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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집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집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우리 2013. 09. 01
조회수 166추천수 0
 

2009 유해동물 지정 뒤 먹이주기 금지로 개쳇수 관리, 실태조사 안해 증감 몰라

체감으로 감소 느낄 뿐…행사 때 방사와 높은 번식률이 폭발적 증가 불러

 

pi.jpg » 지난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비둘기 떼의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까치랑 참새는 가까이 와서 (떨어진 음식을) 먹던데 비둘기는 거의 못 봤어요.”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낙산공원의 낙산매점 주인 이아무개(54)씨가 가게 밖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가게에선 비둘기 모이를 팔지 않는다.

 

같은 날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매점에서도 비둘기 모이를 팔지 않았다. 청계천변 조류상가는 비둘기 모이를 팔고 있었지만 마술용 흰 비둘기를 키우는 마술사들이 주 소비자다.

 

거리의 비둘기에게 줄 모이를 사고파는 사람도, 심지어 비둘기도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떼지어 다니던 비둘기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몸길이 31~34㎝. 몸에 비해 머리가 작고 목은 가늘다. 부리는 굵으면서 짧고 부드럽다. 짧은 다리엔 총 4개의 붉은 발가락이 있다. 3개는 앞으로, 1개는 뒤로 나 있다. 발톱은 짧고 튼튼해 나무나 땅 위에서 생활하기에 알맞다. 깃은 부드러우나 빠지기 쉽고 깃의 빛깔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회색 바탕이다. 날개에 두 줄의 검은 띠가 있으나 검은색, 회색, 갈색, 흰색 등 깃털 색의 변이가 심하다. 목 부분은 초록색과 보라색 광택이 나며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
 

비둘기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닭둘기’라고 비하하는 이 새의 정식 이름은 집비둘기(Columba livia, 일명 ‘납빛 비둘기’). 조류도감에서 소개하듯 적고 나니 흔히 보던 비둘기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640px-Rock_pigeons_on_cliffs.jpg » 비둘기의 야생종은 절벽에 살았다. 도시로 왔다가 다시 야생화한 비둘기들이 절벽에 자리 잡았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비둘기는 인간의 요청으로 인간 옆에 살기 시작했다. 1만년 전 유럽에서 비둘기의 조상 격인 바위비둘기를 사육했다. 이 비둘기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면서 지금처럼 도시에 사는 야생 비둘기가 됐다.

 

평화와 희망의 상징인 비둘기는 국내에서 1960년대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 동원됐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각각 3000마리 방사했고 한강에 비둘기집을 지어주고 살게 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대통령배 고교야구 개막식, 한민족 체전 등 비둘기를 날려주는 행사가 모두 90차례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시행정의 결과 비둘기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둘기의 생태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과다 증식한 결과였다. 집비둘기는 다른 비둘기종에 비해 수컷의 정소가 크기 때문에 1회 사정당 더 많은 수의 정자를 배출해 번식성공률이 높다.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포식자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못한 비둘기는 짝을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유전적 다양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비둘기의 생김도 다양하다.

평균 2개의 알을 낳는 비둘기의 포란 기간은 20일 정도다. 포란 17일이 지나면 암수 모두 젖(crop milk)이 나와 새끼에게 먹이는데 젖이 새끼의 면역력을 높여준다.

 

한달이면 둥지를 떠나는 새끼는 생후 7주면 다른 성체와 어울릴 만큼 다 자란다. 선천적으로 비둘기는 뛰어난 번식력과 적응력을 타고났다.

비둘기는 한 둥지에서 오래 머물기를 즐긴다. 동굴이나 동굴처럼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건물 창문 틈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깔고 둥지를 만든다.

 

창문과 에어컨 실외기 사이, 다락의 바닥을 좋아한다. 비둘기의 일상은 먹이를 먹고 건물의 난간같이 공기가 잘 통하고 너른 공간에서 쉬는 것이다.
 

04424500_P_0.jpg » 비둘기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가시 철망을 설치한 모습.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사람에 대한 높은 친밀감과 서식지가 인간과 겹친다는 점이 비둘기에게는 불운의 시작이다. 정부는 비둘기를 2009년 6월1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고시했다. 배설물이 건물을 부식시키고 곡물을 훔쳐 먹는 등 도시경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관리지침이 지자체에 내려졌고 전국 공원에 있던 비둘기집이 하나둘씩 철거됐다. 퇴치제 이용, 그물 설치, 둥지와 알 제거, 포획과 살상 등이 가능해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쉴 곳과 먹이가 없어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의 생태를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다고 비판했다.
 

조류퇴치제 제조 및 판매 회사인 ㈜이지플렉스 황창영(45) 관리이사는 건물 옥상이나 주택가, 공공시설같이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조류퇴치 제품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고 말했다. 황 이사에 따르면, 요즘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은 냄새에 둔감해져 과수용 조류퇴치제인 스프레이(메틸안트라닐레이트: 포도에서 추출한 식물성 물질)만으로 퇴치하기 어렵다.

 

껌의 기초원료를 첨가해 만든 젤형 퇴치제를 주로 쓰는데, 친환경적이기는 하나 끈적이는 성분 때문에 조류 깃털에 달라붙어 새에게 불쾌감을 주고 비행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밖에도 비둘기가 앉지 못하게 건물 벽에 그물을 치거나 버드스파이크(뾰족한 침), 초음파 및 음향 퇴치기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종로 사거리의 한 건물 턱에 비둘기들이 모여 아래에 있는 건물 출입문이나 주변 노점상들에게 배설물을 떨어뜨린다 해서 건물 턱 바닥에 제품을 설치해준 적이 있어요. 서울역 대합실에서도 요청이 들어와요. 그런데 그렇게 사람 다니는 바닥까지 끈적끈적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비둘기가 그렇게 싫으면 그냥 문 닫고 사는 수밖에….”
 


강재훈-효창공원 비둘기s.jpg » 먹이 주기 규제의 효과일까, 대도시의 비둘기가 현저히 줄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비둘기 떼.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그 후 4년, 비둘기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환경부와 지자체에서는 수가 줄었을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실태조사는 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2010년부터 각 지자체에 매년 1월31일까지 개체수 조사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들어온 것은 2009년 서울시 자료가 유일하다.
 

환경부 자연보전국 자원생태과 담당자가 말했다. “안 들어오더라고요. 새니까 밀도조사를 해야 하는데 조사인원이 없는지 조사를 따로 안 하나봐요. 사실 시·군·구 단위에는 비둘기가 많이 없어요. 개량종이라 대도시에서만 사는데 2009년 이후 딱히 조사를 한 적이 없죠.”
 

2009년 3~4월에 걸쳐 조사요원들이 눈으로 확인해 정리한 서울시의 ‘집비둘기 서식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에 서식하는 비둘기는 총 3만5575마리, 자치구당 평균 1423마리였다. 예상보다 수가 적었다. 밀도조사 결과 1㎢당 98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공원(35), 교각(19), 주택·단지(16), 상가·빌딩(15), 하천(6), 학교(6), 사찰(1) 순서였다. 조사 결과 총평에는 개체수 조절보다 집단 서식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적혀 있다.

 

pi2.jpg » <한겨레> 2013년 8월31일치 15면

“동네 사람들이 똥 싸놓는다고 싫어하는데, 다리 하나 없는 비둘기가 불쌍해서. 난 동물 애호가야.”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아무개(74)씨가 집 앞 골목길에서 도정하지 않은 밀 한 주먹을 바닥에 뿌리며 말했다. 옆 집 지붕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 3마리가 날아들자 밀은 금세 사라졌다. 한씨 부부는 하루에 한두번씩 3마리의 비둘기 먹이를 1년째 챙기고 있다.
 

인간이 비둘기와 도시에서 공존하며 비둘기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먹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먹이를 주는 것은 지역 내에서 개체수를 늘리기 때문에 나중에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죽는 비둘기 수만 늘린다. 결국 비둘기를 학대하는 행동이다.

 

스위스 바젤의 먹이조절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먹이주지 말기 캠페인 결과 굶주린 비둘기 사이에 먹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번식성공률이 감소했다. 1988~1992년에 걸쳐 바젤시 전체 비둘기 수는 2만마리에서 1만마리로 줄었다. 비둘기 피해가 줄자 조류퇴치 비용도 감소했다.

환경부는 유해야생동물 지정 5년째인 2014년에 전국의 비둘기 개체수를 확인하는 용역조사를 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비둘기와의 공존에 성공했을까.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 혹시 공원, 광장, 거리에서 비둘기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하자 먹을 것이 없어진 비둘기들이 주택가와 상가로 몰려와 더욱 사람에게 의존적으로 변한 건 아닐까?

 

조류를 전공하는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최유성 박사후 연구원에게 비둘기가 예전만큼 안 보인다고 이유를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어느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생명이 유지되려면 번식을 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안전한 장소와 먹이가 필요하잖아요. 어쩌면 먹이가 많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고, 아예 개체수가 줄었을 수도 있겠네요.” 비둘기는 정말 줄었을까?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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