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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 넘어 '인간 존엄' 추구가 국가의 존재 이유로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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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07.18 20:30

  • 수정 2026.07.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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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정 새롭게 하기 ③]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거치며 국가 목적 성찰

시장과 국가의 폭력 앞 인류의 반성 이끌어내

세계인권선언,국제질서 원리로 인간 존엄 제시

지배 형태에 따른 자유의 원리 모색의 연속

지난 글에서는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역사적 확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왕과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국가를 해방시키고,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민주공화주의가 처음 맞닥뜨린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국민주권은 근대 민주공화정의 출발점이 되었고, 인류는 이를 통해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철학도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시대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고, 정치철학은 그 문제에 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국민주권은 국가권력이 어디에서 정당성을 얻는가라는 질문에는 분명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또 다른 질문에 충분히 답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19세기 후반 이후 인류가 맞닥뜨린 거대한 변화는 민주공화주의 앞에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의 샤요 궁에서 열린 제3차 국제연합 총회. 이날 총회에는 당시 국제연합 회원국 58개국이 참여했으며, 찬성 48개국, 기권 8개국, 반대 0표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원칙을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공동 선언한 역사적 사건으로, 국민주권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현대 헌정질서와 국제질서의 보편적 원리로 확립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 산업혁명은 민주공화주의에 무엇을 물었는가

산업혁명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증기기관은 공장을 움직였고, 철도는 대륙을 연결했으며, 기계화는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생산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본주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근대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발전과 함께 새로운 문제도 만들어 냅니다. 풍요는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농촌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수많은 노동자는 도시의 공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아동노동과 여성노동, 빈곤과 질병은 산업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법률적으로는 모두 자유로운 시민이었지만, 현실에서 자본과 노동은 결코 대등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확장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까지 보장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이라는 위대한 성취만으로는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정치인과 사상가들은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더욱 확대하려 했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구조적 불평등을 비판했습니다.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고,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를 정치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습니다.

해법은 달랐지만 문제의식은 하나였습니다. 국가는 단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기구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

민주공화주의는 바로 이 질문 앞에서 국민주권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역사적 성취를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주권은 권력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무엇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는지까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의 역할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외부의 침략을 막고 국내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야경국가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빈곤과 실업, 노동문제는 국가가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새로운 요구를 낳았습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가 도입한 사회보험제도는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노동입법과 공교육, 사회보장제도는 여러 나라로 확산되며 현대 복지국가의 토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유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는 더 이상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조건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권과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사회권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권리였습니다. 민주주의 역시 스스로를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재산을 가진 일부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참정권은 노동자와 여성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국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계속 넓어졌고, 민주주의는 더 많은 사람을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발전해 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주권을 부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을 더욱 완성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가장 통찰력 있게 설명한 사람이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였습니다. 그는 『거대한 전환』(1944)에서 시장이 사회를 압도하면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을 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말한 '이중운동(double movement)'은 시장의 확대에 맞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국가의 역할이 함께 확대되는 역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복지국가와 사회권이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민주공화주의가 시대의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해 간 역사적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민주공화주의에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묻게 했다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친 세계사의 격동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제 민주공화주의 앞에는 국민주권보다 더 깊은 질문이 놓여 있었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국민주권만으로 충분했는가

산업사회가 민주공화주의에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묻게 했다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친 세계사의 격동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산업사회의 내부에서만 제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제질서 역시 민주공화주의가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열강은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생산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자유와 평등, 국민주권을 이야기하던 국가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근대 민주공화정이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했습니다.

국민주권은 자국민에게는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민중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말하던 국가들이 다른 민족의 자유를 빼앗았고,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국가들이 식민지에서는 폭력과 강압에 의존했습니다. 국민주권은 국가 안에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리가 되었지만, 국가 밖에서는 아직 인류 보편의 원리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민주공화주의에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민주권은 특정 국가의 국민에게만 적용되는 원리인가. 인간은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20세기 초 세계 곳곳에서 전개된 민족해방운동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의 3·1민족혁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3·1민족혁명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민족자결을 요구한 정치혁명이었으며, 국민주권을 일부 국가만의 권리가 아니라 모든 민족이 누려야 할 보편적 원리로 확장하려는 역사적 실천이었습니다. 같은 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국가의 기본원리로 채택한 것 역시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선택이었습니다.

 

3월 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 '1919 서대문, 그날의 함성'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6.3.1.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건국 이전부터 국가의 이름보다 국가의 원리를 먼저 세웠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민주공화주의를 대한민국의 헌정원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정치적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 앞에 놓인 과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29년 세계대공황은 자유시장에 대한 낙관을 근본부터 흔들었습니다. 대량실업과 빈곤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고, 사회적 절망은 파시즘과 나치즘, 군국주의와 같은 전체주의가 성장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국가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시장을 방관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에 가장 큰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한 사람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였습니다.

그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을 통해 시장의 자율성만으로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국가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고용정책을 통해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케인스의 주장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시대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국가는 단지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마주한 가장 거대한 비극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산업혁명과 대공황이 던졌던 질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민주공화주의 앞에 남겼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산업문명이 만들어 낸 과학기술이 인간을 얼마나 대규모로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세워진 국가가 국민을 억압할 수 있었고, 합법적인 국가권력이 인간을 조직적으로 말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목격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단지 하나의 강제수용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근대 문명 전 체가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처절한 질문이었습니다. 국민주권만으로 인간의 존엄은 끝까지 지켜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이전의 어떤 질문보다도 근본적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역사는 민주공화주의를 부정한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이라는 첫 번째 역사적 확장만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시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류가 하나씩 확인해 간 역사였습니다.

산업혁명은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노동운동은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제국주의는 국민주권의 보편성을 시험했습니다. 세계대공황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다시 묻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민주공화주의를 향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결국 시대가 던진 수많은 질문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습니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민주공화주의는 이미 이 질문에 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이제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두 번째 역사적 확장을 맞이합니다. 첫 번째 확장이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면, 두 번째 확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의 존엄으로 확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존엄은 민주공화주의 밖에서 새롭게 덧붙여진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세계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민주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시대적 성찰이 축적되면서 민주공화주의가 스스로를 더욱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받아들인 새로운 시대의 원리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성찰 위에서 전후 세계는 인간의 존엄을 현대 헌정질서와 국제질서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이제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의 존엄에서 찾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 인간존엄은 어떻게 민주공화주의의 원리가 되었는가

―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격동의 역사는 민주공화주의에 수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산업혁명은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물었습니다. 제국주의는 국민주권의 보편성을 다시 물었습니다. 세계대공황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국민주권은 근대 민주공화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이름으로도 폭정을 저지를 수 있었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탄생한 권력 역시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가 직면한 두 번째 과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민주공화주의 안에서 해결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이 질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산업은 전례 없는 생산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가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정교한 행정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문명은 아우슈비츠도 만들어 냈습니다. 인류는 처음으로 근대 문명 자체를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성찰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주권은 권력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까지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존엄은 민주공화주의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시대의 원리로 떠오르게 됩니다. 시민의 책임이 민주공화정을 지킨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죄의 문제』(1946)에서 나치즘을 히틀러 개인의 범죄로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민주공화정이 무너지는 이유는 독재자의 등장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책임의식을 잃을 때라고 보았습니다. 민주공화정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선을 지키려는 시민의 책임과 윤리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민주공화정은 살아 있는 정치질서가 됩니다. 인간은 결코 권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와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는 『계몽의 변증법』(1947)에서 근대 문명의 역설을 분석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은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인간을 효율과 생산성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도구적 합리성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성장과 효율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순간, 인간은 다시 권력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바로 이러한 위험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정치질서입니다. 인간은 권리를 가질 권리를 가진 존재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전체주의를 단순한 독재체제가 아니라 인간을 정치공동체 밖으로 추방하는 체제로 분석했습니다. 아렌트가 말한 '권리를 가질 권리(the right to have rights)'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등장합니다. 국가가 인정하기 때문에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국민은 정치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국민 이전에 인간이 존재합니다. 국가의 목적은 국민을 조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존엄은 국제질서의 원리가 되다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 1900~1959)은 『점령된 유럽에서의 추축국 지배』(1944)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특정 집단을 계획적으로 말살하는 행위는 어느 한 국가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책임져야 할 범죄라는 그의 문제의식은 1948년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으로 이어졌습니다. 철학과 국제법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주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했으며, 인간의 존엄은 어느 국가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인간존엄을 받아들이다

이러한 성찰은 전후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1945년 국제연합이 창설되었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존엄을 국제질서의 가장 높은 원리로 선언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이 한 문장은 민주공화주의의 두 번째 역사적 확장을 상징합니다. 1776년 미국 독립혁명이 국민주권을 선언했다면, 1789년 프랑스혁명은 그것을 보편적 정치원리로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존엄을 인류 공동체의 보편원리로 선언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더욱 성숙시켰습니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원리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국가는 국민의 의사를 실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새로운 원리가 민주공화주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49년 제정된 독일 기본법제1조.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이다.(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나치 독재와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경험을 반성하며, 국가는 인간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헌법의 최고 가치로 천명한 것이다. 이는 민주공화주의가 국민주권을 넘어 인간존엄을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로 확장한 역사적 전환을 상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9년 제정된 독일 기본법입니다. 기본법 제1조는 선언합니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국가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후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는 『정의론』(1971)에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정치철학의 언어로 정리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만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의 기본적 자유가 동등하게 보장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역시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직될 때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이러한 두 번의 역사적 확장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는 선언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0조는 선언합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제1조가 국가의 정당성을 설명한다면, 제10조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합니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행사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두 원리가 결합될 때 민주공화국은 비로소 민주공화주의의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주의가 앞선 원리를 버리며 발전해 온 정치철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토대가 되었고, 인간존엄은 국민주권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의 역사는 앞선 가치를 폐기하는 역사가 아니라, 시대가 던지는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며 그 위에 새로운 원리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온 진화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는 어느 시대에도 스스로를 완성된 정치철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만들어 낼 때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그에 걸맞은 새로운 자유의 원리를 모색해 왔습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가 마주한 도전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헌법과 국제규범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시민은 법적으로는 자유롭고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 플랫폼과 초국적 자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선택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왕도 아니고 독재자도 아닙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도 아닙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권력은 우리의 자유를 보이지 않게 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다시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국민주권과 인간존엄만으로 이러한 새로운 권력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가. 인간은 과연 모든 형태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가. 이 질문은 오늘날 민주공화주의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민주공화주의는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었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의 존엄으로 확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 번 민주공화주의의 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민주공화주의가 왜 다시 자신의 지평을 넓혀야 했는지, 그리고 비지배(non-domination)가 왜 오늘날 민주공화주의의 새로운 원리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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