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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형식

인간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유물론적이고, 생각만큼이나 훨씬 더 관념론적이어서 결국엔 인간은 누군가에게 이해 받기는 커녕 결코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타인일 수밖에 없다.  

 

지하철 칸과 칸 사이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기어들어온다. 그의 한쪽 다리는 의족이었으며 그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그 한쪽 다리가 잘 보이도록 사람들에게 쭉 뻗은 채 처절하게 기어오고 있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왜 인간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치부를 타인에게 드러내며 사람들의 동정을 갈구하면서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은 왜 이리도 나약한 존재일까 하는...나 자신 또한 그렇듯이.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갈구하고 사랑하려고 하고 어딘가에 소속되려고 하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몸을 바치고, 때로는 취하기도 하지만 그 행위는 결코 충족 될 수 없는 공백만 더더욱 드러낼 뿐이다. 인간이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 결국 구원은 자기스스로를 구워하는 자만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말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갈수는 없을까? 라고...

 

*

 

J는 M과 서로의 바닥까지 보기 위해서 결혼을 한거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 힘들고 어렵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대’라는 건 공동체라는 건 그런게 아닐까라고 말했을 때, 나는 두려웠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럴 자신도 없다. 그런거 싫다! 한 자의식 하는 인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소통에의 갈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고, 나는 이제 타협하고 싶다. 이게 타협인지 아닌지는 어차피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이고 싶다. 최소한의 내 것은, 그리고 지금 나의 평화와 여유는 지키고 싶다.

 

*

 

출근을했는데 뭔가가 휩쓸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장은 넘어졌었는지 부서져 있었고, 바닥에는 흥건했던 핏자국을 닦아내고 남은 얼룩이 져있었고, 군데군데에는 채 닦아내지 못한 핏방울이 튀어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가 있었기에 오후에 온 K에게 물어보니, ‘치열하게’ 술을 마셨다보다, 라고만 대답했다.
저녁 무렵에 J와M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이긴 했지만 너무도 태연하게 오늘 수고 많았다고 말을 전해왔다.

 

아이들과 함께 김장을 하기위해 배추를 저리다가, 한 아이가 벽을 가리키며 이거 핏자국 아니에요? 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넘겼다. 순간, 도대체 이게 뭐하고 있는 짓인가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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