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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올림픽이 ‘퍼주기’가 아니라 경제를 위한 투자인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1/23 10:38
  • 수정일
    2018/01/23 10:3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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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8-01-22 18:53:53
수정 2018-01-23 08: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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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서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이라고 부르고, 다른 한 쪽에서는 ‘평양 올림픽’이라고 부른다. ‘평화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평화가 우리의 가치라고 믿는 듯하고, ‘평양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북한을 물리쳐야 할 주적이라고 믿는 듯하다.

평화든 대결이든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신념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믿는 것은 신념의 자유에 속한다. 그래서 아무리 논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기 일쑤다. 종교가 다른 사람끼리 “내가 믿는 신이 더 옳아!”라고 싸워봐야 결론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문제를 경제학의 영역으로 끌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화와 대립 중 무엇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주제는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이다. 가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하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발군의 견해를 남긴 경제학자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19년 열린 파리평화회의에 영국 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주인공이다. 케인즈는 파리평화회의가 평화의 유지가 아니라 독일을 압살하는 보복적 방식으로 결론을 맺자 실망한 채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 만에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명저를 남겼다.

감정의 배설이 낳은 경제적 몰락

 

당시 상황은 이랬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은 파리에 모여 이른바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것을 체결했다. 회의를 주도한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이었다. 자국 국민 140만 명과 74만 명의 목숨을 각각 잃은 프랑스와 영국은 이를 갈고 있었다.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는 “유럽 내전은 반복적 또는 최소한 한 번은 더 일어날 일이니, 아예 독일이 다시 힘을 기르지 못하도록 죽여 놓자”고 주장했다. 총선을 앞둔 영국의 로이드 조지 총리 역시 원수 독일을 박살내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독일을 향한 초강경책에 동의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경제를 파탄을 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연합국이 책정한 전쟁 배상금은 무려 1320억 마르크, 요즘으로 치면 300조 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이 거금을 갚을 기간은 고작 10년이 주어졌다.

6·25공동선언 남측위원회 관계자들이 평창·평화올림픽 실현을 기원하고 있다.
6·25공동선언 남측위원회 관계자들이 평창·평화올림픽 실현을 기원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300조 원을 10년 안에 갚으려면 독일 국민들은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런데 연합국은 독일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시 독일이 유일하게 외화를 벌 수 있는 방법은 철과 석탄을 수출하는 것이었는데 연합국은 독일이 무역할 수 있는 배 자체를 전부 압류해버렸다.

그리고 연합국은 배상금을 석탄 현물로 갚으라고 강요했다. 유일한 돈벌이 수단인 석탄마저 현물로 날린 독일 경제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독일 정부는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그 때문에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이 독일에서 벌어졌다. 1918년 0.5마르크면 살 수 있었던 빵 한 덩이의 가격이 1923년 무려 1000억 마르크(오타가 아니다)로 올랐다. 1달러를 얻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독일 돈은 무려 4조 마르크(역시 오타가 아니다)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감정 배설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원수 독일 경제를 박살내야 한다는 그들의 목표도 달성했다. 그런데 그 대립의 이데올로기가 경제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독일 경제가 박살이 나면서 이웃한 프랑스와 유럽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촉발된 대공황이 유럽을 덮쳤다. 경제적 파국을 맞은 독일은 히틀러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잠시잠깐 독일을 파멸시켰다는 감정의 배설에 성공했지만, 수 천 배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케인즈의 견해와 평화 올림픽의 가치

케인즈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감정을 잠깐 접어두고 냉정하게 경제적 현실을 직시하자”고 주장했다. 만약 독일을 거덜 내서 망하게 하면 독일 혼자 망하지 않는다는 게 케인즈의 예측이었다. 당시에도 유럽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공동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한 곳이 망하면 반드시 경제적 여파가 이웃나라로 번지게 된다는 것이 케인즈의 시각이었다.

그래서 케인즈는 이렇게 주장했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고려를 방해하고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인간은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들고 서로를 빈곤하게 만들 방법을 고안해낸다. 개인적 행복보다 집단적 증오를 더 선호한다.”

무엇이 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야 이 원수들아!”라고 감정을 배설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생각해보자. 북한이 망하면 한국 경제에 이익일까, 손해일까?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 공동체였던 남북한의 관계를 생각하면 북한이 몰락하면 한국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북한이 고립될수록 우리가 물어야 하는 국방비 부담이 늘어나고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 무역을 하는데 비용이 높아진다.

그래서 남북 평화를 위해 드는 비용은 ‘북한에 퍼주는 돈’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경제를 위한 투자다. 북한 대표단 체류비이건 뭐건, 그 돈이 들어 남북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경제적으로 무조건 남는 장사라는 이야기다. 당장 평화 올림픽이 실현되면 국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진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막대하다.

케인즈는 100년 전에 “카르타고 식 평화(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압살하는 방식으로 유지하려는 평화)는 지금 유럽의 모든 자원과 용기, 이상주의가 서로 힘을 합해 맞서야 할 위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북한 놈들 물러가라!”라는 감정 배설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자원과 용기, 이상주의가 서로 힘을 합해 맞서야 할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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