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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치기 대통령'의 비극

[기고] 이명박-박근혜 10년은 '염병 공화국'이었다
2017.11.09 08:44:21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된 박근혜 씨가, 제1호 당원으로 이름을 올렸던 자유한국당에서까지 쫓겨나자, 곳곳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그는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돼 있으면서, '재판 거부'까지 이어가는 중이다. 자유한국당에서는 그녀의 제명을 놓고 여러 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쉽게 말해서 '당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볼멘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사유야 어찌 됐건 부모 모두 참혹한 죽음을 당한데 이어, 본인까지 가혹한 말로(末路)를 맞이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어서, 인간적으로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새삼 '천국'과 '지옥'을 오간 그의 일생을 살펴보며 '그가 평범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한마디로 그녀는 애당초 민주주의 한다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서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초적인 소양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녀가 남다른 유년기와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 교육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말하는 목소리들이다. 

때문에 '군사문화'나 '일사불란'이나 '불통' 앞에서 '공정', '대화'나 '존중', '설득' 따위는 맥을 못 추게 되어있다고,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이야기다. 원천적으로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를 구속해 재판대에 세운 기소장을 보면, 이런저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적혀 있으나, 요약하자면 그의 죄는 최순실 씨와 함께, 국민 속이며 나라를 요절낸 대목이 될 듯싶다.  

우리 헌법 제1조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밝히면서, 나라 주인이 바로 국민이라 강조하고 있다. 헌법이 그 국민의 주인 된 권한을 그저 위임해 주었을 뿐인데도, 그는 그 약속된 믿음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사건 결정문도 그가 '국민 신임을 배반'했다고 적시했다. 헌법에 따라 정당한 절차가 진행 중인 재판을 그녀가 보이콧하고 있는 것도 바로 '신임 배반' 차원의 작태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도 공정하거나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요즘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별난' 이야기들 대부분은, 바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정원이 벌인 지극히 온당치 못한 사연들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힘센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팔을 걷어붙이고 총대를 멘 이야기다. 

대선에 대비해 심리전단이 탈바꿈되고, 수천 명의 민간인 댓글부대가 꾸려졌다. 단순한 정부 업적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국민들의 뇌리에 특정 후보가 각인 되도록 속임수 여론을 조작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공작 조직이었다. 국가정보원 법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있으나, MB맨인 원세훈 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정원은 법을 초월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론조작 댓글 작업은 치열했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광장인 아고라까지 국정원 조직이 장악했던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토론 글의 절반 정도를 국정원 심리전단과 민간 댓글부대인 사이버 외곽 팀이 벌떼처럼 덤벼 도배질한 적도 있다고 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구실은 이른바 '좌티즌(좌익 네티즌) 척결 작업'이었으나, 포커스는 박근혜 대선 지원이었다. 이 정치 공작 댓글 작업은 국정원의 영향권 안에서 군의 사이버 사령부와 기무사에서도 맹렬히 이뤄졌다. 거의 모든 언론도 국정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았다. 국정원이 만든 한 방송사 대책문건에는 '공정보도 견제 활동 강화'라는 기막힌 대목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별도로 국정원은 박승춘 씨가 만든 국가 발전 미래교육협의회에도 거액을 대주며, 전국 각지의 예비군 정신 교육장에서 박근혜 찬가를 부르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DJ가 받은 노벨상을 취소해 달라고 노벨상위원회에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무불간섭(無不干涉)에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빼놓지 않고 해낸 셈이었다. 대공 업무를 다루게 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이 그랬다. 

국가정보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게 되어있다. 그런 국정원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 모르게 일을 벌였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때가 때였던지라 그 무렵 대통령은 원세훈 원장으로부터 소소한 것까지 '관심 사항'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는 결정적인 순간에 경찰의 '결정적 한 건(件)'이 있었다. 대선을 여드레 앞둔 2012년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여직원이 정치 댓글 작업을 하다 야당 측에 발각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정원의 조직적 댓글 공작은 쉬쉬하던 상태였다. 대선 판이 발칵 뒤집혔다. 내키지 않았으나,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선 불과 사흘 전인 12월 16일 경찰이 밤 11시 넘어 무슨 작전 하듯 황급히 한 장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대선 후보 관련 비방・지지 게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그때 경찰은 이미 국정원에 의한 조직적 댓글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대선을 코앞에 둔 그날 밤 경찰의 이 발표는 선거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진다.  

2013년 12월 19일, 대선 1년에 즈음하여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전국의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의미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만약 작년 대선 직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면 누구에게 투표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511명 중 81.8%의 응답자들은 '그래도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 했으나, 12,9%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리서치뷰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 답한 응답자 12.9%를 박근혜 후보의 득표 51.55%에 대입하면 6.65%가 되고, 이를 대선 득표율에 반영할 경우 박근혜 후보 득표율은 51.55%에서 44,9%로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9.02%에서 54,67%로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당락이 뒤바뀌는 결과가 된다. 

물론 '1년 뒤'의 '여론조사' 내용일 뿐이다. 허나 MB정권이 국정원과 검・경・군・언론 등을 총동원해 국민 속이기를 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적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대통령이 바꿔치기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바꿔치기 된 대통령은 박근혜 씨이고, 대통령을 바꿔치기 한 사람은 MB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MB는 왜 그런 끔찍한 일을 강행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MB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의 안전보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보도되고 있는 대로 국가정보원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가며 나쁜 짓을 이어갔다. 일부 '살아있는' 검사들에 의해 대선 댓글 작업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원세훈 전 원장을 기소했다는 이유로 괘씸죄를 적용해 검찰총장의 목을 쳤다. 문제의 대선 댓글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임박하자, 국정원은 허위서류 등을 비치한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만들어 놓는 기상천외의 사기극을 벌이기까지 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돈 좀 가져오라"고 하면 국정원 간부가 5만 원권 다발을 007가방에 채워 007 접선 공작하듯이 몰래 문고리 비서관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규정상 정당한 돈이 아니었다. 그게 다 우리가 낸 세금이었다. 흥청망청이었다.  

지난 1월 25일 구치소에서 특검에 조사를 받으러 오던 최순실 씨가 호송버스에서 내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입을 열더니, "자백을 강요받았다"에 "억울하다"고도 했다. 모두들 어이없어하던 그때, 한 60대 청소 아줌마가 작심한 듯 목청을 높여 최 씨를 꾸짖는다. "염병하네!"라고 악을 썼다. 그러지 않아도 국정농단 사건에 끙끙 앓으면서 억장이 무너져 내리던 많은 국민들이 통쾌하다며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사전에 보면 염병은 전염병의 준말이거나, 급성 전염 열병인 장티푸스를 이르는 말인 것으로 풀이돼있다. 실제로 최순실 씨가 그런 염병을 앓고 있어서 아줌마가 그렇게 소리 지른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느낄 때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라도 욕을 하면서 분을 삭인다. 그 무렵 이 나라 민초들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어쩌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줌마에게 '사이다 폭격을 감행해 준 우리들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보냈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너무 많은 '염병'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증오를 키워왔다. 예의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MB나 박근혜 씨에 대해서도 "염병하네"라는 욕설을 쏟아내고 싶어 하는 듯하다. 솔직한 눈빛들이 그렇다. 그래서 비극이다. 대통령 바꿔치기로 의심받는 온갖 여론 조작 작업도 두말할 나위 없이 '염병 활동'이었다. 종교계 학계 문화계 등 각계 '비협조적' 인사들에게 마구잡이로 좌빨(좌익 빨갱이) 딱지를 붙여댄 것도 '염병하는' 짓들이었다. 

특히 '공정보도를 견제'하기 위해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얼굴에 철판 깔고 날뛰던 사람들 역시 용서받지 못할 '염병 환자'들이었다. 그들의 반(反)헌법적 민주언론 파괴 작태를 감싸러 덤비는 바람잡이들 또한 염병하는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어찌 보면 최근 한 10년 가까이 이 나라는 '염병 공화국'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 '염병'을 치료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주의 복원과 마피아 시스템의 청산을 외쳐왔다. 민주주의가 복원되면 '염병'은 저절로 낫게 되어있다. '염병 없는 세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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