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라는 낱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이 1980년대 초반이니 벌써 40년이 넘었다. 당시는 아직 오늘날과 같은 인공지능 개념이 나오기 전이었다. 우선 '인공'과 '지능'이라는 너무도 이질적인 두 낱말이 어떻게 한데 어울릴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는 인간의 뇌 기능을 가지는 전자회로를 만들겠다는, 지금은 거의 포기해 버린 개념의 인공지능이었으니 그 의아함은 더 했었다. 당시 같은 과 동료 교수와 이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학습'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는데, 어떻게 '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지? '생명'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그것이 가능할 까? 그것도 유기물이 아닌 반도체에..."
그 이후로 그런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필자는 더 이상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생겼다. 필자가 주로 쓰는 구글의 웹브라우저인 크롬에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었다. 인공지능에 대해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에 도저히 쓸 수가 없어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 그런데 논문 작업을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던 중 검색창에 검색 조건을 평소보다 조금 자세히 적어 넣었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공지능의 답변이 맨 위에 뜨는 것이었다.
필요한 논문의 서지정보와 주소창까지 알려주고는 이어서 그 논문들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까지 해 주었다. 평소에도 이런 답변이 뜨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일이었는지 인공지능의 답변을 읽어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원하는 답'을 완벽하지는 않아도 꽤 정확히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내놓았다. 만일 인공지능의 대답을 보지 않았더라면 검색결과를 찾아보며 한두 번 더 검색 창에 검색어를 쳐 넣는 노동을 해야 했고, 논문을 찾아 꼼꼼히 읽어보아야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 당장 필요했던 정보를 '거의 전부' 얻었으니 더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신세계'였다.
그렇게 인공지능에 입문(?)한 필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매우 '똑똑한' 줄 알았던 인공지능이 의외로 건망증이 심하다 할 정도이고, 틀린 답도 자주 내놓는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가짜 서지 정보와 인터넷 주소까지 대는 것을 보면서 의문을 품기 시작 했다. 특히 인공지능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서 내놓는 답이 자주 '그럴 듯'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인공지능이 뭔지, 인공지능에게 물어봤더니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AI가 뭐야?"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기다란 답을 내놓았다.
"AI(인공지능)은 사람의 지능적 행동을 컴퓨터가 흉내 내거나 스스로 학습하여 수행하는 기술을 말해."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은 'AI(인공지능)은'이라고 하지 않는다. 'AI(인공지능)는'이라고 한다. 어쨌든 '스스로 학습하여'라는 문구가 거슬렸다. 스스로? 인공지능이? 컴퓨터도 못하는 일을, 그것에 얹혀사는 주제인 인공지능이 해낸다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더욱이 '학습'한다고? 아직 인간은 '학습'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지 못하는데, 인공지능이 '학습'한다고?
'컴퓨터가 흉내'낸다는 말에도 전적으로 동감하기는 어려웠다. '흉내 내는 것'조차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컴퓨터를 삶의 중요한 수단으로 써온 필자에게 '컴퓨터로 시늉내기(computer simulation)'라는 말이 갖는 뜻을 알기에 그 정도로 넘어 갔다. 이것이 필자가 인공지능에 대한 '학습 활동'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뭐야?"
필자는 인공지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공지능이란,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대신 수행하도록 설계된 논리적 구조를 가진 도구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의외로 인공지능은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함께했음을 알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모든 도구는 다 인공 지능이라는 말이다. 지나친 단순화라고 비판할 수 있으나, 본질은 설계된 논리체계의 유무가 아니라 그 논리 체계의 복잡도이다.
도끼를 떠올려 보자. 인간은 도끼를 써서 나무를 벤다. 그러나 도끼가 "이 나무는 결이 이러니 이렇게 베어야 해"라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 판단은 도끼를 쓰는 인간이 한다. 도끼는 그저 쓰는 사람이 휘두르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러나, 도끼의 날, 무게중심, 손잡이의 길이와 각도는 이미 한 가지 사실을 고정해 둔다. 힘은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모이고, 충격은 저러저러한 형태로 주어지고, 손의 움직임은 그러그러한 궤적을 따라가도록 유도된다. 이 모든 과정을 도끼를 만드는 인간이 미리 정해 놓았다.
인간이 나뭇가지를 손으로 꺾을 수는 있으나 베기는 쉽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날카로운 도구이다. 거기다 손놀림의 작은 힘을 크게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뭇결을 따라 힘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한데 모여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날카롭고, 힘을 크게 늘여주고, 힘들이 필요한 방향으로 적절히 모이는 도구를 만들었는데, 이런 논리적 절차를 실제에 구현한 것이 도끼이다. 그래서 도끼는 되묻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도끼를 쓰면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도끼가 움직이지 않으면 '왜 이러지?' 하고 되묻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단순한 쇳덩이가 아니다. 가속, 제동, 조향의 판단을 자동차 '스스로' 내릴 수 없다. 날이 덥다고 자동차가 스스로 에어컨을 작동 시키지 않는다. 인간의 판단을 규칙과 절차로 바꿔 자동차 내부에 장착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시속 80km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계기판의 숫자를 보고 판단한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네 바퀴에 제동력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흔히 자동차 '핸들'이라 불리는 조향장치를 운전자가 5도 돌리면 앞바퀴는 몇도 돌아가는가? 이런 결정들은 운전자의 마음속에서 태어나는 즉흥적 결단이 아니라, 기계 안에 구현된 절차, 곧 알고리즘에 의해 정해진다. 인간이 하던 판단을 잘게 쪼개어 규칙과 절차로 바꾼 뒤, 그 규칙과 절차를 기계의 구조 속에 박아 넣는 방식이다.
자동차가 도끼보다 '기능이 다양한' 이유는 자동차가 도끼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판단'해서가 아니다. 자동차에 적용한 '판단의 이양'들, 곧 자동차에 적용한 규칙과 절차들이 도끼의 그것들보다 더 많아졌고 촘촘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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