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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전환 선언한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대기업 광고 없는 독립언론, 독자가 먹여 살려야"

[인터뷰] 미디어 협동조합 전환 선언한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13.05.08 09:27l최종 업데이트 13.05.08 10:09l
유성호(hoyah35)

 

 

미디어 협동조합 전환을 선언한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언론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공기인데, 사회적 강자들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도록 '개미' 조합원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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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프레시안>이 문을 닫았다. 2001년, '관점이 있는 뉴스'라는 모토로 창간한 프레시안은 지난해 하반기,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큰 진통을 겪었다.

"왜 어려웠냐는 질문은 인터넷 신문한테는 하나마나 한 질문 아닌가"라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반문처럼, 프레시안의 어려움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수입의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광고매출과 직결되는 페이지뷰를 올리기 위해 '품위 있는 생존'을 포기해야 했다. 이는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이 처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프레시안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도 아닙니다.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기업을 고발해 오면서, 정작 <프레시안>에 근무하는 기자를 포함한 노동자는 장시간의 노동과 열악한 임금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시장의 논리대로라면 <프레시안>은 이미 한참 전에 없어져야 할 기업이었습니다. -<프레시안> 협동조합 전환 결의문 중에서'

지난 6일, 프레시안은 '주식회사' 시대를 마감하고 미디어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프레시안 메인 화면(http://www.pressian.com/)에는 협동조합 전환 결의문이 크게 걸려있다.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언론의 지배 구조를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새로운 언론을 꿈꾸는 독자, 필자, 기자가 협동조합 프레시안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함께 만들며 생명, 평화, 평등, 협동의 미래를 모색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프레시안의 주주들이 기꺼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했습니다.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생명, 평화, 평등, 협동의 가치를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개인, 공동체와 함께 새로운 길을 개척합니다. 지금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조합원 즉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어느 언론도 가지 않았던 길을 만들어 갑니다.'

<프레시안>이 '협동조합 시대'를 열던 날,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를 만났다. 1983년 경향신문에 입사한 박 대표는 국제부 차장, 미디어팀 팀장 등을 지냈다. <프레시안> 창간멤버인 그는 2003년부터 대표를 맡아왔다. 다음은 박인규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음수사원', 독립 언론은 누가 먹여 살리나"
 

프레시안 메인명에 협동조합 전환을 알리며 새 언론 역사의 주인이 되어달라는 문구가 배치되어 있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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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이 작년 말부터 어려웠다고 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나.
"알다시피 인터넷 신문은 안정적인 수입기반이 없다. 우리나라 언론이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수입원이 기업광고인데, 진보언론은 대기업 광고가 안 들어온다. 2007년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도 어떤 케이블 방송과 합작 이야기가 있다가 포기하고 2007년 12월 '프레시앙'(프레시안 후원회원)을 시작했다. 그걸로 조금 위기를 벗어났고, 네이버 뉴스캐스트로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러다 뉴스스탠드 도입되면서 다시 어려워진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하반기부터 저 혼자의 경영 능력으로 <프레시안<을 끌고 가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을 하면서 지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작년 말쯤, 어떤 기업에서 프레시안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주주들 사이에서 경영권은 그 쪽에 주고 편집권은 우리가 확보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진행됐다. 그런데 기자들이 반대했고, 우리가 외부 필진 비중이 높은데 그분들도 '그건 정체성의 심각한 훼손'이라고 하더라.

그러다가 제가 연말, 연초에 생각을 바꿨다. 우리 주주, 경영진들은 특정기업 매각, 합작 쪽으로 합의가 됐던 건데 기자와 외부 필진들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지난해 말 협동조합법이 시행되면서 협동조합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독자 생존의 길을 찾아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2~3월까지 굉장히 심도 깊은 토론, 논쟁이 있었다. 3월 말에 '한 번 해보자'고 결론이 났다."

- 언론인 출신으로서 10년 간 경영하면서 어려움이 많았겠다.
"경영 했다기에 참 부끄럽다. 경영진으로서는 무능했다. 2005년부터 경영담당 대표가 있었는데 한 5년쯤 하다가 힘들다고 나갔다. 우리나라 언론 생태계에서는 언론의 수준, 질과 언론의 상업적 성공이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언론으로서 정석을 지키지 않는 언론이라면 도태되어야 하는데 다 살아남으니까. 시장의 실패다."

- 인터넷 신문의 경우 매출 대부분이 광고이다 보니 방문자수,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종속되거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광고를 싣게 된다. 프레시안 협동조합 결의문에 나오는 표현처럼 '품위 있는 생존'이 어려운 것이다. 협동조합 모델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언론 생태계라는 게 독립적인 신문이 살아남기가 힘든 구조다. 결국은 언론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누가 먹여 살리나. 돈 내는 사람이 누구냐. '음수사원'이라는 말이 있다. 1970년대에 경향신문이 '청와대 신문'이었는데 관 홍보를 위한 기사가 나가고 하니까 기자들이 사장실에 가서 항의 농성을 했단다. 그러니까 사장이 사장실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면서, '자식들아, 음수사원인데…'. 음수사원이란,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너네 월급 누가 주는데, 청와대가 주는데, 어따 대고 까부냐' 이거지.

우리나라 언론이, 방송 빼고 신문의 수입원은 크게 두 가지다 독자들 구독료, 그리고 광고다. 프랑스 르몽드 같은 데는 구독료 수입이 60% 이상, 광고수입이 40%가 넘지 않게 해야 한단다. 대기업 같은 데 휘둘리지 말라는 거다. 유럽이나 일본이나 대다수는 구독료는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종이신문도 구독료 가지고는 (생존이) 안 된다. 언론이 광고에 흔들리다 보니까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언론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 언론이 살아남는 방법이 뭐냐. 독자들이 먹여 살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프레시앙'을 6~7년 해왔는데, 그것을 확대, 제도화 하는 방안이 협동조합이다."

"협동사회경제 발전에 역할도 하고 도움도 받았으면"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이사.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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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앙 모델과 협동조합 모델, 어떤 게 다른 건가.
"프레시앙이 후원 위주였다면, 협동조합이 되면 공식적으로 의결권을 갖게 된다. 협동조합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다. 저희는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이다. 생산자는 직원들, 소비자는 일반 독자들 그리고 협동조합으로 새로 태어나면서 참여하는 '엔젤(Angel) 출자자'들. 이 분들이 조합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거다. 기존의 프레시앙 회원 분들도 가급적 조합원이 되어 주셨으면 한다. 저희 직원들도 300만 원씩 출자한다. 독자들에게 프레시안의 주인이 되어 달라고 하면서 저희는 가만히 있으면 말이 안 되니까."

- '프레시앙'을 시작한 지 6~7년이 됐지만 현재 회원은 3000명 정도다. '협동조합은 다를까'라는 우려가 있다.
"지금까지 <프레시안>이 해온 언론활동에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도와주실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작년이 협동조합의 해였다. 이것을 정한 게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인 2009년도다. 자본주의의 변덕으로부터 협동조합이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제도권인 UN에서 인정을 했던 것이다. 주식회사가 아니라 협동조합으로 갈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경제, 고용친화적인 경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프레시안이 그런 협동사회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역할도 하고, 도움도 받았으면 한다."

- 언론지형이 진보, 보수. 이분법으로 나뉜 상황에서 생명, 평화, 평등, 협동을 가치로 내건 것이 인상적이다.
"저희가 냉정하게 반성을 하면, 처음 창간할 때 정파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하고자 했다. 깊이 있는 진단이 나올수록 불필요한 정파적 차이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반 이명박'이랄까, 어떤 스탠스, 정파성이 강해진 것처럼 보인 측면이 있다. 이러한 '반 이명박'이라는 기치가 사람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평가도 필요하다.

이명박 이후 <프레시안> 논조에 대해 반성을 하자면,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하고 분석하고 설득하기 보다는 너무 주장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저는 주장보다는 설득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명박 이후 진보운동이 어떻게 보면 반대를 위한 반대 비슷한 게 많았다. 협동조합이 되면, 좀 더 포지티브하고 생활에 밀착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공기 언론, 강자들 변덕에 흔들리지 않도록"

- <프레시안> 창간멤버다. 프레시안에 '관점 있는 뉴스'가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번에 내세우는 가치가 '생활 밀착 가치'라면 일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이야기를 단순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 친절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저희가 생각했던 건 민주화 이후에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가 박정희, 전두환 때처럼 일도양단으로 어느 한쪽에 100%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 의약분업 사태 났을 때, 많은 독자들 반응은 '누가 틀린 거야', '어떤 놈이 나쁜 놈이야', '의사가 나쁜 놈이야', '약사가 나쁜 놈이야'. 의사는 의사 몫의 정당성이 있고 이기심이 있다. 약사도 마찬가지다. 정부, 국민도. 다 얽혀있다. 누구 한 놈이 '나쁜 놈', '저놈만 때려잡으면 된다'. 그건 아니다. 현황에 대한 깊이 있는 진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 걸 하고 싶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전문가 분들의 진단이나 이런 것들이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도 싸우는 쪽, 항의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다 보니 자칫 구호가 앞서는 측면이 있었다.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가 나올 수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리해고가 없을 수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정리해고 때문에 희망버스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 해법이 정리해고 없는 세상일까. 굉장히 복잡한 거다. 어떤 정리해고가 정당한가부터 시작해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면 정리해고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부분에 대한 제도적이고 복합적인 인식이 필요한데 그동안 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해법을 요구한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그런 부분에 대해 우리 문제를 '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대다수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제대로 진단을 해야 한다. 그 부분을 위해서는 당파싸움보다 더 중요한 공동체적 관점이 필요하다."

- 편집국도 새로운 가치에 맞게 재편하는 것인가.
"이제 그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사실 협동조합 전환에 따른 진통이 컸다. 주식회사는 1주 1표인데, 협동조합은 1인 1표다. 그 부분에 대해 주주들이 기득권을 포기한 측면도 있고, 안 그래도 진보언론 하기 힘든데 안정적인 경제기반, 편집권만 보장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 분들도 계셨다. 의견들이 대립하면서 2~3개월 동안 힘을 좀 뺐다. 그러면서 협동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못했다.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제는 뛰면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웃음)."

- 한국 언론 생태계에서 <프레시안>의 생존 이유는 뭐라고 보나.
"언론으로서 정도를 지키려고 했다.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려고 했고, 언론이 우리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라면, 그런 노력을 하려고 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공기인데, 사회적 강자들의 변덕에 흔들리면 안 된다. '개미' 조합원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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