년에는 미사일방어망(Missile Defense : MD) 개발을 위해 탄도탄요격미사일(Anti-Ballistic Missile : ABM)협정을 파기하더니 2003년에는 소형핵무기의 연구개발을 금지해 온 '스프랫페이스' 조항마저 폐지하였다. 그리고는 2003년 미국은 UN결의 1441호에 의거해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였다. 물론 UN은 같은 해 5월 1483호 결의를 통해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승인한다.


이런 상황은 사실 이미 2002년 발표된 2차 핵태세보고서에서 천명된 것이었다. 미국은 이 보고서에서 “통상적인 무기로는 파괴할 수 없는 목표물의 파괴”,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공격에 의한 보복”, “기타 불시의 군사사태” 등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핵무기사용가능성을 크게 확장하였고, 중국․러시아․이라크․이란․북한․리비아․시리아에 대한 핵선제공격 가능성을 천명한 뒤, 정밀타격능력 강화, 정보수집능력 확대, 전천후․전지형 장거리 타격 수단 확보, 새로운 유도 타격무기 개발과 같은 핵군사력 개편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상호확실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 ’전략보다 ‘핵전투(Nuclear Warfighting)’ 전략의 비중을 압도적으로 높인 것인데, 이는 미국이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무기”보다는 “실제로 사용가능한 무기”로서 핵무장을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있었던 NPT 6차 평가회의에서 미국은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국가의 농축 및 재처리를 아예 불허하자고 주장하였다. NPT체제를 뒷받침해주는 ‘소극적 안전보장’도 휴지조각이 난 마당에 이제는 핵의 ‘평화적 이용’마저도 부정한 것이다. 핵비보유국들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미국의 핵태세를 비난하였고, 이에 따라 NPT 6차 회의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바로 이어 2006년 이란의 핵보유 시도가 가시화되고, 북한은 핵실험을 실시한다. 핵확산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면서 새로운 핵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국 자신에 의해서건 새로운 핵보유국의 탄생에 의해서건 NPT체제는 이제 사실상 자신의 역사적 운명을 다했다. 핵보유국들은 NPT체제를 통해 핵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했고 또 여전히 그렇다고 주장할 테지만, 현실의 역사는 NPT체제가 핵보유국들에 의한 수직적 확산은 물론이거니와 핵보유국 확대라는 수평적 확산 역시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것의 궁극적 원인은 핵보유국들(특히 미국)의 핵독점 노력이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국가 간 불평등을 보증하는 이상 핵 독점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핵확산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보유국의 핵독점에 의존하는 NPT체제는 핵확산을 막을 수 있는 국제기구로서 유효한 틀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동시에 UN 역시 핵확산을 중지할 수 있는 어떠한 유효한 힘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UN의 권위에 근거한 핵확산 방지 노력 역시 NPT체제의 실효성이 붕괴된 것과 동시에 유의미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3. 핵에 의한 핵의 억지는 왜 불가능한가!


다시 문제의 원점으로 돌아오자. 그렇다면 북의 핵실험은 동아시아에서의 핵확산 아니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완전한 비핵지대화를 향한 유효한 시도가 될 수 있는가? 단언하건데 결코 그럴 수 없다. 이유는 명백하다. 핵에 의한 핵의 억지는 가상적인 시나리오 일뿐 현실에서는 핵 균형은커녕 도리어 핵 경쟁을 더욱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떨어진 핵이 일본제국주의를 완전히 패망시킨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핵은 단 한 번의 사용으로도 국가의 존립을 심대하게 위협한다. 통상 규모야 어찌되었건 핵은 보유만 하면 핵보유국 사이에서 공포의 균형이 이뤄진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핵보유를 위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 뿐 현실의 전개는 전혀 다르다. 새로운 차원에서 핵 경쟁과 군사 경쟁이 가속하기 때문이다.


핵보유국 사이에서는 1%의 전력 차이라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존립과 권위를 위협하기 때문에 핵을 보유한 나라들일수록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이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 ― 즉 양적 증대, 질적 개량을 하게 되는 계기다. 따라서 핵무장을 전제로 한 상황에서 군사적 평형상태란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가능한 균형이라면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서로 모두 죽는다는 절멸(!)을 전제로 하는 균형일 뿐이다.


바로 이러한 절멸을 전제로 상호 균형을 이룬 시점이 1960년대 말부터 진행된 미․소간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Ⅰ, Ⅱ)이다. 제2공격능력 ― 즉, 핵 공격을 받고도 핵 반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에 제한을 두어 ‘상호확증파괴(MAD)’를 가능하게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체제제한협정'과 '공격형전략무기제한을위한잠정협정'이 제기된 것이다. 상호 절멸을 보증함으로서 핵전쟁을 도발할 수 없도록, 이를 위한 핵전력의 평형을 이루자는 것이 전략무기제한협정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공포의 균형만이 유일한 핵 균형에 이르게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공포의 균형 속에서도 핵전쟁이 가능하다는 가설이 가능한데, 그것은 본격적인 핵전쟁으로까지 확대되면 상호절멸하게 되기 때문에 핵전쟁 당사자들이 이런 핵전쟁의 확대는 피하게 된다는, 그리하여 제한적인 핵전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핵전쟁이론의 중핵이었던 ‘제한핵전쟁’론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공포의 핵균형을 이룬다 할지라도 또 다시 핵 경쟁이 가속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를 위한 핵무기 ― 즉 전시(展示)용 핵무기는 사용 불가능한 핵무기이며 그야말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이제 핵 경쟁은 “실제로 사용가능한 핵무기” 개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오늘날 핵무기 개발 경쟁이 적의 군사목표물을 파괴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규모도 소형화됨과 동시에,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국의 생존과 적국의 멸망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망 (MD) 개발이 핵심적인 목표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시에 같은 논리 아래 재래식 전쟁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된다. 공포의 균형 아래에서는 핵전쟁보다는 재래식 전쟁 혹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던 제3세계의 분쟁들과 같은 대리전쟁의 필요성이 더욱 확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정밀타격 능력, 신속 대응능력 같은 기동성들이 재래식 무기개발과정에 집중된다. 오늘날 전 세계를 모조리 파괴할 수 있을 만큼의 핵 군사력이 있음에도 재래식 무기 개발에 모든 군사강국들이 집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핵에 의한 핵의 억지 ― 군사력의 억지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이런 논리에 기반을 둔 핵 경쟁이 경쟁 당사국들 간의 군사주의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국 민중의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배제한다는 점이다. 핵개발을 시작한 이상 핵무기에 대한 대중의 통제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일촉즉발이라는 이유에서건, 굳이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건, 핵무기를 둘러싼 기술을 공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건 비밀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되고, 그만큼 통치자들은 전쟁에 대한 대중들의 의사보다는 군사주의적인 대응 논리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대중의 민주주의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대중(핵전쟁에서 적성국의 대중과 자국 및 동맹국의 대중을 구별하는 것은 완전히 무의미하다)을 상대로 하는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국가 엘리트들의 전쟁이 바로 핵전쟁이다. 전쟁에 대한 대중의 통제권이 완전히 상실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핵에 의한 핵의 억지’는 억지는커녕 현 상태의 유지도 불가능하게하며, 좀 더 정확히는 대중의 정치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후퇴이며, 절멸주의가 궁극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문명의 후퇴에 불과한 퇴행적인 논리일 뿐이다.




4. 북한 핵실험의 여파는 어디까지


지금 언론에서는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 가능성이 다방면으로 보도되고 있고, 곧 열릴 38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에서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핵확산이 그야말로 현실의 일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런 사태는 지난 7월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부터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 이후 곧바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국은 북한 미사일을 모형으로 하는 요격시험을 진행했다. MD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실체적 실험을 한 것이다. 미국이 지난 2002년 발표된 핵태세보고서에서 핵전력의 3지축을 과거 지상미사일, 비행기, 잠수함으로 정의되어 있던 것에서 운반수단, 미사일방어망, 개선된 핵무기제조기반으로 재정의했음을 상기하면 미사일방어국의 지난 실험은 동아시아에서의 핵확산 흐름에 대응하는 핵경쟁의 일환이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같은 맥락에서 보면 북핵 실험 이후 한국, 미국, 일본은 군사동맹 강화를 전제로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더욱 구체화되고, 미사일방어망을 확고히 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의미에서건 북한의 핵실험을 동아시아에서 핵확산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의 핵확산은 분명 미국의 핵독점과 자신의 군사패권을 강화하려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이 동아시아에서 핵확산을 저지하려는 노력 중 일환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명확하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에서 핵 경쟁이 어느 한쪽에 의해서든 쉽게 멈춰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확산대응정책’은 어떤 형태로든 더욱 강화될 것이고, 그 만큼 군사적 긴장감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더구나 이번 사태에도 미국은 북미관계의 ‘급진적인 개선’ 이라는 카드를 내밀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미국은 북미관계 개선으로 자신이 얻을 실익이 별로 없다고 보고 있고,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오로지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라는 차원에서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외교노선이 ‘무시(ignore)’와 ‘접촉(engagement)’ 정도의 폭에서만 진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남아공이 그랬고 한국도 그랬으며 가깝게는 이라크가 그러했듯 이제껏 핵비보유국이 핵개발을 포기한 역사는 정권교체 (혹은 그에 준하는 위협) 말고는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려 들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핵개발, 미사일 발사, 핵보유선언 그리고 핵실험이라는 일련의 군사주의적 대응으로 체제보장과 경제회복의 활로를 개척하겠다는 북한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이리되면 북한은 이제까지 그랬듯 더 강력한 군사주의적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북한이 현재의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선군정치’ 사상을 체계화하고, ‘강성대국론’을 제시한 마당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사실 핵보유국으로서 핵실험과 사용가능한 핵무기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은 어떻게든 사용가능한 핵무기의 실질적 존재를 부인할 것이며, 경제․해상봉쇄 형태에서부터 MD 개발에 이르기까지 핵무기 보유․생산․유지를 막거나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잠깐이나마 실익을 얻는다 해도 현재처럼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하는 한, 그리고 지금처럼 핵 대결을 고수하는 한 사용가능한 핵무기를 입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5. 평화를 향한 사회운동의 도전


(더 많은 민주주의, 노동자의 연합을 모색하는 방식이 아니라) 북한이 제국주의의 군사주의적인 행태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체제를 보존하고 이를 답습하려 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향한 길에서 북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난망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공조’라는 말은 더욱 애매해질 수밖에 없는데, ‘민족 공조’라는 말을 소극적으로 이해하면, 이는 남한의 대북정책 현행 유지, 민간교류 현행 유지이고 이는 사실 지금까지 반복된 불안한 상황 즉, 현 상황유지 및 UN을 통한 핵확산 방지를 지속하자는 길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북미관계개선, 남북한 국가연합의 실시/ 6․15 공동선언 이행과 같은 조금 더 적극적인(?) 형태의 ‘민족공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앞서 이야기 했듯 미국은 한반도에서 ‘남북통일’은 물론이거니와 ‘북미관계의 급격한 개선’과도 같은 어떤 적극적인 변화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고, 이에 철저히 종속된 남한 정부가 (사회변혁을 거치지도 않은 채) 이를 개척해 나갈 리는 아예 만무하다. 심지어는 북한조차 급박한 체제위기 상황에서는 일정한 범위의 실용주의적 해법 말고는 제시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결국 적극적인 양상을 모색한다 할지라도 (운동 주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실상 소극적인 양상 즉 ‘현행 유지’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민족 공조’라는 담론은 국가 간 체계의 불평등성이라는, 그로 인한 착취와 배제의 재생산이라는 현실을 제한적으로나마 환기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국가 간 위계가 어떻게 조정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우리가 직면하는 위협의 성격,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가 어떻게 급변하고 있는지를 보지 못하게 한다. 바로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를 전제하는 국가 간 공동지배 방식이 강화되고 있고, 핵보유국(특히 미국)의 핵독점 속에서 핵경쟁의 확대 심화라는, 절멸주의―핵무기주의 확산이라는 현실 말이다. 그리고 이 대열에 북한이 참여함으로써 핵무기주의의 새로운 순환을 열고 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운동이 국가주의적인 한계에서 현 상황에 대한 해법을 찾는다면 그것은 무망한 일이 될 것이다. 전혀 다른 길에서 운동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족공조’ 수준에 갇혀 있는 운동을 뛰어 넘어, 사회운동들의 새로운 연대 ― 전쟁을 가속하고 재생산하는 ‘포스트 냉전체제’에 맞서고자하는 적극적인 평화운동과의 연대, 아니 더 나아가 동아사아에서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려는 사회운동들의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한 운동의 소통과 경험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출현에 매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며 그 자체로 이미 새로운 사회운동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에서 국제주의의 새로운 가능성,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국제주의의 새로운 출구를 열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자리에서 동아시아의 사회운동들의 연대를 통해 전면적인 비핵지대화운동을 향한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핵 대결의 근원적 힘을 제공하고 있는 전쟁블럭(한․미․일 동맹)을 해체하기 위한 운동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 정책과 MD 추진에 반대하는 운동, (동아시아 핵확산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 명백한)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적 제재에 반대하는 운동, 그리고 북한의 핵무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이 운동을 출발하는데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운동과 평택미군기지 반대운동, PSI 참여에 반대하는 운동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가장 중요한 운동이다.


만일 이후 동아시아에서 완전한 비핵지대화가 실현된다면 그것은 평화를 향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도전과 그에 따른 더 많은 민주주의, 그리고 핵무장의 완전한 해체로 인한 것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평화운동의 출현”이 시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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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해서

그래, 오로지 갑갑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보 블로거의 성향이나 수준에서 보면 아주 낮은 수준의 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는 오프라인 인맥들이 제법 들어오고 그 중 '진보'와는 그닥 상관 없는 이들도 제법 있기 때문에 누구에겐 뻔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려 놓는 것이 될 것이고 누구에겐 다소 어리둥절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높은 수준은 어차피 내가 안된다) 처음에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 아는 이들에게 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그게 언제부턴가 족쇄가 되더군. 글 쓸 때마다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면서 어떤 것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도 아예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장단점이 있기에 그게 안좋다는 말은 아니다. 아버지 때문에 송탄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민노당 활동을 하고 있다. 당원들과 제법 친하게 지내고 있고 그 쯤 되면 내 블로그를 알려줄만한 상황인데도 난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왜냐고? 정치적인 성향이 나랑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민노당을 하면서 정치성향이 너무 다르다는 게 뭔 말이냐고? 이러니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내가 민노당원이면서도 민노당 이미지를 깍아먹는 짓을 하려니 좀 거시기 하지만 처음에 얘기 했잖아? 너무 갑갑해서 그런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민노당의 정파를 아주 거칠게 나누자면 NL과 PD로 나눌 수 있다.(자세히 나누면 꽤 많고 민노당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양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정책을 보면 사민주의정당에 가깝고 말이다. 우야뜬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건 아니니까...) 내 자신이 운동권도 아니었고 어느 정파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NL과는 한~참 다르다는 것이다. 아주 거칠게 사람들은 이렇게 구분하기도 한다 < NL은 모든게 '민족'으로 귀결되고, PD는 '계급'밖에 모른다.>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에 생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처럼 사람들의 머리속에 의심없이(또는 의심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박혀있다. (민족이란 개념이 허구란 것은 따로 다루자) 그래, 까짓거 민족이란게 있다고 치자. 그래서 뭐? 다른 민족보다도 우리민족은 일단 잘 살아야 된다고?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 2천년간 흩어져 있었고 2차대전 중 처참하게 대량학살 당했으나 다시 뭉쳐 다른 이들을 학살하는 유대민족인가? 그래도 강하기만 하면 좋은 건가? 일단 난 통일에 반대하진 않는다. 외세에 의한 분단이라는 것에도 100% 동의하고 분단에 의해 우리의 현대사가 뒤틀어졌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문제는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이다. 다시 말하면 이 문제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갈 수 밖에 없다. 7~80년대 북한을 제대로 보자는 세력들이 '진보'였다는 걸 인정한다. 내 조카는 "바보도 아니고 아무리 어렸다고 하지만 북한사람들한테 뿔이 달렸다는 걸 어케 믿었어?"라고 하지만 난 아주 어렸을 때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똘이장군을 보면서 그게 사실이라 믿었고 말이다. 그러니 "북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하는 것이 그 시대 진보였던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북쪽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막혀있는 시대가 아니다. 수구꼴통들이야 북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제 거기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북한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요'라고 하는 것만으론 진보적이라고 하기 민망하다. 하물며 진보라고 자처하면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북한의 핵은 어쩔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북한과 NL의 핵심 주장은 '반전 반핵'이었다. 한반도에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핵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핵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반도에서 핵이 사용된다면 그 여파는 한반도 전체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었고, 그건 사실이다. 북한의 원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주 진보적이고 옳은 주장이었다. 그러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하면서 얘기가 180도 바뀐다. '자위를 위한 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는 것. 미국의 압제에 맞서기 위한 핵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이것만 성공하면 미제국주의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할 얘기가 많으니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 한번에 얘기를 끝내려고 너무 무리하게 말만 많이 꺼냈는데 재미없더라도 아예 몇차례에 걸쳐서 써볼까? 한가지만 마무리하고 끝내자. NL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미국과 대항하는 나라들은 모두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님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는 말일까? 되고 안되고는 누가 판단할 건데? 아님 우린민족만 되고 남들은 다 안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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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보다가 떠오른 잡탕생각

 전에 5~6년 정도 TV를 거의 안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가끔  TV에서 하는 광고를 보게 되면 아주 재밌었다. 요즘은 그래도  TV를 가끔 보는 편인데 예전에 비해 내 성격이 모나게 된 건지, 광고가 점점 추접해 지는 건지 짜증나고 재수없는 광고가 늘어나는 것 같다.

 

부자되는 게 무슨 지고지선의 가치인 양 떠드는 광고들. 내가 보기엔 꼬맹이들이 "우리집에 3단 변신로봇 있다!"라고 자랑하는 유치한 수준을 어른들에게도 권하는 것 같다. 또는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기도 하고,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부추기기도 한다.

 

그중 요즘 거슬리는 광고는 징기스칸이 나오는 거다. 그것도 무슨 금융과 관련된 것 같은데 카피가 대략 "징기스칸, 그에게 열정이 없었다면 양치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인가 뭔가 하는 따위이다. 난 오히려  이 광고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징기스칸, 그에게 열정이 없었다면 그의 손에 그 많은 피를 뭍히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전에도 한 번 얘기 하려다 만 것인데 전쟁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침략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아주 어처구니 없게도 징기스칸을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광개토왕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하루이틀 된 게 아니지만 내 기억에 남은 최초의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 당시 일본이 한반도 침략한 것을 자신들의 교과서에 '진출'했다고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침략'이지 어케 '진출'이냐고 방방 떳다.

그런데 그 당시 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분명 교과서에서 우리 민족이 광개토 대왕때 드넓은 만주까지 '진출'했다고 배웠다. 광개토왕은 고스톱이라도 쳐서 그 너른 땅을 따먹은 것일까? 평화롭게?  무척 소심했던 나는 차마 국사선생님께 이 이상한 점을 물어보지 못했다.

 



우리가 쳐들어 간 것은 진출이지만 남이 우릴 쳐들어 온 것은 침략이다? 뭐 그런 말일까?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그것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아님 오래전에 일어난 일은 진출이지만 근래에 일어난 일은 침략이다? 그것도 이상하잖아. 그럼 몇백년 지나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사실이 없어지기라도 하나?  "니네 나중에는 진출이라고 써도 되지만 아직 얼마 안됐으니 침략이라고 써" 뭐 이런 말을 하는 건가?

 

광개토왕을 현재의 관점으로 비판할 생각은 없다. 우리에게 '인권'이란 말 자체가 등장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상황에서 그 옛날 사람에게 현재의 인권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지만 그를 '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 '현재'의 사람들이다. 난 광개토왕에게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현재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다. 세종을 '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엔  불만 없다. 세종이 완벽한 인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글을 만든 것만으로도 그 정도 칭호는 아깝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광개토왕을 대왕이라고 부르는 우리는 '제국주의'라도 동경하고 있는 건가?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무식한 건지 사기를 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평화를 사랑한다면  광개토'대'왕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과연 그럴까?

 

그래, 광개토왕은 '제식구 감싸기'차원에서 그나마 이해한다치고 징기스칸은 어떤가? 우리나라처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징기스칸을 영웅시 하는 것은 거의 사이코 수준이다. 몽고는 우리를 침략(이 것도 진출?)했고 우리의 왕과 백성들은 치욕을 당했다. 죄없는 많은 여성들이 끌려가 성노리개가 됐고 고향으로 돌아와 환향녀(고향에 돌아온 여자) 소리를 들었는데 이건 순결을 잃은 더러운 여자라는 경멸의 뜻으로 쓰여 아직도 화냥년이란 말로 남아있다. 권력자가 못나서 백성이 이런 치욕을 겪었는데 피해자인 여성을 욕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인가? (요즘도 보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탓하기'는 만연해 있다)

 

비록 우리를 능욕했지만 세계사적인 영웅으로 그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세계화의식이라도 깔려있나? 아님 몽고반점이 있는 우리가 몽고도 우리민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몽고반점 말이 나온 김에 우리민족이 순수한 혈통을 유지해 왔다는 사기도 그만쳤으면 좋겠다. (물론 난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사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이 얘기까지 하면 넘 길고)

 

부시가 지금처럼 이라크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를 완전 장악했고 그 여세를 몰아 이란, 북한 등등을 침략해서 자기 손아귀에 넣었다고 치자. 그 기세에 눌려 현재의 남미 좌파정부들도 백기들고 다 친미로 돌아선다면, 당신들은 역사가 부시를 어떻게 기록하길 바라는가?  부시가 "전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위대한 영웅"으로 기록되길 바라나? 미국 역사교과서에 그렇게 기록된다면 모를까 우리나라나 이라크의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록된다면 싸이코 드라마 아니냔 말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그러고 있고 말이다.

 

차라리 '나는 힘을 숭배해'라고 고백이라도 하던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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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관한 나의 오버

사람들이 가끔 내 혈액형을 물어올 때가 있다.
별로 친하지 않거나 편한 사이가 아니면
"B형인데요, 저 혈액형 얘기 별로 재미 없거든요."라고 말한다.
친하고 편한 사람이 물어보면?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때에 따라 짜증도 낸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성격이 모나고 못된 놈이기 때문이다. (B형의 특징 중 '대체로 못됐다'란 게 있는지 모르겠다.)

 

난 다른 사람이 자기들끼리 혈액형 얘기를 재미있게 하는 것까지 말릴 생각은 없다. 현실적으로 말릴 수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나를 그 얘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사양한다.
좀 이상한 예를 들자면 난 남들이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개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하나의 음식문화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먹지는 않거니와 그게 무슨 모순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보신탕을 먹자고 하면 정중히 거절할 것이고 거기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남자가 음식을 가려선 안된다"라거나 "일단 먹어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또는 "보신탕도 우리 전통의 음식문화로 받아들여야지 서양의 관점에서...."라는 식의 개똥철학을 시작한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누가 뭐래? 많이들 드시라고!

 

어제도 혈액형 질문을 받았고 그래서 이렇게 주절거린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 확실한데, 내가 꼴통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좀 꺼려지기도 하지만 이미 이상한 짓이야 한 거고 이참에 정리를 좀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 맞다. 사실 그냥 B형임을 말해주면 아주 간단하다. 무슨 양심의 자유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근데 난 그게 안된다. 아니,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재미로 하는 얘기에 나처럼 정색하는 것도 병인지 모르겠다.

 

어제 '무당' 얘기가 나왔는데, 난 무당이나 점, 역학 등에 반감 같은 것이 없다. 사기꾼이야 어떤 분야에도 있는 것이고, 이런 것들에 많은 순기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예전의 무당은 그 동네의 카운셀러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처럼 생판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겠나. 동네사정 빤히 아는 무당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찾아오는 이유 또한 알고 있었을 게다. 삼순이와 삼식이가 사랑에 빠졌는데 양쪽 부모의 극심한 반대가 있다면 점괘 등의 힘을 빌어 본인들이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도 있고, 천생연분임을 내세워 부모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게다.  징하게 일이 안풀리는 순돌이네 집에 나름의 희망적인 말을 해줄 수도 있고 말이다. 다들 사연이 있어서 찾아오는 것이니 그에 맞는 (제대로 된 해결책인지는 별도로 하고) 나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무당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아님 그냥 그들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위로해줄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혈액형 이야기에 그런 기능이 있나? 혈액형별 '분석'은 있되 '해결책'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아무리 무능한 역술인도 '삼재가 꼈으니 조심해라' 정도의 방책이라도 일러준다. 부적이라도 팔아먹던가 말이다. 그런데 혈액형 얘기에는 "무슨 혈액형은 이런 성향"이라며 딱지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좋은 얘기들이 안 섞여 있는 것은 아니나 대개는 부정적인 말들만 머리속에 남는다. 워낙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A형의 대표적인 성향은 '소심함'이라고 한다. 나같은 B형은 '특이함'이라고 예의상 말했지만 '괴팍함'쪽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 검색해보니 AB형은 '천재아니면 바보'라는 말이 있나보다. 그나마 O형은 좋은 말들이 제법 있는 것도 같고.


고딩 조카녀석은 전에 이런 질문을 했다. "애들이 O형은 깨끗하고 AB형은 피가 더럽다는데 진짜에요?" (그 외에도 혈액형에 관한 부정적이고 말도 안되는 말을 많이 들려줬다.)
아마도 사람들의 얄팍한 과학상식이 더해져 말도 안되는 분석이 덧붙여진 게 아닐까 싶다. A나 B 누구와 만나던 자신의 혈액형을 잃어버리는 O형에서 '순수'의 이미지를 느끼고, AB형은 A와B가 섞였다고 '잡탕'의 이미지를 얻은 게 아닐까? 이건 거의 고양이의 유연함을 보고 '고양이를 달여먹으면 신경통에 좋다'라고 믿던 미개한 수준이다. 콩나물 먹으면 키가 크고 말이다. 그럼 생선 많이 먹으면 수영 잘하냐?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의 성향을 보고 혈액형을 100% 맞추는 사람이 있다는 걸 봐서는 혈액형 분석에 나름의 신빙성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통계적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액형에 관한 얘기 중에 유쾌한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좋은 얘기보다는 험담쪽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 아닐까?

 

무엇보다도 난 그런 종류의 얘기가 재미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내가 재미 없더라도 참고 동참을 해야겠지만 짧은 인생 뭐 그런 것까지 참아가며 사나.
세상의 모든 인간을 겨우 4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것도 달갑지 않다.(이 얘길 했더니 '그런 것 갖고 기분 나빠 하다니 참 쫀쫀하네요'라고 말한 이도 있다.)  A형이나 B형이 다른 혈액형보다 비율이 많지만 대충 서로 엇비슷하다 계산하면 대한민국에는 대략 천만명 정도가 나랑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게 통계적으로 과연 대단한 의미가 있나? 글구 B형은 특이하다는데 4명당 1명꼴로 있는 걸 '특이'하다고 할 수 있나? AB형이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데 그렇게 따지면 전세계 인구의 10%쯤은 천재고 10%쯤은 바보라는 것인데 이게 대체 말이 되나?

 

내가 괴팍한 거야 나 스스로도 인정하니까 상관없는데, 내가 아는 멀쩡하고 괜찮은 많은 B형들이 혈액형 때문에 혈액형 추종자(?)들에게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혈액형 얘기는 분명 사람들의 편견을 확대하는데 일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편견들처럼 욕먹지는 않는데, 아마도 다른 것들과 달리 그 얘기를 하는 사람조차 그 중 한가지 혈액형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마치 남의 뒷담화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쑥덕 거리는 느낌을 들게 하여 일종의 마음속의 면죄부를 받고 있는 느낌 때문은 아닐까?

 

어차피 내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내 말에 동의해서 생각이 바뀌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어떤 패턴의 생각이 정립되고나면 새롭거나 논리적인 얘기를 들어도 이미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에 생각을 맞추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혈액형 얘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난 한 개도 재미 없지만 그들에겐 재밌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난 좀 제발 빼주시라. 제~~~~발!
이 글을 읽고 "B형은 무위같은 인간"이라고 누군가에게 또 다른 선입견을 줄 것 같다. 에고고


 

 

* 예전에 누가 재미있다고 혈액형에 관한 긴 내용을 내게 메일로 보냈다. 그에 대한 나의 답장이다. 난 정말 못된 놈이다.

 

 



네가 보냈으니 읽어보긴 했다만, 솔직히 말하면 '유치찬란'한 혈액형 분석으로 보인다.
혈액형에 따라 어느정도의 성격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난 사람의 성격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혈액형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네가 보내준 혈액형 분석의 가장 큰 맹점은 "통계의 근거"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아주 편하게 "통계에 의하면"이란 한마디로 때운다.
누가 무슨 필요에 의해서 그런 통계조사를 했을까?
물론 혈액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그걸 통계조사한 사람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정말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수감자들의 개인정보를 빼내서 통계조사를 하고 (그것도 토막살인을 했는지, 대낮에 칼부림을 했는지까지 세세하게 분류를 하고),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의 혈액형(그것도 혼자 중얼거리는 타입인지, 우울증 타입인지까지 분류를 하고, 어떤 혈액형은 어떻게하면 치료가 잘되는지)도 조사하고, 자살하는 사람의 혈액형까지...
누가 했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글은 쓴 사람은 그 통계조사를 어디서 구해서 봤는지도 궁금하고. 그냥 누가 한 소리를 듣고 사실인양 말한 것은 아닐까?
너도 분명 그 글을 읽은 다음부터는 누구에게 말할 때 "통계에 의하면 이렇다고 하더라"라며 말할 거 아니니? 그게 여러 다리 거치다보면 마치 신빙성 있는 통계조사가 실제 있었던 것처럼 될 거고 말이다.
그리고 집시의 90%가 B형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 확률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B형에는 BB도 있지만 BO도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B형만 모여 살았어도(애초부터 B형만 모여 살았을리도 없거니와) 확률적으로 B형만 90%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말야. "집시들 중에는 다른 혈액형에 비해 B형이 월등히 많다" 정도라면 오히려 신빙성이 있어 보일 것 같은데.

내가 B형인데, "잔머리를 잘굴리고 영악하다"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알콜중독 증세는 AB형의 특징이잖아. 내 조카도 B형인데 O형의 특징인'자신이 자신있어하는 어떤것에 대해선 승부욕이 남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에 지거나, 무언가를 빼앗기거나 하면 여지없이 끝장을 본다.'라는 구절은 딱 재구를 보고 쓴 것처럼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말하자면 '통계'라는 것이 굉장히 과학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위선적이고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실제로 인간들의 편견을 정당화 하기 위해 '과학'이나 '통계'가 동원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은 수도 없이 많이 나왔고,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과학적인 조사나 통계도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적인 편견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흔히 들먹이는 통계중에 하나가 '범죄자 중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많다'라는 것이고.

'토막살인을 한 사람이 O형이다'와 'O형은 토막살인을 한다'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걸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 넌 앞으로 남자친구 사귈 때 그 사람이 아무리 괜찮아 보여도 O형이면 안사귈거니? 혹여나 네가 마음이 변해서 헤어지자고 하면 그 O형이 너를 토막살인이라도 할지 모르니까?
게다가 '잔머리 굴리고, 영악하고, 독선적이고, 세상의 진리를 다 아는양' 행동할 수 있는 나같은 B형을 왜 만나니? 그 혈액형 분석이 맞다고 믿는다면 일단 나하고부터 관계를 끊기 바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냥 재미있자고 쓴 글은 그냥 재미있게 읽고 말면 되는 건데, 너처럼 심각하게 읽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 큰 일이다. 그런 말들이 확산되면서 점점 사람들의 편견을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고 말이다.

같은 편견이라도 좀 긍정적인 것을 갖고 말하면 안될까?
범죄자나 정신병환자, 자살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사실 네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몇%나 되니?) 반대로 성공한 사람들 얘기를 하면 안될까?

자신을 희생하고 남 돕는 일에 헌신하고 사는 사람들 중에는 '통계적으로' 무슨 혈액형이 많다든지, 특별한 수완으로 사업에 성공한 자수성가 타입에는 무슨 혈액형이 많고, 어떤 혈액형은 집중력이 남달라서 스포츠 중에서도 양궁이나 사격에 능하고, 뭐 이런 식으로 말이야.
물론 인간들은 대개 좋은 얘기보다 나쁜 얘기를 더 재미있어하기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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