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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해지는 바다, 해녀는 살갗으로 안다

최연하 시민기자

altcurator@naver.com

최연하: 에코아카이브&아트센터 총감독,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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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사진작가 유용예 '두 번째 살갗, 303.8ha'

가파도 해녀들 초상 보고 증언 듣는 소중한 전시

사라지는 건 어장이 아닌, 바다 생명체 생태그물

'몸으로 앎'과 '좌표로 앎'을 의도적으로 나란히

측정 불가능한 재난 감각 가능한 사건으로 번역

잠김과 참여로서의 앎이 참된 생태적 지각 방식

데이터 풍부한데 세계를 점점 덜 느끼는 곤란함

숫자 이전의 바다, 바다의 증인들, 해녀작가의 방

 

2019년의 나진옥 해녀(1935.5.1) ©유용예

해녀는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잠수복을 입는다. 몸에 밀착되어 차가운 물과 살 사이로 얇게 끼어드는 이 검은 피부는, 인간이 바다라는 다른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덧입는 두 번째 살갗이다. 제주 가파도에서 십수 년을 물질해 온 유용예 작가에게 두 번째 피부는 한 벌의 장비에 그치지 않는다. 거듭된 잠수 속에서 그의 몸 전체가 바다와 맞닿는 하나의 감각막(膜)이 되었다. 물의 온도와 염도, 조류의 방향과 수압, 그리고 해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바다의 기척을 살갗으로 읽어 내는 몸. 그 몸이야말로 이 전시가 주목하는 두 번째 피부다.

 

유용예 작가의 방, 작가가 기록한 '해녀여지도'

유용예 작가의 방, 작가가 기록한 '해녀여지도'

303.8헥타르(㏊)는 가파도 하동마을 공동어장의 면적이다. 행정과 측량의 언어로 쓰인 이 숫자는 위성사진 위 하나의 폐곡선으로, 지적도 위 하나의 단위로 바다를 환원한다. 전시의 제목은 이 두 개의 척도를 의도적으로 나란히 세운다. ‘살갗’으로 바다를 아는 몸과 바다의 면적을 측량한 숫자이다. 전자는 피부의 앎이고 후자는 좌표의 앎이다. '두 번째 살갗, 303.8ha'는 이 두 앎이 같은 바다를 가리키면서도 끝내 닿을 수 없는 자리에서 출발한다.

 

하늘에서 본 가파도 사진의 오른쪽, 알록달록한 지붕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 가파도 어촌계와 마을회관이 있는 하동마을이다. 사진의 왼쪽 위는 가파도 선착장이 있는 상동마을, 상동마을에서 하동마을까지 가로질러 걸으면 25분, 섬 둘레길은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정도 걸린다.

생태학적으로 볼 때, 피부는 안과 밖을 가르는 벽이 아니라 둘이 끊임없이 넘나드는 막이다. 바다는 해녀의 두 번째 피부를 통과해 몸 안으로 흘러든다. 차가움과 짠기, 압력, 그리고 근래에는 마땅히 차가워야 할 물의 미지근함까지.

기후위기는 흔히 지구 평균기온이나 해수면 같은 거대한 수치로, 너무 광대하고 너무 느려 한 사람의 감각으로는 결코 붙잡을 수 없는 규모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유용예 작가의 작업에서 그 거대한 변화는 가장 작고 친밀한 자리, 곧 피부에서 먼저 감지된다. 수온계가 가리키기 전에 살갗이 미지근함을 알고, 통계가 잡아내기 전에 작년에 있던 것이 올해 사라졌음을 몸이 안다. ‘두 번째 살갗’은 측정 불가능한 재난을 감각 가능한 사건으로 번역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직한 생태적 기관이다.

이 전시의 생태학적 가치는 여기에 있다. 추상으로 떠돌던 기후위기를 다시 몸으로, 살갗의 사건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이다.

 

물질 중인 유용예 작가(오른쪽, 작가 제공)

이 몸의 앎은 바깥에서 풍경을 관조하는 근대적 시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해녀는 해안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물속으로 내려가 전복과 해조류와 물고기 사이의 한 몸으로, 바다라는 세계의 내부에 참여한다. 303.8헥타르라는 숫자가 하늘에서 내려다본 관리의 시선, 바다를 대상화하고 소유하는 측량의 시선을 대표한다면, 두 번째 피부는 그 안에 잠겨 함께 호흡하는 참여의 감각을 대표한다. 이 전시가 제안하는 것은 바다를 더 정확히 ‘보는’ 법이 아니라 바다 안에 ‘있는’ 법이다. 인간과 비인간이 같은 물에 잠겨 서로를 감각하는, 관계로서의 생태. 거리를 둔 관찰이 아니라 잠김과 참여로서의 앎이야말로, 이 전시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생태적 지각 방식이다.

 

2918년의 강나미 해녀(1964.5.30) ©유용예 가파도 강나미 해녀는 이렇게 증언한다. “바다는 점점 달라지고 있어. 처음에는 모자반이 안 나더니, 그다음에는 미역이 사라지고, 또 톳이 없어졌어. 벌써 칠팔 년은 된 것 같아. 먼바다도 마찬가지야. 재작년 여름이 지나고 바다에 나가 보니 처음 보는 시커먼 풀들이 자라고 있었어. 그런데 감태는 다 없어졌더라. 해녀들이 농담처럼 말해. 감태 한 개만 볼 수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 그만큼 바다가 텅 비었어. 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아직 소라와 전복은 잡지만, 해초가 없어지면 우리도 함께 살아가기 어려워. 어제도 할망당에 가서 한참 앉아 빌었어. 미역도 다시 나게 해 주십시오. 톳도 다시 나게 해 주십시오. 감태도 다시 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바다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작가가 흔들리는 감각을 다시 붙들기 위해 데이터로 돌아섰을 때 마주한 역설은 단지 한 개인의 곤경이 아니다. 수온 그래프와 어획량 통계, 해양 조사 보고서를 들여다볼수록 바다는 손에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졌다. 정밀해질수록 도달은 더 어려워졌다. 이는 데이터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데도 세계를 점점 덜 느끼게 된 우리 시대 전체의 곤경이다. 두 번째 피부는 그 어떤 데이터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적 지각 기관의 이름이며, 이 전시는 그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작가 노트의 타이틀이 ‘도달하지 못한 바다’를 가리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두 번째 살갗, 303.8ha] 전시 장면(최연하 촬영)

[두 번째 살갗, 303.8ha] 전시 장면(최연하 촬영)

[두 번째 살갗, 303.8ha] 전시 장면(최연하 촬영)

이 전시는 바다를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사진과 영상, 지도와 오브제, 아카이브는 바다 그 자체가 아니라, 바다에 도달하려다 끝내 닿지 못한 자리에 남겨진 흔적들이다. 전시는 숫자 이전의 바다에서 출발한다(The Sea Before Numbers). 면적으로 환원되기 이전, 몸의 감각으로 읽히던 세계가 첫 장면에 놓인다.

유용예 작가는 전시작 '해녀여지도'(海女輿地圖)에서 303.8㏊에 깃든 바당밭의 기억을 펼쳐 보인다. 객관적 측량이 아니라 몸으로 축적된 경험과 기억으로 구축된 해녀들의 심상 지형은, 행정의 지도와 나란히 놓이는 또 하나의 지도학이자 몸이 그린 생태 지도다. 또한 ‘바다의 증인들’인 가파도 해녀들의 초상과 증언을 통해 바다 생태계 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해녀의 몸은, 그 자체로 생태 붕괴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사라진 풍경’과 ‘기억의 좌표’에서는 고수온 속에 자취를 감춘 바다와 한때 그곳에 있던 기억이 나란히 놓이고, 해녀 공동체의 경험적 지식과 현대 사회의 데이터가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난다. 마지막 ‘작가의 방’은 변화하는 바다를 온전히 기록하려 했으나, 끝내 완결될 수 없는 기록의 과정을 증언한다. 매끈한 결과물 대신 관찰과 반복, 실패와 축적의 흔적이 그대로 제시되고, 그 한가운데 놓인 잠수 장비-바로 그 ‘두 번째 피부'- 와 채집된 표본들이 도달에 실패한 시도들의 정직한 목록을 이룬다.

 

지난 11일 전시회 개막식에서 양영부 가파도 해녀 회장과 함께 한 유용예 작가(오른쪽, 최연하 촬영)

이 전시가 애도하는 것은 한 어장의 쇠퇴나 어획 자원의 감소가 아니다. 사라지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오랜 시간 서로에게 기대어 엮어 온 하나의 세계, 전복과 해조류와 물고기와 해녀가 함께 이루어 온 친족의 그물이다. 건져 올린 표본들은 전리품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먼저 떠난 존재들이며, 작가의 기록은 그들을 향한 더딘 애도다. 그리고 두 번째 피부조차 바다에 온전히 닿지는 못한다. 가장 깊이 잠긴 몸에도 끝내 도달되지 않는 잔여가 남는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도달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생태적 윤리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남김없이 측량하고 소유하려는 욕망(303.8㏊) 대신, 끝내 다 알 수 없는 타자로서의 바다 앞에 머무는 겸손. 유용예의 작업이 위기를 소리 높여 고발하는 대신 끝내 도달하지 못했음을 조용히 고백하는 쪽을 택할 때, 그 정직한 실패는 사라져 가는 세계를 향해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성실한 기록이 된다. 바다는 지금도 미지근해지고 있다. 우리가 이 전시장에 서 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두 번째 피부 위로.

 

전시 공식 포스터

유용예는 제주 가파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 예술가이다. 해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몸을 통해 축적된 감각과 경험을 작업의 방법론으로 삼는다. 참여자이자 기록자의 위치에서 사진, 영상, 설치, 아카이브를 매개로 인간과 바다, 공동체와 생태환경의 관계를 탐구하며, 해녀의 체화된 지식과 과학적 데이터 사이의 간극, 그리고 기후변화가 감각과 기억에 남기는 흔적을 작업으로 풀어낸다. 주요 전시로《물벗》(제주, 2019), 《섬섬》(가파도, 제주, 2018),《할망바다》(갤러리 브레송, 서울, 2018),《할망바다》(가파도, 제주, 2017),《할망바다》(제8회 전주국제사진전, 2015)이 있다. 『검은새』( i Libri del Merlo, 이탈리아, 2024),『노랑굴 검은굴 이야기』(제주전통옹기마을 기록 도감, 2020),『노랑굴 검은굴』(제주전통옹기 기록집, 2019),『할망바다』(사진집, 눈빛출판사, 2017)가 있다.

유용예 작가의 개인전, [두 번째 살갗, 303.8ha] 는 공·간·풀'숲'에서 지난 11일 막을 올려 오는 31일(금)까지 열린다. 공·간·풀'숲'은 서울 종로구 경희궁3가길 8-4에 위치해 있으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하며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오는 25일(토) 오후 4시에 유용예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최연하 시민기자 altcura

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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