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거절의 미학

2007/06/04 11:06

"거절"의 미학 | 만감: 일기장  2007/05/30 22:34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6491   

 

저는 "한국이 이렇다, 한국인이 저렇다"는 식의 일반화 방식을 매우 싫어합니다. 개인마다, 세대마다, 계층마다 다 제각기 다르기에 어떻게 "국적"/"민족"이라는 기준으로 이렇게도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은 저의 반대 논리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일반화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문화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예컨대 "거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야 없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거절"이라는 것은 제가 아는 다른 문화들 (예컨대 러시아문화나 북구 문화)에 비해서 한국에서 조금 더 하기 어려운 행위인 듯합니다. 초면이면 그나마 비교적으로 쉽지만, 구면일 때에는 아주 불가피한 사정을 자세히 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인식시킬 수 있어도 그래도 왠지 미안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수직성이 있는 관계라면 - 특히 사제지간은 좀 그렇습니다 - 아주 우회적인 형태의 거절이라 해도 때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더랍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하면, "안그런 데가 어디 있느냐"는 식의 반응이 나올 것을 충분히 예상합니다. 그런데 장담컨대 안그런 데가 있긴 있습니다. 러시아만 해도 비교적으로 권위주의가 강한 분위기에다가 특히 학계의 조직에서 위계성이 철저한데도, 저만 해도 한 번 한국에서 온 한 목사에게 좀 도와주라는 제 지도 교수의 요청을 - 물론 꽤나 우회적으로 - 거절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절했을 때에는 느낌이 좀 좋지 않았지만 결국 다행히도 스승과의 관계는 그대로 잘 유지됐습니다. 노르웨이에서 같으면 제게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을 한 제 제자도 꽤 있었습니다. 한 석사과정의 제자에게 학위 논문을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제출할 것을, 기존의 한 전례에 입각해 요청을 했을 때에는, "그럴 수 없다, 이와 같은 요청이 반복될 경우 상급기관에 법적 해결을 요청하겠다"는 답을 받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 답을 받아 '법적 해결'과 같은 문구를 접했을 때에, 제 기분은 약간 묘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런 방식은 사람 살기 좋은 방식이란 결론이 나서,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국 같으면 특히 서비스부문의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어떤 이유로든 거절을 할 때에 비상하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느라고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는데, 노르웨이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약 6년 전에, 경험이 좀 없었을 때에 신분증 없이 은행에 가서 돈을 빼려 했는데, "신분증 제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은행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더랍니다. 그 때에 기분이 비상히 안좋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직원이 과연 미안할 이유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규칙을 모르는 게 고객의 잘못이 아닙니까?

 

하여간 노르웨이가 "거절이 좀 쉬운" 풍토라면 한국은 거절이란 외교적으로 잘 하지 않으면 안될, 외교적으로 잘 해도 안통할 수 있는 중대한 사항이더랍니다. "관계 문화", 집단에서 낙오되거나 관계망에서 차질이 생기면 생존이 어려워지는 문화, 거기에다가 사회나 국가가 개인의 생존을 공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적 "정글" 현실이다 보니 대인 관계가 "외교화"될 수밖에 없지요. 노르웨이에서 자기 스승(? - 사실, 그런 개념도 아닌데 말씀입니다)에게 "무리하다 싶은 요구를 하면 법적 해결하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 석사과정생 뒤에 그녀의 미래를 책임질 사회와 국가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어려운 관계"일 때에 거절하면 "내 미래가 불안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6-25 이후에 "가족끼리 튼튼히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생존 도모'의 가족주의적 형태도 공고화된 부분이 있고 하니까 "거절"이나 "거부"가 좀 이상하게 들리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같으면 매우 독선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전통시대 지배계층, 사대부의 문화는 "대의명분"에 관련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필요할 때에 "거절"이 잘 통하는 문화이었지요 (그것도 미화만 할 수 없지만). 그런데 이제는 우리 이상은 "둥글게 둥글게" 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거절"로 거래처들을 화나게 만드는 "무례함"을 잘 보여주지 않는 "민간인 외교관"인 셈입니다. 신자유주의로 가면 갈 수록 이와 같은 풍토가 심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사이 좋게, 원만하게"... 이러다가 무슨 재미로 살다 가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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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아침에

2007/06/04 08:44

6월 아침. 눈뜨기 전에 문득

 

참 많은 잡념과 미련과 미움과 기대감이 나를 잡아 흔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참회문을 외우고 삼배를 했지요

 

눈물은 흘리지 않았으며, 참 많은 복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근 길. 걸어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분명히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생존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 모든 생물체가 존재하므로  조심조심 잘 살펴서 살아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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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김승연 회장과 고려대 당국

2007/05/09 13:28
 

김승연 회장과 고려대 당국 | 만감: 일기장  2007/05/05 14:21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5849   

최근에 세상이 온통 한화재벌 총수의 "의리의 사나이"로서의 행각으로 떠들썩하더랍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뉴스를 듣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국가가 지금처럼 세습적인 "왕조 경영"을 허용해주고, 노조의 경영 참여 등 독단적인 "제왕 경영"의 폐단을 좀 줄일 수 있는 "직장 민주주의" 제도 발전에 무관심만 보이고, 재벌 총수가 법을 어겨도 "국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답시고 법에 정한 벌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결국 재벌 회장이 괴거의 제왕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뭐가 놀라운 일입니까?


천한 백성이 감히 왕태자의 옥체를 상하게 했으니 마마께서 직접 나서서 곤장을 친히 치신 셈인데, 21세기 벽두 서울의 한복판에 조성왕조의 가장 퇴폐적인 측면들을 재현시킨 것은 결국 재벌들의 행정 대행 회사로 전락하고 만 국가입니다. 경찰에 신고만 하면 문제의 주점의 직원들에게 경찰이 모범 케이스로 본때를 보여줄 줄을 잘 알았던 김 회장이 이렇게 친히 매를 드시고 천한 머슴놈에게 사형을 가하는 길을 택한 배경에, 국가가 자신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과연 오산뿐이었을까요? 사실, 언론에 특별히 공개되어 공분을 일으킬 일만 없다면 재벌 회장이 홧김에 손을 좀 쓰다가 나중에 합의금 얼마 주어서 일을 무마시키는 것은 일상일 뿐이지요. 어떤 재벌 같으면, 노조를 만들겠다는 노동자를 납치하다싶이 차에 태워 며칠간 끌고 다니면서 "생매장시키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노동운동가들이 있는데, 이들의 주장에 상당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평소에 그 재벌이 어떤 방법으로 노조 결성을 막고 있는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민주공화국에서 산다는 환상부터 버리시기를.


그런데, 이 번의 김 회장의 "싸나이다운" 행동, 야산에서의 "보복 활극"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들었습니다. "눈에 눈, 이에 이"식으로 하다가는 김 회장이 놀랍게도 (!) 붙잡혔는데, 한 때에 이건희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몇 명 학생들을 "찜하여" 나중에 "교수 억류 사건"으로 그들을 제재할 기회가 오자마자 "대학가의 사형"이라고 할 "출교"로 그들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급진적인 학생들에게 "보복"을 가했다 싶은 고려대학교는 과연 법의 제재를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물론 고려대학교 당국의 조치 내용 그 자체만 본다면 "보복"이라는 생각이 안들 수도 있습니다. "교수 감금"이라는 충분한 빌미를 불행하게도 학생들이 스스로 제공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주로 이건희 반대 시위로 "찍혔던" 학생들이 결국 "사형수"가 된 점이라든가 시위를 주도했다는 특정 "외부 단체"가 그 뒤에 학교에서 "기피의 대상"이 되어 당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온 점이라든가 등을  종합해보면 이 번의 "출교"도 일종의 "보복 행위"이었다는 생각이 들지요.


무서운 것은, 학교 당국이 "하극상", "패륜" 등 봉건적이다 싶은 개념들을 동원하여 일부 "급진 분자"들을 최강력으로 징계했을 때에, 사회가 이를 당연지사처럼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다수의 교수들이나 한총련과 같은 (제가 보기에는 제 역할을 전혀 제대로 못하고 있는) 학생 운동 단체들이 단순히 함구하고 있거나 한 발짝 앞서서 "스승에게 감히..."라고 "패륜아"들을 비난했고, 다수의 학우들도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취급해온 듯하고, 사회가 전체적으로는 한 때에 약간의 관심을 보였다가 이제는 다 잊은 듯하고... "감히 윗분에게 무례하게 한 어린 것", 감히 힘센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냉혹한 사회이다 보니 각종의 "김 회장"들이 이렇게 용감하게 (?)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 모두가 힘과 사회적 지위, 나이 등 위계질서적 관념들의 노예처럼 일상적으로 행동한다면 "보스"들에게 쇠파이프를 들 유혹이 늘 강할 것입니다. 한 대 패도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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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택] 황사 환경문제 불교철학

2007/04/12 14:50
 

- 자연의 무서운 복수-환경오염 문제


황사주의보가 발령되었던 날, 하늘은 평소보다 더 낮게 가라앉은 듯 보였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음껏 크게 숨 한 번 들이마실 수도 없던 공기. 인간 생존의 필수적인 조건이자,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공기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무분별한 산림개발을 저지하거나, 중국을 상대로 국가적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무분별한 개발을 일삼았으며 그 결과 심각한 환경문제에 부닥치고 있다. 황사문제는 중국에라도 그 책임을 돌릴 수 있다지만, 그 외 우리가 자초한 환경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자연은 마치, 복수라도 하듯 시시각각 인간에게 그 악영향을 되돌려주고 있는데 말이다.


- 환경운동의 패러다임, 불교


불교를 환경운동의 패러다임으로써 주목하는 사람들은 생태계 파괴의 원인을 인간중심주의, 인간의 절제되지 못한 욕망이라 보고 그 대안을 불교적인 사유에서 찾는다. 불교의 자연관은 서구의 이성중심적 사고에서 바라 본 자연관과 확고한 차이를 보인다.


초기 불교의 자연관‘불살생(不殺生, ahimsa)'의 계율.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거나 해치는 것은 불건전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나쁜 업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사람과 동물 뿐 아니라 식물, 종자, 심지어 물과 흙까지도 정식(正識)이 있다고 간주했고 비구와 비구니들은 식물과 종자를 해치는 것조차도 명확히 금지했다.


대승불교의 자연관대승불교의 입장에 따르면 각각의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떤 한 존재가 무엇을 하건 간에 그것은 다른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생태 이해는 연기와 자비의 관점 위에서 상생의 생태학을 지향한다.


- 환경운동은 참회와 반성을 통한 전향의 의지로!


환경위기는 자원을 무한하다고 단정하고 정복과 지배를 통해, 바로 앞날의 풍요만을 좇기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불교적 용어로 말하자면, 인간은 끊임없이 업보를 쌓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업보는 오늘날 고스란히 되돌아와 환경오염과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운동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토대로 한 전향의 의지를 담는 것이어야 한다.


환경운동은 다른 운동과는 달리 저항하고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심하고 살피는 운동이다. 또한 수행을 통해 자연의 근본을 통찰하며 생활양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는 환경운동의 상당부분에 걸쳐 도움을 줄 수 있다.


수많은 생태학자들이 동양의 깊이 있는 사상과 개인의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큰 비전과 가능성을 걸고 있다. 황사 심한 도심 속에서 무조건 중국 탓을 한다고 황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부터 환경문제를 해결할 작은 실천들을 해보자. ‘불살생의 계율’, ‘상생의 생태학’과 같은 불교철학의 자연관을 자주 상기하면서.


-조성택의 <불교철학입문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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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기독교는 참회하지 않나



군목제 만든 이승만을 ‘한국의 모세’라 칭하고…베트남전쟁 때는 기독교인만의 부대를 만든 역사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한겨레21 : 2007년03월22일 제652호)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나에게 다른 종교에서 찾기 어려운 기독교의 매력은 기독교적 평화주의다.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도 원칙상 살생을 금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개교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병역거부, 폭력거부의 전통을 꾸준히 이어온 기독교 평화주의자들만큼 권력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 강한 종교인들은 없다. 물론 기독교의 주류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된 313년 이후로는 초기 교회 시절과 달리 병역거부를 더 이상 ‘기독교인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지 않았고 국가적 폭력에 부역했다. 하지만 그 주류로부터 온갖 박해를 받아온 소수 교단과 개인들은 중세부터 지금까지 예수의 평화 정신을 지켜왔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한 톨스토이의 다음과 같은 말은 평화주의적 기독교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박애의 정신으로 죽여라


“내면의 하나님의 법만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내면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외부의 어떤 법체계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의 의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국가 존재의 전제 조건인 국가에 대한 충성의 서약을 한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는 배교에 해당하는 행위다. …폭력을 거부하는 기독교인만이 결국 이 세계 전체를 외부 권력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1893)

물론 자본과 국가 권력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내면의 하나님의 법’만을 충실히 따를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기독교의 평화주의적 내용을 인식하는 사람 역시 소수다. 그럼에도 복음주의 교회들과 장로교회, 감리교회, 루터교회 등 미국의 주류 교단의 전쟁관과 평화관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회중교회 계통에 속하는 오벌린대학의 학장 에드워드 도스워스는 1917년에 미국이 제1차 대전에 뛰어들어 징병령이 내려졌을 때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명성’을 얻었다.

“기독교적 군인은 기독교 박애정신으로 적병에 부상을 입히고 살해한다. 그 마음속으로 적병을 저주하지 않으면서 살해만 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적 전쟁 방식이다.” 당시 미국 주류 사회의 전쟁 히스테리 속에서 직장을 잃지 않으려 전쟁 부역을 해야만 했던 그의 처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적병 살해’를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아닌가? “박애의 정신으로 죽여라”는 이야기는 심한 쪽에 속하지만 “우리는 조국을 위해 싸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운다” 정도는 제1,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주류 교단의 통일된 입장이었다. 그 범죄성이 명백한 베트남 전쟁 때에 이르러서야, 감리교회와 같은 일부 주류 교단이 전쟁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신도들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를 인정하는 ‘발전’을 이루게 된다. 현재는 우파 복음주의 교회를 제외한 미국의 다수 교회들이 이라크 침략의 지속을 반대하지만 원칙상 ‘의로운 전쟁’의 가능성은 아직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주류 기독교는 이처럼 전쟁 때에 국가의 종교적 보조원의 역할을 조직적으로 했지만 적어도 소수 성직자들은 전쟁 반대나 군목으로서 참전 이후의 참회 등 전쟁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싹이 약간이나마 틔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 교회사에서는, 주류 교회의 문 밖에 내몰렸던 함석헌 선생과 같은 특수한 개인을 제외하고는, 국가적 폭력과의 관계에 대해 반성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개신교가 처음 전해진 구한말에는 선교하는 쪽과 새로운 종교를 접하는 쪽 모두 자기 나름의 국가적 의식을 바탕으로 행동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대결에서 일본을 지원했던 미국이나 영국 등 본국 정부의 입장을 따랐던 선교사들은 1901년부터 일본의 식민지화 계획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해 합방 이후에 총독부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한편, 수많은 조선 개화주의자들이 개신교에 관심을 가진 배경에는 ‘최강의 문명국’인 구미 열강에 대한 흠모가 깔려 있었다. 궁극적인 관심이 ‘문명의 힘’에 있었던 만큼 기독교적 지식인들이 주도했던 <독립신문>은 1898년에 ‘덜 개화된’ 스페인에 대한 ‘개화 종주국’인 미국의 승리에 갈채를 보내는 등 ‘문명인’들의 무력 사용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국가보다 ‘반공 성전’에 더 열을 올려


일제 말기에 식민지 모국의 침략전쟁에 협력했던 다수 성직자들의 행위가 당국의 강요로 인한 타율적인 행동이었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해방과 미군정으로 한국 기독교인과 국가의 관계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목사 이상의 종교적인 열정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던 감리교인 이승만의 기독교적 기도로 1948년 8월18일 수립이 선포된 대한민국은, 기독교인들에게 ‘전 민족 기독화’의 꿈을 키우는 ‘우리의 국가’였다.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기대어 그 세를 급격히 넓힌 교회는 1952년의 선거에 이승만을 “한국의 모세”라고 부르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면서 그 이유로 ‘정치의 기독화’(기독교 의례의 국가적 수용) 이외에 군목 제도의 설립을 들었다. 즉, 동족상잔을 치르고 있던 한국군에 목사들이 파견되어 ‘공산 악마와의 성전’을 격려해주었던 것은, 교회로서는 ‘문제’라기보다는 ‘성취’였다. 이 제도의 신설을 이승만에게 요청했던 한경직 목사는, 전쟁 때에 “군대의 정신 무장이 기독교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해 ‘전군의 기독화’를 촉구하고, 1956년에 성경을 “애국애족의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주류 교회들이 국가에 전시 협력을 했을 때 국방부 산하의 ‘종교 관련 부서’로 전락했다고 평화주의자들이 비판했지만, 어쩌면 국가보다 ‘반공 성전’에 더 열을 올렸던 한국 교회들의 당시 언행은 국가를 “공산 악마 박멸”의 도구로 여긴 듯한 감마저 든다. 그러한 토양에서는 국가 폭력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원론적으로 불가능했다.

교계의 총아였던 이승만이 “한국군을 3사단 정도 보내고 싶다”고 했던 베트남전쟁을, 한국 교회는 6·25를 그대로 이은 ‘멸공 성전’이라고 인식해 국군 베트남 파병에 앞장섰다. 1966년 8월, 백마부대의 베트남 파병 환송식이 기독교 기도로 진행됐고, 그 부대장까지도 성경을 인용해가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하나님의 십자군”을 보호하겠다는 자신의 신앙적 전쟁관을 밝혔다. 베트남 전선에 수많은 군목들이 간 것은 물론, 백마부대 안에서는 아예 ‘임마누엘부대’라는 기독교인만의 중대가 편성되어 교계에서 ‘신앙의 십자군’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거기에다 백낙준 등 한국 기독교의 원로들이 나서서 국제 교계의 반전 운동을 “공산 침략을 당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모르는 소리”라고 적극적으로 비난했다. 당시에 베트남에서 미국 침략에의 부역을 글과 말, 기도로 옹호한 수많은 기독교 지식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중에 공개적으로 참회한 적이 있었던가?


제국의 ‘힘’보다 제국에 희생된 ‘사랑’을…


국가를 부단히 상대해야 하는 현대의 대중적인 주류 교회가, 국가 권력에 의해 법살을 당한 예수나 국가 권력과 불협화음을 냈던 톨스토이의 평화 정신을 그대로 살릴 수 없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국가적 폭력을 불가피하게 요구하는 계급사회에 교회가 적응한 이상 그 교회에 예수 정신의 완전한 구현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개신교의 주류 교단이 미국의 주류 교단처럼 전쟁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적어도 병역거부를 “개인이 자유 의사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양심적 선택”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교회가 개과천선해 참회할 줄 아는 종교집단답게 되려면, 이미 역사의 비극으로 인정된 6·25 동족상잔 때나 침략전쟁으로 정리된 베트남전쟁 때의 한국 기독교의 호전성에 대한 참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가 찬양했던 전쟁들의 와중에서 죽은 이들을 살릴 수야 없지만, 적어도 당시의 행동이 예수의 정신을 배반했다는 것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다음에 주류 기독교 집단이 국가에 무비판적으로 부화뇌동할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과연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대형 교회의 성직자들에게는 제국의 ‘힘’보다 제국에 희생됐던 예수의 ‘사랑’을 우선시할 용의가 있을까?


참고 문헌:


1. <국가와 종교> 최종고, 현대사상사, 1983.

2. ‘한경직 목사와 한국전쟁’ 이승준, <한국 기독교와 역사> 제15호, 9~38쪽, 2001.

3.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태도’ 유대영, <한국 기독교와 역사> 제21호, 73~99쪽.

4. ‘한국군 베트남 파병과 박정희’ 최용호, 정성화 편 <박정희 시대 연구의 쟁점과 과제>, 선인, 355~405쪽,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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