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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빈소에 흐르는 적막과 분노

[현장]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사망 노동자 고 김용균 씨 빈소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8-12-12 02:19:21
수정 2018-12-12 02: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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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밤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故 김용균 씨의 빈소
11일 밤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故 김용균 씨의 빈소ⓒ민중의소리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20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는, 11일 새벽 혼자 현장을 점검하다 사고를 당했고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 현장엔 동료도 CCTV도 없어,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정확히 알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사고 이후 몇 시간이나 지나 발견된 그의 시신은 참혹한 상태여서, 이를 발견한 동료들은 구급차도 부르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11일 밤 11시 경, 태안의료원 상례원(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김용균(24) 씨의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아직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 고인의 부모님과 동료들이 모여 비통한 심정을 나누고 있었다. 유족들의 탄식과 울음이 한 차례 지나간 자리에는 먹먹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한국서부발전, 한국발전기술 사측이 현장을 찾아 면담을 하려 했지만, 유족들의 거절로 만나지는 못했다. 이날 현장에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 관계자도 찾아왔지만, 유족들은 면담을 거절했다. 1년 전에도 이곳 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있었지만, 산자부 관계자가 온 것은 이번에 처음이라고 노조 측은 전했다.  

유족들은 11일 12시경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태안의료원을 찾았다. 공공운수노조 측은 김 씨의 부모님이 아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경찰서에 갔다가 아들이 머물던 기숙사를 보고 빈소로 다시 왔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김 씨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장례 준비를 하며 빈소에 머무르다 밤 11시 30분 경 안정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고 김용균 씨는 그의 부모에게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공공운수노조 측에 따르면, 아들의 참혹한 시신을 확인한 어머니는 “내 자식이 죽었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또 빈소에 들어왔던 사측 인사들에게는 “내 자식이 죽었는데 당신들도 가서 죽어라. 이 발전소에서 거의 1년에 한 명씩 죽었다던데, 내년에도 또 죽일거냐”며 분노를 표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활동에 참여한 故 김용균 씨.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활동에 참여한 故 김용균 씨.ⓒ기타

현장에서 만난 한국발전기술 관계자는 고인에 대해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다. 착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동료들도 모두 책임감 가지고 일하는 청년이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또 그는 “회사 대표님이 오후 3시에 빈소를 찾았으나 노조가 막아 제대로 유족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더러 오지 말라고 하는데, 사측도 유족과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나. 이번 사건은 몹시 안타깝다. 욕먹거나 혼나는 건 들을 수 있지만, 향후 대처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그 시간대에 우리가 유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측이 들어와서 함께 20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유족들께서는 노조와 상의한 이후에 다시 이야기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다”고 설명했다.  

밤 11시 경에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 김 씨가 소속된 하청기업 한국발전기술 대표가 모두 사측 관계자들과 빈소를 찾았다. 그러나 빈소 입구에서 노조 측에 막혀 들어가지 못했다.

사측이 “우리 대표들이 유족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노조 측은 “오늘은 만나지 말고 그냥 가시는게 좋겠다. 유족들이 몹시 힘들어 하시고, 이제서야 진정이 되었다”고 만류했다. 빈소 앞에서 10여분 간 실랑이가 이어졌고, 노조 측은 “그렇게 꼭 만나고 싶으시면 고인의 정확한 사망 원인, 사고방지 대책을 마련해서 오시는 게 도리 아니겠냐”고 따졌다. 

그럼에도 사측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자, 노조 측은 “사망사고가 나 작업 중지가 됐는데도, 노동자들에게 이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확인하지 않았냐? 조합원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이만 돌아가라”라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사측은 유족들과 만나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현장에서 고인과 함께 태안화력발전소에 근무하고 있는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를 만났다. 이 간사는 노조원들이 언성을 높인 사측 발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현재 태안화력발전소의 운전업무는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이, 정비업무는 한전산업개발이 맡아서 한다. 김 씨는 한국발전기술 소속이고, 이 간사는 한전산업개발 소속이다. 김 씨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은 태안화력발전소에 완전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사측이 언제 부분 작업 중지로 풀릴지 모른다며 정비를 맡고 있는 한전산업개발 직원들에게 이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이같은 사측의 행동을 접한 한 노조원은 자신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감정도 인정도 없는 현실이다”라고 비판하며 분노를 표했다고 한다.  

한편, 노조 측은 김 씨의 부검이 오는 13일 이루어질 예정이며, 빈소는 12일 오전 중에 차려진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은 김 씨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돌아가며 빈소를 지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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