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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안산에 가다] 분향소 떠나는 아이들, 이 비극은 영결되는가

등록 :2018-04-16 07:12수정 :2018-04-16 11:15

 

1년 만에 다시 만난 안산의 가족들
상처 아물었다가 또 도지기도…

교문 옆 떡볶이집 아이들
생명은 저렇게 아름답구나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앞 모습. 단원고 학생들은 2014년 4월 15일 당시 이 길을 걸어 등교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앞 모습. 단원고 학생들은 2014년 4월 15일 당시 이 길을 걸어 등교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6일로 세월호 참사는 4주기를 맞는다. 이날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4년 만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이 열린다. 14일 오후에 안산의 가족들에게 식순이 통고되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 대표로 조사를,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이 대표추도사를 낭독한다. 불교,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종교의례를 집전하고 합창, 추도 편지글 낭독으로 이어진다. 관계자들은 4월 말쯤에 분향소 문을 닫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14일부터 유족들 일부는 분향소에 안치된 추억의 물품과 편지 들을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 참혹한 비극은 탈상(脫喪)되고 영결되는 것인가. 영결식은 ‘진상규명’을 절규하는 펼침막 아래서 거행된다. 분향소 안에서 어린 눈동자 수백 개가 지금도 사진틀 밖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학생들이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운동장을 걷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학생들이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운동장을 걷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6일의 영결식에 가족들은 아이들이 살았을 때의 반(班)별로 앉고, 반별로 헌화한다. 1반에서 10반까지다. 반 8개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정부 행사뿐 아니라 여러 모임, 거리집회, 분향소 당직까지도 가족들은 반별로 연락하고 교대한다. 아이들의 학급이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들에게서 재현되어왔다.

 

참사 이후, 교육청은 단원고등학교 교장과 교사 전원을 교체했고, 교실의 책상, 걸상, 칠판, 화장실, 출입문을 모두 바꾸었고, 학교 오른쪽 야산을 깎아서 5층짜리 체육관을 새로 지었다. 교사들은 이제 그날의 참사를 입에 담지 않는다.

 

교문 옆 편의점은 그때 그대로 있다. 쉬는 시간마다 남녀 학생들이 몰려나와 아이스크림, 떡볶이, 우유, 초콜릿을 사먹는다. 여학생들의 빨간 입술도 그때와 같다. 친한 아이들끼리는 립스틱 색깔도 같은데, 아마도 한 아이의 것을 함께 바르는 듯싶다. 여학생들은 짙은 색을 좋아한다. 립스틱은 거의가 쇼킹핑크나 크림슨레드다. 재잘거리며 떡볶이를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날의 참사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생명은 저렇게 아름답구나, 사람의 아들딸들은 저렇게 어여쁘구나, 라는 문장이 떠올라서 급히 메모했다.

 

일 년 만에, 다시 안산의 가족들을 두루 만나보았다. 상처는 아물기도 했고 아물었다가 다시 도지기도 했고 아주 돌이킬 수 없기도 했지만, 외부인들을 경계하던 가족들의 마음은 훨씬 풀어져 있었다. 동행한 <한겨레> 사진부 김성광 기자는 사진부 수습 시절부터 이 분향소에 취재 왔었는데, 가족들이 김 기자를 알아보고 “당신 이제 잘 찍는구먼, 수줍음도 없고. 수습 끝난 모양이지?”라고 말해서 다들 웃었다.

 

 

유족들 중 절반 이상이 ‘진상규명’이 안 된 상태에서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선거와 투표의 의미,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가르쳐주던 역사 선생님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살아남은 학생들은 호랑이띠(21살) 아니면 소띠(22살)인데,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 첫 투표를 하게 된다.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희생자들에게도 투표 통지서가 오고, 징병검사 통지서도 올 것이다. 천문학자, 파충류 연구가, 마술사, 요리사, 국어선생님, 간호사, 아기 돌봄이, 네일 아티스트, 소지섭의 아내가 되고 싶다던 꿈들과 이제 영결해야 한다.

 

그 4년 동안 가족들은 모여서 합창단을 만들고 연극단을 만들고 원예, 바느질, 목공일을 배우며 슬픔을 삭여왔다.

 

 

노래방 좋아하던 동영군의 어머니
4·16가족합창단서 알토 맡으며
남을 받쳐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고 김동영군의 어머니 이선자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김동영군의 어머니 이선자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4·16가족합창단은 유족이 12명이고 생존자 가족이 2명이다. 이들 중 부부가 3쌍이다. 어느 날 밥 먹는 자리에서 우연히 노래를 불렀는데, 재미있고 화음이 맞아서 합창단을 만들었다. 뜸북 뜸북 뜸북새(오빠생각)부터 연습해서 레퍼토리를 넓혀갔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음역을 모두 갖추었다. 여러 재난 현장, 농성장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최근에는 서울 지하철 강남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반올림)의 농성 천막에도 다녀왔다. 이날은 삼성증권 빌딩 앞 거리에서 노래했다. 고 김동영(2학년 6반)군의 어머니 이선자씨는 합창단에서 알토 음역이다.

 

합창을 시작하고 나서 알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알토는 소프라노나 테너처럼 화려하지 않고, 존재감이 약하다. 하지만 알토는 여러 음역들을 이어주고 그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해준다. 알토는 남을 받쳐준다. 나는 알토를 사랑한다”고 이선자씨는 말했다. (아 그렇구나! 소설가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나는 알토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았다.) 이선자씨는 안산시 와동에서 김밥집을 운영했다. 이선자씨 일가족은 외식하는 날에는 늘 식사를 마치고 네 가족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아빠는 트로트, 아이들은 발라드를 불렀는데, 김동영군은 기타를 치면서 김광석의 노래 ‘먼지가 되어’를 즐겨 불렀다.

 

 

세월호 희생자의 한 가족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직접 쓴 책 <그리운 너에게>를 읽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희생자의 한 가족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직접 쓴 책 <그리운 너에게>를 읽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이영만군의 어머니 이미경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이영만군의 어머니 이미경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이영만군의 어머니 이미경씨는 연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극단은 생존자 가족 1명, 유가족 7명인데 모두 여성들이다. 남성 역도 여성이 맡는다. 연극단을 결성하고 나서 민예총 안산지부에서 일하던 연출가의 지도를 받았고, 안산의 극단 ‘걸판’의 도움을 받았다. 첫번째 공연 제목은 <그와 그녀의 옷장>인데, 비정규직 중년 가장의 삶을 그린 1막 3장이다. 단원구 노인복지관에서 공연했다. 이미경씨는 이 연극에서 중년 남성 가장의 역할을 했다.

 

비정규직 가장 역을 하니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의 슬픔과 고통을 알게 되었다. 또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너, 아빠를 알아?’ 이런 무심한 듯한 한마디 대사에도 큰 슬픔이나 사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때, 행복하고 편안했다. 인간의 시선에 선의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이미경씨는 말했다.

 

관람 요금은 후불제다. 연극을 보고 나서 돌아갈 때 감동한 만큼의 액수를 모금함에 넣고 간다.(감동 후불제) 이 연극단은 지금까지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42회 공연했다.

 

 

“힘으론 안돼…기록으로 싸우겠다”
유튜브로 알리는 지성양의 아버지
직접 ‘아비의 노래’ 만들어 노래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연주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연주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문지성(2학년 1반)양의 시신은 유실되었다가 동거차도 어부 이옥령씨의 미역 다발에 걸려 올라왔다. 지성양의 시신은 얼굴이 없었다. 지성양 아버지 문종택씨는 그날부터 카메라를 들고 이 참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기록해서 보관하고 편집해서 유튜브로 송출해왔다.

 

주부단체가 바자회를 열고 그 수입금 400만 원으로 문종택씨에게 카메라 장비를 사주었다. 문종택씨는 서울에서 신문광고 업무에 종사했기 때문에 정보와 기록이 무기라는 것을 잘 알았다.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직접 작곡?작사한 ‘아비의 노래’ 악보를 보여주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직접 작곡?작사한 ‘아비의 노래’ 악보를 보여주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초기에 기록과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면 구렁텅이에 빠진다. 적폐의 나라에는 감추고 지우고 뭉개려는 자들이 우글거린다. 고함으로 싸울 수도 힘으로 싸울 수도 없다. 기록으로 싸우겠다”고 문씨는 말했다.

 

문씨의 컴퓨터는 최근에 바이러스 공격을 받아서, 참사 초기 1년간 찍은 자료 14테라가 증발했다. 2.5톤 트럭 서너 대 분량으로, 기록의 핵심부이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복원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누구의 소행인지 밝힐 수도 없었다. 문씨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고 말했다. 문씨는 가끔씩 4·16 가족들을 위해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유튜브로 송출되는 영상에도 자신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쓴다. 문씨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를 즐겨 부른다. 또 자신이 작사 작곡한 창작곡 ‘아비의 노래’를 이번 4주기에 발표할 예정이다. 문씨의 아내, 지성이 어머니 안명미씨도 합창단에서 노래한다. 노동과 노래, 사람들과의 어울림으로 슬픔을 추스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슬픔에 눌려서 일할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조문객 맞았던
민지양 아버지는 생업도 포기
“촛불시민들 왔을 때 가장 기뻐”

 

 

고 김민지양의 아버지 김내근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인근에서 꽃화분을 만들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김민지양의 아버지 김내근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인근에서 꽃화분을 만들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김민지(2학년 1반)양의 아버지 김내근씨는 참사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분향소를 지켰다. 많은 유족들이 진도, 동거차도, 청와대 앞, 국회, 한국방송(KBS)으로 몰려갔을 때 김내근씨는 분향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다. 김씨는 안산에서 종업원 7명을 데리고 의류제조업을 경영해왔다. 영세했지만 자영업자였다. 김씨는 민지가 젖먹이일 때 부인과 헤어졌고 혼자서 민지를 열일곱 살이 되도록 길렀다.

 

그렇게 길렀는데 민지가 없으니까 삶이 허망해서 생업을 버티어낼 힘이 없어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사업을 접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16일에 영결식을 하고 분향소도 없앤다니까, 이렇게 보내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김내근씨는 말했다. 그리고 또 한마디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고 나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분향소에 몰려와서 끌어안고 위로해줄 때가 지난 4년 동안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또래들 볼 때마다 아프고 저려…”
예슬이 이니셜 딴 가게 접은 어머니
새출발 다짐했지만 눈가에 눈물

 

고 박예슬양의 어머니 노현희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와 인터뷰 중에 눈물을 닦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고 박예슬양의 어머니 노현희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와 인터뷰 중에 눈물을 닦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고 박예슬(2학년 3반)양의 어머니 노현희씨는 안산에서 네일아트 가게를 20여 년간 운영해왔다. 가게 이름은 NY네일아트였다. N은 노현희, Y는 예슬이의 이니셜이다. 노현희씨의 월수입은 700만~8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참사 이후에도 마음을 추슬러서 계속 일을 해왔는데, 지난 1월에 가게를 닫았다.

 

예슬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찾아와서 손톱을 내밀고 꽃, 새, 나비, 배, 레이스 무늬, 펄, 반짝이를 그려달라고 하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또 일 때문에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슬퍼하는 사람을 향해 악담하고 저주하고 조롱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아, 이러다가 정말로 미치는 수가 있겠구나, 심장이 터질 수가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하면서 노현희씨는 울었다.

 

예슬이를 잃고 나서, 길에서 눈에 띄는 남의 집 아이들이 모두 예쁘고 아프고 저렸다. 나는 예슬이를 가난하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돈을 벌었는데, 이제 예슬이가 없으니까, 차라리 돈 벌지 말고 예슬이랑 많이 놀아주었더라면 후회가 덜할 텐데 싶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울어서 미안해요.”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4.16 단원고 기억교실에 놓인 추모노트에 고 박예슬양을 그리는 글이 적혀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4.16 단원고 기억교실에 놓인 추모노트에 고 박예슬양을 그리는 글이 적혀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예슬이는 엄마의 하이힐을 좋아했다. 예슬이는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엄마의 구두를 신고 멋진 포즈로 방 안을 걸어 다녔다. 예슬이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싶어 했다고 노현희씨는 말했다. 기억의 교실 안 예슬이의 책상 위에 예슬이 친구 혜정이가 편지를 써놓았다.

 

예슬아, 너의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나는 슬프다/ 김혜정”

 

노현희씨는 13일 분향소에 놓여 있는 예슬이의 물건을 집으로 가져갔다.

 

 

구조 직후 “진상규명 해줄거지”
아빠에게 제일 먼저 묻던 애진양

응급구조로 진로 바꾸고 새출발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학생인 장애진양이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동남보건대에서 응급구조학과 교육용 구급차 앞에 서서 미소짓고 있다. 수원/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학생인 장애진양이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동남보건대에서 응급구조학과 교육용 구급차 앞에 서서 미소짓고 있다. 수원/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장애진양은 그날 구명조끼를 입고 물로 뛰어내려서 구조되었다. 어선에 실려서 서거차도로 옮겨졌고, 거기서 응급구조사의 도움을 받았다. 애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좋아해서 유아교육과로 진학하려 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진로를 바꾸어서 응급구조학과를 택했다. 서거차도에서 구조된 후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 애진이는 대뜸 “아빠, 진상규명 해줄 거지”라고 말했다고 애진이 아빠 장동원씨는 말했다. 애진이는 최근에 안산소방서에서 실습했다. 애진이는 긴급출동 나갔다가 대원들과 함께 심폐소생으로 쓰러진 사람을 살려냈다. 애진이는 졸업 후에 소방공무원에 지망할 계획이다. 애진이 아빠 장동원씨는 4·16가족협의회에서 사무처 팀장을 맡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장애진양의 아버지 장동원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에 마련된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자료실’에서 보관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장애진양의 아버지 장동원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에 마련된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자료실’에서 보관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참사 초기에는 매일같이 골목골목에서 장례식이 열리고, 노제를 지내려는 장의차량이 학교 운동장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은 그 후배들이 아침마다 이 골목을 지나 학교에 간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5일 앞둔 11일 밤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가족들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함께 웃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4주기를 5일 앞둔 11일 밤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가족들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함께 웃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집을 팔고 재산을 정리해서 안산을 떠나버린 가족들도 있다. 간다는 말도 없이, 송별의 밥 한끼도 먹지 않고 그 가족들은 안산을 떠났다. 안산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의 빛깔은 취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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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0700.html?_fr=mt1#csidx016f3c3b51a0fff9f2862434358d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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