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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언급도 안 한 윤 대통령, 뭐가 두려운걸까?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05.18.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3년 연속 참석하면서도 대선 시기 약속했던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가 한 목소리로 이 문제에 힘을 모으겠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대통령의 기념사는 ‘경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 문제를 외면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의 정신이 깊이 뿌리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워냈지만,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시대적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며 “온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오월의 정신을 이 시대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광주의 희생과 눈물에 진심으로 보답하는 길”고 밝혔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이 불러온 계층 갈등, 날로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가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며 “정치적 자유는 확장됐지만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다”고 했다. 이어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켜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고 국민이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려야 한다”며 “성장의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고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여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번 5.18기념식 참석에서 대통령실이 강조하는 내용은 ‘3년 연속 기념식 참석’ 자체였다. 그 외에는 ‘경제성장’이라는 추상적인 키워드 외에 눈에 띄는 내용이 없었다. 5.18정신을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키는 논리였다. 

 

야권 대선 주자 시절 국립5·18민주묘지 열사묘역을 참배하는 윤석열 대통령(자료사진) ⓒ뉴시스


윤 대통령이 5.18 관련 입장이 주목을 받았던 때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였다. 그는 2021년 7월 17일 제헌절에 5.18민주묘지와 민족민주열사묘지를 참배한 뒤 “5·18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피로써 지켜낸 헌법 수호 항거”라고 평가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삽입하는 데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방문은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보수정당 대선 후보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5·18정신을 헌법에 넣는 것은 ‘개헌’이기 때문에 국민 전체가 동의해야 할 문제”라며 “이 때문에 제헌절에 5·18을 기리기 위해 광주를 찾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5.18기념식에 참석해 “앞으로 계속 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고 있지만, 정작 후보시절 공언했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서는 기념식에서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에는 기념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면서 5.18정신을 ‘색깔론’으로 연결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2대 국회 앞두고 여야 ‘5.18 헌법 수록’ 한목소리

이번 윤 대통령의 기념사가 주목된 이유는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물론 국민의힘도 ‘5.18 헌법 전문 수록’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18일 논평을 통해 “이제 더는 5·18민주화운동이 왜곡 당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기 위해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나서야 한다”며 “22대 국회 임기 중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여당이 전향적 자세로 논의에 응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 역시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의 5·18 폄훼와 왜곡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며 “그래야 다시 이 땅에서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남겼다.

조국혁신당도 논평을 내 “여야 모두,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야당의 모든 당대표들이 찬성한 일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이날 주목을 받은 건 국민의힘의 입장이었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5·18 정신은 더 이상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이 아닌 온전한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 돼야 한다”며 “여야간 초당적 협의를 기반으로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사실상 22대 국회에서 ‘5.18 헌법 전문 수록’을 반대하는 정당은 없는 상황인 셈이다. 때문에 대통령이 이번 기념식에서 구체적 실현방안이나 여야의 논의를 촉구하는 등을 언급해 이 문제를 ‘공식화’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던 것이다.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소속 시의원 8명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국립 5·18민주화운동 44주년 기념식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 중 5·18헌법전문수록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이런 기대는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기념식 중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소속 시의원 8명이 대통령 기념사 직전에 ‘518 헌법 전문 수록’이라는 문구를 한 글자 씩 담은 손피켓을 들어 시위를 하기도 했다. 피켓을 들고 있던 시의원들은 기념사가 끝나고 뒤를 돌아 참석한 시민들에게 인사했고,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슷한 내용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행사가 끝난 뒤 윤 대통령이 행사장을 떠나기 전 오월단체장들의 요구에 ‘잘 챙겨보겠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논의 피하고 싶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한다는 것은 ‘개헌’을 뜻한다. 즉, 이 문제를 현실화하자고 하는 순간 ‘개헌 논의’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5.18 정신 헌법 수록’을 대통령이 처음 언급한 때는 2007년이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기하면서 ‘5.18정신’을 함께 언급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하고 당선 이후 첫 5.18기념식에서 다시 약속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도 적극적으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5.18 헌법 전문 수록’은 개헌 이슈와 함께 해 온 것이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다시 ‘개헌’에 대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제7공화국 헌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변경하자고 주장했는데, 이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조 대표는 ‘5.18 헌법 전문 수록’도 함께 주장했다.

결국 ‘5.18 헌법 전문 수록’을 대통령이 공식화하려면 뒤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개헌’에 대한 입장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정치체제 변화’를 담은 개헌에 찬성할 것인지 아닌지, 자신의 임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기념식이 끝나고 나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당원과 함께 민주당이 합니다' 호남 컨퍼런스에서 “이번에는 반드시 5·18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함께 꼭 해내자”라고 밝혔다.

만약, 윤 대통령이 이 문제에 진심이라면 ‘원포인트 개헌’ 제안을 할 수도 있다. 실제 원포인트 개헌 주장은 계속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결국, 윤 대통령은 ‘5.18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커진 시점에 그에 대한 언급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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