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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6호, 96.2.16

 

의회선거투쟁의 전술원칙

1. 현시기 노동자가 의회선거와 제도정치공간에 참여해야 할 이유와 근거

1) 지자체 선거, 총선, 대선 등 주기적으로 열리는 선거공간과 입법·행정 활동을 수행하는 제도정치공간은 노동계급의 주요한, 또 하나의 투쟁 공간이다.

선거 및 제도정치공간은 우리 사회 주요 계급의 이해가 대립되고 조정되는 공간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이해를 옹호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의 대표부를 이 공간에 파견하고 투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거란 자본계급의 여러 분파들이 권력을 나눠가지는 '자본가들의 잔치판'에 지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여태껏 선거판에서 냉소적 구경꾼이었거나 무력한 '거수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지지할 정치세력이 없었기 때문이고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의 시도들이 왜곡·굴절되어왔거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기 노동계급의 선거투쟁과 제도정치공간에 대한 참여는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촉진하고 이를 앞당기는 유력한 계기로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2) 민주노총이 출범함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정치적 책임이 높아지고 자신의 조직력에 걸맞는 정치활동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미 민주노총 산하에 상설적인 정치위원회를 두고 총선과 대선에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를 모아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민주노조 조직발전 전망을 둘러싸고 전개되어왔던 논쟁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논쟁으로 급속히 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총 내부의 이러한 논의가 노동운동의 근본 목표를 훼손함이 없이 의회주의와 개량주의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시기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상과 경로를 정식화하고 총선 및 대선 대응 방침을 결정하는 일은 이제 미룰 수 없는 현실적 과제로 다가와 있다.

3) 개별 기업 차원의 경제적 단결을 넘어서는 선진노동자층의 정치적 단결과 현장 대중에 굳건히 뿌리내린 정치활동을 개척하고 활성화하는 과제가 요구되고 있다.

노조민주화와 민주노조 사수·재건투쟁을 거치면서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조합과 구별되는 현장 민주조직을 건설하고 아래로부터 민주노조를 강화하는 활동과 더불어 단위 노동조합이 수행하기 어려운 노동운동의 여러 영역들을 개척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상당 부분 여전히 노동조합 활동의 한 부분에 머물렀던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민주노총이 출범함으로써 선진노동자들은 이제 산별노조 건설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는 선진노동자들에게 단위 기업 차원의 민주노조운동을 뛰어넘는 계급적 시야를 요구하는 것이다. 자기 계급에 대한 대자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타계급·계층에 대한 자기 계급의 태도 즉 정치적 인식을 전제로 요구하며 선진노동자들의 정치적 단결(주체 형성)을 현실의 과제로 제기한다. 뿐만 아니라 '천만노동자의 단결에 의식적으로 복무하는 현장활동'은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와 타계급·계층의 이해가 맞부딪치는 지점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과 그 돌파의 대안에 근거한 활동을 요구한다. 이러한 활동은 '밖으로부터의 계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선진 부위가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노동운동의 근본 목표와 대안적 질서를 강령적 수위로 정식화하는 것, 동시에 이러한 이념적·조직적 기초 아래 노동자의 작업현장과 생활에 뿌리내린 정치활동을 조직하는 것.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변혁적 대중운동'이고 우리가 쟁취해야 할 정치활동의 상이다. 우리가 이 점을 명확히 했을 때 선거 및 의회투쟁은 '독점자본의 지배가 야기하는 우리 사회의 고통과 그 결과들을 전면적으로 폭로하고 그 원인들을 대중적으로 설득하며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전민중적 대안세력을 조직화하는 투쟁'으로 배치될 수 있을 것이다.

2. 현시기 선거투쟁과 의회투쟁의 전술원칙

1) 선거투쟁과 의회투쟁은 현시기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과제에 복무하고 이에 종속되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의회주의적 선거정당의 건설과 등치시키려는 우려할 만한 시도들이 최근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렇게 이해하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여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석확보가 지상의 목표로 대두되고 선거 역시도 또하나의 투쟁공간으로서가 아니라 표를 긁어모으기 위한 유일한 활동공간으로 절대화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선거 일정 중심으로 판단되고 정치활동을 보다 조직적인 선거운동과 의회 청원운동으로 점점 등치시키게 된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렇게 등치시키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는 한마디로 노동자 다수의 대중적 정치활동을 통해 노동계급이 전사회적 대안세력으로 등장하는 과정이며 정치세력화를 작업현장과 노동자들의 생활에 굳건히 뿌리내린 '노동의 정치'가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렇게 이해했을 때만 선거투쟁이 그 자체로 목적화되는 것이 아니라 전술적 계기로서 온전히 자리매김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선거투쟁의 목표는 당선이 아니다. 당선은 선거 투쟁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선거시기마다 난무하는 '현실론'에 따르면 선거의 목표는 두말할 나위없이 당선이다. 그러나 지난 과정들은 '가장 원칙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지 그역이 아니라는 점을 확정해왔다. 노동자 후보를 내세워 미래 삶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선동하고 이를 현장에 가져화 대중투쟁과 결합시키며 선거투쟁에 참여하는 선진노동자 대중을 새롭게 훈련시키는 일련의 과정 전체의 사후적 결과가 표로 확인되어왔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3) 선거 및 의회투쟁과 대중투쟁의 결합

96년 총선은 임투 직전에 치뤄진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 총선에도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제출될 것이다. 첫째, "임투 준비도 바쁜데 무슨 총선이냐? 현장이 어려운데 역량을 분산시킬 수 없다."는 입장과 둘째, "노동자 후보를 국회에 진출시키는 것이 임투 백번 하는 것보다 낫다. 총선에 집중하자."는 입장이 그것이다. 두가지 입장 전부가 임투와 총선투쟁을 대립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선거투쟁과 대중투쟁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결합되고 통일되야 한다. 더구나 96년 총선은 민주노총 차원의 노동자 후보를 선정하고 이 이름으로 선거에 결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총 내부에서 임투냐? 선거냐?라는 이분법적 논란이 가열될 소지가 많다. 따라서 민주노총 차원의 임투준비와 총선 대응이 균형감 있게 결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 정리가 대중투쟁으로부터 유리된 또다른 '양날개론'으로 경사되지 않도록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관건이다.

96년 총선은 노동자 밀집지역의 전략지구 한두군데를 정하여 전국적으로 역량을 총결집하는 양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독자후보전술을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전략지구의 총선투쟁에 전체 역량의 상당부분을 집중하고 지원해야 한다. (가칭) {민주노총 후보 000 전국 노동자 지원단}을 꾸리거나 노동자 후보의 선거투쟁과정 전반을 전국적으로 알려내는 등의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5·18특별법 제정으로 여야의 구분이 모호해질 이번 총선에서 이른바 민주대연합론은 자칫 YS개혁에 대한 비판적 지지냐 아니냐 하는 위험 천만한 구도로 빠져들 공산이 높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선거연합이든 그것이 노동계급의 입장을 정책적으로 반영할 정책연합 수준을 넘어서서는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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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39 2005/02/1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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