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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풍선은 '인도적'이라 괜찮고 북한 풍선은 치졸한 정전협정 위반?

풍선에 '이중잣대' 적용하는 정부…확성기 재개 등 보복 조치 가능성 열어둬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4.05.30. 11:58:10 최종수정 2024.05.30. 15:04:29

정부는 북한이 풍선을 이용해 남한에 쓰레기를 비롯한 물건을 투척한 데 대해 정전협정을 위반한 치졸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남한의 민간단체가 이미 북한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전단과 기타 물품을 포함한 풍선을 보낸 적 있어 북한 탓만 하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0일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있으며, 다시 한 번 북한의 반인륜적이고 저급·치졸한 정전협정 위반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우리 민간단체가 생필품을 포함하여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부양하고 있는데 북한군이 오물 풍선을 날리는 것은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며,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반인륜적이고 저급·치졸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풍선을 애초에 격추할 계획은 없었냐는 질문에 이 실장은 "풍선을 격추하게 되면 풍선이 떨어져서 낙하하는 힘에 의해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그 안에 위험물이 들어있을 수 있는데 그것이 확산되면 더 회수가 어려워지고, 또 북한 쪽에서부터 날아오고 있는데 그걸 격추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격을 하게 되면 우리 탄이 MDL(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월북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것이 또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합참에서는 상황 평가를 해서 낙하시켜 안전하게 회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대북 전단뿐만 아니라 확성기 방송 등 보복 차원에서 대북 심리전을 대대적으로 재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해 이 실장은 "우리 군은 항상 대비하고 준비는 되어 있다. 태세는 갖추고 있으나, 나머지 활동들에 대해서도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준비는 갖춰져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 뒀다.

정부가 남한 민간단체가 북한에 날리는 풍선은 인도적이고 북한이 날리는 풍선은 치졸하다며 성격을 다르게 규정했으나, 북한은 이전부터 전단에 대해 예민하게 대응해왔다. 풍선에 포함된 전단에서 북한 체제를 반대하는 메시지도 문제가 됐지만, 이 실장도 언급했듯 풍선 안에 위험물을 포함해 어떤 물질이 들어있을지 확인이 안되는 상황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안전의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은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남한 정부 차원에서 막으라고 여러 번 요구했지만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언급하며 사실상 방치했다. 때로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적용하면서 이를 막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에 북한은 2020년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며 강한 항의를 표출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20년 말 북한 지역으로 전단 등 살포를 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고 국회에서 해당 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이 개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기존 법률로 대북 전단 살포를 방지할 수 있음에도 추가적인 법률 제한으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해당 법률이 신설되기 전부터 남한 사회에서는 접경지역의 주민 안전과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두고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

2020년 당시 통일부는 해당 법률 조항 신설을 준비하면서 2016년 대법원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과 정당방위 및 긴급피난을 규정하는 민법 제761조 제2항에 따라 국가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는 판례를 도출한 점을 강조했다.

또 경찰관직무집행법을 통해 전단 살포를 제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기본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헌법 제37조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한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 법률이 헌법 위반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다만 이 조항에서는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 제한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법률 개정을 통해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견도 있어 왔다.

한편 북한 풍선과 관련 이성준 실장은 "북한군은 5월 28일부터 29일까지 북방한계선 이북의 다수 지역에서 다량의 대남 오물 풍선을 부양했다. 북한군이 살포한 대남 오물 풍선은 경기, 강원 및 수도권과 충남 계룡, 경남 거창 등 남부권역에 광범위하게 낙하했다"며 "풍선의 적재물에서 담배꽁초, 퇴비, 폐건전지, 폐천조각 등 각종 오염물질이 확인되었고 현재 관련 기관에서 이를 정밀 분석 중에 있으며, 현재까지 화생방 오염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 29일 오전 3시께 충남 계룡시 두마면의 한 도로에서 북한이 날려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풍선이 발견돼 군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사진은 현장에서 발견된 풍선 물체. ⓒ연합뉴스

이재호 기자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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