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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다시, 2022년 10월 29일 밤 이태원으로 돌아가서

2022년 11월 3일, 경찰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통제하는 모습 (자료사진) ⓒ뉴스1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이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섰다. 159명 희생자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 발생 551일 만이다.

‘땅땅땅’ 법안의 상정을 알리는 국회의장의 의사봉 소리가 장내에 퍼지고, 가결이 확정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분 14초. 이 순간을 위해 유가족은 1년 6개월여를 안간힘을 다해 견뎌왔다. 이제 경찰도, 검찰도, 정부도 밝히지 못한, 혹은 찾아내지 않은 참사의 명확한 사실관계를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다룬다. 참사 발생 원인, 수습 과정, 후속 조치 등 참사 전반에 걸친 진상규명과 책임을 하나하나 밝혀내야 한다.

특조위는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다. 누구든 특조위의 활동에 외압을 행사하고 방해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유가족의 당부대로, 특별법 공포 직후 특조위 구성부터 운영까지 더 이상의 지체는 없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방해받는 과정을 목격했다. 세월호 참사는 특별조사위원회(2015년 3월~2016년 9월), 선체조사위원회(2017년 3월~2018년 8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2018년 12월~2022년 9월) 등 8년 동안 3개의 공적 조사 기구를 거쳤음에도 아직 ‘미완’의 진상조사에 머물러있다. 침몰 원인조차 결론 내지 못한, 순탄하지 않은 10년이었다.

세월호 참사 특조위는 위원 구성 단계부터 정치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의 권한과 조직 규모를 크게 축소해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을 강행했고, 인력과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2015년 11월 특조위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조사’에 관한 안건을 의결하려 하자, 이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당시 정부 고위인사들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첫걸음을 떼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유가족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태원 참사 유가족 그리고 많은 시민이 모인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의 구호도 “끝까지 진상규명”이었다. 더 이상의 기다림과 실망은 없어야 한다.

참사의 가장 큰 책임자인 국가는 ‘진실을 향한 걸음’에 어깃장을 놓을 명분이 없다. 국민의힘도 딴죽을 걸어서는 안 된다. 여야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재의결 절차를 밟으며, 합의 처리 조건으로 법안 일부 조항을 수정했다. 윤 대통령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해 온 ‘압수·수색 영장 청구의뢰’ 권한을 원안에서 삭제했다. 영장 청구의뢰권은 5·18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여러 조사위원회 관련 법안에도 있던 것이다. 그간 문제 된 적 없었지만 특별법 여야 합의 통과를 위해 유가족이 양보했다.

가족을 잃었는데 아무도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억울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는 유가족은 폭염의 날씨에 곡기를 끊는 단식투쟁을, 폭우 속에 삼보일배를, 한파가 닥친 날에는 오체투지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순간이 더 고통스러웠던 유가족은 온몸으로 진상규명을 호소했고, 특별법 통과를 이뤄냈다. 내일을 살아가는 딸과 아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지낼 수 있도록, 더 큰 사회적 손실과 비극을 막기 위해 앞장서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유가족이 권력과 싸우고, 눈물짓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눈과 비가 내리는 날 목숨 건 행진에 나서지 않고 보고 싶은 얼굴을 충분히 그리워할 수 있으면, 시린 마음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가족이 지켜낸 또 다른 하나, 서울광장의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오늘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바라보고 있는 영정사진 속 앳된 얼굴은 여전히 마음을 찌른다. 모든 넋이 모여 이제는 완전한 진실이 드러나길, 유가족의 몸이 더 문드러지기 전에 책임자가 처벌받길, 트라우마를 겪는 모든 이들이 치유의 순간을 마주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여야 합의 국회 통과 추모문화제에서 유가족들이 특별법이 담긴 서류를 영정사진 앞에 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05.02. ⓒ뉴스1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여야 합의 처리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5.02.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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