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 새만금을 디벼주마

2005/12/12 11:58

2003. 6. 8

 

새만금을 둘러싼 고도의 술수들을 디벼주마…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서 말이 많다. 현재 상황, 졸라 복잡하다. 하꺼야 마꺼야…

오해가 오해를 불러온다. 청와대도 바짝 긴장했다. 정신 차려야해… 한 발만 잘못 딛으면 여기서 지옥이야.

전북도 바짝 긴장했다. 밀리면 죽는다. 이건 지역감정으로 끌어 가야해…

하여간 새만금을 둘러싸고 별 상관없는 사람과 쫌 상관있는 사람들이 정식으로 한탕 붙기 직전이다.

삼보일배가 끝나고 나서 전북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도지사가 삭발을 했다… 엽기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하여간 지금 새만금 반대하는 편에 서면 응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다… 졸라 무섭나? 하여간 여기까지 와버린 통에, 애꿎은 새만금… 조금씩 죽어간다.

하여간 새만금을 둘러싼 거짓말과 오해, 그리고 편견을 지금부터 디벼주마…

1. 담수호의 비밀

2000년에 민관합동조사단이라는 게 있었다. 졸라 빙신들 모여서 삽질 했다고 하는게 딱이다. 하여간 할 수 있는 거짓말들은 다 갖다 붙여서 했다는게 이거고, 그나마도 합의가 안되어서 위원장 양반이 대충 자기 개인의견인 것처럼 정부에 ‘걍 해’라고 보고서를 올렸는데, 이게 지금 말하는 2년간의 사회적 합의라는게 그거다.

근데… 이 사람들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빙신 같은 답을 냈다고 사람들이 방방거렸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던 이유가 있다.

새만금에 흘러오는 강에는 만경강과 동진강이라는게 있는데, 이 만경강이 열라 썩어있다는게 고민의 시작이다. 부분적으로 5급수고, 전체적으로는 5급수 이상되겠다. 그래서 목표 수질로 4급수를 맞췄다.

열라 복잡한 얘기해서 본 우원 가슴이 아프지만, 하여간 물 얘기 좀 하자. 1급수라는 게 있다. 청정수역이라는게 그런 건데, 걍 마셔도 되는 물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쉬리, 이런게 여기 산다.

2급수라는 건 뭐냐? 정수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이라고 보면 된다. 잉어같은게 여기 살고, 놀래미 같은 놈들도 여기서 대충 산다.

3급수? 이게 고도처리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이다. 하여간 생난리를 좀 치면 먹어도 되는 물이 3급수다…

새만금 담수호의 목표 수질인 4급수, 두둥, 이게 용업용수 혹은 2급 공업용수로 불리는 물이다. 그냥 논바닥에 물대주거나 아니면 뜨거운 기계의 물을 식히는 용도로 사용해도 괜챦다는 물이 이 새만금 호수의 ‘꿈의 목표 수줄’ 4급수이다.

붕어… 이거 강한 놈이다.


< 나, 붕어… >

붕어같이 강하고 독한 놈들은 4급수에서도 죽지 않고 산다.

옛날 전두환 이전에 한강 졸라 속상하게 더러운 적 있었다. 그때에 가끔 붕어에서 휘발유 냄새가 난다더니, 하던 시절이 있었다… 목표 수질인 새만금호의 수질이 이거다.

근데 이걸 위해서 졸라 복잡한 조건을 걸었다 이거야…

만경강이 왜 이렇게 열라게 물이 안좋냐 그러면, 그 위에서 축산폐수, 그러니까 소똥 같은게 열라 내려오기 때문이거던… 근데 이 축산폐수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리하기 어려운 수질오염물질이라는 사실…

그래서 이 4급수를 맞추기 위해서 전주를 포함한 위쪽의 개발은 전부 막고, 그리고, 에또, 비료 사용도 30% 줄이고, 또 음… 위에 가축사육도 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그리고도 두둥, 위의 금강호의 물을 계속 이리로 끌어다가, 소위 물에다 물타기를 한다…

이런거거던… 그래도 4급수를 맞추기가 어렵거던… 씨바…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하여간 이래… 게다가 엿 같은 건 이게 질소나 인, 하여간 말은 복잡하지만, 그냥 변 성분이라고 보면 돼… 한마디로 똥물은 질소와 인, 그리고 암모니아 - 이거 뭔지 알지? 방구가스의 주성분 - 같은 거로 구성되어 있거던…

거꾸로 얘기하면 비료라고도 하지. 그래서 2년 전에 똥물에서 뱃놀이하고 관광할 똘아이가 누가 있겠냐고 했더니, 농업기반공사 아그들, 그건 비료성분이라서 오히려 농업에 도움이 된다고 한거야. 음… 똥물이 비료긴 하지…

이 물이 새만금 담수호로 들어가면, 으찌돼나? 농기반 아그들 얘기로는 일단 들어간 강물이 호수에 두달 반 동안 있다 나간대거던…

따땃한 여름날, 비료 성분 잘 썩인 물에 플랑크톤이니 녹조류니 하는게 한 번 팍 퍼져나가면, 골때리게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겠다. 대충 여의도 30배쯤 되는 잘 썩은, 아니 잘 삭은 비료더미같은게 되는거지… 죽여줄껄… 상상도 못하게 아름다운 광경되겠다…

너같으면 그런데서 뱃놀이 하고 싶겠냐?

산업단지니 중심도시가 못되는건 이 물 때문에 그래. 마실 수 없는 물을 누가 마시냐? 너 같으면 마시고 싶냐? 그래서 금강호에서 또 지하수로로 엄청나게 물을 끌어오면 된다고 하는데… 충청도 사람들은 또 바보냐. 나중에 지네 마실 물도 없어지는 10년 후에, 나 몰라 하고 자빠지면…

골 때리게 아름다운 장면 나오겠다. 세계 최고의 간척지에 세계 최대의 오염지대… 이 오명을 새만금이 뒤집어 쓰게 되거던…

2. 갯벌이 새로 생긴다?

이 얘기만 나오면 본 우원, 또 꼭지돌기 시작한다. 음… 갯벌이라는게, 그냥 맨 갯벌이 있고, 하구갯벌이라고 하는 상당히 귀한 갯벌이 있는데… 하여간 강을 끼고 있는 갯벌과 강을 끼지 않은 갯벌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거야… 동진강, 만경강을 끼고 있어서 새만금 갯벌을 1급으로 쳐주는 거거던…

옛날에도 생겨나지 않았냐고 하지만, 옛날에는 강을 안막았쟎아, 븅신들아…

갯벌을 구성하는 고운 모래는 바다에서도 오고 강에서도 오는데, 실제 영양분은 다 강에서 내려오거던…

그냥 바닷가의 모래사장 알지… 거기에 별 거 없는건, 그냥 모래구, 별 영양이 없어서 그렇거던…

여름에 모래사장에 해수욕가서 낙지 잡아본 적 있냐? 이상하게 모래사장에는 별 거 없지? 그게 영양분 때문이거던…

그걸 강이 숨을 쉰다고 그러는건데, 새로 생기는 갯벌은 크기도 허벌 작을 뿐더러, 강이랑 끊겨 있어서, 모래사장 비슷한데, 모래가 곱지는 않고… 하여간 모래더미 같은거거던…

물론 독한 넘들은 거기에서도 살지… 5급수 이상 물에서도 사는 넘들 있으니까…

그걸 ‘죽벌’이라고 해. 죽어있는 갯벌이라는 거지…

3. 전북경제에 도움이 된다?

쓰다보니까 또 열받기 시작한다. 지금 국민소득 만 불이라고 하지만, 전북 지역은 7천불도 안돼… 가슴 한구석이 아리기 시작한다.

하여간 정치하는 죽일 넘들이, 그런 전북 사람들을 댓구 사기치는 거랑 비슷해. 그래도 워낙 전북에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해도 되고, 맘도 아프지.

근데, 이런 거야. 지금 아무리 뭐라고 해도, 거기에는 농지 밖에 못들어가. 지금은 다 아는 척 하지만, 자료 갖다놓고 검토하면 그렇게 결론날 수 밖에 없거던…

옛날 총리시절, 이한동이라는 한또도 잘 해줄려고 했는데, 가만 보니까 이거 완전 청문회 감이거던… 그래서 농업이라고 결론을 낸 거야. 누가해도 물문제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어.

물막이 끝나면, 공사는 그때부터 시작이야. 물빼고, 열라 빼고, 거기에 소금기 빼고, 10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실제 정부예산은 1700억원씩 밖에 안 들어가니까, 사실 그 예산으로 이거 끝낼려면, 백년이 걸리거던…

음… 좀 정부에서 신경 써주면 50년…

그야말로 공사는 조금씩 하면서, 갯벌은 죽고, 그안에 있던 넘들도 다 죽고…

먼지 풀풀 날리면서 그냥 10년 동안 공사장으로 되거던… 냄새도 좀 날거야. 갯벌 안에 있는 넘들 죽은거… 그리고 담수호로 바뀌면서 바다고기들, 죽거던… 어느 날 한 번에 죽으면, 바다 위에 배를 내밀고 좀 썩을 거거던…

관광? 이 10년 동안 물썩고, 고기들 죽은 거 보러 오겠냐? 너 같으면 공사장 먼지 날리는데 회먹으로 오고 싶겠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년 동안 ‘우리의 옥토’ 기다리는 동안에 전북 경제가 살아난다구?

살아나면, 지금 전북경제의 꿈이고 희망이라고 한 사람들, 노벨 경제학상 다 받을거야. 간척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다! 케인즈 선생의 뉴딜로도 미국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았거던…

하여간 어쨌든 새만금이 죽더라도 전북경제라도 살아났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정말 지금 사기꾼들이 경제학 이론을 바꾸는 셈이야. 아니라구?

시장의 철의 법칙이 10년 후에 작동되는걸 함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치 않을거야.

아, 물론 농기반 아그들은 살아나지. 지금 걔네 예산 90%가 새만금 관련 사업이거던… 다시 말하면 밥줄 없을 놈들이 10년 동안 덩더쿵 덩더쿵 하면서 월급 받는데는 지장없지만, 전북경제에는… 큰 도움 안돼…

왜냐구? 다른 동네는 10년 동안 노냐? 광주, 평택, 부산, 대구… 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거던… 물론 전북이 티나게 살기 어렵구… 그래서 내고 맘이 아프지만…

그러나 하여간 딴 동네는 살자구 10년 동안 허벌라게 열심히 뭔가 할꺼거던…

심하게 얘기하면, 1,700억원만큼 들어오는 돈, 그나마도 기획예산처에서 짤려서 내년에는 1,600억원이거던… 이거 머리수로 나눠봐? 1인당 5만원 정도?

매년 5~6만원 정도… 그나마도 이거로 돈 버는 분들은 만 명도 채 안될걸… 연간 5만원 정도 받고, 아, 기분좋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는구나, 하면서 10년 동안 그냥 기다리고 있는거야.

그래두 그거나마 없는 거보다 낫다구? 생각해봐라… 지난 9년 정도, 매년 공사 했쟎아. 근데 좀 나아졌어? 앞으로 10년 동안 똑 같은 상황이라니까…

괜챦다구? 그럼 그러구 있든지. 5년 후의 상황을 생각해봐. 전국, 아니 세계 최대의 오염지역, 전북… 그나마 내륙지대는 만경강 상류라고 개발이 꽁꽁 묶이구…

왜 전북만 미워하냐구? 미워하긴 뭘 미워해. 그렇게 되는게, ‘경제적 과정’이라는 거지.

통일되면 새만금이라는 땅이 필요하다구?

장난하나… 독일이 통일하면서 동독 지역에 열라 돈 쏟아부어준거 몰라? 새만금의 땅을 기다리면서 열라 땅 만들다 통일되면, 그땐 모든 돈이 다 북한으로 들어가게 되있거던…

통일되면 쌀 많이 필요하다구? 장난하나, 진짜… 쌀 값은 20년 후에는 더 떨어져. 그리고 농업기술도 더 발전하게 되거던… 쌀, 제발 쌀 걱정 좀 하지 마시라.

쌀이 남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을 덜 먹는거거던… 미치겠군. 앞으로 쌀 더 안먹어.

4.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 법치주의 맞나?

법 얘기는 재미없지만, 그래도 해주겠다.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한 공유수면매립허가, 이런게 있거던. 여기에 ‘농업목적’이라고 해서, 갯벌에 대한 매립허가를 받은 거거던…

너무현 아저씨가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말한 건 행정행위라고 안해. 정치행위 혹은 통치행위 같은 거지…

근데 신구상기획단이 새만금 갯벌의 용도변경을 논의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순간, 이걸 행정행위라고 하거던…

정부에서 오늘부터 신구상기획단을 만들었습니다, 발표하는 순간부터 공사는 불법 공사가 되는거거던… 왜냐구? 목적이 바뀌었으니까…

그럼 그 다음날부로 법 좀 한다는 넘들이 바로 소송을 내는거지. 불법공사 강행에 대한 가처분소송… 뭐 이딴 비스무레한 건데, 미안하지만, 공사 중지 결정이 나올 확률이 높아.

계속하고 싶으면? 그냥 대법원까지 올라가는거지.

근데 공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길려면, 용도변경을 명확히 하고, 그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와 경제적 타당성까지 다시 만들어내야 하는데… 왜냐구?

이게 국책사업이라서 그렇거던… 정부는 그렇게 행위하도록 법에서 정해놨어. 근데 환경영향평가 1년 걸리는 거 알아? 그거 다시 해야되거던… 근데 아마 통과시키기가 쉽지 않을걸?

경제적 타당성 검토도 쉽지 않을걸? 왜냐구? 공단이나 하여가 다른 거로 할려면, 20조쯤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그 돈 나오는걸 만들어내기가 만만치 않을거야…

산업공단 같은거로 할려면, 간단하게 남산이 150개 정도 필요하다구 보면 돼. 왜냐구? 여의도 140배가 생겨나는데, 안 그렇겠어?

근데 이 땅을 다른데서 가져올 수 있나? 다른 동네가 다 바보야? 전북의 산이란 산은 전부 파다가 새만금에 쌓아주겠다는 얘기를 하는거거던…

농기반 아그들은 신나지. 덩더꿍 덩더꿍… 전북엔 뭐가 남아?

사실은 공사도 하지 못할거야. 바다에서 파오면 된다구? 물론 되지. 그럼 30조쯤 들겠다구 계산하겠지. 그 타당성 보고서가 깔끔하게 나오기 전까지, 새만금에는 손가락 하나 못대…

그러지좀 말라구?

내가 하는게 아니라니까… 변호사들 많쟎아. 함 보자구 지금 벼르고 있거던… 법 좀 알아? 함 고민해봐.

전북에 도움이 안될 뿐더러, 죽는 길이라니까… 환경만 죽어서가 아니구, 그런 대형 국책사업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니까. 있는 돈은 농업에서 들어오는 돈 매년 1700억원이 다야.

1인당 5만원씩 받는다고 좋아하는 동안에 하여간 처절한 일들이 벌어질 거라니까…

기분 나쁘다구? 미안해. 그런데 시장법칙이라는게 그런건데 어떻게 해. 그리고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그만큼 머리 아픈 절차들을 변호사 아찌들이 그렇게 만들어놨거던…

하여간 생각들좀 해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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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
열대 내 부족 삶과 문화 찾아 떠난 여행기
먹거리 모자라도 가축과 함께 나누고
족장은 권력 휘두르는 대신
솔선수범으로 지도력 인정받는 세계
어찌 미개한가

고전 다시읽기/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열대’라는 단어 앞의 ‘슬픈‘이란 형용사가 인상적인 이 책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935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에 사회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여행의 기록이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뒤 쓰인 이 책은, “모닝 빵처럼 팔렸다”는 말로 묘사되는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면서 그를 대중적인 스타 지식인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그는 박사학위 논문인 <친족의 기본구조>로 프랑스 사상계의 새로운 거목으로 떠올랐으며, ’구조주의‘라고 불리게 되는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창안했다. 이어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 저작을 통해 그는 프랑스 사상계 전반을 뒤바꿔놓은 중심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이 주도하고 있던 유럽의 철학적 주도권을 프랑스로 이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구조주의라면 “한물간 지 오래”인 1990년대 중반인가에 프랑스의 문화 관련 기자들의 투표에서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행은 다른 세계, 내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와의 만남이다.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여행자를 좋아한다. 오디세우스의 여행, 파우스트의 여행, 혹은 손오공의 여행, 레인맨의 여행 등등. 거기서 작가는 여행자를 따라가면서 그가 다른 세계와 만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삶을 향해 떠나자고 슬며시 우리를 부추긴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이 여행기도 그렇다. 그가 정말 여행을 싫어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여행은 뜻밖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떼밀리듯 시작된, 그래서 더 운명처럼 여겨지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어쩌면 그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역사학이 자기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간을 여행하고 탐사하는 것이라면, 그가 좋아하게 되었던 인류학은 다른 공간을 여행하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탐사하고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레비스트로스는 다른 종류의 인류학자여서, 현지조사보다는 수많은 조사자료들을 비교하고 교차시켜 다양한 문화나 신화들 안에 존재하는 어떤 공통된 것(그가 ‘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찾고자 했다. ‘구조주의’란 한편으론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구방법으로 삼아서 생긴 이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로 이 공통된 것을 찾고자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 주도권 독일서 프랑스로



그렇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단지 책상에서 남이 쓴 글을 보며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본다. 또한 모든 문화에 공통된 것만을 찾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음을 또한 본다. 이 여행기의 줄기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삶과 문화다. 그것을 천천히 거쳐가면서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종류의 삶을 체험한다.

그림 그리길 즐기는 카두베오족의 문신과 문양에서 주어진 신체, 주어진 얼굴을 변형시키는 예술가적 창조의 욕망을 본다. 남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남비콰라족의 사랑법에서 오히려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서적이고 유희적인 쾌락의 감각을 보기도 하고, 그 대담한 사랑의 와중에도 발기된 흥분으로 빠져들지 않는 태도에서 육체의 노출이 아니라 평정의 상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고상한(?) 윤리감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혹은 인간의 형체란 물고기 형체와 앵무새 형체 사이의 과도기라고 보는 보로로족의 윤회적 우주관에서 인간과 동물 세계의 연속성을 보기도 하며, 가축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먹을 것이 부족해도 ‘함께 식사하는’ 남비콰라족의 태도에서 그러한 연속성이 함축하는 실제적인 의미를 보기도 한다. 또 고유명사를 감추고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남비콰라족 사람들에게서 문자 없는 세계에 대한 루소적 꿈을 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문자를 흉내내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지배’하려는 한 추장의 태도를 보면서 문자의 짝이 권력임을 보기도 한다.

좀더 인상적인 것은 추장에 관한 정치학이다. 가령 남비콰라족의 경우 추장은 유랑생활을 편성하고 여정을 선정하며 숙영할 곳을 정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제를 수반하는 권력은커녕 공적으로 인정된 권한도 없다. 그는 오직 대중의 호감이나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조달해줄 능력, 혹은 솔선수범하는 능력에 의해서만 추장의 지도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추장의 지도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대함’이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정보제공자이기도 한 남비콰라의 추장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지만, 그것은 어느새 다른 주민들 손으로 넘겨졌음을 발견한다.

다른것 동질화 목격 깊은 슬픔

이러한 삶과 문화를 어찌 ‘미개하다’고 말할 것이며, 어찌 ‘야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서구인들에 의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이 되어 파괴되어 버렸고 ‘문명화’ 내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양상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안다. 럼주 한잔의 미묘한 맛은 거기에 섞여 들어간 불순물 때문임을. 사람들의 삶에서 이질적인 것, ‘불순물’을 제거해버리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제공하는 것들을 스스로 완전히 파괴해버리려고 하는 것”임을.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비난하고 이질적인 모든 것을 자신의 모습대로 동질화해버리는 서구문명에 대해, 바로 자기 자신이 속한 그 세계에 대해 거대한 분노를 느끼며, 그것으로 파괴된 열대의 세계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틀림없이 그의 여행은 이 침략과 파괴에 의해 말살당한 흔적을 목격하고 체험해야 하는 여행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여행기에는 또한 깊은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을 ‘슬픈 열대’라고 붙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비스트로스를 무척 좋아한다. 이 책 속에 배어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을, ‘야만인’에 대한,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애정을 깊이 사랑한다. 데리다의 비판처럼 원시적인 것에 대한 향수나 구조주의적 방법에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몽상이나 향수마저 지울 수 없었던 그 따뜻한 안타까움을, 그 깊은 슬픔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비판은 너무 쉽고도 안전한 투자 같아서 싫다.

슬픔과 분노를 안고 그는 돌아간다. 그러나 그가 돌아가는 곳은 또 다른 원시의 열대도, 그가 속했던 문명화된 대륙도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 모두가 서로에 기대어 있는 세계다. “역사, 정치, 사회적·경제적 세계, 물리적 세계, 심지어 하늘까지, 이 모든 것들이 동심원을 이루며 나를 둘러싸고 있다.” 여행의 끝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당신이 신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자기 몸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느끼거나 기적을 행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가 아니라 야생의 짐승들이 가까이 다가와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 온몸을 엎고 있는 악취나 분뇨에서도 예사로워질 때랍니다. 모든 시체, 모든 부패물, 분비물이 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랍니다. 신이 되고 나면 나비들이 당신 목덜미에 앉아서 교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마지막은, 그 ‘귀로’의 끝은 미얀마의 챠웅(불교사원)이다. 외부, 타자, 이질적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획일적 문명, 혹은 그것의 좀더 남성적이고 호전적 형태인 이슬람에서 더 없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는 여성적이거나 탈성화된 불교에서, 외부의 이질적인 것에 열려 있는 불교에서, 그것과 만남을 통해 기독교적 문명이 여성화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그 희망은 기독교의 서구와 불교의 인도 사이에 발생한 남성적 이슬람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절단된 것이다.

귀로의 끝은 ‘열려있는’ 불교사원

하지만 ‘서양’과 ‘동양’을 잇는, 실현되지 못한 희망을 대신할 또 하나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것은 뜻밖에도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의 만남이다. 형이상학과 인간행위의 조화를 실현했던 이 두 사상의 만남을 통해, “인간을 첫 번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마르크스주의의 비판과 그 해방을 완결시키는 불교의 비판”의 만남을 통해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흐르는 확고한 운동”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열대를 찾아 떠났지만, 그 열대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떠난다. 그리하여 너무도 익숙해진 그 ‘문명화된’ 세계를 떠나도록 사람들을 촉발한다. 다른 삶으로 떠나는 여행을.

서평자 추천 도서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한길사 펴냄(1998)

(<슬픈 열대>의 완역본)

야생의 사고

레비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한길사 펴냄(1996)

(토테미즘이라 불리는 미개인의 사고법이 턱없는 미신이 아니라 사물을 분류하는 또 하나의 과학, 구체성의 과학이란 점을 보여주면서, 서구인의 자기중심주의를 비판한 책)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강 펴냄(2003)

(기자인 에리봉과 레비스트로스의 대담을 통해 쓰여진 레비스로스의 ‘회고록’)

 

 

족장의 권력이 지닌 무기는 관대함이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다.” 몽테뉴는 이 이야기를 그의 <수상록>의 유명한 한 장에서 기술하면서 그 원주민의 자신만만한 정의에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그로부터 거의 4세기 후에도 동일한 대답을 들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커다란 놀라움과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족장은 명확하게 규정된 권한이나 공적으로 인정된 권위에서 그의 기반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말해두어야 하겠다. 동의가 권력의 근원을 이루며 또한 동의가 족장의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족장은 어떻게 그의 의무를 완수해 나가는가? 그의 권력이 지닌 무기 가운데 가장 주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대부분의 미개민족들 사이에서,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관대함이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다.···[그래서] 그는 아무리 자질구레한 것들일지라도 빈곤이 닥칠 경우에는 상당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식량, 도구, 무기, 장신구 따위의 여분의 양을 그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개인이거나 가족이거나 또는 전체로서의 하나의 무리가 어떤 것을 욕구하거나 필요로 할 때 그 호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바로 족장이다. 그러므로 관대함이란 새로운 족장에게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 하겠다.···

족장들은 가장 적합한 나의 정보 제공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그들에게 풍부한 증여물을 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에게 준 선물은 하루나 이틀 이상 그들의 손에 있지를 않았다. 내가 어떤 무리들과 몇 주간을 함께 지내고 헤어질 때가 되면 주민들은 내가 [족장에게] 주었던 도끼·칼·진주 따위를 소유하고 있고는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족장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내가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빈곤한 상태에 있었다.···

훌륭한 족장은 그의 솔선수범하는 능력과 기술을 증명한다. 화살의 독을 준비하는 사람은 족장이다. 마찬가지로 족장은 남비콰라족의 유희에 사용되는 야생의 고무로 된 공도 만든다. 또한 그는 무리들이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출 줄 아는 쾌활성을 지녀야만 한다.(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한길사), 564~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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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돈다…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

지구 중심주의 깨부순 지동설
인간의 자존심엔 상처 주지만
신의 섭리는 우주로 확장시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는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긴 제목의 저서를 줄여서 일컫는 표현이다. 1632년 출판된 이 책은 지동설 주장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오가 그로 인해 종교 재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해설자들도 종교 재판에 연관한 역사적 의의를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는 고전이다. 깊고 넓게 다양한 생각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주된 줄거리 못지 않게 재미있는, 딸린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대화>의 과학적 의의는 지동설 주장과 함께 갈릴레오의 방법론이다. 자연을 수학화하는 근대 물리학의 전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성과를 넘어서 <대화>는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지구중심주의 및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이다. 이를 합하면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이다. 당시까지 서구인의 의식은, 세계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에서 사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들에게 유용하도록 질서가 잡혀 있다는 믿음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천문학적 발견은 지구(따라서 그곳의 거주자)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천체들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대화>의 화자 사그레도는 말한다. “지구도 달, 목성, 금성, 또는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는 하늘에 있는 천체들과 같은 위치에 놓여 그들의 특권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지구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이 지구에게 마땅한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라는 역설적 은유는 흥미롭다.

 

지구와 다른 천체들을 연속선상에 놓고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타격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에서는 생성, 소멸, 변화의 현상이 있지만 다른 별들과 우주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믿었다. “지구에는 풀, 나무, 동물들이 태어나고 죽고 합니다. 비, 바람, 폭풍우, 태풍이 일어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구의 생김새는 계속 바뀝니다. 그러나 하늘의 물체에는 이런 변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더라도, 항상 순환해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천체의 운동을 확인할 뿐이었지, 육안으로 보아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천체의 물질적 변화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천체들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영생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대화>의 화자 살비아티의 입을 통해 육체뿐만 아니라 “인간 영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혼불멸설조차 부정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인간의 ‘숭고한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인간이 우주에서 특별하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신앙심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과학적 탐구로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인간만을 위한 신이 아니라 진정으로 세상 만물을 위한 신을 확인한 것이다. 그때까지 인간중심주의는 오히려 신의 위상을 인간에 맞춤으로써, 신의 섭리를 한정시키고 신앙심을 축소시켰던 것이다. 반면 인간이 무한한 우주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은 신의 위상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음으로 해서 신의 손길을 느끼고 신의 은총을 받는 게 아니라, 우주의 변방에 있더라도 그렇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손길은 광활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 있는 미물에게도 미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어서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갈릴레오의 신앙심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과학적 업적은 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신을 온전히 긍정한 것이다. 종교 재판 후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말을, 과학적 발견 이후 더욱 새로워진 그의 신앙심을 위해 빌려 쓴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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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슴이 너무 너무 아프고 떨립니다.

2005/08/18 07:17

 

2005년 8월 17일 오후 2시 70여 일간의 노숙농성에도 변화가 없는 공단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해, ‘산재불승인철회, 산재승인 재조사’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결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감시와 차별에 의한 집단정신질환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김혜진 지회장 및 노동 사회단체 대표자 17명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집회도중 경찰은 집회장에 난입했고 이 와중에 단식투쟁을 하기로 예정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김혜진 지회장 등 4인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이 고공철탑에 올라서자 경찰은 농성철탑 주변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곧바로 테러진압에나 투입되어야 할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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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국적이란 움직이는 것

2005/08/10 13:59
[펌] 한겨레21 > 칼럼 > 박노자 칼럼  > 내용   2005년08월04일 제571호

 

국적이란 움직이는 것!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근대적 개념 형성 이전에 ‘이탈자’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스위스 출신 프랑츠 레포르트에서 신라 출신 설계두, 개화기의 서광범까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최근에 일어난 ‘국적 포기자’에 대한 여론재판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 상황을 단순히 유산층의 병역 면탈에 대한 반감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병역을 천역(賤役)으로 알았던 전근대 지배층의 사고를 이어받아 빈민개병제의 국가를 운영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특권층에 대한 빈민개병제 희생자들의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살인적인 경쟁 사회를 만들어놓은 한국 지배자들이, 평민의 자손에게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억압적인 규율과 막노동을 강요하고 자기 자손에게는 사회 진출 준비를 더 잘할 특별한 기회를 준다니 기회 균등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배신자’였나

그러나 병역 이행에서의 부정이 보여주는 계급 불평등 현실의 다른 측면들을 지켜볼 때도 우리는 과연 이 정도로 흥분하는가? 예컨대 국회의원 등 특권층의 병역 면제자 비율에 대한 통계가 발표될 때도 이 정도의 분노의 파도가 일어나는가? 전방근무 등 가장 어려운 종류의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특권층의 자손이 몇명인지 그리고 특권층의 자손이 군에서 어떤 종류의 특별한 근무를 맡는지에 대해서는 왜 우리가 공개적으로 묻지 않는가. 즉,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이번 ‘국적 사태’에서의 분노의 강도를 부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도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국적 포기자들이 해외동포로서 권리를 박탈당하게 만드는 ‘홍준표 법’의 국회 부결에 따른 성난 누리꾼의 움직임들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국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국적에 대한 의식이 현대사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짚어보아야만 한다. 이러한 검토를 하지 않고서는 국적 포기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배신자’로 비치게 된 원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 스위스 출신으로 ‘국적’ 문제에 대한 별 생각 없이 표트르 대제의 총신이 되어 러시아를 좌지우지한 프랑츠 레포르트. 300년 전 유럽에는 아직 국적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국적에 대한 의식의 원류를 찾노라면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근대적인 국민국가에의 소속이란 의미의 ‘국적’이란 말은 한국사에서 극히 최근에 형성된 법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18세기 후반 이후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봉건적인 ‘신민’의 개념에서 근대적인 ‘시민권자’ 개념으로 이동했다. 예컨대 17세기 말만 해도 제네바 출신의 모험적인 군인 프랑츠 레포르트(1655~99)는 러시아군 장교로 고용된 뒤 차차 명성을 얻어 외국인 출신임에도 표트르 대제의 가장 가까운 총신(寵臣)이자 러시아에서 ‘황제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그 뒤 19세기 중반이 되면 레포르트처럼 러시아군 장교로서 출세하려는 서구인들은 이미 국적 변경 절차를 밟아야 했다. 조선에서 조선 국적 소유자를 최초로 국제법적으로 규정한 문서들은 구한말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들이었고, 국내 최초의 근대적 국적법은 1948년 5월11일에 남조선 과도입법원이 만든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였다. 우리에게 늘 있어온 것으로 느껴지는 이중 국적 불허나 국적 상실과 같은 개념들은 한국 법제도사에서 기껏해야 반세기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국적이라는 일본식 근대적 법학 용어가 차용되기 전에 인접 국가의 신민이 된 ‘이탈자’에 대한 시선은 과연 어땠을까? 물론 한 군주국의 장교로 복무했다가 조건이 안맞거나 갈등이 생기면 경쟁 군주국에 가서 그 군에 복무해도 누구라도 ‘배신자’라 하지 않았고, 국가적 소속이 매우 상대적이었던 18세기 말 이전의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에서의 국가 소속 의식은 훨씬 더 뚜렷했다. 그러나 <삼국사기> 편찬의 책임자 김부식이 아무리 유교적인 충(忠)을 중시한 사람이었어도, 신라에서 621년에 당나라로 밀항해 당나라 군대에 입대해 나중에 전장에서 장렬히 죽은 신라의 육두품 준귀족 설계두 이야기를 ‘열전’에 집어넣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불법적 국적 이탈자’인 설계두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 고구려에 대한 침략에 참전했다가 고구려인의 손에 죽은 당나라 군대 장교로서 반역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진골로 태어나지 않은 죄로 신라에서 그 포부를 펼치지 못해 결국 ‘동족’과의 전쟁에 내몰린 비극적 인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김부식이 그를 영웅의 반열에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고구려보다 신라를 정통으로 인식한 김부식의 편벽된 역사의식이나 당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적 태도도 작용했겠지만 “본국의 신민이냐 타국의 신민이냐”보다는 “어느 정도 충실한 신민이냐”를 훨씬 더 중요시했던 유교의 보편주의적 논리가 고구려인과의 싸움에서의 당나라 장교 설계두의 장렬한 죽음을 신라 전사들의 전장에서의 순국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는 근본적 근거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처럼 역사를 혈연적이며 불변한 ‘아(我)와 피(彼)의 투쟁’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본국을 이탈한 타국 신문의 충성뿐 아니라 적국 신민의 충성도 우러러볼 수 있는 것이다. 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나선정벌’, 즉 러시아 카자크 비정규군과의 국지전에 나선 조선의 병마우후 신류(申瀏)가 포로로 잡힌 적군들을 위로하면서 ‘군주를 위하여 이렇게도 멀리 온’ 그들의 충성을 치하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논리다.

 

적국 신민의 충성도 우러러볼 수 있다.


△ 조선 후기 ‘국적 이탈자’ 중 ‘외국인’임을 가장 선명하게 밝힌 사람은 아마도 서재필일 것이다. 그는 조선에 돌아와서 독립신문 발행 등의 계몽 활동을 할 때 꼭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라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썼다.

물론 ‘국적 이탈자’에 대한 전통 사회의 시선은 꼭 곱지만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부역했다가 나중에 자진해서 왜군을 따라 일본으로 간 자들을 역적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이탈’ 그 자체보다 적군에 대한 ‘부역’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15세기에 황해도 출신의 정동(鄭同) 등 어렸을 때 조선에서 명나라 환관으로 바쳐진 여러 사람들이 나중에 명나라의 사신 자격으로 고국에 다녀왔을 때 그들에 대한 조선 사대부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이 경우에는 ‘이탈’ 자체가 문제됐던 것보다는 환관이라는 계층에 대한 양반들의 멸시가 작용한데다 명나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여러 횡포를 부렸던 조선 출신의 명나라 대인의 행동에 대한 원망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정동은 본인이 태어난 신천(信川)을 현에서 군으로 승격하도록 조선 정부를 성공적으로 압박할 정도의 위세를 떨쳤는데, 조선 조정 신하의 입장에서 곱게 봐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명나라로 적을 옮긴 조선 출신의 환관들이 고국에 올 때 조상 분묘에 제사를 지내도록 편의 제공을 받는 등 조선 초기 식의 ‘동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도 했다.

 

쇄국을 지향한 명나라와 조선의 경우 두 나라 신민의 경계가 분명했는데 그 전에는 달랐다. 예컨대 9세기에 산둥반도의 신라방(新羅坊)이나 신라촌(新羅材)에서 거주하면서 일본과 무역을 했던 신라 계통의 상인들은 일본의 사문서에는 신라인으로 서술되는 반면 신라에 적대적이었던 일본 정부의 공문서에는 주로 당나라 사람으로 기재돼 있었다. 서술자의 성향에 따라 당나라 사람으로도 신라인으로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신라에서는 신라 신민으로 당나라에서는 역시 외국 계통의 당의 신민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실질적 이중 국적의 회색지대는 러시아나 미국 거주의 일부 조선 정치인들이 러시아 내지 미국 국적을 가졌으면서도 조국 정치에 계속적으로 개입한 개화기에도 실제로 존재했다. 예컨대 갑신정변의 실패 이후 미국으로 도주해 1892년에 ‘조선의 국왕에게의 모든 충성을 영원히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얻은 서광범(徐光範·1859~97)은 나중에 고국에 돌아와 법부대신(법무부 장관)과 학부대신(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주미 조선 공사(대사)까지 역임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외국 국적을 가져도 일단 조선 신민으로 태어난 사람은 완전한 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의식이었다.

 

그러면 최근의 ‘국적 포기 사태’ 때 감지될 수 있었던 ‘국적’의 신비화, 절대화는 언제 이루어졌을까? 아마도 그 결정적 시기는 박정희의 집권기, 특히 유신 시대라고 보인다. 민주적 정통성도 민족적 정통성도 결여된 무법 종속 정권이 대민 세뇌 도구로 삼았던 것은 무엇보다 일제 시기 방식의 국가주의였는데, 이 국가주의의 핵심 개념은 ‘대통령 각하’를 모시고 병역 의무를 즐거이 이행하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과, ‘악마 같은 이북 공비’나 ‘불온사상’에 전염될 확률이 높아 믿기 어려웠던 해외 동포 사이의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 ‘국적’이었다.

 

국적의 신비화는 유신시대부터

‘국적 있는 교육’ ‘국적 있는 문학’ ‘국적 있는 역사학’ 이야기가 쏟아졌던 그 시기야말로 국민들로 하여금 ‘국적’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게끔 유도했다. 병영 국가에서의 국적 신성화인 만큼 한국 국적을 보유하는 남성 정상인은 무엇보다 먼저 ‘군인’으로 규정되었다. 학교에서의 교련, 대학에서의 군사훈련, 아무런 대안이 없으며 본인의 의지·신념과 무관한 군복무, 그리고 그 뒤의 예비군 훈련과 방위세 납부는 대한민국 국적 정상인 남성의 ‘당연한’ 생활리듬처럼 돼버렸다. 이와 같은 광적인 군사주의의 분위기에서 전통사회에 존재해왔던 ‘우리’와 ‘남’ 사이의 관용의 ‘회색지대’는 없어지고, 국적 포기자는 마치 전시라면 총살당해야 할 탈영병처럼 인식되고 병역 불이행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거나 ‘비국민적’ ‘반국민적’ 행각으로 개념화됐다. 유신시대가 막을 내린 지 꽤 됐지만, 그 시대에 제도화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는 지금까지도 우리 현실적 생활을 지배할 뿐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흙에 대한 사랑과 그 땅의 민중에 대한 애착이 꼭 여권이나 주민등록증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는 걸, 특정 국가에서 출생한 남자라고 해서 살인 훈련을 받을 아무런 천부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언제쯤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참고 문헌

1. 조영록, <근세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교류와 문화>, 지식산업사, 2002.
2. 권덕영, ‘9世紀 日本을 往來한 二重國籍 新羅人’, <한국사연구>, 제120집, 2003, 85~114쪽.
3. 이광린, <개회기의 인물>, 연세대학교출판부, 1993, 203~242쪽.
4. 도회근, ‘국민과 국적’, <울산대학교사회과학논집>, 제9집, 제2호, 1999, 59~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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