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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가는 북한... 한반도 우발적 전쟁을 막을 방법

[정욱식의 진짜안보] 윤석열 이후 한국의 선택, 비핵화 내려놓고 비핵지대 공론화해야

25.01.17 16:53최종 업데이트 25.01.17 16:53

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많은 사람들은 대화와 평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한 피트 헤그세스가 지난 14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모습.AP/연합뉴스

'한반도 정세의 판이 바뀌고 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1월 14-15일에 걸쳐 진행된 2기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고위직 지명자들의 인사 청문회 보도를 보면서 더욱 강하게 든 생각이다. 청문회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연합뉴스>의 지적처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 등 외교안보 분야 3인방 중 누구도 '한반도 비핵화'를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할 정책 목표로 거론하지 않았다.

심지어 헤그세스는 조선(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칭했다. 곧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도 대선 기간 내내 비핵화는 입에 올리지 않고 "핵보유국 지도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를 포기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긴장 완화와 군비통제 쪽으로 방점이 찍힐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루비오는 "우리가 남북한, 어쩌면 일본,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을 포함하는 우발적 전쟁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북아에서 전쟁 예방을 위한 긴장 완화가 대북정책의 핵심 기조가 될 것임을 예고해 주는 대목이다.

동시에 그는 "다른 나라들이 각자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도록 자극하지 않으면서 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라고 자문한 뒤 "이것이 우리가 찾는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의 자체 핵무장론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이들 나라의 핵무장론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핵 군비통제를 추구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핵화를 앞세운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조선의 핵 능력이 비약적으로 강해졌고 이것이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을 강화시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청문회에서 나온 루비오의 발언 가운데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어떤 제재도 북핵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핵 개발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도 못 막았다"라며 대북 제재의 한계를 명확히 짚은 것이다. 이는 민주당 상원의원인 브라이언 샤츠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왔는데, 샤츠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라고 했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환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CVID에 근거해 제재 위주의 대북정책을 추구했던 것에 대해 비판적 인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판은 바뀌고 있는데

지난 2024년 9월 23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측 대성동 마을 태극기와 북측 기정동 마을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연합뉴스

기실 판은 이미 바뀌고 있었다. 비핵화도 협상 의제로 삼으면서 대미 관계 정상화를 최대 목표로 삼았던 조선은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2019년이 지나면서 기존의 목표를 접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외교는 중국·러시아 중심으로 삼겠다'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조선의 핵무장을 사실상 묵인해 왔고, 러시아는 북핵을 사실상 인정했다.

심지어 일본조차도 조선과의 정상회담을 타진하면서 비핵화 요구 수위를 크게 낮춰왔다. 이 와중에 돌아온 트럼프 진영은 물론이고, 의회에서도 비핵화를 '죽은 단어'처럼 취급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정책에서 '비핵화'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에서도 이러한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미국 내 여러 싱크탱크와 전문가들도 비핵화보다는 군비통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윤석열 이후 한국'의 선택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어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차기 정부의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거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입구'나 '중간 단계'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비핵화 달성은 물론이고 협상조차도 불가능해진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특히 '선 비핵화' 노선을 고수할수록 북미대화 국면에서 소외될 공산도 커진다.

둘째는 비핵화를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히면서 이를 '출구' 쪽에 두고는 우선은 긴장완화와 군비통제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2기 트럼프도 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여러 전문가들도 이러한 주문을 하고 있는 만큼, 차기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움직일 공산은 크다. 다만 이러한 입장은 비핵화는 끝났다는 조선의 입장과 여전히 거리가 멀어 비핵화라는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또 조선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하는 것이라는 반발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끝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접근을 도모하는 것이다. 30년째 실패를 반복해 온 비핵화 대신에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를 핵 문제 해법으로 삼는 것이 그 골자에 해당된다. 나는 이 선택이 여러모로 유의미하다고 본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에는 '합의된 정의'가 없었고 이것이 협상에 실패한 핵심적인 요인이었던 반면에, 비핵지대에는 명확한 정의가 있다. 해당 지역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공식 핵보유국들이 해당 지역의 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으며,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국제법적으로 약속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비핵지대는 비핵화 불가론을 외치고 있는 조선에 생각해볼 여지를 줄 수 있다. 조선이 과거에 주창했던 '조선반도 비핵화'와 친화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재를 앞세운 '압박을 통한 비핵화'가 실패한 만큼, '공감을 통한 비핵지대'를 도모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

물론 한반도 핵문제 해법의 방식으로 비핵지대를 추구한다고 해서 이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또 하나의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지금까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었다면, 앞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통한 비핵지대 실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이자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쓴 책으로는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등이 있다.

#트럼프 #비핵화 #비핵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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