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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길은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함께했던 순례

수행길은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함께했던 순례

 
청전 스님 2013. 10. 06
조회수 432추천수 0
 

 

 

<청전 스님의 라닥 순례기, 마지막 일곱번째편>

 

 

멀지 않은 건너편 계곡에 이름 있는 헤미스 곰빠가 있다. 대중스님들은 마을에 행사에 모두 나가고 몇몇 스님들만 보인다. 이 큰 절에 많은 건물에 스님들이 없으니 아쉽다. 특히 오리정도 위쪽 산에는 무문관 수행으로 이름나 있는 괴창(독수리 둥지) 암자가 자리한다. 그날은 어찌 햇볕이 따가운지 올라가다가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방문을 취소했다.


<<헤미스 절 오르는 길에 오랜 불탑이 때맞춰 핀 유채꽃과 넘 아름답지요.
헌데 한쪽 귀퉁이 한 사람, 누구꽁? 잠 덜 머저리 지 교수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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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문지는 딱나 곰빠, 우리말로 하면 “호랑이 코 절”이란 뜻인데 지형이 꼭 호랑이 콧잔등에 자리해있는 모습에서 연유 한단다. 큰 절은 아니라도 깔끔한 절임을 당장 알아차린다. 노란 승복 입힌 네 살 아이인 아기스님을 극진하게 모시는데 이 절에서 돌아가신 딱나 린포체의 후신으로 밝혀진 아기 스님이다. 2008년에 92세로 입적 했고 2010년 히마찰 주 산간 고을 킬롱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며칠 후에 다시 이 절을 찾아갔는데 야크님이 준비한 팽이를 이 아기스님께 드리기 위한 방문이었다. 팽이를 돌려 바닥에 놓으니 빨간 불이 번쩍번쩍 하며 돌아가는데 어떤 아기라도 이런 장난감에 혹하지 않겠는가. 아기스님이 무척 좋아한다.

<<딱나 린포체 환생자로 밝혀진 아기 스님, 역쉬 똘똘하게 보입니다. 이제 3살 반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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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신도 분들이 아기 스님을 친견하러 들른다. 코가 땅에 닿게 극진하게 절을 올린다. 야크님이나 지 교수는 어린이에게 줄 갖가지 예쁜 선물꺼리를 많이도 챙겨왔다. 어디서라도 어린 아이들 만나면 한 개씩 빼어주니 그놈들은 그날 토정비결이 잘 빠진 날일게 틀림없다. 마토 곰빠와 공항 근처 스피톡 곰빠를 마지막으로 참배하며 바쁘고 지친 하루 일정을 마쳤다.

 


<<어느 절을 가든 마니 코르로(윤전대)를 돌리며 들어갑니다. 늘 바쁜 현대인에게 반박자 쉬는 좋은 전통이라고 봅니다.
그 회전통 안에는 경전 두루마리가 들어 있어 한바퀴 돌리면 경전 한번 읽는다는 소박한 티벳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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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쉬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이제 누브라 계곡을 넘는다. 우선 이 고개는 파키스탄 국경을 마주하기에 오가는 외국인에게 꼭 몇 차례 여권과 허가서를 확인 대조 해 보며 허가서 한 장을 떼어 간다. 대원들에겐 이 고개가 기네스북에 있는 차량 고개로써 세상 최고 높은 고개임을 알고 호기심 백배이다. 우리 백두산을 두 개나 얹어 놓은 해발 5606m이니 정말 높은 고개다. 이 한여름이라도 어쩌다가 악천후에 걸리면 눈으로 덮이기가 일쑤여서 몇 번은 눈 치울 때까지 기다려 넘었던 경험이 있다. 지루하게 오르다 보면 포장길에서 자갈길을 만나고 뽀얀 먼지 길을 얼마나 가다보면 정상이 나온다. 이미 먼저 온 관광 차량들이 빼곡하다. 대충 기념 촬영을 마치고는 바로 내려가는데 나에겐 이 길이 너무 지루하며 매년 왕복의 길이라서 더욱 그렇다.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풍광에 신이난다. 점심때가 되어 안면 있는 가게의 불을 빌려 우리 라면을 끓여먹는데 완전 포식이다.


<<시상에서 질 높은 고개라니 키념 촬영을. 우리 야크님이 팍 찍어뿟습니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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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끼 곰빠에 이른다.


<<꼭 포스트 카드: 엽서나 같습니다. 데끼 곰빠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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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에 이런 절이 있다니, 허긴 이런 험하고 힘든 삶 단조로운 생활에서 이런 종교의 의지처라도 있어야겠지. 몇 해 전에 라닥 트럭 불자 연합에서 세운 큰 미륵불상이 먼저 눈에 띈다. 절은 완전 벼랑에 붙어있는 제비집과 흡사하다. 왜 꼭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이런 벼랑을 이용하여 절터를 잡았을까 의심이다. 좀 더 아래쪽엔 얼마나 넓은 평지가 많은가. 한 노스님의 피부가 보기 민망할 정도로 몹시 심하게 번져가서 다람쌀라로 겨울에 나와 치료받도록 했다. 수술을 받아야 될 악성 종양이다. 세 스님이 나오시기로 했다.


<<곰빠에서 내려다 본 아랫 마을 풍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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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짜락사 곰빠만 참배하기로 했지만 뜻밖에 많은 주민들의 환영 행사로 꼼짝없이 점심을 대접 받고 예정에 없는 진료를 해야만 했다. 영양제가 부족 할 것 같아 비상수단으로 각 약병을 반으로 나눠 겨우 약이 바닥나지 않게 진료를 마쳤다. 가끔 대중없이 약을 쓰다가 약이 바닥나면 낭패를 본다.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다시 나오며 쌈땐링 곰빠를 들르다 보니 하루해가 다갔다. 이 절엔 젖소가 세 마리나 된다. 암소가 새끼를 낳아도 꼭 암 송아지를 낳아 이리 늘어난 것이다. 예정은 저쪽 파키스탄 국경 쪽을 구경삼아 가기로 했는데 수포로 돌아갔다. 이틀을 데끼 절에서 자게 되었다.



<<우리가 떠나옴을 배웅해 주시는 노시님(롭쌍 타르친 86세),
공부가 많으셔 근처 인도 군인들에게 정신훈화를 초청 받으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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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승 학교 선생스님이 잠자리며 먹는 문제를 어지간히 신경 써 보살펴주니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든다. 옛날 사 준 소가 올 봄에 죽어 나갔다하여 다시 젖소 한 마리를 사도록 보시금을 드렸다. 매년 라닥에 들어가면 젖소 몇 마리는 긴요하게 사드릴 수가 있는바, 알게 모르게 소문을 듣고 누군가가 눈먼 돈을 보내온다. 모르는 분들의 성금을 이런 의미 있는 보시 처에 쓸 수가 있음에 얼마나 보람이 되는가.
이튿날 지루한 그 길을 일찍 나서서 늦은 점심을 레에 나와 먹을 수가 있었다.

이제 계획된 빵공초 호수를 가는 일로 거의 일정이 마무리 된다.


<<샤추쿨 곰빠의 마을 주민들이 약을 받으러 모입니다. 한쪽에서는 안경도 맞춰드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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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받으러 오신 할배 한분, 백내장 환자네요. 그 누가 이런 극오지에서 인술을 베풀 의원은 없는지?
제가 수술쪽까지는 힘이 않닿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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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시원한 빵공초 호수. 해발 4500m의 높이에 자리한 호수라니.................
갈매기 한마리가 나르고 있어 운치가 있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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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가는 길목에 샤추쿨 곰빠가 있어 진료도 하며 하룻밤 묵기로 하니 일거양득이다. 어느 절을 가건 마을 주민들의 힘든 삶을 읽을 수가 있다. 이 절에서도 똑같다. 주민들의 모습에서 애잔한 감정이 인다. 어찌 이런 모습일까. 거기에 입고 있는 옷차림도 때 국물이 줄줄 흐르니 더욱 가상하다. 어쩔 건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으니, 그렇다고 뱁새 다리가 짧다고 황새 다리 만들어 줄 수 없지 않은가. 늘 잠자리에선 이 세상의 가난과 삶의 고(苦)를 떠올린다. 오후 늦게 호수로 나가니 의외의 관광객 차가 즐비하다. 물이 파랗기가 짝이 없다. 저쪽의 황토 빛 모래 산이 더욱 대비를 이루며 희한한 풍경을 자아낸다. 염호수다. 좀 작은 갈매기가 난다. 300Km나 길게 생긴 이 호수는 중국측과 인도측이 반반을 점유하며 가끔은 국경선 분쟁의 빌미를 만들기도 한다.


<<약 받으러 오신 주민들이 제 약 사용 설명을 귀담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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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자고 나오다가 야크 떼를 치는 유목민을 만나 몇 가지 약품과 마지막 남은 손톱깍기를 두 가족에게 하나씩 드리니 이제 남은 약이며 선물꺼리는 바닥이 났다.


<<우리 야크님이 야크와 함께, 아마 전상에 야크였나봐. 누가?
사진의 갈색 야크는 희귀종이지요. 얔캄바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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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와서 참배할 절이 남아있는데 레 근처의 유일한 닝마파 절로 닥톡 곰빠다. 티벳 불교 종조로 모시는 빠드마 삼바바(구루 린포체)의 시커먼 바위동굴 법당이 신비와 함께 큰 힘을 내품는다. 마스크 댄스가 닷새간 진행된다고 외국인 관광객이며 장사치와 함께 시끌벅적 하며 부산을 떤다. 참배를 못 한 마지막 틱쎄 곰빠, 라닥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 많은 스님들이며 커다란 법당 등등 사진에 많이 나오는 절이다. 몇몇 노스님들을 호명하니 거동이 불편하다며 당신 거처나 가까운 친인척 집에서 기거한단다. 티벳 불교 승가제도에서는 남방불교 제도와 같이 우리식의 상좌 개념이 없다. 출가하여 수계하고 스님이 될 때 스승이 정해지지 않는다. 모두 똑같이 일불제자(一佛弟子), 즉 부처님 제자일 뿐이다. 늙어 몸 거누기 어려울 땐 측근 제자가 있다면 그래도 나을 건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곳 전통과 관습이다. 부처님 경전에 보면 비구로써 제일 큰 공덕행이 무언가를 말씀하신다. 병들어 늙어 죽어가는 마지막 비구의 임종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왔다 해도 못 나오시는 노스님들, 바로 이것이 인생무상인 것이다. 영양제와 보시금을 따로 전해 달라하고 나올 땐 맘이 무겁다. 나도 곧 그리 되어 갈 거라는 지금 눈앞의 현실에.

지금까지 방문하고 진료한 곰빠 숫자를 세어보니 꼭 스물여덟 개의 절을 다녔다. 라마유루 곰빠를 떠나오며 왜 띡모강 곰빠를 놓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예정된 모든 절과 들를 곳을 놓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라닥을 떠나는 일이다.
운행 중 가끔 이상한 소리며 앞바퀴에서 뭔가 타는 냄새 등등 먼 길에 아무래도 불안하다. 직접 운전수를 데리고 차량 정비소에 가서 점검해보니 두 군데의 주요부품을 갈아야 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만약 가는 길에 주저앉는 꼴이 발생한다면 그 무인지경의 길에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내 여관에 들어가면 늘 어느 누군가가 나를 기다린다. 지금은 놀랍게도 어제 틱쎄 곰빠에서 못 만난 노스님들이 여섯 분이나 오셨다. 다들 한 가지씩 선물이라고 뭘 싸오셨다. 뭔가 챙겨드리는 것도 일이기는 하지만 이 노스님들과의 관계로 그냥 뭘 드리는 것으로 끝낼 그런 스님이 아니다.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늘 먹는 이쪽 음식이나 인도 음식이 아닌 스님들이 잡술 기회가 거의 없는 서양음식을 제안 했는데 모다 동의하신다. 내가 좋아하던 그 삐잣집에 가서 세 가지 음식을 두 개씩 시켜 두 상에서 나눠먹으니 필자로선 행복이기도 하다. 주로 치즈와 야채가 듬뿍 든 프랑스 요리였는데 희한케도 이 스님들은 순수 채식가였기 때문이다. 달걀이 들어간 빵도 안 드시니 신중하게 주문했고, 다행히도 한 점 남김없이 모두 맛나게 잡수신다. 마지막 여기서 직접 갈아 만든 과일 요쿠르트에 구색이 맞다. 내일 여기를 떠나는데 스님들이 딱 맞게 잘 오신 격이다. 기쁨이다. 필자로선 이런 자리가 그리 신나며 고맙다. 노인들이 별난 음식 오물오물 드시는 것만 봐도 행복이지 않은가. 몇 스님은 겨울 전에 다람쌀라로 나오신단다.


<<무려 열둘이나 모여 서양식 점심을, 제 앞자리 두 노시님: 이 두분 신님언 50년대 티벳에 간 유학파, 신진파 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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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 새벽 4시 기상에서부터 먼 길 갈 준비다.
늘 그렇지만 나갈 때는 우선 그 많던 짐이 없어져 홀가분하다. 일어나니 이 지방엔 여간해서 안 오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불안한 마음이다. 높은 고개를 세 개나 넘어야 목적지에 닿는다. 비 멈추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또 다른 지역을 들어가야 되는 약속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며, 빠리 스님과 두 신부님이 델리로 나가 각각 비행 스케쥴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큰 차들이 우리를 추월해 가는 것을 보고 높은 고개가 눈으로 막히지는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개 아래서 짜이도 없이 준비한 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타랑 라 고개로 5328m인데 사실 이 고개를 넘을 땐 고개 넘는 맛이 난다. 그만큼 장엄한 주위 풍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길은 운이 좋게도 얼마 전에 입힌 시컴한 새 포장도로라서 우리가 온다고 이리 했나보다며 흥을 돋구며 올랐다.


<<타랑라 정상에는 운무가 찐했지만 눈이 안쌓인게 행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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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려오며 차 안에서 찍은 풍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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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비조차 안내려 아침 근심은 기우로 끝나니 더욱 가벼운 운전길이다. 내림 길에서부터는 “팡”이란 끝없는 평지를 달린다. 걸릴게 없는 그런 평원이 있다니. 참 시원한 풍광이다. 더러 멋진 경치에서는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냥 갈 수 없는 곳에서는 잠깐 스토프 하고는 이런 사진을. 잠 모다 군기가 팍 들은 듯.............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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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고개 라추룽 라(5035m)를 넘으니 점심때에 계곡 물가에 간이 찻집이 있다. 이젠 먹을 것도 바닥이 나서 그냥 맛없는 인도 메기라면을 부탁할 수밖에, 많은 라면을 한꺼번에 끓이다보니 물이 부족 했는지 너무 오래 끓였는지 일행 모두가 속이 편치 않았다. 싸르추에 이르면 검문소가 있다. 라닥과 히말찰주 경계지역이다. 우리는 여권 보여주고 기록하며 쉽게 끝났는데, 라닥 차량 두 대 운전수들은 뭔가 불평이다. 알고보니 통과증을 만들어주며 불법인 이 백 루삐씩 뜯긴 것이다. 우리차야 어딜 가건 노란 영업용이 아닌 하얀 자가용 번호라 쉽게 다니지만 영업용 차량 운전수들은 주를 벗어 날 때마다에 애환이 있다. 하긴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썬글라스 낀 교통경찰 아저씨들이 애꿎은 화물차나 소형차 세워놓고 돈 뜯어내려고 닦달하던 그런 때가 있었지. 바라라차 라(4950m)를 넘으니 공기가 달라진다. 그 건조한 코피 터지는 마른 공기가 아닌 습한 공기 내음을 맡을 수가 있다. 문명권인 킬롱에 들어서니 주위가 온통 파란 나무와 초지다. 여기서부터는 우기철 몬순을 감지한다.

오늘 밤 자고나면 빠리스님과 두 신부님은 길이 다르다. 세분은 마날리로 나가 델리로 가야 한다. 프랑스와 그리이스로 날라 가는 일정에 맞춰야 된다. 이튿날 뜨거운 포옹으로 한 달여 생사고락을 서로 인정한다. 어찌된 인연으로 그 험한 길 고개를 함께 걷고 넘었다. 어설픈 음식을 받아놓고도 어떤 불편한 기색 없이, 또 항상 힘든 모습 내색 않고 여기까지 정확히 온 것이다. 저녁이면 이 얘기 저 얘기로 많은 말을 나눴다. 종교, 수행, 교리, 바른 삶, 사랑과 자비, 이 시대 성직자의 타락상 등등, 또 지나온 자기 수행을 길고 길게 얘기했다. 사실 이런 허심탄회의 자리는 쉽지 않은 기회다. 수행자의 신분이 달랐기에 수행길은 다르지만, 이번 순례길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각자의 인격을 존중 했다. 특히나 두 신부님은 매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무일과의 기도와 의식을 새벽과 잠자기 전에 거르지 않고 실천하는 모습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두 신부님의 일정이 이집트에서 갈린단다. 레오 신부님은 10월 말 경에 한국으로, 심 신부님은 의외의 계획 즉 미얀마 선원에 들어가 석 달 불교 안거를 마치고 내년 1월이나 한국행이란다.

 

이 시대에 이런 분을 누가 알아들을까, 누가 이런 벽 없는 수도자를 이해할까. 반면에 필자는 내적으로 가벼운 내 수행에 부끄러울 뿐이다. 신부님의 한 말씀을 이 자리에서 옮겨야 되겠다. “정의란 남의 것을 전부 돌려주는 것이며, 사랑이란 내 것을 전부 이웃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말씀에 가슴으로 동의한다. 어느 종교나 사랑과 자비를 외쳐왔건만 실천 없는 가식의 말장난에 위선의 극치였고, 지금도 성직자의 타락은 가지며 챙기는 자기 것이란 재물의 소유에 있지 않는가. 너무 많이 가지는 게 이 시대의 죄악이 아닌가. 자본주의의 모순이 어떻게 정리될지?


<<마지막 고개 로탕 패쓰를 넘으며 지천에 꽃이.................. 인제 우기 지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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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꽃밭이............... 일생 최고 최대의 꽃들판은 1996년 티벳 암도 유목민 마을에서. 3일을 달려도 꽃이 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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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우리 차안은 너무도 한가하다. 비좁은 찌프차에 늘 일곱이 앉다가 셋이 빠져나가 넷이서 한적한 자리를 만들고 이동하니 이리도 편할 수가. 원래 계획은 뀐좀 라(4992m) 고개 넘어 스피티로 가기로 했지만 길가다가 들으니 대형 산사태로 길이 없어져 두 달 후에나 가능 하단다. 별 수 없이 되돌아 나와 마날리, 나가르 거쳐, 초뻬마 참배하고 다람쌀라에 돌아오니 꼭 31일짜리 순례길이 되었다. 360도 삥 돌아 온 꼴이다. 마날리에서 나오면서 가까운 아는 절에 공양청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도 많은 약을 드렸다. 한 노 비구니 스님은 귀가 않들린다하여 며칠 후에 인편으로 보낼 수가 있었다. <아래 사진 참조>


<<마날리 근처 팡간 곰빠의 노 비구니 시님(82세). 어렸을 때 동진출가를 하셨답니다.
특징은 이 시님 귀가 울마 큰지 완조니 부첸님 귀, 귀가 얼굴 보담 더 큰거 아닙니까!!! ㅋ ㅋ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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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니 찐한 운무 속에 무서운 빗속이다.
그래도 어떤 불미스런 일 없이 무사히 올 수 있음에 그저 이번 길에 함께 한 우리 벗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릴뿐이다.
내년은 어떤 봉사의 길을 만들 것인가의 일 년 숙제로 남겨 놓고서. <<끝>>

 

 

 

<<후기>>

 

재미도 없었을 글 다 읽으시느라 애먹지는 않으셨남요?
저는 나름대로 지나온 시간을 되살려 글을 써봤습니다만, 원래 글쟁이가 아닌지라.....................
그리고 지금 이곳은 심한 우기라서 정전도 많고 인터넷이 많이 꺼지곤 합니다.
겨우겨우 정전 안되는 시간에 이렇게라도 글을 맺을수가 있어 다행입니다.
끝내 이 한달여 라닥 의료 봉사의 길에 이름없이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요.
또 젖소 공양이며, 약품, 안경, 옷가지, 양말, 털모자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자상한 도움 주신분들 그저 고맙습니다.
이제 또 내년을 서서히 준비 합니다. 하긴 일년 농사(?)가 그리 쉬운것은 아니니까요.
비구로써 불법승 삼보의 가피로 다 일이 이뤄지리라 믿고, 부족하지만 또 내년을 희망 합니다.
한가지, 9월 부터 라닥의 노시님덜이 꽤 많이 여기에 나오십니다.
혹독한 라닥의 겨울을 피하시는 인연에 겨울준비 잘 해둬야지요.
제기로 그분들이 실제로 불보살이니까요.
저는 10월 말 경에 한국 잠깐 들르구요, 맡아둔 숙제 해야 됩니다.
그 숙제란 근 3 년간 못간 우리 조선땅에서 절, 학교, 방송국 등등에서 법문과 강의을 해야 되는 숙제랍니다.

 

<< 이 글 읽으신 모든분들이 늘 조용한 행복의 나날이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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