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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하이 서울' 말고 '얼씨구절씨구 서울' 어때요?

[리울 김형태의 교육 이야기] <14> 서울시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

김형태 서울시교육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17 오전 10:58:47

 

 

23년 만에 다시 뜻깊은 공휴일로 지정된 567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교육의원인 필자는 서울시의회 72명의 동료 의원들과 함께 '서울특별시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안(국어조례)'을 공동 발의하였다. 최다 의원 공동 발의다. 한글(훈민정음)은 우리 겨레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이미 그 독창성과 과학성과 실용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민간은 물론 서울시와 같은 공공기관에서조차 외국어, 외래어와 영문 약어, 영어식 행정용어, 사업명이 무분별하게 남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국어조례'는 서울특별시와 그 산하 공공기관 구성원들에게 올바른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 공문서 등을 작성할 때 어문규범에 맞게 쉬운 우리 말투를 사용함으로 서울시민에게 올바른 국어 사용의 본보기를 보이며, 국어를 지키고 빛내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 서울시민의 언어와 삶의 질을 높이고, 국어 등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 "오늘부터 '스크린 도어'에서 '안전문'으로 바뀝니다" 박원순 시장과 간담회를 끝내고 시청역으로 함께 내려가, 한글 사랑 동아리 회원들과 승강장 안내 방송 변경을 기념하는 작은 행사를 했다. 이제는 '스크린도어'가 '안전문'으로 바뀐다. ⓒ김형태 서울시교육의원


박원순 시장님, '하이 서울' 말고 '얼씨구절씨구 서울' 어때요?

이명박·오세훈 전임시장 시절, 외국어 남발 사례는 심각했다. 오죽하면 한글단체가 이명박, 오세훈 시장을 '우리말 으뜸 훼방꾼'으로 선정했을까? 예를 들어 "서울의 랜드마크", "하이 서울", "하이 서울 페스티벌", "희망드림콘서트" 등이 대표적이다. '하이'라는 낱말이 세계화, 국제화를 만드는 게 아니다. 서울의 고유성을 살리면서 세계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를 상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함에도, 그냥 외국어만 갖다 붙이면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 이렇게 하자 다른 도시들도 따르기 시작했다. 부산은 '다이나믹 부산', 수원은 '해피 수원', 대구는 '웰빙 대구' 등을 쓰기 시작했다. 수도 서울의 상징성이 이렇게 크다. 그래서 서울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생각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수도 서울답게 우리 말글이 살아 숨 쉬는 서울시가 되어야 한다"며 "서울시가 앞장서서 관련 분야에 더욱 힘써 달라"고 시정질문을 한 것이다.

2년 전 필자는 서울시장에게 시정질문을 하면서, 이를테면 강원도 정선의 경우 '아리아리 정선'이라고 한다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이 서울'보다는 '희망 서울'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서울시는 '희망 서울', 또는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마음먹으면 바뀐다. 이런 연속성 차원에서 올해에는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를 발의하게 된 것이다.

지난 9일, 한글단체 대표들과 박원순 시장의 오찬 자리에서 필자는 다시 한번 '아리아리 정선'과 '얼쑤 순천'을 예로 들면서, "두레두레 서울",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서울" 등, 좋은 말을 한번 공모해 보시라 제안했다. '두레'는 두레박에서 알 수 있듯 '함께, 같이, 두루 쓴다'는 뜻의 우리말로 '같이의 가치'를 표방한다. 박원순 시장도 "내년 한글날을 목표로, 여전히 서울시청이나 산하기관에서 잘못 쓰고 있는 언어들을 찾아 쉽고 좋은 우리말로 바꿔보는 노력을 하자"고 했다.

지난해 9월 4일, 서울시에서는 일제강점기 잔재 용어, 어려운 한자어, 불필요한 외래어·외국어, 인격 비하 용어 등 어려운 행정용어 877개를 발굴하여 알기 쉽게 바꿔 쓴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은 올해에도 계속되어, 지난 6월 18일, '보직(補職)', '시찰(視察)', '엄단(嚴斷)' 등 구시대적이고 권위적 뜻을 담고 있는 행정용어 19개를 우리말로 순화하였고, 또 '인력시장'과 '노점상'과 같이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표현도 바꿔 부르기로 하였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지만, 무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렵고 또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용어 19개를 선별, 국립국어원 자문과 서울시 행정용어순화위원회 심의를 거쳐 개선한 것이었다. 먼저 순우리말을 활용하되 낯설지 않은 말로 고친다는 원칙에 따라 보직은 '담당업무'나 '맡은 일', 시찰과 엄단은 각각 '현장방문'과 '무겁게 벌함'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인력시장은 '일자리마당', 노점상은 '거리가게'로 바꾸었고, 지하철과 버스의 노약자석, 임산부석 등은 이동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배려석'으로 순화했다.

또한 어려운 한자어로 된 우수관로(雨水管路)는 '빗물관'으로, 첨두시(尖頭時)는 '붐빌 때', 전언통신문(傳言通信文)은 '알림글' 등으로 바꿔 한글세대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왕조시대 용어인 '하사(下賜)'와 '계도(啓導)', '치하(致賀)' 등은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고, 부득이하게 비슷한 말을 써야 할 경우, 계도는 '예고'나 '일깨움', 치하는 '칭찬' 또는 '격려' 등으로 쓰기로 했다. 그 밖에도 전말(顚末)은 '과정'이나 '경위'로, 기강(紀綱)은 '근무태도'로 바꾸었다.

쉽고 고운 우리말이 펄펄 살아 숨 쉬는 서울이 되어야

지난 7월 23일에는 서울시청 신청사에서,'서울특별시 국어 사용 조례(안)' 시민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서울시와 시의회가 공동으로 공청회를 개최한 것이다. 공청회 개최 전, 행정용어순화위원회 위원들과 조례안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조례안을 다듬었고, 이후에도 시민공청회에서 나온 여러 전문가와 시민들의 좋은 의견을 최대한 조례안에 담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국어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조례안을 확정하였다.

조례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 국어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5년마다 서울시 국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함 △ 국어 바르게 쓰기 위원회를 설치·운영함 △ 공문서 등의 국어·한글 사용 실태 조사와 평가를 해마다 실시함 △ 주요 정책 사업에 관한 명칭을 정할 때 국어책임관과 사전에 협의하여야 함 △ 광고물 등의 한글 표시 및 실태 조사를 하여야 함 △ 국어책임관과 분임국어책임관을 지정·운영함 △ 세종날 기념행사와 한글날 경축행사를 개최하거나 이를 행할 때 법인이나 단체의 행사를 지원함 △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상징하는 서울 토박이말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힘써야 함 △ 올바른 국어·한글 사용 촉진과 국어 능력 향상을 위하여 적정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것 등이 담겨 있다.

필자는 국어교사 출신 의원으로 늘 한글단체와 국어선생님들에게 빚진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두 다리 뻗고 자게 생겼다. 진보·보수를 떠나, 기꺼이 공동발의에 동의해 주신 72명의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올해 567돌을 맞는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는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박원순 시장을 선정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수도 서울에서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가 상징성 있게 만들어짐에 따라 앞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디딤돌과 지렛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 바로 이어서 서울시교육감의 책무를 강조하는 조례안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노력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프랑스 등 몇몇 문화 선진국처럼 모국어 보호와 진흥 정책 차원에서 우리나라도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국어기본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와 국회의 노력을 기대한다.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아끼고 사랑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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