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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해서

그래, 오로지 갑갑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보 블로거의 성향이나 수준에서 보면 아주 낮은 수준의 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는 오프라인 인맥들이 제법 들어오고 그 중 '진보'와는 그닥 상관 없는 이들도 제법 있기 때문에 누구에겐 뻔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려 놓는 것이 될 것이고 누구에겐 다소 어리둥절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높은 수준은 어차피 내가 안된다) 처음에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 아는 이들에게 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그게 언제부턴가 족쇄가 되더군. 글 쓸 때마다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면서 어떤 것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도 아예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장단점이 있기에 그게 안좋다는 말은 아니다. 아버지 때문에 송탄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민노당 활동을 하고 있다. 당원들과 제법 친하게 지내고 있고 그 쯤 되면 내 블로그를 알려줄만한 상황인데도 난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왜냐고? 정치적인 성향이 나랑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민노당을 하면서 정치성향이 너무 다르다는 게 뭔 말이냐고? 이러니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내가 민노당원이면서도 민노당 이미지를 깍아먹는 짓을 하려니 좀 거시기 하지만 처음에 얘기 했잖아? 너무 갑갑해서 그런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민노당의 정파를 아주 거칠게 나누자면 NL과 PD로 나눌 수 있다.(자세히 나누면 꽤 많고 민노당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양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정책을 보면 사민주의정당에 가깝고 말이다. 우야뜬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건 아니니까...) 내 자신이 운동권도 아니었고 어느 정파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NL과는 한~참 다르다는 것이다. 아주 거칠게 사람들은 이렇게 구분하기도 한다 < NL은 모든게 '민족'으로 귀결되고, PD는 '계급'밖에 모른다.>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에 생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처럼 사람들의 머리속에 의심없이(또는 의심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박혀있다. (민족이란 개념이 허구란 것은 따로 다루자) 그래, 까짓거 민족이란게 있다고 치자. 그래서 뭐? 다른 민족보다도 우리민족은 일단 잘 살아야 된다고?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 2천년간 흩어져 있었고 2차대전 중 처참하게 대량학살 당했으나 다시 뭉쳐 다른 이들을 학살하는 유대민족인가? 그래도 강하기만 하면 좋은 건가? 일단 난 통일에 반대하진 않는다. 외세에 의한 분단이라는 것에도 100% 동의하고 분단에 의해 우리의 현대사가 뒤틀어졌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문제는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이다. 다시 말하면 이 문제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갈 수 밖에 없다. 7~80년대 북한을 제대로 보자는 세력들이 '진보'였다는 걸 인정한다. 내 조카는 "바보도 아니고 아무리 어렸다고 하지만 북한사람들한테 뿔이 달렸다는 걸 어케 믿었어?"라고 하지만 난 아주 어렸을 때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똘이장군을 보면서 그게 사실이라 믿었고 말이다. 그러니 "북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하는 것이 그 시대 진보였던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북쪽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막혀있는 시대가 아니다. 수구꼴통들이야 북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제 거기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북한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요'라고 하는 것만으론 진보적이라고 하기 민망하다. 하물며 진보라고 자처하면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북한의 핵은 어쩔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북한과 NL의 핵심 주장은 '반전 반핵'이었다. 한반도에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핵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핵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반도에서 핵이 사용된다면 그 여파는 한반도 전체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었고, 그건 사실이다. 북한의 원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주 진보적이고 옳은 주장이었다. 그러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하면서 얘기가 180도 바뀐다. '자위를 위한 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는 것. 미국의 압제에 맞서기 위한 핵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이것만 성공하면 미제국주의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할 얘기가 많으니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 한번에 얘기를 끝내려고 너무 무리하게 말만 많이 꺼냈는데 재미없더라도 아예 몇차례에 걸쳐서 써볼까? 한가지만 마무리하고 끝내자. NL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미국과 대항하는 나라들은 모두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님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는 말일까? 되고 안되고는 누가 판단할 건데? 아님 우린민족만 되고 남들은 다 안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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