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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당원을 배반한 국회의장 후보 결정

[정조준66] 국민과 당원을 배반한 국회의장 후보 결정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5/1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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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과 당원을 배반했다

 

16일 민주당 국회 당선인 총회에서 예상을 깨고 우원식 의원이 89표를 얻어 80표를 얻은 추미애 당선인을 누르고 국회의장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 결과는 국민과 민주당 당원을 배반한 것입니다. 

 

미디어토마토가 4월 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장 선호도에서 추 당선인이 40.3%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로 정성호 의원 6.0%, 조정식 의원 5.9%, 우 의원 4.7% 등이 나왔습니다. 추미애:우원식의 비율이 대략 9:1 정도로 나온 것입니다. 민주당 지지층만 놓고 보면 추미애 70.6%, 우원식 3.7%로 비율을 따지면 대략 19:1 정도로 더 벌어집니다. 다른 여론조사들도 대체로 추 당선자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습니다. 

 

6:4, 7:3이 뒤집어지면 배반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운데 9:1, 19:1이 뒤집어지면 이건 명백한 배반이고 배신입니다.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선출 결과는 앞으로 민주당이 22대 국회를 국민, 당원의 마음과 다르게 운영할 수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혁신공천이라 여기고 새로 당선된 의원들은 21대 의원들과 달리 국민과 당원의 뜻을 잘 받들어 실천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가 허망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은 국민이 압박하고 견인해야 할 대상임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지도력 문제?

 

13일 자 한겨레 기사 「민주 국회의장 후보, ‘친명’ 아닌 추미애로 정리되나」는 “국회의장 후보 경선(16일)을 나흘 앞둔 12일 친이재명계의 조정식(6선)·정성호(5선) 의원이 잇달아 후보직에서 물러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의중이 또렷해졌다. 이른바 ‘명심’이 ‘원조 친명’ 측근이 아닌 개혁성과 당심을 앞세운 추미애 6선 당선자를 향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명심’은 추 당선인이었던 것입니다. 

 

기사는 특히 친명계 핵심인 박찬대 원내대표가 조정식, 정성호 의원을 만나 “당의 주인인 당원이 뽑은 국회의원이 당원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라며 불출마를 종용하는 등 ‘교통 정리’를 했다고 전하면서 ‘명심’은 추 당선인이 확실하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명심’이 추 당선인이었는데 ‘명심’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지금이 이 대표의 권위와 당내 장악력이 제일 강력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이 대표 뜻대로 일이 안 되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에게 실망하고 질려서 이 대표에게 희망을 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을 ‘이재명 민주당’으로 만들면 좋아질 거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당원과 국민이 총선에서 이재명 민주당을 만들어줬는데 정작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이 대표의 생각과 별도로 움직인다? 그러면 이재명 민주당을 향한 지지자들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변심?

 

이 대표가 추 당선인을 밀다가 나중에 우 의원으로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습니다. 

 

추 당선인은 13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대표가 ‘잘해주시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다른 후보들한테는 그렇게 안 했다”라며 이 대표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우 의원도 같은 방송에 나와 “이재명 대표가 ‘국회는 단호하게 싸워야 하지만 한편으로 안정감 있게 성과를 내야 된다는 점에서 우원식 형님이 딱 적격이죠’라고 말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얼핏 모순되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이 대표에게 직접 들었다고 했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틀 사이에 이 대표가 추 당선인에서 우 의원으로 지지 후보를 바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럴 개연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와 추 당선인은 대선후보 경선에 나와 경쟁했습니다. 이 대표에게 추 당선인은 대선후보급 경쟁 상대입니다. 반면 우 의원은 대선후보급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또 이 대표는 그간 추 당선인보다 상대적으로 ‘고구마’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래서 추 당선인이 국회의장이 되면 이 대표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대표가 불안해할 요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 의원은 오랫동안 이 대표와 호흡을 맞춰온 순응형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대표의 마음에 안정감을 줬을 수 있습니다. 우 의원도 이런 면을 친명 쪽으로 꾸준히 설득해서 이 대표의 마음을 바꿨을 수 있습니다. 

 

이변의 가능성은 이재명이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국회의장 후보 선출의 이변 가능성은 처음부터 이 대표가 만들었습니다. 

 

원래 국회의장은 관례에 따라 원내 1당의 최다선, 최고 연장자인 추 당선인이 국회의장으로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친명계 조정식 의원이 관례를 깼습니다. 조 의원은 “‘명심’은 나다. 이재명 대표와 당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라며 국회의장에 도전했습니다. 조 의원이 이 대표와 상의 없이 단독으로 나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마 이 대표는 처음에 추 당선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조정식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만들려고 했던 듯합니다. 

 

조 의원이 출마하자 ‘추대’라는 관례가 깨지고 ‘경선’을 하게 됐으며 경선 공간이 열리자 정성호 의원, 우원식 의원도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이 대표는 9일 병원 입원 직전 추 당선인과 여러 측근에게 “국회의장 선거 과열이 걱정된다. 순리대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순리’대로 추 당선인을 추대하는 방향으로 몰아갔으면 우 의원도 출마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 대표가 ‘선거 과열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정치인도 절대화하면 안 된다

 

국민과 당원이 추 당선인의 국회의장 도전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것은 전 정권 시기 법무부장관으로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격렬하게 싸운 ‘추-윤 갈등’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추 당선인은 2020년 1월 법무부장관에 취임하자 곧바로 검찰 인사를 단행해 윤석열 총장 측근을 좌천시켰고 그해 말 윤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에 회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추 당선인만큼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강경하게 대처한 민주당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윤 총장의 기세에 겁을 먹고 추미애 장관을 도와주지 않았고 오히려 사퇴 압박을 넣어 내리눌렀습니다. 

 

국민은 윤 대통령에게 당한 피해자이면서도 잘 싸운 추 당선인이 국회의장이 되어 윤 대통령을 제압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무도하게 행사할 때 국회의장이 나서서 무력화시키는 통쾌한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국민이 추 당선인을 원한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추 당선인이나 우 의원이나 본질을 보면 민주당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추 당선인은 “협치가 아닌 민치”를 선택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의 과거 경력을 보면 ‘민치’에 부합하는 행동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을 사퇴하라고 압박했을 때 추 당선인은 끝까지 사퇴를 거부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국민은 윤 총장과 끝까지 싸우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추 당선인이 끝까지 사퇴를 거부했다면 문 전 대통령은 사퇴 압력을 거두든, 해임하든 선택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 성향상 자기가 직접 해임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사퇴 요구를 거뒀을 것입니다. 그렇게 국민 뜻을 받드는 ‘민치’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은 당시 ‘민치’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와서 추 당선인은 당시 문 전 대통령이 요구해서 사퇴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당시 국민이 원하는 대로 버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성이 없습니다. 자기 부족함은 없고 문 전 대통령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만 이야기합니다. 

 

물론 추 당선인이 개혁적이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추 당선인은 민주당 내에서 손꼽히는 개혁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이 가진 한계도 잘 봐야 합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마찬가지지만 추 당선인도 절대화해서 보면 안 됩니다. 추 당선인도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국민이 직접 압박, 견인해야 하는 정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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