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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위기

  • 등록일
    2011/01/30 22:21
  • 수정일
    2011/01/31 17:32

요새 세상에 상태 좋기가 쉽지는 않지만...

요즘 유난히 힘들고 까칠하고 고단했다.

 

본래 겨울을 잘 견디고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이번 겨울은, 없는 사람에게 겨울이 얼마나 힘든 계절인지 뼈저리게 가르쳐 준다.

앞으로는 쉽게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긴 뭘 좋아한다는 것은, 워낙 힘든 것이긴 하지만...

 

지난 수요일, 집에 돌아가보니 보일러가 고장 나 있었다.

다행히 또(!!!) 언 것은 아니고 단순 고장이었지만...

또(!!!) 난방 안되는 추운 밤을 보내야만 했다.

 

다음날 진종일 수리기사를 기다려 보일러를 고치고 또(!!!) 거액을 썼다.

그러면서 나름 비장하게 결심했다.

 

사는 일로 불평하지 않겠다.

돈 없다고 조바심 내지 않겠다.

의연하게 생활인을 살아낼 것이다.

 

그랬더니 다음날 바로 하수도가 얼었던 것이다.

 

재환, 나비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조금 불평했다.

 

"하느님은 나만 미워해. 내가 어제 그런 결심을 했기로서니 바로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할 수가 있나?"

 

재환이 말했다.

 

"아니에요. 하느님은 골고루 미워하세요."

 

빵~ 터졌다.

하느님도 힘드시겠다.

골고루 미워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하여간 평등한 양반이다.

 

괜찮다,

괜찮다,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정말 힘들다.

 

간밤에는 집에 좀 다녀오려고 나서는데...

수리한 수도꼭지에서 다시 물이 떨어져 하수구에 다시 물이 흥건하였다.

양동이를 대 놓고 금방 다시 나올 심산으로 귀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고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 붙이고 나온다는 것이 늦고 말았다.

 

꿈을 꾸었다.

욕실 바닥을 찰랑찰랑 넘치는 물이 문턱을 넘쳐나와 전기콘센트로 달려갔다.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을 퍼내고 지저분한 채 있던 냄비며 컵을 마저 닦고 그 물까지 다 내다버리고 나니

피곤이 밀려왔다.

 

의자에 앉아 잠깐 졸았는데...

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꿈

물의 요정이 하수구에서 솟구쳐나와 약올리는 꿈

욕실에서 나오는데 사무실 바닥에 물이 흥건한 꿈

짧은 이미지 같은 꿈이 계속 이어졌다.

 

참 속도 좁고 겁도 많고 상상력까지 풍부한 인간이다.

 

수도는 다른 층에서 많이 사용하는 시간에는 안 새다가 사용이 줄어드는 밤이 되면 새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오늘 밤은 오마을에서 보낸다.

화장실이 걱정이지만 5분 거리에 훌륭한 지하철 화장실도 있고

신진대사 정지신공을 구사하고 있으니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겨울,

겨울보리는 겨울이 원망스럽다.

간절히, 간절히 봄을 기다린다.

 

이름을 봄보리로 바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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