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의 정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기후·생태 위기 문제
인간은 물론 비인간 존재들도 죽임의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인간 사회를 향한 억압과 차별의 죽임의 정치 논리는 비인간 생명과 자연 생태계로 확장되어 끔찍한 ‘생태적 죽임’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숲과 산, 강과 바다를 맹목적 개발을 위한 자원이나 폐기물 처리장으로 전락시키고, 수많은 동식물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철저히 이용, 소비하고 처리, 폐기해 사실상의 ‘희생 구역’을 만들어버리는 현실은 전쟁과 식민지를 통해 작동하던 죽임의 정치 논리와 매우 닮았다.
결국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누가 살 만한 환경을 누리고 누가 죽음에 가까운 상태를 떠안는가를 가르는 치열한 정치적 문제다. 음벰베의 논리를 빌리면, 오늘날 전 지구를 위협하는 기후 및 생태 위기는 단순한 환경 악화가 아닌 생명을 차등적으로 구분하고 관리하는 권력과 정치의 문제로 재해석 되어야 마땅하다. 지금의 기후·생태 위기 문제는 죽임의 정치가 만들어낸 새로운 전선이다. 이런 인식이 불분명하면 기후 위기와 생태학적 재난의 시대에 ‘행성적 구원’을 명분으로 불평등과 차별적 폭력을 방치하는 소위 ‘기후 죽임의 정치’(climate necropolitics)를 불러들일 수 있다.
실제로 폭염, 홍수, 산불, 가뭄과 같은 치명적인 기후 재난은 모든 이들에게 결코 공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늘 사회·경제·생태적으로 더 취약한 지역과 집단,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와 농민, 주변화된 공동체, 정치적 발언권이 취약한 집단에게 더 많은 피해를 떠넘긴다. 오염된 물을 마시게 하고, 폭염 속에서의 위험 노동을 전가하며, 농지 황폐화와 식량난, 해수면 상승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만들고, 재난 복구에서 특정 집단을 후순위로 미루는 일 등은 직접적인 살해 행위는 아니더라도 생존 조건 자체를 무너뜨리는 ‘느린 형태의 죽임’임이 명백하다. 현대 전쟁의 폐해가 여성·아동·노인·난민 등 취약한 민간인을 향해 집중되듯이, 기후·생태 위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기후·생태 위기는 식량·물·에너지 공급망과 보건·의료·주거·돌봄 체계의 붕괴와 연결될 때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세계은행의 그라운드스웰(Groundswell)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2050년까지 최대 2억 1600만 명의 국내 기후 이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며, 극심한 기후 위험에 직면하는 국가의 수가 2040년까지 3개국에서 65개국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후·생태 위기로 삶터가 거주 불가능한 곳으로 급속히 바뀌고 환경 난민, 기후 이주민이 급증함으로써 죽임의 정치는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에 대한 적응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과 지역, 국가는 집중적인 피해와 함께 심각한 불평등 상태에 빠지게 된다. 죽임의 정치 방식은 생태학적 재난 상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만큼 오늘날 기후·생태 위기는 죽임의 정치가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는 뼈아픈 문제이자 인류의 지혜와 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살림의 정치’로의 전환이야말로 시대의 필연적 과제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고 있는 죽임의 정치를 극복하려면 생명과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함께 새로운 대안적 비전이 절실하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출생률이나 공중 보건, 위생 등을 매개로 인구 집단을 통제하는 지배의 기술을 ‘생명정치’(bio-politics)라 불렀다면,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생존과 권리 확보의 차원을 넘어서 정체성과 삶의 가치 및 방향에 대한 개인의 실존적 선택으로서의 ‘삶의 정치’(life-politics)를 강조했는데, 이제는 현대 사회 전반에서 작동하는 ‘죽임의 정치’(necropolitics)에 대응해 생명 본연의 가치를 온전히 되살리는 차원에서 ‘살림의 정치’(salim-politics)를 대안으로 과감히 제안할 필요가 있다.
순우리말 ‘살림’(salim)에는 생명을 죽임으로부터 구해내어 ‘살리다’, 생명이 가진 고유한 본성에 맞게 스스로 ‘살아가다’, 그리고 생명 공동체의 공동 번영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내려 놓고 양보하는 ‘사르다’라는 세 가지의 심오한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따라서 ‘살림의 정치’는 단지 개체 생명의 생물학적 생존을 유지, 존속하는 차원을 넘어서, 소외된 채 죽어가는 생명 존재들에 대한 ‘치유와 돌봄의 정치’와, 생명 본성에 맞게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자립과 자치의 정치’, 그리고 생명공동체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공공의 마음으로 공동의 선을 실현해 가는 '책임과 상생의 정치' 차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살림의 정치는 생명 존재를 구획·위계화하고 관리·통제하던 낡은 죽임의 질서를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비인간 존재 등을 생명공동체 전체 차원에서 창조적으로 재연결해 서로를 살림으로서 공존과 공생의 가능성을 확장해 가는데 초점을 맞춘다.
나는 이러한 살림의 정치가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치 모델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이런 마음으로 살림의 정치가 담고 있는 숭고한 가치를 현실화하는 방안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기후정의를 중심에 세우자. 배출량 총량 감축만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이 배출하고 누가 더 큰 피해를 입는지, 누가 적응 능력이 부족한지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생명을 보호하는 것에 정책 목표를 둠으로써 기후 위기 대응 노력이 죽임의 정치 논리에 포섭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생존 기반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인프라의 공공성을 강화하자. 민영화에 따른 파편화를 경계하면서, 에너지, 식량, 주거, 의료와 돌봄 체계를 강화하고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높여 나가자. 특히 재난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물·전기·이동·주거·의료·식량 같은 생존 기반 체계를 공고히 하자.
셋째, 편협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윤리적 대전환을 이끌어 내자. 살림의 정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 미래세대를 전체적으로 균형있게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오만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숲·강·토양·동물·해양 등을 공동 세계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공존의 기반을 책임있게 만들어 나가자.
넷째, 연대의 범위를 심화, 확장하자. 기후위기는 국경을 넘어선 전지구적 문제로, 계층, 지역, 국가 단위를 넘어선 협력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국가와 세대, 계층 간 경계를 넘어 공존 공생을 위한 폭넓은 연대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해 나가자.
죽임의 참상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점점 단편적인 기삿거리로 소비되고, 그만큼 사람들은 점점 타자의 고통과 죽음에 둔감해진다. 일상화된 죽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죽음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생명을 차별적으로 다루는 죽임의 정치가 은밀하게 작동한다. 오늘날 죽임의 정치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 속에 상시적으로 작동한다. 전쟁, 경제 제재, 국경 봉쇄, 난민화 문제는 물론이고,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일상에서의 고립과 배제, 억압의 문제들은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생명(집단)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방치하고 함부로 해도 된다는 죽임의 정치 논리가 공통적으로 작동한다.
결국 생명 살림 세상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이 죽임의 정치 논리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을 존중하자’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자기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대상화·수단화·상품화하는 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들춰내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대안으로서 살림의 정치가 타자의 고통을 추상적 통계가 아닌 구체적인 삶의 문제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살림의 정치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의 안전과 번영은 누구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가?”, “우리는 누구를 위험 집단으로 낙인찍고 처벌하는데 동의하는가?”, “우리는 어떤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방치하고 포기해 버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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