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계약 뒤에 가려진 저임금 현실
정부 연구도, 법원 판결도 외면한 최저임금위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의 임금 하한선을 정하는 제도다. 노동자가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이 약속에서 배제되는 노동자들이 빠르게 늘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도 이들을 외면했다.

민주노총은 27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7년 적용 최저임금안에 대한 이의제기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도급제 노동자의 최저임금 별도 적용을 부결한 것에 대해 “노동시장 변화와 법원의 판단, 정부 연구결과까지 외면한 결정”이라며 노동부 장관에게 재심의를 요청한 것이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2027년 적용 최저임금안 이의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2027년 적용 최저임금안 이의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도급계약 뒤에 가려진 저임금 현실

배달라이더,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가전제품 설치 기사 등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870만 명에 이른다. 계약서 상으론 ‘위탁’이나 ‘도급’이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지휘와 통제를 받으며 일하는 이들을 최저임금 제도는 제대로 포괄하지 못해왔다. 이에, 올해 처음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이 ‘도급제 근로자 최저임금 별도 적용’ 여부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결론은 부결.

민주노총은 이번 결정이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는커녕 최저임금 제도의 사각지대를 그대로 방치해 사회 전체의 소득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 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 구조를 호소했다.

전국대리운전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주 6일 이상 일하지만 플랫폼 수수료와 보험료, 이동비, 통신비 등을 제외한 실질 순시급은 약 7천300원 수준에 그쳤다. 응답자의 80% 이상은 지난해보다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이창배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플랫폼 기업의 수수료 구조, 콜 단가 인하, 과잉 경쟁, 비용 전가가 만들어 낸 구조적 빈곤”이라며 “도급제 최저임금 부결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할 책임을 회피한 결정”이라고 규탄했다.

학습지 노동자들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가 최근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5%가 회사의 관리와 업무 지시를 받고 있지만, 회의와 홍보, 전산업무, 회원 관리 등 수업 외 업무에 대해서는 응답자 전원이 아무런 보수를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통신비와 교통비, 차량 유지비 등 업무에 필요한 비용도 대부분 노동자가 부담하고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정난숙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은 “정부와 최임위 공익위원들은 단지 ‘특수고용’, ‘위탁계약’이라는 계약의 형태만으로, 헌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생계 안전망인 최저임금 논의를 거부해 버렸다”고 규탄했다.

 

실제로 2025년 최저임금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정부 연구용역 결과는 배달, 택배, 대리운전, 학습지교사 등에 대해 일반 임금노동자와 유사한 사용종속성을 보이고 있으며, 최저임금 적용의 정당성이 상당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임위는 노동자성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별도 적용을 부결했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2027년 적용 최저임금안 이의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2027년 적용 최저임금안 이의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 연구도, 법원 판결도 외면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변화에 맞춰 제도를 보완해야 할 책임을 스스로 외면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임위가 부결을 강행한 바로 다음 날인 6월 12일,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플랫폼 노동자 보호 취지가 담긴 193호 협약(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이 채택됐고, 한국 정부도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 최저임금 심의가 한창이던 와중인 7월 3일, 서울고등법원은 배달 플랫폼 배달기사를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국제무대에서는 ‘노동존중’ 생색내기를 하고, 국내에서는 직접 수행한 연구용역과 법원판결까지 묵살하며 870만 노동자의 생존권을 짓밟는 이해할 수 없는 이중 태도”라고 꼬집었다.

법원 판결 당사자인 라이더 노동자들의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올해 상반기 라이더들의 실질 시급은 평균 7천400원 수준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인 1만700원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응답자의 92%는 지난해 6월 대비 올해 6월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은 월평균 41만 원 이상 수입이 줄었다.

민주노총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이미 한국 노동시장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지만, 최저임금 제도는 여전히 전통적인 고용관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사회 전체의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최저임금이 계약 형태를 이유로 수백만 명의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저임금과 양극화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도급제 노동자 별도 적용 안건에 대해 즉각적인 재심의”를 요청하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이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난 15일 총파업에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핵심 구호 중 하나로 내건 민주노총은 하반기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최초의 구속력 있는 국제기준인 ILO 193호 협약에 대한 국회 비준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적정보수-최저임금 쟁취,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정의 확대를 위한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