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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통곡하던 403명 제주4·3 영령들의 외침 “내 이름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4/04 08:47
  • 수정일
    2018/04/04 08:47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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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심 광화문서 펼쳐진 ‘403 퍼포먼스’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04-03 20:26:53
수정 2018-04-03 20: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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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4월3일 3시45분경. 매연을 뿜으며 분주히 오가는 차량과 수많은 행인들이 지나가는 서울의 중심 광화문. 느닷없이 먼지를 뒤집어 쓴 403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있던 시신처럼 회색 먼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여 있었다. 몸 구석구석엔 총·칼의 흔적인 붉은 동백꽃이 선명했다.

오후 4시3분, ‘땡그랑 땡그랑’ 종소리가 울렸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쓰러져 있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유롭지 못해 굳어버린 몸을 움직이듯 삐걱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감겼던 눈도 떴다. 무채색의 얼굴 사이에서 살아있는 눈동자가 움직였다. 귀를 만지며 당황스러운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점차 들려오기라도 하듯.

그리곤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 어… 어.” 70여년전 광복과 대한민국 수립, 한국전쟁 전후로 무참히 쓰러져간 제주4·3 영령의 목소리였다. “제주는 빨갱이 섬”이라고 교육받고 제주로 파견된 서북청년단과 군·경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이들이 깨어나는 모습이었다. 7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영령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구슬픈 ‘아기동백꽃의 노래’

이날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03명의 연극배우와 무용수, 일반인 등과 함께 ‘403 퍼포먼스’를 펼쳤다. 퍼포먼스에 앞서 제주4.3 범국민위는 70여년만에 처음 광화문에 차려진 제주4.3분향소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선후 제주4.3 범국민위 홍보기획위위원장은 “광화문이라는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70년 세월 동안 짓눌려 얘기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표출하고 분출하는 움직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4.3 평화공원에 가면 백비가 있다.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비”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제주4.3’이라는 이름 뒤에 어떤 말을 붙여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항쟁인가, 사건인가, 폭동인가 라는 주제로 70년이란 논쟁의 세월을 지내왔어요. 그래서 자기 이름을 부를 수 있고, 명명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4.3을 외치려는 이유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과 교보문고 앞, 광화문역에서 걸어 나온 제주4.3 영령들은 세월호 광장과 수많은 차량들이 지나는 신호등을 지나 광화문 중앙으로 점차점차 모였다. 이순신 동상 뒷모습과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수많은 광화문 빌딩을 배경으로 해치마당에 군집한 영령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광화문 중앙광장을 향했다. 1947 3월1일 ‘통일 독립’을 꿈꾸며 제주북국민학교에 모였던 3만여명의 군중처럼 그들은 한발씩 내딛었다. 70년 전과 세상은 변해 있었다. 어린아이를 치어 다치게 한 뒤 아랑곳 않았던 기마경찰은 없었고, 반발하는 군민을 향해 총을 발포하는 경찰도 없었다.

해치광장을 지나 세종대왕상 앞에 다다르자, 구슬픈 음악소리(애기동백꽃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멈춰 선 영령들은 자리에 앉아 노래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애기동백꽃의 노래

산에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리면
들판에 붉게 붉게 꽃이 핀다네
남 마중 나갔던 계집아이가
타다타다 붉은 꽃 되었다더라

님그리던 마음도 봄꽃이 되어
하얗게 님의 품에 안기었구나
우리 누이 같은 꽃 애기동백꽃
봄이 오면 푸르게 태어나거라

붉은 애기 동백꽃 붉은 진달래
다 같은 우리나라 곱디 고운 꽃
남이나 북이나 동이나 서나
한 핏줄 한 겨레 싸우지 마라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2절쯤 노래가사가 흘러나왔을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에 귀를 기울이던 영령들이 하나 둘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양쪽 볼에 두껍게 내려앉은 회색먼지 위로 흘러내린 눈물 자국이 그려졌다. 그 앞에선 세 명의 영령이 70년 만에 상봉한 듯 서로 끌어 앉고 울었다. 그러던 중 한 영령이 외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문! 형! 근!” 반복적으로 외치는 영령의 목소리 뒤로, 또 다른 영령이 외쳤다. “내 이름은! 유! 아! 람!”

찢어질 듯 광장의 소음을 깨고 튀어나온 외침은 어느새 수백 명의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70년 세월 짓눌렸던 감정을 토해내는 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뒤흔들었다. 영령들은 입고 있던 회색의 먼지가 가득한 옷들도 벗어 재꼈다.

“평생 내색 한 번 안 하고 살았어요”

영령들은 사물놀이와 함께 흰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천을 머리에 이고 흥겹게 움직이며 다시 중앙광장을 향했다. 그렇게 다다른 중앙광장엔 제주4.3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앙상한 뼈대에 붕대를 휘감은 모양의 분향소에는 1만4천여명의 제주4.3 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영령들은 회색 옷가지들을 분향소 앞에 마련된 하얀 무대 위에 놓아두고 차례로 분향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분향소 안에 마련된 영령들 사진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분향을 마치고 나오자 먼저 끝마친 이들이 격려했다. 영령의 모습에서 다시 본래의 시민으로 돌아온 것이다. “수고했다” 말하며 박수치는 이들 사이로 회색먼지가 날렸다. 어느새 이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제주4.3 피해자 가족이기도 하지만, 평생 내색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403 퍼포먼스’ 참가자 오태균(59)씨는 말했다. “여전히 이데올로기로 분열돼 있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이 표현하고 공감하며 사는 게 아니라 배척하고 있는 모습이요. 그래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고, 화합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임했습니다.”

모두 분향을 마친 뒤 퍼포먼스 참여자들은 “와~” 소리 지르며 광화문을 향해 전력질주 했다. 남아있던 먼지가 모두 날아가도록 뛰었다. 자유롭게 달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70년 세월 동안 짓누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연 후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연 후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2018년 4월3일 403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광화문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2018년 4월3일 403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광화문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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