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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인천에 가고 있는 중에, 내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엄청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양손을 사용한 다양한 제스춰를 취해가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누구랑 이야기하는건가 살펴보았는데, 양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채 졸고 있었고 그녀 앞쪽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스치는 사람들을 흘긋 보기도 했지만 줄곳 어떤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 곳은 허공이었고 초점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귀기울여보았지만 말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표정이나 제스춰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걸로 보아 누군가와 주고 받는 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혹시 무슨 연극 같은 걸 연습하는게 아닌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이 연기라는 생각이 절대 들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녀를 관찰하면서 나는, 내가 꼭 지금 저런 상태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블로그 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족1. 결국 그녀가 무슨 대화를 누구와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옆에 앉아서 빨간 거울을 자신의 얼굴에 들이댄 한 아가씨의, 코디가 어쩌고 검정가디건이 저쩌고 하는 이야기 보다 최소한 몇 백배는 의미있는 대화였지 않았을까 싶다.

 

사족2. 사실 블로그를 만들게된 가장 큰 계기는 이쁜 일기장을 샀음에도 일기가 잘 써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그 일기장에는 3월 한달동안 달랑 시 두편이 옮겨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비루한 내 자신을 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소심한 나로서는 벌써 두사람이나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이곳을 들어왔다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된다.(총방문자수도 벌써 49명이다!) 하긴 진보넷이라는 이 좁디좁은 바닥에 블로그를 개설한 것 자체가 안그러기는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더욱 우스운 것은, 그럼 혼자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놓으면 될 것을 이 따위 자족적인 글쓰기를 드러냄으로써 이렇게 뻔하게 표현되는 나 자신의 인정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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