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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승희-달걀 속의 生

"이제 지겹지도 않니"

 

*

 

객석에 앉은 여자

                                 -김승희

             

그녀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네.

이런 데가 저런 데가

늘 어느 곳인가가.

 

아프기 때문에

삶을 열렬히 살 수가 없노라고

그녀는 늘상 자신에게 중얼거리고 있지.

 

지연된 꿈, 지연된 사랑

유보된 인생

이 모든 것은 아프다는 이름으로 용서되고

그녀는 아픔의 최면술을

항상 자기에게 걸고 있네.

 

난 아파,

난 아프기 때문에

난 너무도 아파서

 

그러나 그녀는 아마도 병을 기르고

있는 것만 같애.

 

삶을 피하기 위해서

삶을 피하는 자신을 용서해주기 위해서

살지 못했던 삶에 대한 하나의 변명을

마련하기 위해서

꿈의 상실에 대한 알리바이를 주장하기 위해서!

 

그녀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네.

이런 데가 저런 데가

늘 그저 그런 어떤 곳이.

 

*

 

이 시집의 전 주인은 마지막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겨두었다.

 

-

나도 재림을 준비하라.

죽어있으라.

철저히

모든 비난과 무책임함과

자책과 상실을 안고.

죽어있으라.

 

시가 무슨 소용이람

사랑이 무슨 소용이람.

절망도 희망도.

그 어느 것도 진짜가 아닌 삶에

그 어떤 것이

진짜로 박힐 수 있겠나.

 

 

무엇을 해야하지?

 

다 때려치우면

어떻게 되는거지? 정말 죽어버리는 거야.

모두 엎어버리면.

 

매장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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