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사진제공-이규수 원장]](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603/216159_115152_2535.jpg)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형장의 이슬로 산화한 안중근 의사가 남기신 마지막 유언입니다. 그러나 1910년 3월 26일, 중국 다롄의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지 무려 11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그 뼈아픈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일본, 중국,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4개국의 책임 있는 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각국의 시민 여러분께 깊은 연대와 평화의 정신을 담아 이 호소문을 올립니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중국 다롄의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16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하라는 그 분의 간절한 마지막 유언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 유해는 이국땅 어느 차가운 흙 속에 홀로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가 남긴 불완전하고 은폐된 관제 기록의 장벽에 부딪혀, 그리고 시대의 풍파와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정치적 지형 속에서 그 분을 고국으로 모셔 올 결정적인 기회들을 놓쳐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역사의 짙은 안개를 걷어낼 실증적 사료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안 의사 순국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자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에 게재된 당시 일본인 기자의 생생한 현장 답사 르포 기사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사료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이 더 이상 막연한 염원이 아니라, 현대 과학과 4개국의 외교적 결단만 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실현이 가능한 현실의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대한 역사의 변곡점에서,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주창했던 동양평화론의 숭고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단순한 개인적 원한이나 적국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서 비롯된 테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탐욕이 빚어낸 참혹한 전쟁의 굴레를 끊어내고,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이 서로의 주권을 존중하며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하여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를 극복하고 함께 번영하자는, 시대를 100년 앞서간 위대한 평화 공동체의 구상이었습니다.
사형이 예견된 절망적인 뤼순 법정의 한복판에서도 안 의사는 의연함을 잃지 않고 적국 일본의 천황이나 민중을 증오하기보다는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역설하셨습니다. 그 숭고한 기개와 논리 정연한 철학은 적국이었던 일본의 지식인들마저 매료시켰습니다. 사형 집행을 앞둔 안 의사에게 경의를 표하며 유묵을 청했던 고마쓰 모토고(小松元吾) 기자, 안 의사의 인품에 감동하여 선처를 탄원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어머니가 지어준 흰 한복을 입도록 배려했던 구리하라 사다키치(栗原貞吉) 교도소장,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법정의 부당함을 지적했던 일본인 관선 변호사들의 존재가 이를 증명합니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갈등과 긴장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동북아시아 구성원 모두가 계승하고 실천해야 할 인류 보편의 나침반입니다.
이제 이 위대한 평화의 사도를 고향으로 모시기 위해, 1910년의 기록이 전하는 진실의 목소리에 4개국이 화답해야 할 때입니다.
![1910년 당시 뤼순감옥 전경 [사진제공-이규수 원장]](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603/216159_115153_2753.jpg)
□ 대한민국 정부에 호소합니다. 과학과 사료에 기반한 혁신적인 발굴 전략을 주도해 주십시오.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보훈부를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민·관 협력단'을 발족하고, 대통령이 직접 중국 국가주석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등 강력한 보훈의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의지를 새롭게 발굴된 사료의 정밀한 좌표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새롭게 공개된 기사에 따르면 안 의사의 유해는 과거 한·중 공동 발굴이 이루어졌던 뤼순 감옥 뒷산(위안바오산)이나 감옥의 담장 바로 옆이 아닙니다. 감옥으로부터 약 10정(약 1km) 떨어진 마잉푸(馬營浦) 인근의 산 중턱입니다. 일제는 안 의사의 묘소가 행여나 조선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묘표조차 땅 위로 세우지 않고 관과 함께 묻어버리는 치밀한 은폐 공작을 벌였습니다. 또한 일반 죄수의 매장 깊이인 4척(약 1.2m)을 훌쩍 넘는 지하 7척(약 2.1m) 아래에 특별히 들여온 백목(白木)으로 두꺼운 일본식 침관(寝棺)을 짜서 매장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우리에게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명확한 실증적 내비게이션을 제공합니다. 1km 반경 내에서 청나라 기병영(騎兵営) 흙담 잔해의 맞은 편이라는 지형 지물을 역추적하고, 기존의 얕은 지표 조사가 아닌 지하 2.1m의 두꺼운 소나무 관을 타깃으로 하는 심층 지표투과레이더(Deep GPR) 탐사 장비를 투입해야 합니다. 아울러, 일제의 검열을 피해 진실을 남겼던 고마쓰 기자의 고향 일본 고치현(高知縣)을 비롯해 현지 아카이브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국가적인 전수 조사를 즉각 실행하여, 파편화된 비공식 기록들을 온전히 짜맞추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 일본 정부에 호소합니다. 신뢰 회복의 열쇠가 될 사형수 매장 기록을 결단력있게 제공해 주십시오.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는 일은 결코 자국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진정한 용기이자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일본 정부와 관동도독부는 당시 안 의사의 기록을 철저히 은폐했을지라도, 우리는 이번 사료를 통해 안 의사 묘소의 위치를 오차 없이 특정할 수 있는 인간 좌표를 확보했습니다.
그 르포기사에는 안 의사가 이웃하여 묻힌 사형수들의 실명이 또렷이 적혀있습니다. 다롄에서 환전상을 살해하고 2~3년 전 처형된 일본인 강도 살인범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와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그리고 1910년 당시 언저리에 처형된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와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입니다. 안 의사의 묘는 흙이 채 마르지 않은 이들의 새 무덤 바로 옆, 앞 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정치적 문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국민을 포함한 일반 형사범 4인에 대한 재판 판결문과 형 집행 원부, 그리고 이들이 묻힌 묘지번호가 담긴 매장 보고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일반 범죄자들의 기록은 일본 법무성이나 외무성 어딘가에, 혹은 일제강점기 뤼순 감옥의 사망자 유해 매장을 전담했던 대륙공사(大陸公司)의 장부에 남아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일본 정부가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감화되었던 자국 선조들의 양심을 기억하며 이 인도주의적 기록을 대한민국에 제공한다면, 이는 얽히고설킨 한일 양국의 과거사 실타래를 푸는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화해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 중국 정부에 호소합니다. 동북아 항일 영웅의 안식을 위해 비파괴 정밀 탐사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먼저,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있던 둥산포(東山坡) 옛 지명 일대를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여 난개발로부터 지켜준 중국 다롄시 당국과 중국 정부의 각별한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매장지를 특정할 구체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과, 북한의 동의 혹은 남북 공동 조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외교적 원칙을 고수하며 발굴 허가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입장을 깊이 존중합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변했습니다. 1910년의 상세한 1차 사료가 발굴됨으로써, 특정 지형지물(마잉푸 부락과 기병영 터 사이)과 특정 깊이(지하 2.1m)라는 명백하고도 구체적인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문화재 구역의 광범위한 훼손이나 무작정 땅을 뒤엎는 맹목적인 굴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가 지목하는 반경 내로 한정하여, 중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지하에 매립된 이질적인 형태(백목 침관)만을 스캔하는 최첨단 고성능 GPR(지표투과레이더) 비파괴 탐사를 선제적으로 허가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림으로써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민중의 항일 투쟁에도 지대한 용기와 영감을 불어넣은 동북아시아 공통의 항일 영웅입니다. 영웅이 기나긴 타향살이를 끝내고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대국적인 결단과 협조를 베풀어 주십시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에 호소합니다. 이념을 넘어 민족 공동의 영웅을 고향으로 모시는 일에 흔쾌히 나서 주십시오.
안중근 의사는 남과 북으로 조국이 분단되기 이전, 한민족 전체가 공유하고 추앙하는 위대한 민족사적 인물입니다. 북한 역시 안 의사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을 보내고, 평안도 룡강군 진남포(현 남포시)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구국 교육에 헌신했던 발자취를 누구보다 소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5년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남포시 옛 삼흥학교 터에 '애국렬사 안중근 선생 기념비'를 건립하여 그의 반일 애국 사상을 기린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1970년대와 1986년에 직접 뤼순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둥산포 묘지를 살폈던 끈질긴 노력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장 큰 현실적 이유는, 중국 정부가 발굴 허가의 전제 조건으로 '남북의 공동 조사 및 합의'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이념, 군사적 대립이 아무리 날카롭다 한들,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민족의 영웅을 차디찬 이국땅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남과 북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불효이자 역사의 직무 유기입니다.
군사·정치적 사안은 잠시 뒤로 미루더라도 유해 발굴이라는 순수한 역사적·인도주의적 과제 앞에서는 조건 없이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북한 당국이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남북 공동 조사에 대승적으로 동의하여 중국 정부의 허가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마중물이 되어 주시기를 촉구합니다.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유해를 발굴하고, 훗날 안 의사의 숨결이 깃든 남포나 고향 해주, 혹은 겨레가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는 장소에 남북이 공동으로 '안중근 동아시아 평화기념관'을 건립하게 된다면, 이는 안 의사가 그토록 꿈꾸었던 평화의 사상이 21세기 한반도에서 다시금 찬란하게 부활하는 역사적 쾌거가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4개국 지도자와 시민 여러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고 봉환하는 일은 단순히 묻힌 과거의 뼈를 찾아내는 과거지향적인 사업이 아닙니다. 이는 식민 지배의 아픈 상흔을 치유하고 민족의 존엄을 회복하며, 116년 전 한 위대한 사상가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연대와 평화의 가치'를 오늘날의 동북아시아에서 실천적으로 선언하는 가장 확실한 미래지향적 과제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도시의 개발과 지형의 변화는 지금 이순간에도 안 의사께서 누워 계신 그곳의 흔적을 무심하게 지워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을 향한 사료의 빛이 이렇게 선명하게 켜진 지금, 우리가 하나 되어 행동한다면 역사의 기적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혁신적인 발굴 의지, 일본의 용기 있는 기록 제공, 중국의 대승적인 탐사 허가, 그리고 북한의 이념을 초월한 민족적 연대가 하나의 거대한 물결로 합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스러져간 영웅 안중근 의사가 기나긴 116년의 유랑을 끝내고, 마침내 따뜻한 고국의 품, 완전한 국권이 회복된 하나 된 조국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4개국 모두가 역사적 책무를 다해 주시기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극히 절박하고도 뜨겁게 호소합니다.
2026년 3월 30일 이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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