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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사건 가해자 폭로, 추가 예고까지…과연 피해자가 원할까?"

전문가들, 사적 제재 유튜버에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숙고해야"

이명선 기자/박상혁 기자 | 기사입력 2024.06.06. 03:59:45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근황이 일부 공개된 데 이어 추가 폭로가 예고된 가운데, 사적 제재 및 사건의 공론화 여부를 피해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가 지난 1일부터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근황을 전하면서 대중의 공분은 가해자와 그 주변을 향하고 있다. 처음 공개된 가해자의 경우 경북 청도군의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해당 식당의 건물이 불법 건축물이라는 사실이 불과 이틀 만에 드러나 식당은 휴업에 들어갔다. 또 다른 가해자는 김해의 한 외제차 전시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다음 날 자동차 회사의 SNS를 통해 공개 해고됐다.

<나락 보관소>는 지난 4일에는 "내 채널에서 나머지 42명에 대해서 전부 다룰 예정"이라며 "44명의 가해자는 계모임처럼 정기적으로 모임도 가지고 생활하고 있고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며 놀러 다니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예고했다.

사건 당시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던 가해자들이 <나락 보관소>의 신상 공개를 통해 여론의 뭇매를 맞는 데 대해 다수의 누리꾼은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20년 전 사건이 다시 회자되면서 피해자의 신상과 근황 등에도 관심이 쏠리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준영 변호사도 지난 5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분별한 신상 공개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3개의 글을 잇달아 올리며 "20년 전 사건이다. 다시 이 사건이 공론화되는 걸 피해자가 원할까?"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박 변호사는 "(가해자들의 근황을 공개한) 유튜버는 '저한테 사과하지 마시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세요'라고 꾸짖었다고 하는데, 피해자는 가해자들이 사과를 한다며 자신을 찾아오는 상황을 원할까?"라며 "(조사 과정에서) 비공개를 원했던 피해자는 한 건 한 건처럼 언론에 공개한 경찰에게 실망했다. 조회수와 구독자를 늘린 유튜버에게 같은 실망을 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박 변호사는 무분별한 신상 공개 문제와 생각해야 할 지점으로 △사건의 가해자가 오인됐을 경우 △피해자들이 '잊힐 권리' △ 가해자의 가족 역시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박 변호사는 밀양 사건의 가해자로 거론돼 신상이 유출됐다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무혐의 처리가 난 검찰수사 처분 기록을 올린 A씨를 언급하며 "그는 신상이 유출되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 억울한 일을 겪었지만 피해 여학생이 입은 상처가 크기 때문에 강간범이라는 신상이 떠도 무관심이 답이라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침묵을 택하는 것이 오해를 확산시키지 않는 대응일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또 2020년 'N번방 사건' 당시 처음 등장한 '디지털 교도소'(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사이트)에 '고려대학교 의대 성추행 사건' 가해자로 신상이 공개된 뒤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B씨, 가해자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성착취범으로 몰려 울분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린 C 교수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나락 보관소> 채널 운영자가 '밀양 사건 가해자들이 서로 제보하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경찰이 친구의 친구를 불러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은 학생들까지 경찰 버스에 실어 간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유튜버는 무슨 권한으로 이런 야비한 짓을 하는 건가? 우리 사회 이래도 되는 건가?"라고 각성을 촉구했다.

박 변호사는 다음으로, 경기도 안산시가 2020년 9월 11일 아동성폭행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고 '잊힐 권리'를 지켜달라"며 낸 입장문과 2004년 12월 9일 밀양 사건 피해자 가족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부터 피해자의 신상을 '비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인터뷰 내용을 올렸다. 그러면서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범죄의 잔혹성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될 뿐, 그의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과 이해를 위한 노력은 종종 생략된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 피해자를 바라보는 적정한 시선과 태도에 관하여, 김태경 교수>). 게다가 이렇게 이용되고 소비된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흉악 범죄자'로 불리는 고유정이 얼굴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이유가 "아들과 가족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가 2016년 5월 26일 '성폭력 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합헌'을 판단했으나, "죄 없는 가족들까지 함께 정신적 고통을 겪게 하거나 그 생활기반을 상실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소수의견 내용도 인용했다.

박 변호사는 "한 사건의 상처와 고통이 양상을 달리하며 계속 이어지게 하여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는 것보다는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변화로 봉합되게끔 노력하는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과거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유튜브 특정 계정이 나서서 사적 제재를 하는 방식으로 성폭력을 생중계 대상으로 만드는 데 우려를 표한다"면서 "성폭력은 제도적 방안 개선, 피해자 의사 존중, 권리 보장이 중요하다. 오래 전 사건을 끌어올릴 때에는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숙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한 사적 제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밀양 성폭행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분노를 샀던 '부산 돌려차기 사건' 또한 한 유튜버가 가해자 신상 정보를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한 찬반 여론은 반으로 나뉘었다.

지난해 6월 여론조사 업체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성인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의 30.4%가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된 것에 대해 '공개되면 다른 사람들이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으므로 '사적 제재'로서의 신상 공개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또 현재 적용되고 있는 사적 제재에 대해 전체 응답자 중 37.6%가 '국가 혹은 법이 충분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다면 개인(집단)의 형벌이 필요하다'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인(집단)이 형벌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33.1%, '국가와 법의 제재와는 별도로 개인(집단)의 형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12.5%, '상황에 따라 입장이 변할 것 같다(잘 모르겠다)'는 16.9%로, 뒤를 이었다.

해당 조사는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지난 2023년 6월 5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리얼리서치 앱을 이용한 모바일 조사로 진행했으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1.4%퍼센트다.

▲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한공주>(이수진 감독, 2013)의 한 장면. ⓒ리(里)공동체 영화사

이명선 기자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박상혁 기자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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