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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관의 '협박' 후, 난 해고됐다

[해직이야기③] YTN서 해고된 지 4년, 두려운 건 없지만

12.10.02 18:18l최종 업데이트 12.10.02 18:18l
우장균(hijk06)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비하한다고 확대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군대 생활이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뜻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방부 시계'는 자연의 법칙과 상식을 군대식 유머로 표현한 것이다.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지나간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국방부 시계처럼 MB정권의 시계도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 5년이면 자동적으로 멈추는 MB정권 시계가 어느덧 4년 반이 지나갔다. MB정권의 시계가 돌아가듯 해직기자의 시계 역시 거꾸로 매달아도 잘 돌아가고 있다. 오는 10월 6일은 YTN 기자 6명의 해직시계가 작동한 지 꼬박 4년이 되는 시점이다.

많은 분이 MB정권의 시계가 멈추면 해직기자의 시계도 멈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마 전두환 정권 때 비슷한 일이 있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언론인 수백 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신군부에 의해 해직되고 감옥에 갔던 언론인들은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나서야 방송사와 신문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YTN 해직기자들이 지난 2009년 11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해직·징계무효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구본홍 전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인 노조원에 대한 사측의 징계는 부당하므로 해고는 무효"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80년에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7년이 지나 언론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관용 덕분이 아니었다. 1987년 6·10 항쟁이 없었다면 그들은 7년 뒤에도 펜과 마이크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직선제 쟁취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넥타이 부대와 학생들이 없었다면 언론자유의 꽃은 피어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7년 스무 네 살 청년이 마흔 아홉 살 해직기자가 되어있다. 민주주의는 결국 시민의 힘으로 쟁취됐다. 그 후 직선제에 의해 뽑힌 대통령들도 모두 언론을 길들이려 했다. '당근과 채찍'으로 언론을 우군으로 만들려 했지만 언론의 숨통까지 조이는 대통령은 없었다. 80년대 같은 언론 탄압이 없으니 시민 모두 실체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대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 낙관했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 대통령 되다... YTN 비극의 시작

YTN사옥 사장실 앞에서 한 노조원이 머리를 벽에 기대어 생각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 유성호

어느 해인가 '부자 되세요'란 광고 카피가 최고의 덕담으로 온 나라를 휩쓸고 갔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는 국민 모두를 747 비행기에 태워 부자로 만들 수 있다고 공약했다. 그는 상대 후보를 5백만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대통령이 돼 청와대에 입성하던 2008년 2월 25일 나도 청와대로 갔다. 대통령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여 있는 춘추관이 나의 새로운 출입처였다. 성공한 샐러리맨은 성공한 경제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다. 그의 롤 모델은 박정희였다. 그는 가끔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기도 했다. 5·16 쿠데타 때 박정희가 썼던 것과 비슷했다.

박정희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탄압하면서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주의 숨통을 조이지 않고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없는 것일까? 박정희를 닮고 싶었던 그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이란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는 좀 억압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건설회사 경영하듯 나랏일을 하면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아는 사람만 기용했다. 언론은 그의 인사를 '고소영 내각'이라 평가했다. 장관과 청와대 수석만 '고소영 인사'가 아니었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과도 같은 언론사에도 '고소영 인사'를 내려 보냈다. YTN 사장에 낙하산으로 투하된 구본홍씨는 '고소영 인사'의 전형이었다. 구씨는 고대 출신으로 강남에 있는 교회를 다녔고 고향이 영남이었다. 젊은 기자들과 노동조합은 낙하산 고소영 인사가 언론사 사장으로 오는 것을 반대했다. 더구나 구씨는 대통령 후보 특보출신의 정치인이었다.

언론인들의 저항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청와대 비서관을 내세워 언론인들을 겁박했다. 청와대 비서관은 춘추관에 있는 나를 찾아와 그의 뜻을 전했다. "청와대는 구씨를 사퇴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비서관은 징계를 받아 월급을 받지 못하면 생활이 곤란할 것이라고 협박하며 계란으로 바위치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비서관의 경고대로 나는 곧바로 해고됐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4년 전 그 비서관이 대통령을 호가호위해 언론인들을 겁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의 겁박을 그대로 YTN 기자들에게 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MB 정권의 시계와 해직기자의 시계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이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사람은 해직기자의 시계가 1, 2년에 안에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정적도 아닌 언론인을 오랜 기간 해고시켜 봐야 민주주의 헌법하의 정권에 득이 될 것이 없었다.

건설 회사를 그렇게 경영했을까? 그의 주특기는 불리한 일이 발생하면 세상 탓으로 돌리며 시미치를 떼는 것이다. 참모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찰 때도 그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며 근거 없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언론사 파업과 언론인 해직 문제도 개별 사업장의 일로 치부하며 임기 내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잃을 것이 없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MB정권의 시계가 내년 2월 25일 멈춘다고 해직기자의 시계가 멈출 것이라 낙관하지 않는다. 지난 4년의 세월은 낙천주의자인 나에게도 섣부른 낙관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MB정권의 종언과 함께 해직기자의 시계가 멈추지 않는다 해도 두려울 것은 없다. 여기서 더 나빠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잃을 것이 없는 자는 두려울 것도 없다.

솔로몬은 부왕인 다윗의 반지에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으며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 승리의 순간에 이 글귀를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 글귀를 보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강물이 흘러가듯 시간도 지나간다. 자연의 법칙이며 상식이다. 솔로몬의 글귀를 마음속에 새겨 넣고 지난 4년을 보내지 않았지만 해직시계가 계속 돌아가고 있고 언젠가 멈출 것이란 상식을 믿고 지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지금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 멈춘다면 그만한 재앙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MB와 그의 측근들은 혹시 4년 전 시각으로 돌아가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지 않을까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우장균 YTN 해직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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