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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노동절, 공적 애도 가능성 짓밟힌 서글픈 대한민국

분향 가로막은 최루액·차벽…"슬퍼할 권리마저 뺏나"

[현장] 2013 노동절, 공적 애도 가능성 짓밟힌 서글픈 대한민국

최하얀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5-02 오전 12:30:06

 

 

평화롭게 끝나는 것으로 보였다. 노동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투쟁 구호를 외친 후, 바닥에 깔고 앉았던 각종 유인물을 주웠다. 쓰레기를 군데군데 모으며 기지개를 켜고 가방어깨에 멨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첫 노동절이었던 1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서울광장 앞 123주년 노동절 기념 대회는 이렇게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하나. 집회 참가자들은 24개의 영정을 들고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로 '함께' 가고자 했다. 노동절을 맞아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희생된 24명을 애도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4년간 힘든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애도와 위로는 '허락'되지 않았다. 서울광장에서 대한문 쪽으로 시위대가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길은 모두 경찰에 진즉부터 가로막혀 있었다. 경찰은 광장을 버스로 둘러싸고 있었다. "추모의 길을 내어달라"는 아우성폴리스라인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간절한 외침은 "여러분은 무단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습니다"라는 날카로운 경찰 방송으로 메아리가 돼 돌아왔다.
 

▲ 1일 123주년 노동절 집회 참가자들이 마지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무대 위로 주먹을 치켜든 쌍용자동차 해고자 고동민 씨가 보인다. 이날 서울광장에는 고동민 씨가 선 무대 위 고공 농성장을 포함해 총 3개의 고공 농성장이 임시로 세워졌으며, 골든브릿지 파업 노동자와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 등이 고공 농성 퍼포먼스를 벌였다 . ⓒ프레시안(최형락)
▲ 서울시청 옥상에서 바라본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결국, 평화는 깨졌다. 말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졌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직선의 최루액이 시위대의 눈과 입으로 난사됐다. 시위대 앞쪽에서 경찰 벽을 앞장서 밀어내고 있었던 젊은 참가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콜록이는 소리와 "물! 어디 물 없어요?" 소리가 뒤엉켰다. 마침 생수병을 들고 있었던 사람들은 최루액을 맞은 눈에 황급히 물을 쏟아부었다.

30여 분 동안 계속된 '길을 내어달라'는 요구에도 끝내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을 폭행한 사람은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서글픈 경고 방송만이 반복됐다. 대학생 김성우(23) 씨는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 기억하려는 행동마저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저들은 우리에게서 슬퍼할 권리마저 빼앗았다"고 말했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방송 차량 위에 올랐다. 잔뜩 화가 난 김 지부장은 "정녕 노동자는 다 죽이고 1퍼센트 재벌만을 위한 국가를 만들 것이냐"라며 "24명의 억울한 영령의 분향소를 저들은 무엇이 두려웠는지 파괴하고 침탈했다. 그렇게 두려우면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호통쳤다.

그는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나. 하루를 사는 것이 죽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매시간 느낀다"라며 "반드시 분향소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우리 노동자들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결국 '함께' 분향 가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어떻게든 분향소를 찾기로 하고 들고 있던 깃발을 내렸다.
 

▲ 방송 차량 위에 올라선 쌍용자동차 노조 김정우 지부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분향 행렬마저 막는가"

같은 시간 대한문 앞 새로 차려진 간이 분향소. 분향 행렬이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경찰은 이미 새카맣게 진을 치고 있었다.

경찰들 사이로 빨갛고 노란 꽃이 예쁘게 심어진 화단이 보였다. 지난달 4일, 1년 가깝게 시민들의 추모를 받던 분향소 천막을 강제 철거하고 중구청이 설치한 화단이다. 경찰은 성난 시위대로부터 알록달록한 꽃들의 안전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졌던 집회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대한문 앞에 나타났다. 마련된 국화를 하나씩 들고, 24개의 그림자 영정이 그려진 분향소에 절을 했다. 신발을 벗고 엎드린 사람들을 방패 뒤의 경찰들이 바라봤다. 분위기는 슬프다 못해 엄중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경기도에 사는 박봉규(34·가명) 씨는 "분향소가 철거됐다는 얘기만 뉴스로 전해 듣고 정작 찾아와 보지는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온 직장인 김성민(38) 씨는 "이렇게 험악한 분향소가 또 있겠나"라며 "노동절을 맞아 정부가 죽은 노동자들을 위로할 자리를 앞장서 마련해야 할 판국에, 이렇게 가로막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중한 분위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경찰이 지하철 종각역 2번 출구를 통해 분향소 쪽으로 오고 있던 행렬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분향 행렬은 더욱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과 분향 행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결국 참가자 한 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대한문 앞은 신고를 한 합법적인 집회 공간이다. 이렇게 경찰이 분향 행렬을 가로막는 것은 명백한 집회방해죄에 해당한다"고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 분향을 가로막는 경찰에 항의하던 추모객 한 명이 대한문 앞에서 연행될 뻔했으나, 참가자들의 항의로 경찰은 이 사람을 다시 풀어줬다. 하지만 플라자 호텔 앞에서 같은 이유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한 사람은 결국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우여곡절 끝에 통행은 '허락'됐다. 하지만 경찰은 끝내 대한문 앞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화단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의 끈질긴 감시와 통제 속에서, 700여 명의 추모객들은 서글픈 분향을 마치고 오후 9시께 자진 해산했다.

애도는 특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다. '정리해고'라는 사회 문제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 한국 사회가 그 건강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노동절은 우리 사회가 그 건강성을, 즉 공적인 애도를 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확인시키며 막을 내렸다. 이날로 평택 쌍용차 고공 농성이 시작된 지 벌써 163일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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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노동절 기념 대회 참가자들은 이날 노동자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각종 퍼포먼스를 벌이며 서울역 앞 광장에서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사진은 경남도의 일방적인 폐업 결정에 '병원 정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진주의료원 노동자들과 환자들을 상징하는 퍼포먼스 모습.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행진에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 공공 의료 강화 결의 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광장 한복판에 고객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서비스 노동자를 상징하는 마네킹이 세워졌다. 어깨에 두른 띠에는 "서비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장애인 참가단의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씨는 이날 "장애인에게 동정과 시혜가 아닌 권리를 달라"며 "장애인은 등급이 아닌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이들은 광화문 일대에서 254일째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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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2009년 정리해고 이후 네 번째 봄을 맞았다. 그 사이 24명의 동료가 이들을 아프게 떠났고 대한문 앞에 세웠던 분향소가 중구청과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 대선 기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공언한 국정 조사는 아직도 시행되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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