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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9호 96.3.15

 

'사상 없는 현장활동'을 극복하자!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책 읽는 활동가를 찾아 보기가 어렵다.

언제부턴가 현장에서 학습 소모임이 자취를 감췄고, '노동해방'이라는 구호가 사라진지 오래다.

정세가 변했으니 우리의 활동방식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을 뿐, 운동의 원칙을 다시 세워내고 이 원칙을 바탕으로 변화된 현실을 변혁하려는 움직임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많은 현장활동가들이 학습의 필요성을 얘기는 하지만 당장 부딪치는 현안들에 파묻혀 짬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둘째, 막상 현장에서 학습할 단위를 꾸린다고 하더라도 마땅한 교재나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셋째, 더 큰 문제는 노동운동의 근본 목표와 미래 대안 질서의 상(像)이 '현장활동의 원칙'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면서 예전의 신념이 점점 '불확실한 당위'쯤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사상 없는 현장활동'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첫째, 지난 9년 가까이 우리가 겪어 본대로 투철한 노동자사상과 자기 확신이 없는 활동은 오래 가지 않는다. 직권조인의 역사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는 가까운 경험들로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현장활동가 대오 내부의 경향성 대립을 사상의 분화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경향들간의 조직 분열로 속류화시킨다. '무엇을' 얘기하는가를 듣지 않고 '누가' 얘기하는가를 놓고 미리 예단하는 풍토는 '사상 없는 활동'의 가장 큰 폐해다.

셋째, 이론과 실천, 원칙과 현실의 분리는 노동자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이해를 대표해야 할 선진노동자를 자기 경험의 비좁은 테두리 안에 가두거나(경험주의) 눈 앞의 현안에 매몰되게 한다(실용주의).

긴 호흡, 바쁜 걸음

경험주의와 실용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노동자의 눈으로 세계와 미래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일상화해야 한다. 작업현장과 생활공간에서 강요되는 자본의 경쟁원리에 맞서 노동의 대안원리를 구체화하는 일은 경험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고 그것이 대중에게 설득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기본 훈련과 일상 학습이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의 일회성 강의 교육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노동조합 각급 회의나 현장조직 각 단위 회의 때 현안문제에 대한 토론만이 아니라 10분이라도 좋으니 계획을 세워서 시사 쟁점들을 꾸준히 토론해 보자. 가정생활, 육아문제, 세제문제, 환경문제, 건강문제, 교통문제 등등 우리가 다룰 수 있고 다뤄야 할 문제들은 무궁무진하다. 교안이 따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문 기사 몇 줄도 훌륭한 교안이 될 수 있다.

셋째, 노동운동의 근본 목표에 비추어 단결의 질을 사수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원칙의 실종보다 더 큰 손해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미래로부터 오늘을 바라볼 때만 당장의 사안들을 바쁜 걸음으로 대처하더라도 긴 호흡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노동자사상을 자기 삶과 운동의 무기로 벼려내기 위한 집단화된 노력과 기풍을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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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41 2005/02/1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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