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블로그

-
- 모두들 아픈 다리 내놓고 장사하는 것. 저잣거리에 나와 내 흉터가 더 크지, 더 아프지 자랑하는 卑賤한 삶들. 거개의 블로그니 하는 것들에서 읽을 수 있는 속내가 그렇더라..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나 역시 이젠 블로그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무슨 글을 썼는지 모른 체 지내는 터라 글을 모아둘 창고를 짓는다 생각하고 열었던 블로그가 그런 고통이랄 것도 없는 자기전시의 쇼윈도가 되었다. 온 몸이 벌개지도록 부끄럽다.
 
- 고통은 견디고 부인하고 감추기 위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찌된 세상인지 고해처럼, 심리상담가 앞에 놓인 카우치처럼, 당신 나 사랑하지, 사랑해 줘 응석부리는 무대가 되었다. 나 술먹고 게웠어, 나 망가졌어, 내가 불쌍해서 옷 살래 따위의 허접한 잡담을 늘어놓고 고통의 값어치조차 능멸하는 숱한 블로그. (...)
-
서동진님의 블로그에서 허락도 없이 무단 발췌. 원문은 여기로.
 
 
 
위의 글을 읽고 나 또한 고민이 된다. 자신을 포장하는 각종이미지로 점철된 싸이월드. 읽었던 책, 봤던 영화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거나 알량한 지식을 뽐내기 위한 숫한 블로그들. 자신의 아픔을 과장해서 드러냄으로서, 나 아파, 그러니까 나 좀 사랑해줘, 애정을 구걸하는... 혹은, 현실에서 결코 충족되지 못할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자랑하며, 결국 공허한 울림에 그치고 말 것들...
 
이 곳 또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이런 생각을 하면 부끄러움에 지금이라도 당장 블로그를 닫아버리고 싶어진다. 옛글들을 읽으며 드러나는 나의 얕음에 자책하기도 하고... 오늘은 지금까지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었다. 나의 찌질함. 애정구걸. 자위. 자기연민. 나르시시즘. 신세한탄. 알량한 지식들...등등 모두 다 이곳에 있었다.

 

블로그를 완전히 닫는 건 아니더라도, 글 중에서 몇 개만 지워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 모든 것들이 다 어느 시기의 나에 대한 기록이라는 생각에 그냥 맘편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대신에 요즈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을 핑계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블로그에 다 올리지는 않더라도 요즈음 노트에 글적거리고 있는 글들은 어쩔 수 없이 휘갈겨 쓴 글들이 많다. 책상 앞에는 앉았는데 책 속의 글자도 잘 들어오지 않고, 뭔지 모를 딴 생각만 계속해서 맴돌 때. 기지개를 펴고 마음을 다잡고, 담배까지 한 대 피고 와서도 이 가슴 먹먹함이 풀리지 않을 때면 그냥 책을 덮고 노트를 펼친다. 볼펜을 들고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리다보면 진정이 좀 되는 듯싶다. 글도 종류마다 다른데, 의식적으로 써봐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은 글은 몇 줄 나가지 못해서 손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하고, 결국 손아귀에 힘이 풀리고 만다. 억지로 더 쓰다가는 펜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이다. 또 어떤 글들은 한번 삘이 꽂히면 몇 페이지를 정신없이 써나가서 나중에 가서는 손이 저려오기도 한다.

 

머릿속에 떠돌던 생각과 간절한 느낌들이 막상 펜을 타고 나오면, 글씨는 삐뚤빼뚤 엉망이고, 문장들은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여기저기 끊긴 채 흩뿌려져 있다. 어떤 단어가 적합할지 한참을 고르다가 결국은 찾아내지 못하고 비워놓은 빈칸들이 군데군데 밍숭맹숭하게 뻥뻥 뚫려있다. 결국 그렇게 정신없이 써내려간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래, 이게 바로 뽀오스또 모오단적인, 데리다적인 글쓰기이지 하하, 하면서 웃어넘길 뿐 찢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왜 ‘블로그’인가? 하는 의문은 남아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는 그것이 인정욕망이라는 것을 시인 했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족1.UCC에 대해.
길거리에서 나를 스치는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단백질덩어리로만 느껴지던 그런 시절에, UCC가 나에게 약간의 안식이 되어주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날의 UCC를 뒤적거리면서, 내가 오늘 지나쳤던 사람들도 어쩌면 각자의 집에 들어가서는 눈을 가린 채 한손으로만 큐빅을 사정없이 돌려서 맞춘다거나, 길에서 조차 만나지는 못하는 아이들은 자기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기타로 캐논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있다거나, 저 아저씨는 손바닥과 책받침만으로 드럼소리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고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날 집 밖을 나설 힘을 충전 하고는 했었다.

 

흔히 개그콘서트의 ‘마빡이’를 UCC시대의 새로운 개그 형식이라 예찬하기도 한다. SBS의 ‘스타킹’이라는 쇼프로그램에서는 UCC로도 방송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각종 포탈사이트나 청소년 미디어교육관련 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UCC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투자.

 

나는 이러한 것들이 다 지금 UCC를 망쳐놓았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생산되는 이미지를 수용하기만 했었던 기존의 방식에서 UCC는 스스로 이미지를 생산해냄으로써,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와 목소리를 부여함으로 전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 도처에 널린 UCC는 전부 자기 마빡을 때리고 있거나 천무스테파니의 봉 춤을 되지도 않게 따라한다. 요즘은 심형래를 응원하고 있다.
 
 
사족2. 블로그에 대해.
네이버메인에 ‘감성지수36.5’라는 칸이 생겼다. 꽤 흥미로운 제목들과 이미지에 혹, 하고 들어갔다가 헉, 하고 꺼버리기 일수다. 얼마 전부터 컬쳐블로그 어쩌구 하면서 다양한 컨텐츠들을 끌어들이려 애쓰더니, 이제는 블로그에서 ‘NAVER'로고까지 없애고, 아예 자기 블로그는 자기가 마음대로 디자인 할 수도 있단다 (네이버는 정녕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일까). “나 이런 책도 읽었엉, 이런 영화도 봤지롱” 쓰나마나한 감상평들을 올려놓은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부르디외의 탁월한 분석이 이곳에서도 점점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 비록 소비활동으로 촉발되는, 즉 자본에 의해 필요되고 이용되는 창의성과 자율성이라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통제하고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네그리의 말처럼, 대중들의 자발성·자율성을 자본주의가 더 이상 통제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도래할 것... 이라며 스스로를 달래보지만...흠흠.
 
  
사족2-1. 어쨌든 블로그가 일종의 구별짓기 행위라면, 네이버는 가장 낮은 수준. 이글루는 좀 더 교묘하고. 진보넷은 가장 심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족3. 싸이월드에 관해서.
흔히들 싸이월드가 얼짱각도를 하고 커피빈을 배경으로 책을 ‘들고’ 있는 사진 따위로 자신을 포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해석. 이것은 매우 순진할 뿐만 아니라 안일하기까지 하다.

“미디어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말을 상기하자!
싸이월드에 회원가입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체로서 '호명’된다. 싸이월드에 의해 자신이 꾸며지는 시대는 이미 지나도 한참을 지났다. 이제는 반대로, 싸이에  올려지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떤 영화나 책을 보고, 어디를 간다는 것이 정해진다. 다시 말해, 싸이의 이미지들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싸이의 이미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실제 생활양식을 바꾼다. 즉, 이미지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자기로서 ‘실현’된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아무리 자의적이고 미끄러진다고 해도, (그 기호를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기표는 기의를 반영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이제는 기의가 기표에 의해 '규정'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러나 소쉬르의 분석에 다시 주목하자. "기호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실체(지시대상)가 아니라,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차이)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고 싶고, 특별하고 싶다. 이 '차이화에 대한 욕망'을 적절히 이용한 것이 바로 블로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제 더 이상 근대적 주체를 생산해내기 위해 푸코의 '파놉티콘', 즉 가상 감시체를 설정하고, 감시의 시선을 자기의 시선으로 동일시하는 과정 또한 불필요하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감시하고, 통제하고, 조정한다. 그러므로 싸이월드에서 데카르트의 식상한 명제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렇게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회원가입한다. 미니홈피가 생긴다.
나는 프로필을 올린다. 방문자수가 올라간다.
나는 사진을 올린다. 퍼간다.
나는 일촌 신청을 한다. 일촌평을 단다.
나는 홈피관리를 한다. 방명록을 쓴다.
나는 싸이질을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족4. 최근 '디워'로 촉발되어 심형래를 선봉으로 이송희일, 진중권 등을 희생양으로 삼은 이번 사태. 이 민족주의적 광기를 단순히 찌질이들의 단순한 뻘짓으로 -나아가서는 사이버공간에의 파시즘의 도래로까지-치부하고 "즐쳐드셈"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자신의 블로그에 그렇게 써놓은 진중권교수의 반응은 십분 공감하고 지지한다. 나는 이런 아해들은 즐을 좀 처먹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대세를 업고 평론가의 자질 운운하면서 젠척하는 인간들이 더 짜증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인터넷에서 대한 분석은 필요하다. 사실 이런 식의 광기는 하루이틀일도 아니고, 계속 해서 다른 형태로 바뀌어가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이것을 단순히 찌찔이들! 이라며 무시하는 것은, 인터넷이란 공간을 일종의 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양태를 실체화하는 것이며, 이렇게 되면 인터넷이 가진 다른 가능성들을 스스로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자본주의에 관한 들뢰즈/가타리의 분석을 인터넷에서도 적용해보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즉, 인터넷을 자본주의 분열증적 요소로 분석하고 그 끊임없이 탈영토화하는 동시에 재영토화해야하는 매커니즘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들뢰즈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생각만 해볼뿐이다. 하긴 내가 뭘 제대로 공부했겠냐만은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